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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 스스로 自省 게을리하지 않아야”|신동아

“言論 스스로 自省 게을리하지 않아야”

[단국대 HK+事業團 連續 企劃 ‘韓國社會와 知識權力Ⅱ’ ?] 김학준 인천대 理事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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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記者

    mrfair30@donga.com

    入力 2023-03-1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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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連行·拘束·拷問… “想像 못 할 言論 彈壓”

    • 言論 位相 墜落 原因=社會 多元化

    • 權力 牽制가 言論 使命

    • 解答은 結局 正論直筆

    • 大庄洞 事件 自省 機會 삼길

    • 朝鮮 500年 버틴 祕訣은 言官

    ‘신동아’는 檀國大 日本硏究所 HK+ ‘東아시아 知識權力의 變遷과 人文學’ 事業團과 함께 ‘韓國社會와 知識權力’을 主題로 連鎖 인터뷰를 進行한다. 韓國 社會에 큰 影響을 미친 機關·人物을 통해 삶과 知識, 權力의 聯關 關係를 살피고 知識과 權力의 未來像 또한 摸索하려는 企劃이다. <編輯者 週>



    1월 31일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언론의 사명은 권력 견제”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1月 31日 김학준 인천대 理事長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言論의 使命은 權力 牽制”라고 말했다. [지호영 記者]

    “3日 前 滿 80歲가 됐어요.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지나온 나를 돌이켜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悔恨이 들어요.”

    1月 31日 京畿 龍仁市 檀國大 竹田캠퍼스에서 만난 김학준 인천대 理事長은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듯했다. 金 理事長은 1943年 1月 28日 當時 滿洲國 선양에서 태어났다. 光復 以後 韓國으로 왔다. 6·25戰爭, 4·19革命, 維新 時代, 光州 民主化運動 等 韓國 近現代史 主要 事件을 目睹했다. “그토록 많은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 時代的 要求에 맞게 말하고 行動해야 옳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게 ‘悔恨’의 理由다.

    金 理事長은 知識人의 길을 걸어왔다. 傑出한 政治學者이자 言論人이다. 한때 政治를 하기도 했다. 서울大 政治學科를 卒業하고 朝鮮一步 政治部 記者로 일하다 美國으로 건너가 피츠버그대에서 政治學 博士學位를 받았다. 歸國 後엔 서울大 政治學과 敎授, 國會議員(12代·民政黨), 大統領公報首席祕書官 兼 代辯人, 인천대 總長, 國家記錄硏究員腸, 韓國政治學會長, 세계정치학회 副會長, 단국대 理事長, 아시아記者協會(AJA) 理事長, 東北亞歷史財團 理事長, 동아일보 會長 等을 歷任했다.



    金 理事長은 自身의 빼곡한 履歷 가운데 始作을 裝飾한 ‘記者’에 對한 愛情이 크다. 記者로 일하던 때를 “矜持와 使命感으로 權力에 맞서던 時節”이라고 回想했다. 뛰어난 記者였다. 그가 조선일보 記者 時節 部長이던 남재희 前 勞動部 長官은 “김학준이 쓴 記事는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出庫했다”고 말한 것으로 傳해진다.

    金 理事長은 인터뷰하는 동안 言論의 位相과 信賴度가 떨어져 가는 것에 對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1月 16日 글로벌 弘報컨설팅社 에델만에 따르면 지난해 11月 1~28日 온라인을 通해 28個國 3萬2000名을 設問調査한 結果 韓國人의 27%만이 ‘言論을 信賴한다’고 答해 英國(37%), 日本(34%)에 이은 最低値로 꼴찌를 記錄했다.

    金 理事長은 “言論 스스로 自省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强調했다. 言論이 나아갈 方向에 對해 “言論이 힘을 가진 까닭은 過去 言論人들의 權力에 맞선 鬪爭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言論의 使命은 權力 牽制다. 正論直筆(正論直筆·바른 主張을 펴고 事實을 그대로 傳함)의 姿勢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當付했다.

    時代의 옳고 그름 論하고자

    고(故) 천관우 전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김학준 이사장은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언관이라는 글에 기자가 됐다”고 말했다. [동아DB]

    고(故) 천관우 前 韓國思想史學會 會長. 김학준 理事長은 “朝鮮이 500年을 버틸 수 있었던 祕訣은 言官이라는 글에 記者가 됐다”고 말했다. [東亞DB]

    첫 職業으로 記者를 擇한 理由가 무엇입니까.

    “高等學校 3學年 때 4·19革命, 大學에 入學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5·16軍事政變을 겪은 經驗이 影響을 미쳤습니다. 또 大學 時節 政治學科라서 文理大 所屬이었는데, 文理大는 雰圍氣가 多少 獨特했어요. 出世, 財物 等 營利를 追求하는 것과는 距離가 있다고 할까요. 이런 곳에서 4年을 보내다 보니 公務員, 會社員이 되기보다는 時代의 옳고 그름을 論하는 論客이 되고 싶었어요. 當時 尊敬받던 言論人 고(故) 천관우 先生처럼 되길 바랐습니다. 千 先生이 쓴 글이 記憶에 남습니다. ‘朝鮮이 500年을 버틴 祕訣은 言官(言官)·士官(史官)의 힘’이라고요. 그들이 늘 正論直筆로 君主를 輔弼해 올바른 政治를 할 수 있게 이끌었으니 이 文化가 韓國에도 繼承돼야 한다고 하셨죠. 그 말에 感服해서 言官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決心했습니다.”

    記者 生活은 어땠습니까.

    “그땐 中央情報部(現 國精院)의 힘이 莫强했습니다. 國家 곳곳에 支配力을 行使했고, 言論도 例外가 아니었습니다. 中央情報部가 干涉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中央情報部員이 編輯局에 들어와서 新聞 大將(臺帳)을 檢査할 때가 많았습니다. 同僚 記者들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憤慨하곤 했죠.”

    只今 그랬다간….

    “想像할 수 없는 일이죠. 1966年엔 記事 하나로 트집을 잡혀 3泊 4日을 中央情報部에 잡혀 있었습니다. 이듬해엔 아예 拘束됐어요. 西大門 矯導所에 40日 동안 있었습니다. 家族도, 辯護士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調査받을 때는 南山으로 끌려가고, 그날 調査가 끝나면 다시 矯導所에 잡아두고…. 拷問도 當했습니다. 나중에 周邊 이야길 들어보니 제가 當한 건 拷問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군요. 彈壓이 얼마나 甚했는지 斟酌이 가죠. 이런 일을 當하고 나니 言論人의 길을 繼續 걸어갈 수 있을지 懷疑感이 들었습니다.”

    使命感 없인 버티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그렇죠. 게다가 그때는 言論社도 많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인터넷新聞은 當然히 없었고, 또 只今이야 放送局의 影響力이 크지만 當時엔 KBS는 政府 傘下機關, MBC는 政府 出捐機關이라고 해서 穩全한 言論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結局 主要 日刊紙 6~7個가 言論 一切나 마찬가지였죠. 記者들 사이에서 ‘韓國 言論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 ‘言論의 機能을 우리가 遂行해야 한다’는 使命感이 매우 컸습니다. 그럼에도 中央情報部가 툭하면 트집을 잡고 連行해 대니 쉽지 않았죠. ‘任意同行(搜査機關이 被疑者의 同意를 얻어 被疑者와 搜査機關까지 同行하는 것)’을 名分으로 令狀도 없이 마구 잡아가 대니…. 非難 輿論이 일면 ‘本人이 同意해서 데려간 거다’라고 거짓말하고요.”

    權力의 彈壓이 甚했던 代身 大衆의 應援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하지만 國家가 누군가를 逮捕할 때 國家保安法, 反共法 違反을 口實 삼은 게 問題였습니다. 이른바 ‘빨갱이’니까 잡혀간다고 認識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只今과는 社會 雰圍氣가 달랐습니다. 저도 結局 記者 生活을 접고 美國으로 留學을 가려 했지만 與圈이 나오지 않았어요. 當時 編輯局長이던 故 鮮于煇 先生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이 사람 絶對 빨갱이 아니다. 젊은 사람이 工夫 좀 하겠다는데 왜 막느냐’고요. 그분이야 워낙 反共人士로 여겨졌으니 保證이 되지 않습니까. 德分에 結局 與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꼬박 1年이 걸렸습니다.”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은 “언론 역할은 권력 견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김학준 인천대 理事長은 “言論 役割은 權力 牽制에 있다”고 强調했다. [지호영 記者]

    言論 自由는 鬪爭 産物

    現在는 言論의 位相이 그때만 못한 것 같습니다.

    “社會 多元化가 原因이라고 봅니다. 큰 企業도 몇 個 없던 過去에야 言論이 社會에서 차지하는 比重이 컸죠. 社會가 漸漸 多元化하면서 世界的 企業이 여럿 생겨나다 보니 社會的 影響力이 分散된 거죠.”

    媒體 多邊化 影響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數十~數百萬 名이 購讀하는 유튜브 채널도 言論社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影響力을 미치곤 합니다. ‘가로세로硏究所’나 ‘金於俊의 謙遜은 힘들다 뉴스工場’이라거나….

    유튜브 이용자가 늘어나며 수십만~수백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뉴스 채널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자체 뉴스 콘텐츠를 방송한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利用者가 늘어나며 數十萬~數百萬 名에 達하는 購讀者를 保有한 뉴스 채널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自體 뉴스 콘텐츠를 放送한다. [유튜브 캡처]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現象엔 韓國 社會가 병들어 있는 側面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刺戟的이고 煽情的인, 煽動에 가까운 뉴스와 論評에 휘둘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社會가 병들어 있으니 그런 無責任한 主張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社會가 좀 더 健康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학준 理事長은 “바람직한 言論의 役割은 權力 牽制다. 權力이란 政治·經濟·文化 權力을 모두 일컫는다. 社會에서 影響力과 支配力을 行使하는 存在를 牽制하는 것이 言論의 使命이다. 이러한 觀點에서 아직 言論의 影響力은 크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言論의 힘이 줄어들긴 했지만 權力이 言論을 統制할 수 있는 領域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過去 言論人들이 鬪爭을 통해 얻은 産物이라고 봅니다. 嚴酷했던 維新·軍事獨裁 時節에도 言論人들은 言論 自由를 위해 싸웠어요. 저는 아직 그 氣魄이 言論界에 남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權力, 예컨대 大統領 或은 執權 勢力은 如前히 言論을 警戒하고 있죠. 바람직한 現象입니다. 政治人이라면 늘 自身을 反省해야 해요. 孔子께서 ‘一日三星(一日三省·하루에 세 番씩 自身의 行動을 反省함)’을 强調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言論 權力은 어떻게 牽制해야 합니까. 2003年 노무현 當時 大統領은 國會 國政演說에서 “言論은 또 하나의 權力이다. 견제받지 않는 權力”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言論人 스스로의 努力이 重要합니다. 늘 自身을 돌아보며 讀者의 눈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 亦是 過去 제가 쓴 記事를 보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나’ 싶을 程度로요. 마찬가지로 只今 記者들도 自身의 글을 다시 보면서 잘못한 點이 있다면 되풀이하지 않도록 늘 自省해야 합니다.”

    制度를 통한 牽制는 어떻습니까. 2021年 더불어民主黨이 試圖한 言論仲裁法 改正案 立法처럼요.

    “立法으로는 改革이 안 됩니다. 1964年 朴正熙 當時 大統領도 言論을 統制하기 위해서 똑같은 試圖를 했어요. 結局 失敗했죠. 言論 彈壓임이 明確하니 國際社會의 非難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言論 改革은 言論 內部에서 施行돼야 합니다. 勿論 쉽지 않죠. 하지만 外部로부터, 特히 어떤 法으로서 强制하려는 것은 決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效果를 거두지도 못합니다.”

    言論 中立, 先入見 버려야 可能

    中立性 亦是 言論의 使命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言論의 中立性은 隨時로 論難이 이는 問題다. 保守 媒體 或은 進步 媒體로 言論社를 區分하는 게 現實이다. 지난해 10月 13日 國會에서 進行한 ‘言論自由·放送獨立을 위한 言論人 懇談會’에서 李在明 民主黨 代表는 “言論 自由의 核心은 亦是 中立性이고, 目標는 公正性이라고 생각된다”며 “모두가 言論의 自由를 위한 公正 報道 시스템을 말하지만 異常하게 攻守가 바뀔 때마다 생각도 바뀌더라”고 말했다.

    言論의 中立性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보는 視角이 많습니다.

    “中立을 지키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國際社會에서 中立國家로 살아남는 것이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듯이요. 中立이 어려운 까닭은 自身과 周邊을 正確히 把握해야만 可能하기 때문입니다. 言論의 中立性도 言論이 狀況을 올바르게 認識해야 可能합니다. 漠然히 가운데에 位置하라는 게 아닙니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中間을 追求해야 하는 것이죠.”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피그만 침공 작전을 시행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해당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케네디 정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DB]

    1961年 존 F 케네디 當時 美國 大統領은 쿠바 카스트로 政權을 붕괴시키기 위해 피그만 侵攻 作戰을 施行했지만 失敗했다. 當時 美國 言論은 該當 作戰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케네디 政權의 負擔을 줄이기 위해 報道하지 않았다. [東亞DB]

    言論社가 定向을 갖고 特定 政治 勢力을 代辯하는 樣相을 보이는 것이 事實 아닌지요.

    “그렇죠. 定向을 가질 순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人類 普遍的 價値를 志向해야만 합니다. 예컨대 民主主義, 人權, 市場經濟 等이요. 言論社가 어떤 政治 勢力이 스스로와 비슷한 定向이라 해서 잘못된 點을 批判하지 않으면 안 되죠. 존 F 케네디 美國 前 大統領이 떠올라요. 1961年 그가 쿠바의 카스트로 政權을 붕괴시키겠다고 피그만 侵攻 作戰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當時 피그만 侵攻 作戰 計劃을 이미 알고 있던 言論社가 꽤 있었지만 國益을 保護한다는 名分으로 감췄습니다. 作戰은 失敗로 끝났고 케네디 政權은 國內外的 어려움에 빠집니다. 그때 케네디 大統領은 記者들에게 ‘차라리 當身들이 報道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 計劃을 抛棄했을 것이고, 이런 꼴을 當하진 않았을 것 아니냐’라며 怨望을 쏟아냈습니다. 言論이 政府를 봐주려다가 오히려 國家에 被害를 주게 된 거죠. 言論社가 政權과 結託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中立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結局 正論直筆입니다. 팩트에 根據한 저널리즘이 基本입니다. 事實이면 報道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됩니다. 特定 政治 勢力과 그 人事에 對해 好不好를 標示할 순 있죠. 하지만 事實에 根據한, 客觀的 判斷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獨善과 先入見을 버려야 합니다. 例컨대 한 大統領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하는 일은 모두 支持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겁니다. 宏壯히 어려운 일이죠.”

    言論은 言論人의 集合體다. 言論人 個人의 定向이 모여 言論의 定向을 形成한다. 定向이 드러나면 저널리즘의 客觀性은 빛이 바라게 된다. 言論人의 政治參與가 不適切하다는 指摘을 받는 理由다. 민경욱 前 議員, 윤창준 前 大統領 代辯人, 金宜謙 議員 等 言論人 出身 政治人의 政治 入門 當時 모두 論難이 일었다.

    言論人의 政治人化(化)에 對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亦是 言論人 出身 政治人으로서 말하기 憫惘한 問題입니다. 當時 敎授로 있다가 光州 民主化運動에 얽혀 보름 程度 拘束됐습니다. 이것이 契機가 돼 政治에 入門했는데, 돌이켜 보면 참 부끄러워요. 그때 政治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學校에 쭉 있었어야 했어요. 이러한 마음을 前提로 말하자면 言論人은 될 수 있으면 政治權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言論人으로서의 純粹性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해요.”

    무엇보다 重要한 건 人性

    1월 27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다수 중앙일간지 간부가 그에게서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1月 27日 火天大有資産管理 大株主 김만배 氏가 서울 서초구 서울中央地方法院에서 열린 大庄洞 開發事業 로비·特惠 疑惑 關聯 裁判에 出席하고 있다. 多數 中央日刊紙 幹部가 그에게서 金品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2021年부터 只今까지 世間을 떠들썩하게 한 大型 스캔들, 이른바 ‘大庄洞 事件(京畿 성남시 분당구 大庄洞 開發事業 當時 火天大有라는 特定 會社에 巨額의 利益을 몰아줘 賂物로 使用했다는 疑惑)’의 中心에도 言論人이 있다. 火天大有 大株主 김만배 氏는 한 言論社에서 社會部 法曹팀長을 지낸 前職 記者다. 中央日刊紙 幹部 여럿이 金 氏에게 數億 원臺의 金品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大庄洞 事件 報道 過程에 關與할 수 있는 位置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波長을 불러일으켰다. 김학준 理事長은 “너무나 不幸한 일”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大庄洞 一堂에 言論人이 끼어 있다는 게 言論人 出身으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大庄洞 事件을 살펴보면 言論人 出身 김만배 氏가 企業人, 法曹人 等 社會 各界各層과 公募한 것 아니겠습니까. 財界, 法曹界, 言論界 모두 부끄러운 일이죠. 그가 法院 出入을 한 바 있어 裁判 去來를 했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司法府에도 큰 負擔이 될 테고요. 言論界는 이番 事件을 自省의 機會로 삼아야 합니다.”

    言論이 國民의 信賴를 回復하기가 쉽지 않아진 듯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客觀的 報道, 事實에 根據한 저널리즘 等 基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敎育界에도 오래 몸담았습니다. 言論人을 養成한다면 어떤 原則을 가장 重要하게 여기겠습니까.

    “人性입니다. 제가 人性이 뛰어나서는 아닙니다. 八十 平生을 되돌아보니 가장 重要한 건 사람의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요즘 사람의 됨됨이를 가장 重要하게 생각합니다. 이 다음으론 그가 只今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 重要하고요. 韓國은 빠른 時日 內에 壓縮的으로, 빠르게 成長하다 보니 成就를 最高의 價値로 여기는 文化가 形成돼 있어요. 勿論 成就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와 함께 人性도 强調하는 敎育이 竝行돼야 합니다. 記者도 마찬가지예요. 먼저 사람이 돼야 합니다.”

    김학준 理事長은 “言論社 亦是 마찬가지”라며 다음과 같이 當付했다.

    “原則的 이야기지만 言論은 使命感과 責任感이 가장 重要합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장사하는 企業이 되는 거예요. 言論社는 普通 企業과는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收益性만을 追求하지 말며 言論 本然의 役割이 무엇인지 銘心해야 합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記者

    大學에서 保健學과 英文學을 專攻하고 2020年 東亞日報 出版局에 入社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新東亞로 왔습니다. 政治, 社會, 經濟 全般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世上에 關心이 많습니다. 設令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價値 있는 記事를 쓰길 願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責任感을 잊지 않고 옳은 記事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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