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水 戰爭
(高句麗-隋 戰爭) 또는
麗水戰爭
(麗隋戰爭)은
598年
,
612年
,
613年
,
614年
에
高句麗
와
隋나라
사이에 벌어진 戰爭이다.
이 戰爭으로
隋나라
는 많은 國力을 消盡하였고, 이것이 地方에서의 叛亂과 中央 勢力의 弱化로 이어져 滅亡의 原因이 되었다. 高句麗 또한 흐트러진 國內 事情을 바로잡기 위해 南쪽의 新羅와 백제를 神經 쓸 겨를이 없었고, 隋나라 以後 中國을 統一한
唐나라
에 好意的인 行動을 取하였다. 唐나라 또한 疲弊해진 國內를 바로 잡아야 했기에 高句麗와 親善 關係를 維持하였다. 高句麗가 唐나라의 要請에 따라 景觀(京觀)을 허문일은 이러한 狀況 때문이었다. 그러나 中華 帝國下의 秩序를 願했던
唐 太宗
이 皇帝에 卽位하면서 狀況은 달라지게 되었다.
唐 太宗
은 진대덕(陳大德)을 高句麗에 보내 諜報 活動을 命令하였다. 이처럼 唐나라의 侵略 意圖가 분명해졌음에도 느슨한 態度를 보이는 榮留王의 態度와 그의 지나친 親堂 政策에 反撥한
연개소문
(淵蓋蘇文)은 영류왕이 自身을 죽이려 한다는 事實을 눈치채자, 榮留王을 弑害한 뒤
保障王
을 擁立하였다. 淵蓋蘇文은 臺當强勁策을 主張해 高句麗와 黨 사이의 關係는 다시 險惡해졌고, 結局 高句麗-水 戰爭이 끝난 지 30餘 年 만에 다시
高句麗-黨 戰爭
이 일어나게 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
---|
主要 人物
| |
---|
宰相
| |
---|
高句麗의 戰爭
| |
---|
국성
| |
---|
高句麗의 宮
| |
---|
高句麗의 城
| |
---|
高句麗 復興運動
| |
---|
政治 制度
| |
---|
文化
| |
---|
文化遺産
| |
---|
當代 文獻
| |
---|
기타
| |
---|
國外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