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국민정당
(改革國民政黨)은 2002年 創黨했던
大韓民國의 민주당系 正當
이다.
主要 來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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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年
柳時敏
,
명계남
,
문성근
等과 친(親)
盧武鉉
性向의 政治 勢力에 依해 腐敗 淸算, 國民 統合, 參與 民主主義, 인터넷 政黨의 旗幟를 내걸고 創黨하였다. 그 뒤
16代 大選
에서는
盧武鉉
을 支持하였다.
2003年
11月 11日
舊 民主黨의
親盧武鉉
性向의 國會議員들을 多數 迎入하였다가
民主黨
의
親盧
勢力이 脫黨해 創黨한
열린우리당
으로 吸收 統合하려고 하면서 合當 代身 自進解散 後 黨員들이 合流하고자 인터넷과 中央委員會 決意로 解散을 決意하였다. 그러나 選菅委가 인터넷과 中央委員會의 決意가 無效라고 決定하였다.
[1]
以後
柳時敏
을 비롯한 개혁국민정당 黨權派들은, 모두
열린우리당
에 入黨하였으며, 이에 따른
社會自由主義
性向 酒類 黨員들의 大規模 脫黨 事態 以後,
選菅委
가 黨憲에는 黨의 解散과 合黨은 全黨大會를 통해서만 可能하도록 되어있음에도 不拘하고
柳時敏
을 비롯한 改革當 黨權派들이 인터넷과 中央委員會 決議를 통하여 열린우리당과의 合黨을 決定한 것은 黨憲을 違背한 不法的 決定이므로 無效라고 宣布하였고, 개혁당 內
이용휘
를 中心으로하는 殘留派들은 非常對策委員會를 構成하고 黨 內에 끝까지 남아서 柳時敏,
金元雄
개혁당 代表 및
柳時敏
等 9人의 執行委員들을 相對로 '業務執行停止假處分申請 및 代表權限代行選任申請'을 하여 勝訴하였고, 4.13 總選을 며칠 앞두고
이용휘
側이 勝訴하였지만 當時에 政黨法이 改正되어 5個 以上의 廣域市道黨을 維持하지 못하여 糖이 自動解散의 危機에 處하자, 總選을 며칠 앞두고
이용휘
를 비롯한 改革當 執行部는
大韓民國 第17代 總選
에서
민주노동당
과의 總選 連帶와 支持 宣言을 하였으며, 理由는 改革當 創黨趣旨와 理念에 가장 잘 맞다고 主張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不法的인 黨 解散을,
柳時敏
一派의 '不法的 政黨 解散' 과 暴壓으로 規定하기도 하였다.
[2]
結局, 政黨法上 要件을 충족시키지 못해 解散하였다.
[3]
개혁국민정당은 最大 2席까지 進出하였으며,
2002年
11月 25日
한나라黨
內 改革主義者 性向인
金元雄
議員이 入黨하여 院內로 入城하였고,
2003年
4月 24日
에 再補闕選擧에서
柳時敏
候補가 當選되어 2席 進出에 成功하였다.
參與民主主義
에 依據한
電子民主主義
를 主要 旗幟로 하여, 大部分 黨의 意思 決定을 인터넷으로 하였기 때문에, 또한 黨憲을 無視한 違法的인 決定으로 인하여 結局 黨 解散 當時에 이런 火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는 批判이 있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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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 政黨 黨員 및 黨內 關聯 事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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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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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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