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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情과 挑戰精神이 살아 있음의 徵標”|新東亞

이 사람

“熱情과 挑戰精神이 살아 있음의 徵標”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 이길여 嘉泉大 總長

  • 송홍근 | carrot@donga.com

    入力 2016-07-27 15: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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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聽診器 데워 患者 가슴에… 世上을 품은 女醫師
    • ‘歷史上 가장 크게 自手成家한 女性 CEO’
    • “꿈꾸는 人生 살아온 게 健康 祕訣”
    바람개비는, 이길여 嘉泉大 總長에게 삶의 表象이다. 어릴 적 수수깡에 종이를 붙여 만든 바람개비를 돌리며 놀 때마다 大將 노릇을 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山으로, 들로 쉼 없이 달려야 한다.

    그는 逆境과 苦難이 닥치면 挫折하지 않고 맞섰다. 언제나 바람개비를 힘차게 돌렸다. 우물쭈물한 적 없다. 目標를 追求하면서 물러서거나 懷疑하지 않았다. “내 事前에 ‘失敗’와 ‘안 된다’는 말은 없다”며 “새우잠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자”고 다짐했다.



    “쓰러질 때까지 挑戰할 것”

    이길여 嘉泉大 總長은 醫師면서 敎育者다. ‘大韓民國 歷史에서 가장 크게 自手成家한 女性 CEO’로 꼽힌다.

    1957年 서울대 醫大를 卒業하고 이듬해 仁川에 세운 24坪 産婦人科가 嘉泉大와 가천대길병원 等의 母胎다. 손으로 받은 新生兒만 數十萬 名. 또한 100萬 名 넘는 이가 그의 病院에서 病을 이겨냈다.



    聽診器를 따뜻이 데워 患者 가슴에 대던 ‘醫師 이길여’는 4個 大學을 하나로 묶은 嘉泉大를 10代 私學(私學)으로 키워내겠다면서 오늘도 바람을 일으킨다. 敎育·醫療·文化財團을 이끌면서 멈추지 않고 달린다.

    그는 奉仕하는 삶을 살아온 것으로도 有名하다. 看護師와 美容師를 통통배에 태우고 西海 落島를 돌며 醫療·美容 奉仕를 始作한 게 1959年. 奉仕라는 槪念 自體가 稀薄하던 때다. 이어령 前 文化部 長官이 講演에서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中國 ‘三者頃(三字經)’에 보면 孝心이 至極한 어린 황향(黃香)李 아버지 이부자리를 自己 몸으로 데운다는 故事가 나옵니다. 日本에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家神으로 있을 때 朱君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는 逸話가 傳해집니다. 그럼 韓國에는? 추운 날 患者 몸에 聽診器가 닿을 때 선뜩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도록 가슴에 聽診器를 품고 지낸 意思가 있습니다.”

    平生 病院 한 番 못 가본 가난한 이들에게 仁術(仁術)을 펼치자는 다짐이 그가 只今껏 참醫術, 참사랑의 바람개비를 돌려온 힘일 것이다. 그는 “뜨겁게 타오르는 熱情과 挑戰精神이 살아 있음의 徵標”라면서 “萬一 그 溫度가 식어간다면 生의 파란 불이 꺼지는 것”이라고 했다.

    “女子는 初等學校만 보내줘도 感之德之해야 할 때 자랐습니다. 高等學校(當時는 6年制로 中·高校 過程이 합쳐져 있었다) 進學 때 어머니가 死生決斷으로 어른들을 說得해 이리女子高等學校에 入學할 수 있었어요. 집에서 이리(現在의 益山)까지 가는 汽車가 하루에 딱 두 次例 있었는데, 延着이 茶飯事였습니다. 午後 5時 半에 學校를 罷하고 밤 12時에 집에 돌아온 적도 있으니까요. 汽車가 延着할 때마다 소나무 위에서 工夫했어요. 꿈이 있었으니까요. 꿈꾸는 것이 重要해요. 쓰러질 때까지 繼續 挑戰할 겁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目標한 일을 하나하나 이뤄나갈 거예요.”  



    20年間 無料 心臟病 手術

    高等學校 다닐 적 親舊들이 “어느 大學에 들어가 어떤 工夫를 할 거냐”고 물으면 “서울대 醫大 가서 醫師가 될 거야”라고 答했다 한다. 비웃는 사람들에게는 속으로 ‘두고봐라, 가나 못 가나’라면서 覺悟를 다졌다.

    그는 全北 옥구(1995年 群山에 統合) 出身이다. 1958年 開院한 病院 이름은 ‘이길여産婦人科’. 病院다운 病院을 만들겠다는 覺悟로 이름 석字를 내걸었다. ‘朴內科’ ‘金産婦人科’ 같은 病院名이 一般的일 때다. 1964~1968年 美國에서 인턴·레지던트 過程을 마쳤으며 1975~1977年에는 日本 니혼臺에서 工夫했다.

    1978年 醫療法人 길醫療財團을 設立한 後 ‘이길여産婦人科’는 屈指의 綜合病院(가천대길병원, 동인천길병원 等)으로 成長했다. 1998年 後進 養成을 위해 歌天醫科大學을 세우고 같은 해 경원대를 引受했다. 2012年 歌天醫大, 歌天길대학, 경원대, 慶源專門大를 嘉泉大로 統合했다.

    그는 ‘이웃과 世上을 품는 女醫師’로 불린다. 1959年 始作한 子宮癌 無料檢診을 통해 12萬 名 넘는 女性의 健康을 지켜줬다. 市民 參與 醫療扶助運動團體를 세워 4000名 넘는 患者에게 手術費를 支援했다. 無料 心臟病 手術로 1996年부터 世界 各國 380餘 名의 어린이가 새 生命을 찾았다. 그는 이 같은 功勞로 2003年 國民勳章 無窮花章, 2012年에는 인촌賞(公共奉仕部門)을 받았다.

    “1983年 로널드 레이건 當時 美國 大統領 夫婦가 訪韓 日程을 마치고 美國으로 돌아갈 때 우리 先天性 心臟病 어린이 두 名을 美國에서 手術 받도록 同行시켰습니다. 醫師로서 韓國에서 心臟病 手術을 못하는 것이 宏壯히 가슴이 아팠어요. 大學生들이 美國을 미워할 때인데,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좋은 이미지를 줬죠. 우리 病院에서 外國 어린이를 手術해주면 韓國에 對해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과 奉仕라는 낱말에 對한 그의 생각은 이러하다. ‘사랑이란 他人을 위해 나를 불사르는 일이다. 父母님의 사랑, 成俔(聖賢)의 사랑이 낳는 불꽃은, 더없이 뜨겁고 純潔하게 無條件으로 타오르기에 永遠히 빛나는 것이다’ ‘奉仕란 손을 비워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奉仕하는 기쁨을 모른다면 人生의 折半도 모르는 것이다.’


    “내려놓아야 채워진다”

    “博愛, 奉仕, 愛國이라는 우리 財團의 精神이 共感의 幅을 넓혀가는 것 같아요. 奉仕의 精神, 共存의 精神은 앞으로 더욱 重要해질 겁니다. 우리가 가진 醫療 및 敎育 인프라를 바탕으로 國境을 넘는 奉仕를 더 積極的으로 實踐해나갈 겁니다. 靑年 世代에서 이 같은 精神을 繼承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所望합니다.”

    이길여産婦人科는 1977年 醫療保險制度가 定着될 때까지 ‘保證金 없는 病院’이라는 標말을 내걸었다. 醫療保險制度가 施行되기 以前 病院들은 患者가 病院費를 못 낼 것을 걱정해 治療에 앞서 保證金을 받았다.

    “살림이 힘들던 時節이에요. 한番은 子宮 밖 妊娠이 된 女性이 手術費가 없다면서 돌아가겠다더군요. ‘사람부터 살아야지, 手術費는 나중에 갚으라’고 說得했지요. 그 後 病院 懸板 옆에 ‘保證金 없는 病院’이라고 크게 써 붙여놓았습니다. 患者들이 治療費 代身 낸 生鮮, 나물 같은 게 病院에 수북이 쌓였던 記憶이 납니다.”    

    子宮癌 無料 檢診은 ‘最小限 仁川에서는 子宮癌으로 죽는 女性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始作했다. 子宮癌은 早期에 發見해 治療하면 生存率이 90%에 이를 만큼 治療 效果가 좋으나 癌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死亡하는 女性이 적지 않았다.

    1982年, 1988年에는 京畿 楊平郡과 講院 鐵原郡에 楊平길병원과 鐵原吉病院을 開園했다. 當時에는 오지나 다름없던 곳이어서 두 病院 모두 經營 收支를 맞추기 어려웠지만 住民들의 懇請을 拒絶하지 못했다. 1995年에는 門을 닫을 危機에 處한 白翎島 赤十字病院을 떠맡아 2001年까지 白翎吉病院을 運營했다.



    “女子 혼자 살려면…”

    그가 이렇듯 社會에 寄與하는 삶을 살아온 데는 어릴 적 어머니의 가르침이 影響을 미쳤다. 全北 옥구의 故鄕집에는 거지가 찾아오기 일쑤였는데 어머니는 精誠껏 밥과 국, 飯饌을 내 집에 찾아온 손님들처럼 接待했다. 그들에게 飮食을 나르는 게 ‘少女 이길여’의 몫이었다.   

    “子息은 父母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고 해요. 어머니가 나눔을 實踐하는 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을 婦女會長을 맡아 慈善 活動을 主導하셨거든요. 6·25戰爭의 傷痕을 克服하느라 奉仕라는 槪念이 거의 없을 때 落島를 돌며 醫療奉仕에 나선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 德分입니다.”

    그는 1978年 醫療法人을 設立해 財産을 社會化했다.

    “産婦人科이다 보니 患者를 먼 곳의 다른 病院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狀況이 잦았는데 그게 안타까웠습니다. 醫療法人이 綜合病院의 設立 主體가 돼야 한다는 條項이 醫療法에 새로 들어가 醫療法人이 아니면 綜合病院을 세울 수 없게 됐습니다. 醫療法人 設立은 個人 財産을 社會에 獻納한다는 意味라 ‘女子가 혼자 살려면 財産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挽留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病院은 國民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에 1978年 150病床 規模의 ‘醫療法人 仁川 길병원’을 開園했습니다. 病院을 크게 지었다 赤字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한 분도 있었는데 開院 3年 만에 施設을 두 倍로 擴張했지요.”

    獨身으로 살아온 그는 “病院에서는 낳은 情, 大學에서는 키운 情을 느낀다”고 했다.  

    ‘患者바라기’로 하루 4時間 넘게 잔 적이 없는 ‘醫師 이길여’는 ‘學生밖에 모르는 總長’이다. 學生들이 膳物한 肖像(學生 얼굴 寫眞들을 모자이크해 그의 얼굴을 表現했다) 額子를 가리키면서 “學生 하나하나가 모두 親子息 같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嘉泉大를 2020年까지 國內 10代 私學으로 우뚝 세울 겁니다. 4個 大學 統合은 成長의 열매가 아니라 成長을 위한 밑거름日 뿐이죠. 嘉泉大를 世界와 堂堂히 競爭하는 반듯한 ‘名品 大學’으로 키워낼 겁니다. 嘉泉大의 發展이 가져오는 惠澤이 在學生, 同門을 넘어 社會와 國家로 돌아가게끔 할 거예요. 그것이 제 役割이에요. 누구에게나 疏明이 있고 그것을 完遂할 責任이 있는데 나의 召命과 責任이 人材 育成입니다.”     

    그는 病院과 大學의 水準은 硏究·開發(R&D) 力量에서 決定된다고 믿는 터라 2004年 1000億 원을 投資해 가천腦科學硏究院을 여는 等 嘉泉大 傘下 3代 硏究所(가천腦科學硏究院, 이길여癌·糖尿硏究院, 歌天바이오나노硏究員)를 통해 世界 水準의 臨床 硏究 인프라를 갖췄다.



    아름답게 솟아오르는 샘

    “가천腦科學硏究院, 이길여癌·糖尿硏究院, 歌天바이오나노硏究院 外에도 마우스代謝疾患特化센터를 設立하는 等 硏究 力量을 强化하고자 努力해왔습니다. 가천腦科學硏究院이 2014年 美國科學財團 映像分野 ‘世界 10代 硏究所’로 選定되는 等 成果가 잇따르고 있어요. 基礎 醫科學 分野의 發展을 통해 人類에 貢獻하고, 世界에 코리아를 빛낼 人材를 養成하는 일에 盡力하려고 합니다. 政府가 世界 水準의 硏究中心大學(WCU)으로 選定한 이길여癌·糖尿硏究院과 腦科學硏究院, 歌天바이오나노연구원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地平을 열어나갈 거예요.”

    ‘歌天(嘉泉)’은 ‘아름답게 솟아오르는 샘’이란 뜻이다.

    “歌天은 ‘가회合禮 수세仁川(嘉會合禮 壽世仁泉,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른 삶을 이루게 하고 마르지 않는 生命으로 온 누리를 健康하게 한다)’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敎育과 醫術의 價値가 複合된 表現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院長을 지낸 桃源 류승국 先生께서 지어주신 저의 雅號이기도 하고요.”

    그는 골프에서 그 어렵다는 에이지 슈트(自己 나이와 같거나 나이보다 적은 스코어로 라운드를 마치는 것)를 達成했을 만큼 健康하다.

    “每日 아침 스트레칭을 充分히 해요. 하루 1時間 넘게 散策하고요. 날씨가 좋지 않을 땐 반드시 집에서 러닝머신이나 스태퍼로 散策을 代身합니다. 별다른 祕訣은 없지만, 恒常 꿈꾸는 人生을 살아온 게 健康의 祕訣이라면 祕訣입니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아요. 肯定的인 方向으로 생각하려고 늘 努力하고요. 일이 잘 안 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털고 일어납니다. 아파하고 괴로워할 餘裕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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