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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理解하면서 信賴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神父님’으로”|신동아

“싸우고 理解하면서 信賴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神父님’으로”

北韓서 平和·和解·나눔 實踐 박창일 新婦

  • 송홍근 記者 │carrot@donga.com

    入力 2014-02-20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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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政權 目標는 孤立으로부터의 脫皮
    • 南北關係 改善 못하면 外資誘致도 못해
    • 國精院 對北情報 ‘죽이는 칼’ 아닌 ‘料理하는 칼’ 돼야
    • 朴政府 對北政策 方向 옳지만, 行動으로 信賴 쌓아야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박창일 新婦가 2013年 11月 12日 平壤 京城幼稚園에서 北韓 어린이 어깨를 감싸 안고 있다.

    平壤 장충聖堂이 設立 25周年을 맞은 2013年 11月 10日. 박창일 新婦(예수聖心全校修道會)가 25周年 感謝미사를 執典했다. 北韓에도 聖堂, 敎會가 있다. 1988年 장충聖堂과 봉수교회, 1989年 漆谷敎會가 平壤에 建立됐다.

    “돼지를 잡았습니다. 단고기度 잘 먹었고요. 北쪽 信者들과 술盞도 나눴어요.”

    朴 神父는 1996年 北韓을 돕는 일에 投身했다. 2000年 1月 平壤을 처음 訪問했다. 金大中·노무현·李明博·朴槿惠 政府를 거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北韓을 찾은 韓國人은 그가 唯一하다.

    “數十 番 訪北했는데, 回數를 세어보진 않았어요. 14年 前과 比較하면 北韓도 크게 變했습니다. 가톨릭 神父를 對하는 態度도 바뀌었고요.”

    朴 神父는 2003年 設立한 NGO(非政府機構) ‘平和3000’에서 運營委員長을 맡고 있다. 平和3000은 2006年, 2007年에 各各 平壤에 豆乳工場, 豆腐工場을 짓고 頭部, 豆乳의 原料인 콩을 支援해왔다. 食糧難 解消를 돕기 위한 農業 支援 事業, 평양시體育團 蹴球場 리모델링 事業, 北韓 쇼트트랙 國家代表 競技服 支援 事業 等도 벌였다.



    “平和3000에서 數字 ‘3000’은 첫째로 뉴밀레니엄, 예수님 後 3000年期를 가리켜요. 2000年 동안 싸우며 살았으니 새 千年에는 ‘平和’롭게 지내자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三千里錦繡江山을 말해요. 南北이 ‘和解’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象徵的으로 하루에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寄附해 地球村 이웃들과의 ‘나눔’을 實踐하자는 意味고요. 卽 平和, 和解, 나눔이 3000의 意味입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朴 神父는 1996年 3月 21日 ‘東亞日報’ 社會面에 실린 200字 原稿紙 2枚 分量의 ‘北行 쌀貨物船 颱風 沈沒’ 題下 記事를 읽었다.

    “가톨릭 救護團體 카리타스가 北韓에 보낸 쌀을 실은 貨物船이 타이완 近處에서 沈沒해 船員 大部分이 死亡했다는 內容이었습니다. 北韓 食糧難이 어렴풋하게만 傳해질 때였습니다. 事情을 알고자 홍콩에 건너가 北韓을 돕는 스위스人 女性을 만났습니다. 北韓 動映像과 寫眞을 보여줬는데, 衝擊的이더군요. 韓國에 돌아와 그女에게 받은 資料를 新聞社, 放送局에 넘겨줬어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린이 모습을 TV에서 본 게 기억날 겁니다. 政府 許可를 받은 後 北側과 팩스로 疏通하면서 支援 問題를 協議했습니다. 訪北 招請도 여러 番 받았는데, 金永三 政府가 承認해주지 않더군요.”

    2000年 1月 平壤은 을씨년스러웠다. 水銀柱가 零下 15度를 가리켰다. 고려호텔은 暖房을 하지 못했다. 電氣暖爐와 이불 2章으로 밤을 넘겨야 했다. 낮엔 電氣를 供給하지 않았다. 밤에도 隨時로 停電이 됐다. 아침에 洗手하려고 물을 틀었더니 따뜻한 물이 나왔다. 옷을 벗고 샤워를 始作했다. 비누질하려 물을 잠갔다 다시 트니 溫水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平壤의 事情은 劣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信賴는커녕 서로를 理解하기도 어려웠고요. 元老神父님이 탄 乘用車에서 다툼이 벌어졌어요. 우리 쪽이 먼저인지, 保衛部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朴正熙 大統領이 女子 끼고 술 마시다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답니다. 元老神父님께서 權力者는 다 똑같다고 말씀했는데, 保衛部 人士가 발끈해 ‘이 令監탱이가…’라면서 막나온 겁니다. 晩餐 때 낮에 乘用車에서 벌어진 일이 話題에 다시 올랐습니다. 言爭이 또 벌어졌죠.”

    한 北側 人士가 言爭 途中 興奮해 “그딴 式으로 얘기하면 賞을 엎어버리겠다”고 劫迫했다. 朴 神父도 北側의 態度에 火가 나 있었다. “엎어? 내가 엎어버릴게”라고 대꾸하면서 床을 들어다 놨다 하고는 말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우리는 서울 가도 마누라도 없어. 子息새끼도 없고.”

    結局 晩餐은 깨졌다. 이튿날 午前 日程에 맞춰 호텔 로비에 내려갔더니 案內하던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房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로비로 내려오라는 電話가 걸려왔어요. 北側 사람들의 흰자위가 빨갛게 變해 있더군요. 다음番 訪北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우리 一行 탓에 밤새 對策會議를 했답니다. 다음 날 나가는 貨物飛行機에 실어 追放하려 했다고 해요.”

    北韓의 朝鮮語事典은 오랫동안 가톨릭 神父를 ‘바티칸의 앞잡이로서…’라고 定義했다. 北側 人士들은 그를 ‘朴 神父 先生’이라고 呼稱했다. 그는 이 呼稱이 마뜩지 않았다.

    “우리도 너희를 尊重할 테니 너희도 우리를 尊重해달라. 南쪽에서는 나를 朴 神父 先生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님’字 붙이기 싫으면 그냥 朴 神父라고 해라.”

    北側 人士들은 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첫 訪問을 마치고 平壤을 떠날 때 순안空港으로 배웅 나온 이는 이렇게 作別人事를 했다.

    “朴 神父 先生, 잘 가시라요.”

    朴 神父는 “北側 人士들이 이젠 神父님이라고 깍듯하게 呼稱한다”면서 ‘바티칸의 앞잡이’라는 表現도 ‘가톨릭의 聖職者’로 고쳤다고 말했다.

    “北韓에도 ‘信仰의 自由’는 있습니다만, 北韓 사람들이 宗敎를 잘 몰라요. 한番은 문익환 牧師의 아들이 문규현 神父냐고 묻더라고요. 新婦가 結婚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北韓에서 結婚 안 했다고 말하면 아가씨들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웃어요. 統一될 때까지는 結婚하지 않겠다고 弄談을 해줬습니다.”

    北韓 憲法 第68條에 ‘公民은 信仰의 自由를 가진다’고 돼 있다. 北韓의 ‘信仰의 自由’는 ‘宗敎의 自由’와 다르다. ‘宗敎의 自由’는 ‘무宗敎人 또는 다른 宗敎를 信奉하는 사람을 布敎·改宗할 自由를 包含하고 있으나 ‘信仰의 自由’는 믿고, 祈禱할 自由만을 의미한다.

    現場의 北韓 專門家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박창일 神父는 “北韓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마음을 열기가 어려운 게 事實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朴 神父는 信賴를 쌓는 게 南北 關係를 푸는 解法이라고 强調했다.

    “平和3000이 北側과 10年 넘게 별다른 衝突 없이 일한 것은 信賴 德分입니다. 信賴는 行動으로부터 나옵니다. 行動이 없으면 信賴도 없어요. 우리는 約束한 것은 지키고, 못할 일은 約束하지 않았습니다. 朴槿惠 大統領의 韓半島 信賴프로세스가 成功하려면 우리 政府가 行動으로 約束을 지켜야 합니다. 北韓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相對方을 믿는 게 相對方이 나를 믿게 만드는 方法입니다. 政府가 推進하는 韓半島 信賴프로세스가 成功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天主敎 釜山敎區 가톨릭勞動相談所 所長과 正義具現全國司祭團 都市貧民委員長, 統一委員長을 歷任했다. 15年 넘게 南北을 오가면서 일한 現場의 北韓 專門家다. 冊, 資料로 北韓을 工夫한 學者나 協商 相對로 北韓을 다루는 官僚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洞察을 提供하는 몇 안 되는 北韓 專門家 中 하나다. 人脈도 두텁다. 강지영 北韓 祖國平和統一委員會 書記局長 等과 10年 넘게 親分을 쌓아왔다. 北側은 지난해 6月 南北 長官級會談 協商 때 姜 局長을 會談 代表로 南側에 通報했으나 류길재 統一部 長官과의 ‘級(級)’ 問題로 霧散된 바 있다.

    그는 적어도 平壤의 經濟 事情은 過去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平壤 文殊물놀이腸을 訪問했습니다. 平壤만큼은 過去보다 確實히 좋아졌습니다. 사람들의 돈 씀씀이가 달라졌어요. 예전엔 옷차림이 잿빛밖에 없었는데, 只今은 華麗해졌습니다. 지난해 4月 完工된 희천發電所에서 平壤으로 電氣를 끌어온 德分에 밤風景度 환해졌습니다.”

    核武器와 關聯한 北側 人士들의 視角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無視當하지 않을 水準의 核武器를 갖춰 美國의 威脅에서 어느 程度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在來式 武器로는 南側과 競爭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蘇聯이 崩壞한 것은 核武器가 없어서가 아니라 在來式 武器를 늘리는 競爭을 繼續하다 經濟가 破綻 났기 때문이라고 보더군요. 南側은 核武器가 없고 우리는 있으니 在來式 武器 競爭에 나설 必要가 없다면서 郡으로 가던 것을 民間으로 돌려 經濟를 살리겠다는 겁니다.”

    北側 人士들은 지난해 不發한 長官級會談과 關聯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長官級會談을 했더라면 南北關係가 확 바뀌었을 것이라면서 ‘南側이 願하는 것을 다 들어줄 準備가 돼 있었다’고 하더군요. 離散家族 相逢뿐 아니라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줄 생각이었나 봅니다.”

    料理하는 칼, 사람 죽이는 칼

    “‘孤立으로부터의 脫皮’가 2013年 初여름 北韓의 政策 目標였다”고 朴 神父는 說明했다.

    “김정은이 2012年 4月 15日 育成 演說에서 ‘우리 人民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社會主義 富貴榮華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黨의 確固한 決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式으로든 成果物을 보여줘야 합니다. 놀이施設, 스키場을 짓고, 特區·開發區를 指定한 것도 같은 脈絡이고요.

    北韓이 지난해 初여름 多急했던 것 같습니다. 시진핑(習近平) 指導部 登場 以後 中國이 北韓을 쪼았지 않습니까. 北韓과 中國이 親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決코 그렇지 않아요. 北韓 사람들은 中國을 믿지 않습니다. 지난해 南北이 으르렁거릴 때 美國 航空母艦과 核推進 潛水艦이 西海에 들어왔어요. 中國은 韓半島의 安定을 바라죠. 앞바다로 여기는 西海에서 美軍이 활개 치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습니다. 中國은 韓半島의 安定을 위해서라도 南北關係 改善을 要求할 수밖에 없습니다. 北韓은 3次 核實驗 後 多方面에서 壓迫을 받았습니다. 危機意識을 느꼈던 것 같아요. 孤立에서 벗어나는 게 課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박창일 新婦가 2013年 11月 10日 平壤 장충聖堂에서 미사를 執典하고 있다.

    그는 國家情報院의 ‘情報(情報)’는 料理하는 ‘칼’이 될 수도, 사람 죽이는 ‘칼’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北韓은 그동안 長官級會談에 內閣責任參事를 내보냈습니다. 이 職責은 우리 式으론 次官級 程度로 봐야 합니다. 長官과 對話하기에는 事實 級이 안 맞는 겁니다. 保守 쪽에서는 이 같은 잘못된 協商 冠禮를 正常化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北韓이 지난해 봄 連日 對南 非難 攻勢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核實驗도 했고요. 任期 첫해 北韓과의 關係 改善에 나서는 것은 負擔이 많았을 것으로 봅니다. 政府 亦是 孤立으로부터의 脫皮를 願하는 北韓의 事情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國精院이 그 程度 情報는 當然히 갖고 있거든요. 이 같은 情報를 바탕으로 두 個의 서로 다른 政策을 驅使할 수 있습니다. 情報를 바탕으로 南北關係 改善에 나서는 것이 하나이고, 情報를 利用해 北韓이 무너질 때까지 더 옥죄려 할 수도 있습니다.

    現在 狀況도 비슷해요. 지난해 11月만 해도 北側 人士들은 離散家族 相逢은 金剛山 觀光 再開와 묶인 事案이라고 말했습니다. 北韓이 離散家族 相逢에 合意한 것을 보면 離散家族 相逢과 金剛山 觀光 再開를 分離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北韓 內部에서도 意見이 엇갈렸을 겁니다. 離散家族 相逢을 하자는 쪽과 韓美軍事訓鍊이 한창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쪽으로요.

    北韓이 南北關係를 改善하는 쪽으로 確實히 方向을 잡은 것 같습니다. 北韓 處地에선 南北關係가 安定되지 않으면 外資誘致 等에서 할 수 있는 게 別로 없습니다. 지난해 開城工團 再稼動 協商이 7次 會談에서 合意됐습니다. 6次 會談이 끝난 後 北側이 南側의 協商 態度에 熱 받아 南側 記者들을 相對로 報道資料를 뿌리며 抗議하지 않았습니까. 南側이 앞선 3次例 會談 때 修正案을 내놓지 않은 채 協商에 臨했다고 하더군요. 北側은 離散家族 相逢과 金剛山 觀光 再開를 엮은 提案을 해봐야 南側이 協商을 지루하게 끌면서 觀光 再開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分析했다고 합니다. 이番에 北韓이 金剛山 觀光 再開와 無關하게 離散家族 相逢을 받은 것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孤立으로부터 脫皮하고자 하는 겁니다. 韓國 政府는 現 狀況을 關係 改善의 디딤돌로도, 北韓을 옥죄는 카드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2月 12日 南北 高位級 接觸(南側 首席代表 金奎顯, 北側 首席代表 원동연)에서 北側은 “軍事訓鍊 期間 中에는 豫定대로 離散家族 相逢 行事를 할 수 없다는 게 原則的 立場”이라고 밝혔다. 北側은 離散家族 相逢을 讓步했으니 金剛山 觀光 再開 關聯 會談 日程을 定하자고도 提案한 것으로 알려졌다. 2月 14日 高位級 接觸에서 南北은 離散家族 相逢을 豫定대로 進行하기로 合意했다. 北側은 “大統領이 信賴를 重視한다니 그 말을 믿겠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한발 물러섰다. 北韓은 朴 神父가 2月 6日 新東亞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움직였다.

    政府는 숙이고 들어오는 듯한 北韓을 어떻게 다룰까? 政府에서 나오는 信號는 엇갈린다. 2月 6日 外交·統一·國防部의 統合 軟豆 大統領 業務報告의 焦點은 韓半島 信賴프로세스의 本格 稼動에 맞춰졌다. 統一部 業務報告에서는 DMZ 世界平和公園 年內 事業 着手,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推進 本格化, 社會文化 交流 및 人道的 支援 擴大가 强調됐다. 社會·文化 分野 交流 擴大, 對北 人道的 支援을 强化하겠다는 것으로 統一部는 그間 離散家族 相逢을 南北關係의 ‘첫 단추’라고 强調해온 바 있다. 統一部는 또 農林 分野 支援·協力 事業을 經驗과 力量을 갖춘 國際機構 및 유럽 等 海外 NGO와의 緊密한 協力下에 推進키로 했다.

    北韓專門家 vs 安保專門家

    ‘朝鮮日報’에 따르면 남재준 國精院長은 지난해 12月 21日 院長 公館에서 열린 幹部 送年會에서 朴槿惠 政權 任期 內 統一이 可能할 것이라며 國精院 職員들에게 “統一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參席者는 “國家 保安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祖國 統一을 위한 ‘具體的 플랜’도 論議했다”며 “2015年에는 自由 大韓民國 體制로 祖國이 統一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參席者들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內容의 獨立軍 軍歌 ‘襄陽歌(襄陽歌)’를 合唱했다고 한다.

    朴 大統領의 意中과 決心에 따라 對北政策은 江·온으로 달라질 수 있다. 朴 神父는 南北關係가 接觸面을 넓히는 쪽으로 나아가리라고 내다봤다. 非核化, 軍事的 信賴構築 等 難題를 빼면 北韓이 短期的으로 願하는 것은 金剛山 觀光 再開, 人道的 支援 擴大, 5·24措置 解除다. 韓國이 願하는 것은 離散家族 相逢 定例化, 國軍捕虜 및 拉北者 問題 解決, DMZ 世界平和公園 造成 等이다.

    “統一은 大舶이라는 朴 大統領의 發言이 吸收統一을 念頭에 두고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誤解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統一을 大박에 比喩한 것은 썩 좋은 表現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單語를 늘 節制해서 使用하는 분인데, 經濟的 效果를 强調하려고 그렇게 比喩한 것 같습니다. 大박은 大박이지 않습니까. 經濟的 利益이 큰 데다, 섬으로부터 脫皮해 大陸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말과 行動이 달라선 안 돼”

    그는 朴槿惠 政府의 對北政策과 關聯해 “大統領을 稱讚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바른 方向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 政府의 햇볕政策과 닮은 側面이 많다”고 評價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朴 大統領은 北韓에 메시지를 傳할 때 宏壯히 節制돼 있어요. 함부로 말하는 적이 없습니다. 아주 訓鍊이 잘된 분입니다. 安保를 튼튼히 한 後 交流 協力을 통해 信賴를 쌓아 統一 基盤을 構築하겠다는, 朴槿惠 政府가 내놓은 政策의 方向性은 옳다고 봅니다. 韓半島 信賴프로세스가 成功하려면 軍 出身의 安保 專門家가 아니라 協商에서 北韓을 說得할 수 있는 北韓 專門家가 앞장서는 게 좋다고 봅니다.”

    2012年 大統領選擧 때 박근혜 當時 候補를 도와 現 政府의 對北政策人 韓半島 信賴프로세스의 기틀을 짜는 데 參與한 길정우 새누리黨 議員도 新東亞 2013年 6月號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햇볕政策 亞流라고요? 거북하되 適切한 表現입니다. 李明博 政府 式으로 北韓을 몰아세워 屈服하게끔 하는 政策은 只今 狀況에서는 危險한 데다 現實的으로 可能하지도 않습니다. 朴槿惠 政府의 統一外交팀이 2年餘 함께 工夫했던 사람들이어서 大部分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금 더 保守的인 분도 있고 反對인 분도 있지만 討論을 거치면서 비슷비슷해졌습니다. 햇볕政策 亞流라고 한 것은 거북한 用語지만, 햇볕政策이라는 게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잖아요. 包容政策, 關與政策으로 飜譯되지만 두 表現이 的確하지는 않습니다. 包容이나 關與와 engagement는 뉘앙스가 달라요. engagement는 接觸의 面을 넓혀가는 겁니다. 北韓을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엮어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engagement 政策을 햇볕政策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햇볕政策의 亞流죠.”

    北韓 3代 世襲 權力者 金正恩은 올해 新年辭에서 “農業을 住公戰線으로 삼겠다”고 公言했다. 朴槿惠 大統領은 新年 記者會見에서 “北韓의 農業, 畜産業을 支援한다면 北韓 住民에게 實質的 도움도 될 뿐 아니라 그 過程에서 자연스럽게 北韓 住民에 對한 理解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와 關聯한 經驗이 豐富한 유럽 NGO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任期 첫해 北韓을 强하게 다뤘습니다. 北韓도 剛하게 맞섰고요. 時體말로 南北이 간을 본 겁니다. 離散家族 相逢 以後에는 人道主義 問題로 會談이 열리게 됩니다. 北側은 肥料가 不足합니다. 못자리龍 비닐薄膜 確保도 時急하고요. 3月 末까지는 비닐薄膜이 供給돼야 農事를 제대로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農業 關聯 支援을 하는 유럽 NGO는 달랑 두 곳밖에 없는데, 團體의 規模도 매우 작아요. 朴 大統領에게 유럽 NGO와 關聯해 누군가 잘못된 情報를 傳達한 겁니다.”

    朴 大統領은 候補 時節부터 最近까지 對北 人道的 支援은 政治的 狀況과 無關하게 持續한다는 原則을 一貫되게 밝혀왔다.

    “北側 人士들은 朴槿惠 政府가 말로만 人道的 支援을 얘기하고 있다면서 不滿을 나타냅니다. 李明博 政府는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NGO들이 要求하면 어쩔 수 없이 承認해줬습니다. 朴槿惠 政府는 反對예요. 된다, 된다 하면서도 承認해주지 않아요. 支援物品을 보낸 團體들의 모니터링을 위한 訪北도 制限합니다. 離散家族 相逢이 이뤄지기 前까지는 어렵다는 겁니다. 人道的 支援과 離散家族 相逢이 무슨 相關인지 모르겠습니다. 人道的 支援을 政治的 狀況과 連繫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行動은 反對로 하는 겁니다. 거듭 强調하건대 信賴는 行動에서 나오는 겁니다.”

    朴 神父는 歷代 政府의 人道的 支援 政策을 다음과 같이 比較했다.

    “김대중 政府는 南北關係를 改善해야 한다는 哲學 아래 人道的 支援에 나섰습니다. 노무현 政府는 孃을 擴大했고요. 다만 노무현 政府 때는 衆口難防(衆口難防)인 面이 있었습니다. 같은 品目의 重複 支援도 많았고요. NGO들이 앞다퉈 뛰어들다보니 南北交流協力基金을 더 받으려는 競爭, 先占한 아이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競爭이 있었습니다.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平和3000은 北韓 外에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等 第3世界 國家에 人道的 支援을 하고 있다.

    北韓이 이런 事情을 잘 알다보니 支援하는 쪽이 甲이 아니라 乙이 되곤 했습니다. 南側 NGO가 北側에 이런저런 要求를 해야 하는데 反對로 ‘先生 團體는, 그것밖에 못 합니까’라는 얘기를 듣는 例도 있었습니다. 李明博 政府는 哲學이 不分明하고 基準이 없었습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大統領과 直接 통하는 사람이 움직이면 統一部가 承認을 해줬습니다.

    朴槿惠 政府는 말로만 된다, 된다 했고요. 李明博 政府 마지막 해 對北 人道的 支援 額數가 總 118億 원인데, 朴槿惠 政府 첫해는 68億 원이에요. 嬰幼兒 支援事業도 醫藥品 中心으로 極히 一部만 進行됐습니다. 옥수수, 밀가루 같은 基礎 食糧은 承認을 안 해줘요. 嬰幼兒에게 藥을 주려면 먼저 밥을 먹여야 할 것 아닙니까. 李明博 政府 때만 해도 밀가루는 承認해줬어요. 朴 大統領이 人道的 支援 問題를 隨時로 얘기하다보니 앞선 政府와 달리 活潑하게 支援하는 것으로 誤解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實狀은 그렇지 않습니다. 朴 大統領도 官僚들의 보고만 듣고 人道的 支援이 잘 이뤄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쉽지 않아도 마음 열어야”

    平和3000이 北韓에 지어준 豆乳工場, 豆腐工場은 2010年 5·24 措置 以後 稼動하지 않는다.

    “豆乳, 豆腐의 原料인 콩 搬出을 承認하지 않아 工場이 서 있습니다. 朴 大統領 말대로 人道的 支援은 政治 狀況과 關係없이 해야 하는데, 統一部는 人道的 支援 物資 承認을 政治的 狀況과 連繫하고 關係機關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오래前 한 協同農場을 訪問한 적이 있습니다. 北韓이 아주 어려울 때예요. 琉璃窓이 다 깨져 있는데, 韓國에서 支援한 肥料 包袋로 바람을 막아놓았더군요. 包袋에 印刷된 ‘大韓民國’이라는 글씨가 鮮明했습니다. 肥料包袋, 밀가루包袋 하나도 北韓 人民에게 影響을 미칩니다. 사람과 物資가 왔다갔다 해야 變化가 생깁니다.”

    그는 所致 겨울올림픽에서 北韓 選手들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北韓 쇼트트랙 選手들은 平和3000 德分에 2006年 토리노 겨울올림픽에 參席했다.

    “北韓에서는 쇼트트랙을 ‘짧은 週로’라고 합니다. 토리노 올림픽을 앞두고 北側에서 짧은 週로 選手服을 求해달라고 付託하더군요. 運動服 하나를 못 求하나 싶었는데, 서울에 돌아와 알아보니 스케이트 날에 베이는 것을 防止하는 特殊 素材로 만든 옷을 입지 않으면 大會에 出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스케이트 날이 칼과 같답니다. 韓國에서도 쇼트트랙 選手服을 만들지 못하더라고요. 搜所聞 끝에 日本 미즈노에 注文을 했습니다. 北側은 選手服을 받고 宏壯히 고마워했습니다.”

    2007年에는 평양시體育團 蹴球場 리모델링事業을 進行했다. 人造잔디와 우레탄, 페인트 等을 支援했다.

    “北側에서 蹴球場 改補修 作業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보소, 市民團體가 무슨 돈이 있어 改補修를 해줍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南北이 協力해서 蹴球場 리모델링을 했어요. 北韓은 土木工事 等을 책임지고, 우리는 人造잔디와 우레탄 等을 支援했죠. 北韓이 2010年 월드컵 本選에 進出한 後 北側 人士 여럿으로부터 感謝 人事를 다시 들었습니다. 人造잔디 德分에 雨期와 겨울철에도 訓鍊을 할 수 있어 競技力을 維持했다는 겁니다. 北韓의 장웅 IOC(國際올림픽委員會) 委員이 只今 所致에 가 있는 韓國 人士를 만났을 때도 蹴球場 얘기를 또 하며 感謝를 표했답니다.”

    朴 神父는 南北關係를 夫婦에 比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夫婦가 살면 다툴 수밖에 없어요. 티격태격하는 게 夫婦죠. 그렇다고 男便이 夫人에게 ‘내가 시키는 것만 해’라고 하면 結婚生活이 正常的이지 못한 겁니다. 北韓은 特異한 곳이에요. 3代 世襲이 正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張成澤 事件도 끔찍했고요. 좋은 感情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기가 쉽지는 않죠. 그럼에도 마음을 열어야 信賴를 쌓을 수 있습니다. 信賴는 行動이 따라야 합니다. 北韓도 우리와 約束한 것을 지켜야 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北韓이 말이 아니라 行動으로 우리의 信賴를 받아야 하고 우리도 北韓의 信賴를 얻어야 南北關係가 發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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