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등산(天登山)李 거느리는 時間과 風習|新東亞

천등산(天登山)李 거느리는 時間과 風習

堤川

  • 최학│우송대學校 韓國語學科 敎授 jegang5@yahoo.com

    入力 2011-07-20 10:40: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천둥山은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歲月은 빠르게 흘렀다. 서울의 어두운 술집 골목에서 문득 ‘천둥山 朴達재-’를 흥얼거리다보면 그 酷毒한 어린 날들이 單番에 網膜에 펼쳐져 눈앞이 흐려진다. 그러나 이 늦은 나이, ‘천둥산이 나의 이마 높이로 와 닿아 있고
    • 朴達재의 긴 구렁 짧은 구렁이 내 가슴까지 와 있다는 것을’ 조금 눈치 채기는 하겠는데 歷史가 뭔지 人間이 뭔지 그리고 내 삶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原書文學觀’에 다다르기 前, 예까지 온 김에 천등산이나 먼저 올라보겠다는 卽興으로 다릿재 터널을 지나자마자 큰길을 벗어나 白雲綿 所在地로 들어섰다.

    “천등산 다릿재 터널을 지나면 白雲綿 入口를 알리는 첫 番째 案內板이 길가에 있고 거기서 500~600미터를 더 進行하면 같은 內容의 두 番째 看板이 있습니다. 그 두 番째 看板이 있는 곳의 갈림길로 나와 ‘애련리’ 表示를 보고 繼續 오시면 文學觀을 만날 수 있습니다.”

    文學觀 招請狀에는 길 案內文까지 詳細히 적어놓아 初行인 나도 손쉽게 나들목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천등산으로 올라가는 옛 道路에는 오가는 車輛 하나가 없다. 고개 마루턱 못미처에 외따로 선 休憩商家의 空터에 車를 세우고 신발을 바꿔 신었다. 商店조차 아직 門을 열지 않은 視角이었다. 商家 뜰 한쪽에 있는 샘물 파이프에서는 맑은 물줄기가 콸콸 쏟아진다. 때마침 물을 길으러 온 住民 두셋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 물이 山허리에서 뿜어 나오는 藥水라고 자랑을 했다. 그들에게서 登山路 入口를 確認한 뒤, 나도 水桶에 물을 채웠다.

    이른 아침에 만난 천등산



    숲 속 山길에 들었을 때야 비로소 새벽 햇살이 퍼지기 始作한다. 이렇듯 이런 視角 홀로 錄音의 山길을 걷는 氣分만큼 颯爽한 것이 또 있을까. 내 몸이 금세 草綠으로 물들고 햇살로 환해지는 그런 느낌.

    채 한 時間이 걸리지 않아 頂上에 섰다. 너무 손쉽게 올라왔다는 느낌에 조금 머쓱하기도 하다. 海拔 806m의 山 높이가 예사로운 것은 아니지만 천등산 山行이 意外로 쉽다는 情報는 事前에 얻고 있었다. 山行 始作點인 休憩商店 近處가 벌써 海拔 400m가 넘기 때문이다. 頂上 바위를 디디고 선 채로 忠州, 堤川 쪽을 휘둘러본다. 이곳에서의 眺望도 시원스럽다. “천둥山 朴達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始作하는 노랫가락이 떠오르지 않는바 아니지만 남이 다 가지는 想念에 소리까지 흥얼거리는 것은 分明 쑥스러운 짓이다. 山 아래 原書千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또다시 내가 좇아가야 할 길들을 確認하곤 山을 내려온다.

    덧붙이자면, 우리 님이 울고 넘은 朴達재는 천등산 맞은便 柴糧山에 있는 고개다. 이곳 천등산에는 朴達재가 아닌 다릿재가 있으며 두 고개는 20里 남짓의 距離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노랫말에도 나오는 ‘천둥山’이란 山 이름 또한 現地人들이 익숙하게 부르는 것이며 正式의 山 이름은 ‘천등산(天登山)’이다.

    詩와 映畫의 마을을 흐르는 江줄기

    천등산에서 애련리로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風景은 여느 山間 農村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고도 고요하다. 原書千 맑은 냇물이 繼續 길을 따른다. 더러 野營客들의 車輛이며 天幕들이 길가에 서 있는 곳도 있다. 좀前에 내가 올랐던 천등산은 如前히 自身의 넉넉한 품으로 이들 風景을 감싸준다.

    이쯤에서 詩 한 篇을 떠올려봄도 괜찮다.

    천둥産을 바라보며 어린 時節을 모두 보냈다 産銀 便安하게 江 건너 멀리 앉아 있었다 흐린 날이면 이마를 구름으로 가리고 비가 오면 비 뒤에 숨었다 山불이 났을 때 아무도 山에 올라가 볼 엄두도 못 내고 洞네가 두런두런 두려움으로 납작해졌다 / 밤이 되면 朴達재를 넘어 黑人兵丁들이 女子사냥을 나왔다 헬로! 쪼꼬레뜨 寄附美 寄附美! 후레쉬를 번쩍이며 女子를 찾는 兵丁들을 따라다니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財數가 좋은 날은 하나 얻어먹었다 어른들은 밤늦도록 잎담배만 말아 피웠다 / 천둥山 山불이 아침이면 저절로 꺼져서 햇빛 속에 빛나는 것도, 내 뱃속에 들어간 쪼꼬레뜨가 洞네女子들의 몸값이라는 것도 나는 몰랐다 누룽지를 달라고 보채다가 부지깽이로 얻어맞고 눈물 흘리며 바라보면, 높고 平和로운 산이 미웠다 돌멩이를 걷어찼다 발톱이 아파서 깨끔발로 뛰기만 했다 / 어두운 술집 모퉁이에서 천둥山 朴達재를 흥얼거리는 只今도 나는 잘 모른다 천둥山의 山불도, 洞네에 자욱했던 잎담배의 演技도, 숯처럼 까만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던 창덕이엄마의 한숨도, 나는 하나도 모른다 천둥산이 나의 이마 높이로 와 닿아 있고 朴達재의 긴 구렁 짧은 구렁이 내 가슴까지 와 있다는 것을 그저 눈곱만큼 눈치 채고 있을 뿐, 正말이다 하나도 모른다 몰라!

    - 오탁번 時 ‘천둥山 朴達재’ 專門

    散文처럼 읽기 便한 말들을 늘여놓고 特別히 行도 나누지 않은 탓에 언뜻 詩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時란다.

    ‘쪼꼬레뜨 寄附美’를 외치던 아이들

    속에 담은 內容 中에는 안타깝고 슬픈 것이 많지만 그것이 되레 재미있게 表現된 部分도 없지 않다. 黑人 兵士를 쫓아다니며 ‘쪼꼬레뜨 寄附美’를 외치는 꼬맹이들을 보라.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 아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고 머리 模樣새가 어떻고 어떤 옷가지를 걸치고 있는 지를 想像치 못하리라. 그렇지만 나는 寫眞보다 더 鮮明하게 이들의 ‘꼬라지’를 그릴 수 있다. 나 또한 어린 時節 ‘寄附美 쪼꼬레뜨!’를 외친 것이 한두 番 아니었기 때문이다.

    戰爭이 끝난 지도 여러 해 지났건만 그 무렵 우리 마을 앞으로는 해질녘이면 美軍들을 태운 軍用列車가 지나갔다. 車 時間이 되면 온 洞네 아이들이 鐵둑에 올라서서 列車를 기다렸다. 마침내 山모롱이를 돌아오는 列車의 머리가 보일라치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一齊히 길길이 뛰면서 ‘寄附 美 쪼꼬레뜨!’를 외쳐댔다.

    窓가에 앉은 白人 黑人 兵士들의 稀粥 웃는 모습이 빠르게 스쳤다. 正말 ‘쪼꼬레뜨’가 날아오기도 했다. 時레이션(美軍 戰鬪食糧)을 통째로 던져주는 마음씨 좋은 兵士도 있었고 쓰레기를 쏟아주는 軍人도 있었다. 美軍의 쓰레기, 그것마저 우리에게는 모두 ‘寶物’이었다. 난生 처음 보는 一回用 종이컵이며 플라스틱 스푼 하나만 주워도 橫財를 한 거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橘 껍질 하나라도 더 줍겠다고 아이들은 빠르게 鐵둑 비탈을 굴러 내렸고 종아리에 가시가 박히고 손등이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欲心을 부렸으며 좀前까지 어깨동무하고 놀던 親舊와 코피 터지게 싸우기도 했다.

    베옷처럼 헐었지만 돌아가야 할 곳

    時에는, 이보다 훨씬 慘酷한 ‘쪼꼬레뜨’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人間의 貪慾이 빚은 戰爭은 천둥山마저 두렵다. 그리하여 山은 ‘흐린 날이면 이마를 구름으로 가리고 비가 오면 비 뒤에 숨었다’. 我軍과 敵軍의 싸움으로 山불이 나도 마을사람들은 아무도 山에 오르질 못했다. 黑人 兵士들이 마을로 ‘女子 사냥’을 나와도 어른들은 밤늦도록 잎담배만 말아 피웠으며 부지깽이로 애꿎은 어린애나 두들겨 팰 수밖에 없었다.

    천둥山은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歲月은 빠르게 흘렀다. 서울의 어두운 술집 골목에서 문득 ‘천둥山 朴達재-’를 흥얼거리다보면 그 酷毒한 어린 날들이 單番에 網膜에 펼쳐져 눈앞이 흐려진다. 그러나 이 늦은 나이, ‘천둥산이 나의 이마 높이로 와 닿아 있고 朴達재의 긴 구렁 짧은 구렁이 내 가슴까지 와 있다는 것을’ 조금 눈치 채기는 하겠는데 歷史가 뭔지 人間이 뭔지 그리고 내 삶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詩人이 正말 모른다면 누가 알겠냐마는 詩의 말은 元來 이렇게 하는 法이다. 아무튼 가난과 고단 속에 보낸 幼年의 故鄕일수록 後날 더 모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50~60年代 戰爭의 廢墟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어린 時節을 보냈던 이들은 안다. 그 荒漠한 故鄕은 어머니의 베옷처럼 거칠면서도 한便 어머니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곳임을. 그래서 뿌리쳐 떠나온 곳이면서도 마침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永遠한 回歸의 땅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是認 오탁번度 다를 바 없다. 제천시 白雲綿이 그의 故鄕이다. 고개를 쳐들면 천등산이 눈썹에 와서 걸리는 그 山間 奧地. 밤이면 빨치산이 피우는 빨간 불빛이 보이고 낮이면 그들을 쫓는 銃소리가 그치지 않는 벼랑의 땅에서 그는 가난과 高壇을 衣服처럼 걸치고 어린 時節을 보냈다. 以後 그는 詩人으로 小說家로 成長해 크게 活動했으며 한便으로 大學 敎壇에 서서 後進들을 키웠다.

    平素에도 틈날 때마다 故鄕을 찾았던 그는 停年退職 後 穩全히 故鄕에 묻혔다. 그곳에서 그는 季節마다 品格 있는 詩 專門誌를 펴내며 文學을 사랑하는 이들을 불러 모아 끊임없이 ‘詩 잔치’ ‘詩 놀이’를 벌인다. 예전의 原書初等學校 哀憐分校를 改造해 가꾸어놓은 ‘原書文學觀’은 곧 천등산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詩로 꽃피우고자 하는 그의 天眞한 놀이터인 同時에 深刻한 마지막 일터다.

    천등산 자락의 原書文學觀

    길 끝에서 나는 그 집을 만났다. 그 옛날 山골의 아이들이 뛰어놀던 작은 運動場에는 푸른 잔디가 덮였고 그 한가운데는 修鍊이 뜬 앙증맞은 蓮못도 있다. 往年엔 나 또한 所聞난 낚시꾼이 아니던가. 손바닥만한 蓮못이지만 詩人이 갖고 놀던 1칸짜리 짧은 낚싯대가 차려져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떡밥을 달아 넣자 以內 얌전하게 찌가 솟아오른다. 가볍게 臺를 챈다. 뼘치 붕어가 睡眠으로 달려 나오며 搖動을 치는 바람에 近處 修鍊들이 함께 물결에 출렁인다. 참한 붕어를 도로 물속에 넣어주는 때도 담牆 밖에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온몸으로 바람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득 예전에 詩人과 더불어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부리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아직도 天眞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남아 있는 듯한 이곳에는 이제 詩를 사랑하는 가운데 스스로 詩를 얻고자 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그치질 않는다. 그리고 예전의 생채기를 속살에 묻은 천등산이 亭子나무를 앞세운 채 천연덕스럽게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文學觀을 나와 亭子나무를 안고 돌아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면, 以內 原書千 맑은 냇물을 만난다. 온 김에 映畫 ‘薄荷沙糖’의 마지막 場面에 나오는 ‘터널 앞 鐵橋’도 구경하자 해서 江 길로 내려섰다. 近來 부쩍 많아진 마니아들의 발걸음 德에 案內 標識板이 곳곳에 서 있고 새로 지은 번듯한 집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鬱蒼한 樹林이 講義 防壁이 되고 숲 속 길이 물을 따르고 물이 길을 좇는 이곳은 아직 소문나지 않은 佳境(佳景)의 땅이다. 山峽을 貫通하는 냇물이 스스로 緩急을 調節하며 곳곳에 雰圍氣 있는 風景을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非鋪裝道路를 달리길 10餘 分. 마침내 눈에 익은 그 鐵橋와 橋脚들이 나타난다. 언덕에 선 채 鐵橋와 터널의 입을 내려다볼라치면 映畫 속 主人公의 絶叫도, 그를 무너뜨리는 汽笛소리도 없지만 人工의 構造物들은 이제 둘레의 自然과 함께 歷史의 風習으로 남았음을 알게 된다.

    車길은 그쯤에서 끝난다.

    천등산(天登山)이 거느리는 시간과 풍습
    최학

    1950年 慶北 慶山 出生

    고려대 國文科 卒, 同 大學 敎育大學院 碩士

    1970年 경향신문 新春文藝 小說 當選

    現 고려대文人會 會長

    創作集 ‘暫時 머무는 땅’ ‘그물의 눈’ ‘食口들의 歲月’ 等

    長篇小說 ‘西北風’‘안개울음’ ‘彌勒을 기다리며’‘화담명월’등


    市의 香薰을 더듬고 或은 映畫의 場面을 새롭게 만나고자 하는 이들은 忠北線 列車를 타고 隣近의 空轉驛에 내린 뒤 鐵길을 걸어 이곳에 이르지만 나는 그 反對의 方向을 더듬어 여기까지 온 셈이 됐다. 천등산 山 그림자를 등에 진 채 江물을 내려다보며 鐵길을 걷는 재미가 상큼하다. 列車의 來往도 거의 없는 이곳 山間의 鐵길은 요즘 새로운 文化 探訪路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애써 몸의 均衡을 잡으며 레일 위를 걷다가 그것이 힘들면 다시 枕木을 세며 발걸음을 나란히 하는 재미를 아는 젊은 雙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곳을 徵標로 하는 ‘文化’ 때문이다.

    이윽고 鐵길 끝에 나타나는 작은 驛, 空轉驛이다. 村家 예닐곱을 거느린 채 오도카니 鐵길을 지키고 선 死角 救助의 驛 建物 自體가 먼 데서 보면 영락없는 하나의 信號臺다. 文學과 映畫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 선 時間과 風習의 信號隊 그것.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