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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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
本名 임기희
出生 1960年 1月 24日 ( 1960-01-24 ) (64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城東區 행당동
國籍 大韓民國
職業 俳優
活動 期間 1974年 ~ 現在
宗敎 改新敎
所屬社 審스토리
學歷 東國大學校 演劇映畫學科 學士 (卒業)
配偶者 최창욱(1989年 結婚)
子女 딸 최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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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 ( 韓國 漢字 : 林藝眞, 本名 임기희, 韓國 漢字 : 林琪熙, 1960年 1月 24日 ~ )은 大韓民國 俳優 이며 서울特別市 성동구 행당동에서 1男 2女 中 둘째로 태어났다.

學歷 [ 編輯 ]

生涯 [ 編輯 ]

데뷔 [ 編輯 ]

中學時節, '女學生'이라는 有名 學生雜誌 모델로 데뷔하였다. [1] 1974年 김기영 의 佛敎映畫 《 破戒 》에서 어린 比丘尼 役割로 削髮과 全羅露出을 敢行하며 演藝界에 電擊 데뷔하였다. [2]

1970年代 하이틴 映畫 붐의 中心 [ 編輯 ]

當時 1970年代 는 檢閱과 가위질, 禁止曲으로 代辯되는 大衆文化 暗黑期였고 10代들이 徐徐히 映畫, 音樂테이프 等을 消費하기 始作하면서 大衆文化의 主要한 消費層으로 떠오르기 始作한 時期이기도 하다. [3] 이러한 時代的 背景과 大衆文化 市場의 勢力版圖 變化로 인해 1970年代에는 高校生을 主人公으로 前面에 내세운 高校生 映畫가 興行을 主導하기 始作하였다. 임예진은 앳되고 純粹한 外貌로 女學生이 登場하는 學院物 드라마·映畫의 女主人公은 獨占하다시피했고 10代 學生들의 全幅的인 歡呼로 出演作品마다 興行 大舶 行進을 이어가며 '임예진 신드롬'을 일으켰다. [4]

特級 아이돌 스타로 乘勝長驅 [ 編輯 ]

1975年 김응천 監督의 《 女高 卒業班 》에서 先生님을 사랑하는 女高生으로 出演하였고 그 해 大鐘賞映畫祭 에서 新人奬勵賞을 受賞받았다. [5] 이어 1976年 列車로 通學하는 靑少年들의 사랑과 友情을 그린 《 眞짜 眞짜 잊지마 》에서, 淸純한 女高生 主人公으로 이덕화 와 熱演해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8萬餘 名의 觀客이 劇場을 찾아 觀客 數 2位를 차지하는 엄청난 大成功으로 《 眞짜 眞짜 未安해 》, 《 眞짜 眞짜 좋아해 》等 映畫 ‘眞짜眞짜’ 시리즈를 성공시켜 檢閱 甚한 維新體制 아래 TV普及 擴散으로 沈滯期에 빠져있던 映畫界에 단비를 내려주는 同時에 最高의 하이틴스타로 立地를 굳혔다. [6] '眞짜眞짜 시리즈'의 成功으로 《 正말 꿈이 있다구 》, 《 少女의 祈禱 》, 《 이런 마음 처음이야 》, 《 아무도 모를꺼야 》 等 少女趣向 물씬 풍기는 題目의 임예진 主演 하이틴映畫들이 쏟아져 나왔다. [7]

하이틴 스타의 뒤안 [ 編輯 ]

1977年 以後 엇비슷한 하이틴 映畫가 反復되고, 하이틴장르가 優秀映畫 選定에서 除外되면서 하이틴 映畫의 製作과 人氣가 시들해지자, 임예진度 成人 演技者로 變身을 摸索한다. [8] 1978年 大學生이 된 뒤, 다음 해 開封한 作品이자 신성일 과 함께 主演한 映畫 《 땅콩 껍질 속의 戀歌 》에서 이미지 變身을 위해 本格的인 成人演技를 펼쳤으나 黃色 저널리즘 의 刺戟的인 輿論몰이와 깨끗한 少女 이미지만을 要求하던 大衆들의 叱咤에 傷處를 입고 1980年 以後 映畫界를 떠나게 된다. [9] [10] 以後, 한동안 空白期를 가지다 TV와 라디오 等 다른 媒體로 옮겨 活動을 하였다. 하이틴 이미지가 너무 强해서 成人 俳優로 跳躍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었고 1980年代 初부터 中盤까지 俳優로서 슬럼프를 겪었다. 1980年 MBC 드라마 《 알뜰 家族 》을 찍었을때는 유인촌 의 아내 役으로 出演한 것에 對해 사람들이 '집나온 女高生을 神父로 앉히면 어떡하냐'며 放送社를 세차게 非難하였고 結局 드라마는 早期終映되고 말았다. [11]

作家 김수현과의 因緣 [ 編輯 ]

作家 김수현 이 執筆한 드라마에 數次例 出演하여 所謂 '김수현 師團'의 一員이라 할만큼 鳶이 깊다. 出演한 드라마로는 1981年 MBC 사랑합시다 》, 1982年 MBC 어제 그리고 來日 》, 1984年 MBC 사랑과 眞實 》, 1987年 MBC 사랑과 野望 》, 1994年 SBS 作別 》, 2012年 JTBC 無子息 上八字 》가 있다. 1994年 SBS 作別 》 出演 當時 임예진이 맡은 役割은 파리에서 偶然히 만난 大學病院 醫師 신욱( 한진희 )과 하룻밤 不倫을 맺은 뒤, 그가 서울에 돌아와 自身을 外面하자 家宅侵入 等 獵奇的인 方法으로 그와 그의 家族을 脅迫하는 精神異常者 '송춘희'로 旣存 임예진의 이미지에 完全히 反하는 破格的인 惡役이었다. [12] 特히 '食칼 亂動'場面은 지존파 事件 으로 社會全體가 衝擊에 빠져있는 가운데 過度한 暴力場面을 내보냈다며 放送審議委員會와 視聽者들의 公憤을 샀다. [13] 2010年 KBS2 藝能프로그램 《 해피투게더 》에서 처음으로 挑戰한 惡役인데 演技力이 不足해서 SBS 드라마 《 作別 》에서 中途下車를 通報받았다고 告白한 逸話가 있다. [14]

버라이어티 스타로 第2의 全盛期 [ 編輯 ]

30歲이던 1989年 , '平凡한 샐러리맨과 結婚해 親舊들 中 第一 먼저 學父母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바람대로 自身이 만날 수 있는 唯一한 샐러리맨이었다는 放送局 PD( MBC 드라마製作局 PD 최창욱)와 結婚하였다. [9] 交際 當時에는 임예진이 出演한 어린이 프로의 助演出이었다고 한다. [15] 2000年代 後半부터는 MBC 세바퀴 》等의 藝能에서 親近하고 코믹한 푼수 아줌마 캐릭터로 活躍하기도 했다. [16] 마릴린 먼로 를 始作으로 투애니원 의 산다라 朴, 브라운아이드걸스 의 나르샤, 세일러문 , 金姸兒 等 망가짐을 不辭하는 破格的인 패러디로 視聽者들에게 큰 웃음을 膳賜하였고, 2009年 MBC 放送演藝對象 버라이어티 部門 優秀賞을 차지하였다. [17] 2018年 後半期에 放送을 始作한 KBS2 TV 週末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에서 또 한番 惡役을 맡았다.

演技 活動 [ 編輯 ]

드라마 [ 編輯 ]

映畫 [ 編輯 ]

主演
助演

뮤지컬 [ 編輯 ]

  • 2010年 뮤지컬 《眞짜 眞짜 좋아해》 ... 신장미 驛

演技 外 活動 [ 編輯 ]

텔레비전 프로그램 [ 編輯 ]

라디오 프로그램 [ 編輯 ]

  • TBC 라디오 《이덕화 임예진쇼》 (1978~1979年)
  • MBC 라디오 《송창호 임예진 靑春萬歲》 (1980~1981年)
  • MBC FM 《 正午의 希望曲 》(1981~1984年)
  • KBS 第2라디오 《 이홍렬 임예진의 12時 큐 》(2001~2002年)
  • EBS FM 《冊 읽는 라디오 朗讀 시리즈》(2015年)

뮤직 비디오 [ 編輯 ]

廣告 [ 編輯 ]

受賞 經歷 [ 編輯 ]

弘報大使 [ 編輯 ]

  • 2009年 바로 찧어서 바로 먹기 運動 弘報大使

各州 [ 編輯 ]

  1. 임예진 "라이벌은 장미희·유지인·丁胤禧" 《마이데일리》, 2008年 8月 13日
  2. 元祖 國民 女同生` 임예진, 映畫 `祕密愛` 캐스팅 《每日經濟》, 2009年 7月 21日
  3. 임예진, 正말 10代의 偶像 스타? 眞짜! 《마이데일리》, 2008年 8月 6日
  4. 映畫 5篇 겹치기 出演…人氣 ‘몸살’ 《東亞日報》, 2011年 3月 1日
  5. 아이콘, 그때 그 時節 校服映畫를 追憶함 《스포츠傾向》, 2012年 4月 30日
  6. 다시보는 선데이서울‘하이틴 偶像’ 임예진 《서울新聞》, 2007年 5月 27日
  7. 1976年 스크린의 샛별은 누구였을까 《인터뷰365》, 2009年 2月 20日
  8. 韓國의 여우 그들을 말한다(5) 임예진 《경향신문》, 2008年 12月 3日
  9. 임예진 "30年만에 하는 獨特한 캐릭터에 興奮" 《세계일보》, 2005年 12月 4日
  10. 임예진몸값 “스포츠新聞 猥褻的 意圖 題目 때문에 映畫界 떠났다” 《헬스코리아뉴스》, 2008年 12月 1日
  11. '援助 女同生' 임예진, "나도 兒役 슬럼프 겪었다" 《스포츠서울》, 2006年 9月 15日
  12. ‘김수현票 惡女’ 그때그때 달라요! 《스포츠傾向》, 2007年 6月 19日
  13. SBS <作別> `食칼 亂動'場面에 非難 沸騰 《聯合뉴스》, 1994年 9月 28日
  14. 惡女’ 그때그때 달라요!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스타뉴스》, 2010年 5月 6日
  15. 임예진, PD男便과 러브스토리 公開 《조이뉴스24》, 2006年 3月 29日
  16. '藝能에 살고, 藝能에 죽는다'…예능다크호스 急浮上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스포츠서울》, 2008年 11月 17日
  17. '優秀賞' 임예진, '세바퀴'로 버라이어티 '우뚝' 《TVREPORT》, 2009年 12月 29日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