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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을 리모델링 하다|신동아

挑戰! 서울에서 狹小住宅 짓기

追憶을 리모델링 하다

3話_理事 & 設計 始作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諮問·이재혁 | yjh44x@naver.com

    入力 2016-08-02 1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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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移徙 後 우리 집 設計가 本格的으로 始作됐다. 그 過程은 散策의 連續이었다. 틈만 나면 男便과 散策하면서 庭園, 인테리어, 階段, 駐車場, 베란다, 化粧室 等에 對한 생각을 나눴다. 男便은 우리의 對話를 設計圖面에 풀어냈다.
    2015年 6月 移徙를 왔다. 漢江 둔치와 街路樹길 代身 漢陽都城 길과 이화 壁畫마을, 마로니에公園이 있는 곳. 돗자리 깔아놓고 ‘치맥’을 즐기며 공 차는 아이들 바라볼 場所가 없어 아쉽지만, 때마다 열리는 다양한 文化藝術 公演에 눈과 귀가 호강한다.

    週末 소나무길에서는 實力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客(客)을 끌어들이고 봄가을엔 마로니에공원에서 거리 公演 祝祭나 演劇 祝祭 等이 열린다. 요즘 동양藝術劇場에선 公演이 쉬는 時間을 活用해 中國 映畫를 無料로 上映한다. 곳곳에 숨은 美術館, 콘서트홀, 小劇場에서 날마다 뜨거운 삶의 熱情을 뿜어낸다. 종로구 명륜동, 惠化洞은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지만, 바로 옆 마을 동숭동은 삶의 에너지가 끓어넘치는 鎔鑛爐 같다.??? ?

    나와 男便에겐 더없이 재미있는 洞네다. 그러나 아이들은 故鄕洞네 親舊들과 漢江을 그리워했다. 週末마다 親舊들 만나러 漢江에 가자고 졸랐다. 特히 큰아이는 6學年 學期 中間에 轉學을 오는 바람에 새로운 環境에 適應하기 어려워했다. 江南 쪽 初等學校는 外國에 나가거나 歸國하는 親舊가 많아 轉學이 非一非再하지만, 이곳 學校는 들고나는 아이가 많지 않고 幼稚園부터 한 팀처럼 움직이기에 全學生이 適應하기 힘든 것 같았다.



    혜화동에 산다는 것

    가뜩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큰아이는 學校 가는 것 自體를 힘들어했다. 轉學 온 뒤 바로 사귄 親舊가 있었는데, 속상하게도 2週 뒤 그 아이가 轉學을 갔다. 親舊 사귀는 건 힘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知覺이 여러 番 反復됐고, 親舊에게 날카로운 指摘을 받고 온 다음 날에는 缺席을 하기도 했다.



    反面 둘째아이는 下校 後 跆拳道學院에 가서 뛰고, 特有의 親和力으로 學校 運動場에서 놀다가 午後 6時가 돼야 집에 들어왔다. 혜화初等學校 轉學 後 좋은 點은 下校 後 校門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엄마들의 ‘터널’이 없다는 것, 下校한 뒤 함께 놀 親舊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適應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轉學 와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엄마標 오븐 料理 代身 外食의 즐거움을 約束했다. 醋밥, 쌀국수, 카레, 칼국수, 돈가스 等 누구나 한番 들어봤을 맛집들. 이름만 들어도 배부른 無限 리필 食堂이 櫛比한 곳. 때때로 새로 생긴 飮食店에서 펼치는 50% 割引, 無料 贈呈 이벤트에 아이들은 熱狂했다. ?

    學院에는 보내지 않았다. 어디에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一旦은 學校에 適應하는 것이 優先이라 생각했다. 跆拳道와 劍道 말고는 구몬漢字와 鍾路區 畫像 英語만 申請했다. 나는 큰아이의 親舊가 되기로 마음먹고 아이 스케줄에 맞춰 껌딱紙처럼 붙어 다녔다.

    내 어릴 적 이야기도 참 많이 해줬다. 釜山에서 轉學 와서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던 얘기, 그런데 事實은 놀린 게 아니라 처음 듣는 사투리가 궁금해 자꾸 말을 시켰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는 얘기. 親舊 사귀기 힘들면 中學校 가서 사귀어도 된다고, 엄마도 中學校 가서 많이 달라졌으니 몇 달만 견뎌보자고….? ?

    그런데 正말 異常하게도, 學院에 보내지 않아도 마음이 便했다. 事實 江南에선 學院에 보내도 마음이 不便했다. 學院 選擇이 잘못된 건 아닌지, 아이가 學院에서 뒤處地眞 않는지….

    엄마 생각이 바뀌어서 그랬을까. 問題가 너무 쉬워서였을까. 둘째아이는 性的 變化가 거의 없는데 큰아이는 試驗을 보면 거의 100點을 받아왔다. 예전보다 問題가 쉽기도 했지만 學校에서 授業 集中度가 높아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學校에서 工夫 잘하는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아이의 自信感도, 自尊感度 조금씩 回復되는 듯했다. 表情도 조금씩 밝아졌다.

    어느 날 큰아이가 興奮된 목소리로, 學校에서 前에 다니던 學校 親舊 아무개를 봤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서초구 잠원동에서 4學年 때 같은 班이던 親舊가 지난 3月에 혜화初校로 轉學을 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時期에 같은 學校로? 그 집도 집 지으러 왔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小說을 쓰며 그 아이 엄마 만날 날을 苦待했다.

    마음은 있으나 만나지지 않았다. 큰아이의 수줍음이 나를 닮았다고 새삼 느낀다. 下校길 그 아이를 마주칠 때 엄마 電話番號라도 물어보면 될 것을…. 親舊들과 무리 지어 가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低學年도 아니고 高學年인 아이의 親舊 關係에 엄마가 나서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고, 그 엄마는 우리를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도 한 坪 定員이 可能할까

    移徙를 오고 나서 우리 집 設計가 本格的으로 始作됐다. 移徙 後에도 貰入者의 傳貰 期間이 1年 以上 남아 있기에 設計를 어느 程度 마치고 나서 貰入者를 만나 移徙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그동안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돈 안 되는 우리 집 設計는 돈 되는 일에 恒常 밀렸기에,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가물에 콩이 날 듯 말 듯했다.? ?

    누군가 집 짓는 過程을 記憶의 리모델링이라고 했다. 建築家 男便이야 여러 事例를 굴비 꿰듯 하고 있었지만 난 그렇지 못했기에 男便은 늘 散策을 始作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男便의 “우리 散策할까?”라는 말의 意味는 ‘우리 집 얘기 좀 할까?’였다.

    “내가 初等學校 入學할 즈음 우리 집이 처음으로 只今의 관악구 봉천동 쪽에 집을 지어 移徙했는데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셔서 마당엔 노랑 빨강 粉紅 薔薇, 샐비어, 맨드라미, 粉꽃 等 各種 꽃이 가득했어.”



    男便은 어린 時節 집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면서 이런 얘기를 꺼내놓았다.

    안房 쪽 야트막한 담牆 藤나무 덩굴 아래엔 빈 새집이, 藤나무 그늘 아래에서 누나, 동생이랑 冊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얘기를 할 때는 世上을 다 가진 듯한 表情을 짓곤 했다. 어릴 적 親舊 종윤이, 騎手와 높은 담牆을 타고 놀았으며 當時 南部循環道路가 막 생긴 때라 널찍한 道路에 茶는 없어서 自轉車로 曲藝하듯 신림동 四거리까지 다녀오곤 했다며 武勇談도 늘어놨다.

    그러면 나도 질세라 우리 집에도 藤나무가 있었는데, 경사진 곳에 있어서 大門을 열면 바로 바위가 보이고 왼쪽으로 階段이 있었는데 藤나무가 안房까지 그늘을 드리웠으며, 2層 높이의 木蓮이 봄 마당 가득 木蓮 꽃잎을 떨구고 여름엔 나무에 듣는 소나기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며 追憶을 꺼내놓았다.

    “香氣 좋고 탐스러운 牧丹 꽃이 필 때면 홀린 듯 마당에 나가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어느 해인가는 이름 모를 들꽃이 날아들어 마당을 가득 채웠는데 雜草라 불리는 들꽃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나중에 그 꽃 이름이 ‘닭의欌풀’이라는 걸 알게 됐지. 내가 生物學科를 選擇하게 된 것도 그때의 好奇心 때문이 아니었는지 몰라.”?? ?

    “그래, 무엇이든 무리 지어 있으면 그림이 된다니까!”

    그리하여 우리 집 庭園은 1層 駐車場 안쪽에 아이들에게 追憶을 膳物할 有實樹 한 그루와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꽃들을 심고, 分明 넓지 않을 테니 덩굴 植物로 담牆을 채우고, 4層 廚房 옆 베란다엔 키친가든을 만들어 收穫의 기쁨을 맛보며 살자 했다.

    庭園, 인테리어, 階段, 駐車場, 베란다며 化粧室에 對한 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도 一旦 散策부터였다. 이番 주는 명륜동 골목길, 다음 週는 惠化洞 골목길, 그다음은 동숭동 카페 길 等. 散策할 땐 마음도 잘 맞고 얘기도 잘 풀렸다. 男便은 그 이야기를 圖面으로 풀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에도 그냥 잠들지 못했다.??? ?

    男便은 ‘아재 개그’의 達人이자 眞談 닮은 弄談으로 相對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있다. 特히 本人의 關心事와 맞아떨어지는 內容이면 온 宇宙를 다 끌어들인다. 큰아이가 ‘우리 집에도 미끄럼틀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韻을 띄우면 나는 진지 모드로 “너 나이가 몇인데…”라고 시큰둥해하지만 男便은 다락房에서 3層 아이 房까지 連結된 미끄럼틀 그림을 立體的으로 그려가며 時速 100km 速度로 미끄럼을 태워주는 式이다. 비록 弄談 半 아재 개그 半, 말로 탄 미끄럼이지만 아이들은 까르륵까르륵~ 재미있어 죽는다. 男便의 長點은 무엇이든 안 되는 게 없고 現實的으로 안 되는 건 想像으로라도 실현시킨다는 데 있다.?



    弄담쟁이와 걱정쟁이의 設計

    나는 애初부터 집 안보다는 베란다나 庭園 等 바깥 空間에 關心이 많았다. 베란다 있는 4層에 廚房과 居室을 함께 놓아달라는 것, 베란다에 해먹을 걸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나의 첫 番째 注文이었다.

    그런데 4層에 廚房과 베란다를 놓는다 생각하니 物件을 어떻게 옮기나 걱정스러웠다. ‘配達 아저씨에게 4層까지 옮겨달라 할 수도 없고. 쌀이며 生水, 花盆, 거름 等을 어떻게 하지? 몇 달만 살면 腰痛 또 도지는 거 아냐? 亦是 廚房은 아래層인가?’ 苦悶하는 나에게 男便은 食堂에서 飮食을 옮길 때 使用하는 小貨物 專用 엘리베이터인 덤웨이터를 놓자며 장난처럼 말했다. 빙고~ 眞正 男便은 나의 苦悶 解決士인가!

    男便은 아마 좁은 우리 집에 덤웨이터를 놓기 어렵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 것이다. 1層부터 4層까지 連結된 덤웨이터 하나가 차지하는 空間이 얼마나 클지, 그것으로 인해 空間이 얼마나 歪曲될지 豫想했을 테니. 그러나 男便은 나에게 選擇權을 줬다. 잃는 것과 얻는 것을 견주어보고 어떤 것을 選擇할지.

    ‘엘리베이터 없는 5層에서도 다들 사는데…. 우린 3層이잖아? 쉬었다 1層 더 올라가지 뭐.’ 한 坪이 아쉬웠던 나는 結局 덤웨이터를 抛棄하기로 했다. 그래도 未練을 버리지 못하는 表情이 안쓰러웠던지 男便은 이렇게 韻을 띄운다.

    “이番에 도르래 한番 만들어볼까. 도르래 裝置를 해서 駐車場 쪽에서 4層 北쪽 베란다로 짐을 올리는 거지. 왜~ 있잖아~. 에어컨 室外機 据置臺에 中國집 鐵가방을 매달아서 올리면?”

    @@~ 캑 아~놔~ 正말!!!

    오늘도 우리는 설익은 弄談을 始作으로 살을 붙여가며 우리 집을 짓는다.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單獨住宅 設計는 ‘집主人의 肖像畫를 그리는 作業’이라 말합니다. 設計 施工 後 入住한 집이 집主人을 닮았다면 아마도 잘된 設計가 아닐까요. 하지만 집主人과 꼭 닮은 집을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왜냐면 建築家는 建築主와 일을 통해 처음 만나 不過 4~6個月 만에 設計를 마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住宅 設計를 여러 番 해본 專門家라 하더라도 計劃 初盤에 家族 構成員의 特徵이나 生活方式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建築主는 自己가 어떤 집을 지으려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집은 肖像畫 그리기
    처음 建築主를 만나면 어떤 집을 願하는지 물어봅니다. 建築主 大多數는 그때부터 집에 對한 構想을 具體的으로 始作하는데, 家族이 2名이든 4名이든 對答은 한결같습니다. 放은 3칸 程度, 廚房과 居室이 컸으면 좋겠고, 化粧室도 2칸은 必要하다고 答합니다. 모두들 아파트나 빌라에 살고 있기에 空間에 對해선 沒個性人 境遇가 많습니다. 代身 建物 外觀에 對해선 고급스러워 보이는 大理石, 따뜻해 보이는 나무, 튼튼한 甓돌 等 具體的인 材料를 말합니다. 그러나 住宅의 境遇 나만의 집이 되려면 外觀보다는 內部의 空間 構成에 集中할 때 삶의 滿足感이 큰 집, 나를 닮은 집이 됩니다. 建築家의 質問에 具體的으로 對答할수록 나를 닮은 집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내게 맞는 집

    建築家가 建築主의 性格이나 집에 對한 생각을 알아내려면 서로 알아가는 時間이 必要합니다. 普通은 몇 가지 質問을 통해 어느 程度의 情報를 얻게 되는데 質問의 答을 얻는 데 한 달 以上 걸리는 境遇도 있고, 長文의 리포트를 받는 境遇도 있습니다. ?

    1段階 質問은 日程과 費用의 問題로 願하는 집의 規模, 工事를 위한 豫算, 願하는 入住 時期, 언제까지 居住할 것인지 같은 全般的인 計劃에 關한 質問입니다. 이 質問은 大部分 契約 前에 이뤄지고, 設計費를 決定하는 重要한 要因이기도 합니다.

    2段階 質問은 家族 構成員과 必要한 空間들, 가지고 있는 家電과 家具들, 購入하고자 하는 家電과 家具들의 目錄입니다. 2段階 質問을 통해 建築의 規模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特히 現在 가진 家口를 把握하는 것은 向後 計劃될 空間 規模를 具體的으로 決定하는 데 매우 重要하며, 建築主의 趣向을 把握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3段階 質問은 家族 構成員의 特徵과 그들의 生活 패턴, 趣味나 特技, 選好하는 디자인이나 材料 等 좀 더 具體的이고 內密한 속내까지 包含합니다. 結局 이 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그들이 집을 통해 얻고자 하는 窮極的인 삶의 方式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합니다. 이 質問에 對한 答을 통해 個性 있는 집이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이끌어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過程입니다. 그냥 멋지기만 한 집이 될지, 나만의 個性 있는 집이 될지는 이 段階에서 建築家와 어떻게 疏通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洪 現 警

    ‘가드너’로 불리고 싶은 前職 出版編輯者. 冊을 企劃하고 編輯하는 일을 20年 동안 해오다 2014年 가을 退職했다. 요즘 庭園 일의 즐거움에 푹 빠져 ‘市民庭園師’로 活動하고 있다.




    이 再 革

    ‘놀이터 같은 집’을 모토로 삼는 建築家. 재미있는 空間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서울市 公共建築家이자 韓國木造建築協會에서 施行하는 5-star 品質認證委員으로 活動한다. 2004年 新人建築家賞, 2008年 올림픽公園 내 올림픽프라자 리모델링으로 서울市建築賞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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