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國烈士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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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熱사릉
愛國烈士陵
Patriotic Martyrs' Cemetery
國家 北韓
設立日 1986年 9月 17日
所在地 北韓 平壤直轄市 兄弟山區域 신미동

愛國烈士陵 (愛國烈士陵, 標準語 : 愛國熱사릉)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國立墓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愛國烈士 를 위한 墓地이다. 愛國烈士 [1] , 高位 政治人,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建國 後 北韓을 支持한 人物, 獨立運動家, 大韓民國 에서 拉北된 高位 人士, 非轉向 長期囚 等이 묻혀 있다. 平壤 兄弟山區域 신미동에 있다. [2] 따라서 신미리 愛國烈士陵 이라는 別稱도 있다.

歷史 [ 編輯 ]

愛國熱사릉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革命烈士를 위한 대성산革命烈士陵 보다 한 級 낮은 烈士陵이다. 1986年 에 開館하였다. 2007年 中央日報 가 確認했을 때, 이 곳에 安置되어 있는 사람은 662名이었다. [3] 그 뒤 愛國烈士, 高位級 政治人, 韓國 戰爭 때 南韓에 抑留되었으나 轉向을 拒否한 非轉向 長期囚 等의 屍身을 賣場 또는 安置하여 規模가 擴張되었다.

構成 [ 編輯 ]

入口에 設置된 大型 銅板에는 다음과 같은 文章이 적혀 있다.

祖國의 解放과 社會主義建設, 나라의 統一偉業을 위하여 鬪爭하다가 犧牲된 愛國烈士들의 偉勳은 曺國廳舍에 길이 빛날 것이다.

各 墓에는 墓碑가 세워져 있고, 墓碑에 亡者의 돌寫眞이 새겨져 있다. 이 돌寫眞은 1998年 金正日 의 直接 指示로 追加되었다.

人物 [ 編輯 ]

主로 日帝 强占期의 抗日 遊擊隊員들이 묻힌 대성산革命烈士陵과는 달리, 다양한 部類의 人物이 安葬되어 있다.

日帝强占期 의 獨立 運動家들로는 主로 當時에는 金日成 과 路線이 달랐으나 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을 支持하거나 韓國 戰爭 때 拉致된 人物들이 묻혀 있다. 大韓民國 臨時政府 에서 活動했다가 韓國 戰爭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拉致된 김규식 , 최동오 , 趙素昻 , 조완구 , 윤기섭 , 엄항섭 , 李儁 (家廟), 利用 (이준의 아들), 유동렬 等의 墓所가 있다.

高位級 政治人 出身으로 홍명희 , 허정숙 , 강량욱 , 백남운 , 연형묵 과 辯護士 허헌 等이 있다. 文藝人으로는 舞踊家 崔承喜 , 作曲家 리面上 , 小說家 이기영 한설야 , 是認 조기천 伊飡 , 學者로는 經濟學者 金光珍 과 國語學者 이극로 , 科學者 계응上, 도상록 , 俳優 황철 等이 묻혀 있다.

한글學者 리萬규 , 리極老 , 여운형 의 딸이자 最高人民會議 副議長을 지낸 려연구 等도 이 곳에 安置되었다.

大韓民國에서 死亡한 김삼룡 , 김달삼 , 최일천 , 조봉암 , 金鍾泰 , 崔瑩도 , 최백근 , 이현상 等은 家廟 形態로 墓所가 마련되어 있다. 軍人으로는 延安派 김무정 江陵地域 武裝共匪 浸透事件 의 總責任者인 김동원 等의 墓所가 있고, 리인모 를 비롯하여 非轉向 長期囚 들도 死亡하면 이 곳에 묻히고 있다. 최용건 의 境遇는 대성산革命烈士陵 에 安葬되는 게 原則인 人物이 오직 金日成 의 마음에 안든다는 理由 하나만으로 이 곳에 묻혔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頭音法則을 認定하지 않는 北韓式 表記로, 烈士(烈士)이다.
  2. “신미리” . 2023年 9月 23日에 確認함 .  
  3. 강영진,李哲熙,정용수 (2007年 7月 10日). “韓國 言論이 처음 가 본 北韓 `烈士陵`” . 中央日報 . 2008年 8月 12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