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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다, 無知했다, 未安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신동아

“잘못했다, 無知했다, 未安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돌아온 언니’ 스타 講師 김미경의 再起 一聲(一聲)

  • 김유림 記者 │ rim@donga.com

    入力 2014-02-20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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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碩士論文 剽竊 論難 以後 첫 인터뷰
    • 梨花女大 “論文 獨創性 認定하지만 一部 ‘再引用’ 誤謬”
    • 혼자 論文 修正하며 내 人生의 一部로 받아들였다
    • 高校 自退한 아들 위해 ‘祝賀파티’…失敗가 아니라 選擇
    • 白馬 탄 男子는 없다. 創業 精神으로 結婚해라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스타 講師’ 김미경 아트스피치 院長이 돌아왔다. 碩士論文 剽竊 論難으로 모든 放送에서 下車한 지 1年 만이다.

    지난해 初 ‘김미경 烈風’이 불었다. tvN ‘김미경 쇼’는 케이블 放送으로는 異例的으로 높은 視聽率을 올렸고 ‘드림온’ ‘언니의 毒舌’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等 그의 著書들은 한꺼번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金 院長은 未來가 不安한 就業準備生, 일과 育兒에 지친 워킹맘 等에게 “꿈을 품고 精進한다면 못 할 일이 없다”며 따끔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에 많은 사람이 그를 ‘꿈 멘토’ ‘國民 언니’로 推仰했다. 그가 出演한 MBC ‘무릎팍道士’는 異例的으로 同時間帶 視聽率 1位에 오르며 話題가 됐다.

    내려앉기 前에 내려놓기

    하지만 3月 20日, 朝鮮日報가 1面에 그의 碩士論文 剽竊 疑惑을 다루면서 ‘김미경 烈風’은 새로운 局面을 맞았다. 조선일보는 2007年 2月 金 院長이 이화여대에 提出한 碩士 學位論文이 旣存 硏究·學位論文을 最小 4篇 짜깁기했다고 報道했다. 以後 그는 모든 放送에서 下車하며 자취를 감췄다.

    설 名節을 앞둔 1月 마지막 週, 서울 麻浦區 하중동 執務室에서 그를 만났다. ‘論文 事件’ 以後 첫 인터뷰를 앞두고, 多少 上氣된 모습이었다. 金 院長은 2月 中旬 發刊될 새로운 冊을 내밀었다. 冊 題目은 ‘살아 있는 뜨거움’. 포근하면서도 强烈한 다紅빛 커버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自己啓發書는 여러 卷 썼지만 에세이는 처음”이라며 말門을 열었다. 새로운 冊을 언제 構想했냐고 물으니 “내가 昨年에 時間이 좀 많았니?”라며 化通하게 웃었다. 걸걸한 목소리와 화끈한 말套는 그대로였다.



    金 院長은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村년’이라 表現한다. 1964年 忠北 曾坪에서 태어난 그는, 손대는 事業 족족 失敗한 아버지 代身 平生 洋裝店을 運營하며 家計를 꾸려온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을 꼭 빼닮았다. 연세대 作曲科에 首席 入學하며 上警의 꿈을 이뤘지만 音樂 代身 學生運動에 빠져 大學 時節을 보냈다. 結婚 後 피아노 學院을 運營하던 스물아홉, ‘꿈이 시키는 대로’ 企業 講師가 됐다. 20年 가까이 企業을 돌며 女性 리더십, 女性 마케팅 等에 對해 講義했고 2006年 MBC 希望特講 ‘파랑새’로 TV 講義를 始作했다. 2011年부터는 ‘김미경의 파랑새’라는 ‘토크 콘서트’ 形式의 講義를 始作해 每달 聽衆 500餘 名을 만났다. 그는 “結婚했으니 일을 그만해야 하나”라는 苦悶을 한 番도 해본 적 없을 程度로 30年間 쉼 없이 달려왔다고 告白했다.

    ▼ 平生을 바쁘게 살아왔는데 지난 1年 空白이 낯설진 않았나요?

    “放送을 쉬자 企業 講義 要請도 줄어들었어. 프리랜서한테 스케줄은 목숨과도 같은데, 많은 會社가‘사건에 連累된 사람을 講師로 招請하기 어렵다’며 講義를 取消한 거야. 會社 規模를 그대로 運營하기 어려워졌고 職員이 여럿 나갔어. 그런데 잘된 일이지. 비운 만큼 채우는 건데, 已往이면 화끈하게 많이 비우는 게 좋지. 大統領 中에도 監獄에서 내공을 쌓은 사람이 있잖아. ‘내려앉기 前에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많이 비웠어.”

    ▼ 내려앉는 것과 내려놓는 것이 다른가요?

    “많이 달라. 무너지는 걸 아등바등 안고 있으면 쿵 내려앉는 거고, 내가 抛棄하면 내려놓는 거지. 내려놓았을 때는 내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알 수 있지만, 他意에 依해 내려앉기 始作하면 끝이 어딘지 몰라. 내려놓고 그다음에 채우기 始作하는 거지.”

    ‘曾坪 村년’의 꿈, 語學硏修

    ▼ 지난해 6月부터 3個月間, 美國 語學硏修를 다녀왔죠?

    “내가 胎生的인 村년이잖아. 大學 때 가장 부러운 게 아버지 돈으로 美國 留學 가는 애들이었어. 내가 正말 하고 싶은 게 英語로 講義를 해서 베트남, 中國 等 東南亞에 내 講義 콘텐츠를 퍼뜨리는 거거든. 근데 그間 하루에 講義를 7, 8件씩 했는데 英語 工夫할 時間이 어딨어. 그저 決心과 抛棄를 反復했지. 그런데 일이 줄어드니 職員들이 ‘院長님, 只今이 일도 적고 英語 工夫하기에는 適期예요’라며 나를 美國으로 보내줬어요. 職員들한테 참 고맙지.”

    ▼ 30年 만에 英語 工夫, 잘되던가요?

    “正말 오랜만에 英語를 接했지. 眞짜로 英語가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오른쪽 귀로 쏙 빠져나가더라고. 美國 뉴욕大 여름 語學코스에 갔는데, 韓國 學生이 몇몇 있었어. 스무 살 갓 넘은 뽀송뽀송한 애들이야. 한참 토익, 토플 工夫하다 온 애들이랑 내가 比較가 되겠어? 근데 내가 잘하는 거 있잖아, 억척스러운 거. 거기서도 3, 4時間만 자면서 工夫했어. 글쓰기나 PT(發表)는 本文 全體를 외워버렸고, 單語는 큰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壁에 붙여놓고 외웠어. 오렌지를 쥐어짜는 그림을 그리고 ‘squeeze’, 自動車 門을 당기는 그림을 그리고 ‘pull’, 이런 式으로. 처음 入學할 때는 레벨 試驗에서 9段階 중 밑에서 3段階로 들어갔는데, 卒業할 때는 글쓰기 試驗에서 96點 받았어. 祕法? 그냥 다 외워버렸지.”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tvN ‘김미경쇼’는 2013年 初 케이블 放送으로는 異例的으로 높은 視聽率을 올렸다.

    ▼ 그럼 이제 英語 講義할 水準이 되나요?

    “勿論 아니지. 그런데 只今 著名한 物理學者인 미나스 카파토스 美國 채프먼臺 敎授와 함께 冊을 쓰고 있어. ‘살아가는 問題와 苦痛을 物理學的으로 어떻게 說明할 것인가’에 對한 冊인데, 一旦 카파토스 박사랑 疏通하고 冊을 써야 하니까 英語 工夫 熱心히 하고 있어. 只今 冊 目次는 다 나왔어요. 이 일을 하면서 다시 한 番 느낀 건, 工夫도 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는 거야. ‘10年 後 美國에서 講義할 것’이라는 꿈을 漠然하게만 꾸다보면 10年은 어느덧 와 있고 英語는 如前히 못해요. 當場의 ‘出口’, 工夫를 써먹을 데가 있어야 더 熱心히 하게 된다는 거지.”

    “努力만 한다고 될까?”

    2月 10日 그의 새로운 冊 ‘살아 있는 뜨거움’이 發刊됐다. 이 冊은 우리 各自의 삶에는 ‘運命의 秋’가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壁時計에 매달린 追加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듯, 우리 삶도 不幸과 幸福 사이를 數없이 오간다는 것. 늘 걸걸한 목소리로 “핑계 대지 말고 一旦 죽을 만큼 熱心히 살라”고 소리 높여 외치던 ‘드림 워커’가, 왜 이제와 ‘運命의 힘’을 論하는 걸까.

    “살다보면 運命的인 일이 벌어져요. 꿈과 意志를 갖고 달리다가도 家族, 環境 때문에 꿈을 向해 더는 갈 수 없는 때가 생겨. 自身의 意志와 關係없이 벌어지는 일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의 質問을 많이 받았어요. ‘無條件 나 혼자 熱心히 한다고 世上이 달라지지 않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는 質問. 지난 1年間 그 質問에 答을 해주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난 그 對答을 運命에서 찾았어요.”

    ▼ 運命과 꿈, 어떻게 다른가요?

    “꿈이 幸運이라면 運命은 不幸이야. 幸運은 힘든 人生을 견디게 하지만 不幸은 나를 단련시켜. 運命 때문에 꿈을 꿀 수 없다지만, 運命과 親舊가 돼서 그 안에서 꿈을 키워야지. 運命을 다스리고 親舊가 되는 法을 배워야지.”

    ▼ 運命과 어떻게 親舊가 될 수 있나요?

    “運命의 추는 살아 있는 내내 끊임없이 움직여. 우리의 心臟이 뛰는 한, 追加 움직이는 것을 막을 道理가 없지. 이때 重要한 건 내 狀況만 左右로 움직이지 정작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야. 富者인 나와 가난한 나, 幸福한 나와 不幸한 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지만 내가 굳건하게 있다면 그때 비로소 ‘本來의 나’를 만나게 되지.”

    “只今도 팬들에게 未安”

    지난해 金 院長은 ‘運命의 秋’에 한 放 세게 맞았다. 3月 20日, 조선일보는 1面에 “敎授·牧師·스타 講師까지 剽竊로 出世하는 나라”라는 題目으로 金 院長의 碩士論文 剽竊 疑惑을 다뤘다. 그가 2007年 2月 作成한 碩士 學位論文 ‘男女平等 意識에 基盤을 둔 職場 內 性戱弄 豫防 敎育의 效果性 分析’에 對해 조선일보는 “旣存 硏究·學位論文을 最小 4篇 짜깁기했다. 單語도 바꾸지 않은 채 통째로 各 論文에서 文章과 文段을 가져다 自己 學位論文을 만들었다”고 報道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某 大學 敎授 關係者의 말을 引用해, 金 院長이 代筆業體를 통해 論文을 쓴 것 아니냐는 疑惑을 提起했다.

    金 院長은 以後 SNS를 통해 “卒業한 뒤 20餘 年이 지나 처음 論文을 쓰느라 技術的으로 不足한 點이 있었다. 學界의 基準에 맞추지 못한 것은 失手였지만 良心까지 팔지 않았다”라고 解明했다. 後續 硏究者가 整理한 槪念을 引用하면서 圓 著作者를 밝히지 않은 것은 意圖하지 않은 失手였다는 것이다.

    ▼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럴 만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 나 지난해 1, 2月에 엄청 바빴어요. tvN에서 ‘김미경쇼’를 再放送을 하도 많이 하니까 TV만 틀면 내가 나왔을 程度야. 視聽率도 잘 나왔고, 以後 TV 토크쇼 出演도 잦았어. 게다가 書店에 가면 自己啓發書 베스트셀러 10位 中 3, 4卷이 내 冊일 程度였어. 갑자기 人氣가 부풀어 오르면서 ‘歪曲指數’도 같이 上昇했지. 게다가 내가 20年間 講義를 했는데, 그 많은 말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말빚’을 졌겠어. 지난해 初 人文學 卑下 論難(‘김미경쇼’에서 ‘나는 人文學 書籍만 읽고 自己啓發書를 안 읽는다’는 女學生에게 金 院長이 ‘自己啓發書는 人文學의 要約版’이라며 ‘건방지다’고 말한 것이 話題가 되면서, 金 院長이 人文學을 卑下했다는 論難이 일었다) 亦是 마찬가지야. 내가 한 잘못들,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디 안 가고 구름처럼 몰려 있다가 내가 第一 부풀려졌을 때, 딱 소나기처럼 쏟아진 거예요. 난 그게 運命이라고 생각해. 反面 견딜 수 있으니까 그때 온 거 아닐까?”

    ▼ 冊과 講演을 통해 ‘結果보다 過程이 重要하다’고 거듭 主張했던 분이 碩士論文을 剽竊했다는 데 失望한 사람이 많았어요..

    “正말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反應이었어. 나에 對한 期待가 이만큼 컸는지 몰랐어요. 正말 너무 未安하더라고. 더 注意해야 했는데. 只今도 그 親舊들한테 正말 未安해.”

    ▼ 以後 이화여대 硏究眞實性委員會에서는 ‘部分的으로 剽竊로 볼 수 있지만 論文 自體의 獨創性이 認定되고 當時 剽竊에 對한 基準이 없어 追加措置는 없을 것’라고 判斷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獨創性을 認定해줬다는 點에 對해 이화여대에 고마워요. 그럼에도 事實 잘못은 잘못이고 剽竊은 剽竊이지. 제가 無知했어요. 잘못한 건 確實해요.”

    ▼ 問題의 論文, 다시 본 적 있나요?

    “事件이 터지고 며칠 後, 잠이 안 오기에 한番 檢索해봤어. 그리고 論文에서 問題가 된 部分들을 혼자 고쳐봤지. 後續 硏究者가 整理한 槪念을 再引用하는 代身 元 著作者의 論文을 찾아 내가 다시 整理하면 되는 거잖아. 事實 재밌었어. 1週日 꼬박 매달렸더니, 論文이 딱 깔끔해졌거든. ‘아,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하는 생각도 들었고 工夫도 됐어요. 그러면서 이 論文과 關聯된 一連의 事件은 내 人生 속으로 들어왔고 다 곰삭아 이젠 내 一部가 됐어요.”

    專業主婦를 無視한다?

    ▼ ‘毒舌’講師인 만큼 팬도 안티도 많아요.

    “事實 人氣가 있으면 루머를 避할 수 없어. 稱讚하는 사람이 있으면 辱하는 사람이 있는 게 當然하지. ‘人慾精進’이라고 하죠. 辱을 통해 修行을 한다고. 辱을 먹어야 遂行이 되지 稱讚만 들으면 遂行이 되나.”

    ▼ 金 院長에 對한 惡플 中 “講義 아이템과 冊 內容이 繼續해서 反復된다” “自己 複製한다”는 批判이 있어요.

    “率直히 어떤 企業 講師는 아이템 3個로 30年間 講義해. 나는 2006年부터 TV 講義 때문에 繼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어. 正말 10年間 每日 3, 4時間씩 자면서 高3처럼 살았어. 제 講義를 眞心으로 들은 사람이라면 그런 말 못할 거예요.”

    ▼ 冊 ‘언니의 毒舌’은 女性들에게 ‘일을 통해 自我를 찾으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 때문에 相當數 專業主婦가 “育兒는 正말 성스러운 일인데, 김미경은 일하는 女子만 優越하다고 한다”고 不便해해요.

    “專業主婦로 사는 것, 正말 意味 있는 일이에요. 내가 가진 時間을 하나에 沒入하는 거랑 둘로 나누는 것 中에, 뭐가 더 힘들까? 當然히 沒入하는 게 더 힘들어. 워킹맘은 職場에서 받은 스트레스 家庭에서 풀고, 家庭에서 받은 스트레스 일터에서 푸는데 家庭主婦는 풀 데가 없잖아. 게다가 家庭主婦 재밌고 훌륭하게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김치 맛있게 담가서 男便 먹이는 걸로 幸福을 느끼는 사람들 있어요. 나는 그런 삶도 참 값지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런 거 잘 못하거든.”

    ▼ 많은 사람에게 本人과 같은 억척스러운 삶을 强要하는 것 아닌가요?

    “서로 다른 人生을 저울에 올려놓고 評價할 수 없지. 나한테 맞는 나만의 人生을 찾아야죠. 나는 强要한 적 없어요. 다만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는 거예요. 요즘 20~30代 女性 中 相當數가 나처럼 平生 일하며 살고 싶지 않나?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 家族이 어떤 施行錯誤를 겪었는지 알려줘서 그들은 덜 다쳤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 方式을 얘기할 뿐이니 받아들일지 말지는 本人이 定하면 되지.”

    ▼ 女性들에게 ‘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원더우먼이 되라’고 强要하는 것 같아요.

    “뚱뚱한 女子가 예쁜 옷 입는다고 작은 옷을 억지로 껴입으면 예쁜가? 各自 몸에 맞는 옷이 있듯, 各自 人生에 맞는 삶이 있는 거예요. 남의 基準에 無理해서 맞추지 말고 나한테 맞는 삶을 찾아야지.”

    ▼ 無條件 女性들한테 ‘나가서 일하라’고 하기보다는 企業, 社會의 變化를 促求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職場을 갖고 싶어도 環境 때문에 못 갖는 女性이 많으니까요.

    “企業들한테 女性 人力 採用하라고 내가 20年 넘게 말했어요. 내가 만든 企業 講演 프로그램 中 ‘多樣性 매니지먼트’라고 있어요. 企業에서 女性 人力을 어떻게 키워 任員으로 만들 것인지 가르치는 거예요. ‘女性 人力 키우기’라고 하면 男性 任員들이 안 들으니까 이런 이름을 붙였지. 15年間 삼성그룹 系列社 다 돌면서 ‘多樣性 매니지먼트’ 敎育했고, 女性 人力이 얼마나 優秀한지 알렸어요. 女性마케팅 分野 亦是 내가 先頭走者高. 放送에서야 普通 女性들, 엄마들을 聽衆으로 하니까 이런 얘기를 안 한 거지 내가 얼마나 旅券 伸張을 위해 努力하는데. 그리고 社會뿐 아니라 個人이 달라져야 할 點을 公開的으로 말한 게 뭐가 나쁘지?”

    ▼ ‘힐링’의 時代에 ‘勤勉’과 ‘成功’만을 强調하는 건, ‘새마을運動’式의 時代에 뒤떨어진 談論 아닌가요?

    “하루 終日 TV만 보는 사람한테 슬럼프가 오나요? 熱心히 뛰는 사람한테 ‘힐링’이 必要한 거예요. ‘힐링’은 스님들, 神父님들처럼 마음 修養 하신 분이 많이 말씀하시니까, 나 같은 사람은 ‘熱心히 달리라’고 채찍질해도 괜찮지 않나?”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番號票 뽑고 妊娠해라”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2011年부터 토크콘서트 形式의 講演 ‘파랑새’를 통해 每달 500餘 名의 聽衆과 만났다.



    그가 워킹맘에게 特히 큰 人氣를 얻은 것은, 그들에게 아주 切實한 問題에 對해 實質的인 解決 方法을 提示하기 때문이다. 金 院長은 冊 ‘언니의 毒舌’에서 “40代 男子部長의 아킬레스腱은 돈이 없다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밥과 술을 사라” “男子 後輩를 男子들의 世界에 ‘諜者’로 삼아라” “제발 番號票 뽑고 妊娠해라” “媤어머니 젊을 때 두 살 터울로 애 낳아라” “낮에만 일하는 ‘알바生’처럼, 여섯時면 사라지는 신데렐라처럼 굴지 말고 會食에도 列外되지 않게 努力하라”라는 等 그가 經驗으로 體得한 생생한 ‘워킹맘 生存法’을 傳達했다.

    ▼ 女性에게 家庭보다 일이 重要하다는 건가요?

    “當然히 아니지. 일과 家庭 둘 中 뭘 選擇하는지는 價値를 어디 두느냐에 달렸지. 다만 둘은 相反된 게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已往 女子들이 일을 하면서 살 거면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熱心히 하라는 거지. 마지못해 일하면서 ‘男便이 안 도와주고 일도 힘들어요’ 징징거리며 사는 거 말고. 어떻게 하면 둘 다 이루며 살 수 있는지 苦悶해야지.”

    ▼ 能力이 있지만 育兒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女性이 如前히 많아요. 그런 女性들이 意志가 不足한 건가요?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 나도 해봤잖아. 當場 어린이집에 애 찾으러 가야 하는데 部長이 會食하자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하지만 잠깐만 견디면 돼. 요즘은 於此彼 애 한둘밖에 안 낳잖아. 애들이 좀 커서 ‘엄마 會社 잘 다녀와’ 하며 내가 處한 狀況을 認定해줄 때까지, 無條件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會社로서도 잘 키워놓은 女職員이 5年 後 그만두거나 福祉制度 잘된 外國系 會社에 가버리면 얼마나 損害예요. 會社에서도 長期的인 眼目으로 女職員을 도와주면 서로 윈윈이지.”

    金 院長은 1男 2女의 엄마다. 大學生 큰딸, 高等學生 아들, 그리고 初等學生인 막둥이 딸까지. ‘國家代表 워커홀릭 엄마’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했다. 子女들에 對해 묻자, 그는 얼마 前 藝術高等學校를 다니던 아들이 自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들이 재즈피아노를 치는데, 豫告 入試를 體系的으로 準備하지 않은 채 藝高에 갔어요. 그런데 學校에서는 音樂 理論을 比重 있게 배우니까 試驗을 잘 못 보는 거지. 게다가 基本이 없으니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고 結局 自尊感만 떨어지는 거야. 이 애는 映畫音樂을 만들고 싶은데 學校 工夫를 하다보면 映畫 볼 時間도 없고. 얘기를 들어보니 2年間 참 힘들었겠더라고.”

    金 院長은 自退를 苦悶하는 아들과 3泊4日間 旅行을 떠났다. 많은 對話를 하며 서로 率直한 속내를 나눴고 結局 學校를 그만두기로 決定했다. 그는 “學校를 관둔 것은 失敗가 아니라 꿈을 選擇하는 많은 方法 中 하나”라며 아들의 選擇을 應援했다. 自退 後 家族은 ‘自退 祝賀파티’를 열었다. 只今 아들은 日本에서 映畫音樂을 工夫한다.

    金 院長은 아이가 中學校를 卒業하면 單둘이 1週日間 旅行을 간다. 旅行하면서 金 院長은 “난 너희가 태어나기 前에 25年을 김미경으로 살았어. 너 때문에 16年間 엄마로 살았으니, 이제 다시 김미경으로 살게”라고 宣言한다. 그때부터 그는 ‘엄마 김미경’이 아닌 ‘人間 김미경’으로 아이들을 對한다.

    “엄마랑 子息이랑 참 親한 것 같지만, 實際 얘기하는 거 얼마 안 돼요. 初等學生 때까지는 그저 어리고, 大學 가면 품을 떠나. 엄마와 子息이 人間的인 對話를 할 수 있는 건 中·高等學校 6年뿐인데 엄마는 그 貴한 時間에 만날 ‘밥 먹었니’ ‘工夫해라’ 이런 말만 하는 거야. 나는 家族에서 人間的인 苦悶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旅行을 다녀오면 아이들이 모든 걸 믿고 털어놔. 꿈, 하고 싶은 일, 苦悶, 男子親舊 이야기, 學校 다니기 싫다는 얘기…. 우리 애들은 엄마한테 ‘學校 다니기 싫다’고 말하는 거 怯 안 내요. 나도 우리 애들한테 내가 學生 때 어떤 苦悶을 했는지 다 얘기해줬거든. 우리 딸은 ‘나도 엄마처럼 애 셋 낳고 엄마보다 더 成功할거야’라고 말해요. 그렇게 서로 率直하게 對하다보면 人間的으로 關係가 쌓이는 거예요.”

    맞벌이와 ‘맞밥’

    그는 ‘公正한 結婚’을 主張한다. “結婚할 때 男子가 집은 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女大生들에게 “서른 갓 넘은 男子가 제 힘으로 집을 못 사는 게 正常인데 왜 너는 ‘不公正去來’를 원하냐”며 호통을 치고, 집안일을 等閑視하는 男性에게는 “맞벌이를 願하면 ‘맞밥’을 하라”고 要求한다.

    “結婚은 平生을 投資하는 건데 서로가 가진 돈이 아니라 可能性을 보고 結婚해야지. 努力 없이 얻는 거 말고 健康한 ‘創業精神’을 갖고 配偶者를 고르란 말이야. 特히 일하는 女子한테는 가난한 男子가 딱이야. 그런 男子는 謙遜하고 일하는 걸 配慮해주거든. 男子도 歇값으로 사서 金값으로 키워야지.”

    그렇다면 그의 男便은 어떨까. 그는 眞正 公正去來를 하는 좋은 男便일까? 金 院長은 “내가 얼마나 ‘맞밥’에 恨이 맺혔으면 講義 때 그런 말을 하겠냐”며 웃었다.

    “쉰 넘은 典型的인 韓國 男子가 ‘맞밥’을 했겠어요? 그런 男子랑 살면서 내가 平生 그렇게 熱心히 일을 했으니, 얼마나 많이 힘들었겠어. 講義 때 그런 말을 하는 건 내 딸들은 나 같은 苦悶을 안 했으면 해서야. 하지만 난 우리 男便을 참 尊敬하고 認定해요. 내 男便과 나는 運命과 人生이 달라. 태어난 곳도, 環境도, 꿈도, 運命도. 그저 우리는 서로 잘살 수 있게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同業者’야. 누군가의 犧牲을 基盤으로 한 夫婦關係는 決코 健康할 수 없어요.”

    金 院長은 봄부터 다시 바빠질 豫定이다. 放送 講義도 始作하고 年末에는 小劇場 公演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날 計劃을 세웠다. 다만 以前에는 逆境을 딛고 成功한 사람들의 事例를 통해 “너도 이만큼 熱心히 살아라”라고 했다면, 이제는 “너 혼자만 힘든 게 아니야”라며 함께 일어서는 方法을 나눌 생각이다. 지난해 ‘運命의 秋’는 그를 剛하게 强打했지만, 그 德에 그는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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