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아네트 손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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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擇
孫澤
Antoinette Sontag
前 조선국 駐在 러시아 帝國 公使館 首席通譯官
任期 1885年 12月 1日 ~ 1886年 1月 6日
君主 高宗 李兄

身上情報
出生日 1854年
出生地 프랑스 알자스로렌
死亡日 1922年
死亡地 프랑스
經歷 通譯士
호텔 經營人( 손탁호텔 社長)
正當 無所屬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 ( 獨逸語 : Marie Antoinette Sontag 마리 安土아네트 존타크 [ * ] , 1854年 ~ 1922年 )는 大韓帝國 러시아 帝國 에서 活躍한 獨逸人 通譯士이며, 손탁호텔 의 支配人으로 잘 알려져 있다. 韓國語 이름은 손탁 (孫澤)이다.

生涯 [ 編輯 ]

1854年 프랑스 알자스로렌 獨逸 界 家庭에서 태어났다. 當時에는 프랑스 國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70年 프로이센-프랑스 戰爭 이 일어나 알자스로렌이 프로이센 軍隊에 依해 占領되고만다. 1871年 베르사유 條約 으로 인해 獨逸 帝國 이 宣布되면서, 알자스로렌 프로이센 에 合倂되었다. 그래서 國籍이 獨逸 로 變更된다.

1885年 에 週 朝鮮 러시아 帝國 初代公使로 카를 베베르 가 赴任할 때 함께 入國하였다. 이때 베베르 公使의 推薦으로 인하여 1886年 景福宮 의 樣式 調理士로 任命되어 일하게 된다. 이때 그女는 正式으로 명성황후 를 謁見하였다. 1896年 俄館播遷 이 成功하는데 일정한 役割을 堪當하였다.

1902年 에는 高宗 으로부터 德壽宮 近處에 있는 皇室 所有의 敷地를 下賜받았고, 같은 해에 손탁호텔 을 開業하여 그 支配人이 된다. 그러나 1905年 에 러일戰爭에서 러시아가 敗北하고 乙巳條約 이 締結된 後로 政局이 混亂스러워지자, 1909年 프랑스 칸으 로 돌아갔다. 1922年 7月 7日 午前 8時 프랑스 에 있는 自宅에서 世上을 떠났다. 現在 프랑스 칸의 市立天主敎 墓地에는 '朝鮮皇室의 西洋前例館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이라는 이름으로 묻혀 있다. [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