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LG Twins
|
|
|
팀 로고
|
이니셜 로고
|
|
會社名
|
株式會社 LG스포츠
|
設立 鳶島
|
1990年
|
마스코트
|
럭키
,
스타
, 殘亡루피
|
所屬 리그
|
KBO
|
1軍 :
KBO 리그
2軍 :
KBO 퓨처스리그
北部리그
|
홈 球場
|
1軍 :
서울綜合運動場 野球場
(1982年~現在)
2軍 :
LG챔피언스파크
(2014年~現在)
|
收容 人員
|
25,000名
|
移轉 홈구장
|
東大門野球場
(1982年)
|
緣故地
|
서울特別市
(1982年~現在)
|
永久 缺番
|
9
이병규
, 41
金龍洙
, 33
박용택
|
歷代 타이틀
|
시리즈 優勝
(3回)
|
1990
·
1994
·
2023
|
리그 優勝
(3回)
|
1990·1994·2000매직·2023
|
成績(타이틀 以外)
|
시리즈 出張
(7回)
(굵은 글씨는 勝利한 해)
|
1990
·
1994
·1997·1998·2002·
2023
|
플레이오프
(10回)
(굵은 글씨는 勝利한 해)
|
1993·1995·
1997
·
1998
·2000·
2002
·2013·2014·2016·2022
|
準플레이오프
(8回)
(굵은 글씨는 勝利한 해)
|
1993
·
1998
·
2002
·
2014
·
2016
·2019·2020·2021
|
와일드카드 決定戰
(3回)
(굵은 글씨는 勝利한 해)
|
2016
·
2019
·
2020
|
球團 組織
|
球團主
|
具光謨
,
구본능
(代行)
|
代表理事
|
김인석
|
運營母體
|
LG스포츠
|
監督
|
염경엽
|
團長
|
차명석
|
유니폼
|
|
LG 트윈스
(LG Twins)는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를 緣故地로 하는
KBO
所屬
프로 野球
段이다.
株式會社
로서
LG그룹
의 系列社이다.
서울特別市
松坡區
잠실동
에 있는
서울綜合運動場 野球場
을
두산 베어스
와 함께 共同 홈구장으로 使用하고 있다.
1990年
1月 18日
MBC 靑龍
引受調印式을 통해 引受作業을 完了하였고
[1]
1990年
3月 15日
에 LG 트윈스로 公式 創團式을 擧行하였다. LG 트윈스 創團 첫 해인 1990年에
백인천
監督 下에서
韓國시리즈
優勝을 차지하였고, 이어
1994年
에 2番째
韓國시리즈
優勝
을 차지했다. 하지만 以後 暗黑期가 찾아온다.
서울綜合運動場 野球場
을
두산 베어스
와 함께 홈 球場으로 使用 中이다.
2009年
부터 홈경기에서
두산 베어스
와는 달리 中央 펜스를 4미터 앞당긴
X CANVAS ZONE
(舊 X-ZONE)의 設置로 左右 펜스는 100m로 同一하나 中央 펜스를 121m로 調整하여 運營하였다.
[2]
2010 시즌에는 X CANVAS ZONE에서
INFINIA ZONE
으로 名稱을 바꾸어 使用하였고
2011年
부터 使用하지 않기로 決定하였다.
1983年
,
1990年
,
1994年
,
1997年
,
1998年
,
2002年
에
韓國시리즈
에 進出하였지만
1990年
과
1994年
2回 優勝하였다. 또한
2013
年에는
2002年
以後 11年 만에 포스트시즌에 進出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4位
두산 베어스
에게
敗北
하여 韓國시리즈 進出이 挫折되었다.
2014年
에는 正規시즌 4位로 準플레이오프에 進出해 3位
NC 다이노스
에게 勝利를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進出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2位인
넥센 히어로즈
에게 敗北하였다.
2016年
, 正規시즌 4位로 와일드카드에서 5位
KIA 타이거즈
에게 勝利를 거두고 準플레이오프에서 3位
키움 히어로즈
에게 勝利를 거두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2位
NC 다이노스
에게
敗北
하였다.
2019年
에는 正規시즌 4位로 와일드카드에서 5位
NC 다이노스
에게 勝利를 거두고 準플레이오프에서 3位
키움 히어로즈
에게
敗北
하였다.
2020年
, 正規시즌 4位로 와일드카드에서 5位인
키움 히어로즈
에게 勝利를 거두고 準플레이오프에서 3位
두산 베어스
에게
敗北
하였다.
2021年
, 正規시즌 3位로 準플레이오프에서 4位인
두산 베어스
에게
敗北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2023年 正規리그 1位로 韓國시리즈 直行을 했으며, 韓國시리즈 相對로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올라온
KT 위즈
를 만나 1次戰을 내 줬으나 2, 3, 4, 5次戰에서 4連勝을 거두며
1994年
以後 29年만에 V3에 成功함으로써 霸權을 움켜쥐었다.
歷史
[
編輯
]
MBC 靑龍 (1982年~1989年)
[
編輯
]
1982年
1月 26日
에
MBC 靑龍
으로 創團되었고,
1982年
3月 27日
東大門野球場
에서
三星
을 相對로 리그 史上 最初의 勝利팀으로 記錄되었다.
1983年
後期 리그에서 優勝을 차지하면서
韓國시리즈
에게 1無 4敗로 무릎을 꿇으면서 準優勝을 차지하였다
1989年
MBC 文化放送
노-使間 合意에 依하여 MBC 靑龍을 賣却하기로 議決했고,
1990年
1月 15日
부터 LG 트윈스로 改名하였으며
한일그룹
待遇
일화
等이
[3]
MBC 靑龍
引受 物望에 올랐다.
LG 트윈스 創團과 1990年
[
編輯
]
LG 트윈스의 初代 監督은
백인천
이었다. 백인천은 MBC 처음이자 마지막인 監督이자 LG 트윈스의 첫 監督이 되었다. 創團 첫 해 LG 트윈스는 新人
捕手
金東秀
와 베테랑
노찬엽
,
金相勳
等이 打線에서 核心으로 活躍했었고,
投手
에서는
金龍洙
,
정삼흠
이 活躍했다.
1990年
創團 첫 해 LG 트윈스는 正規시즌 1位를 記錄하여
韓國시리즈
에 直行했고,
韓國시리즈
에서
三星 라이온즈
를 相對로 4戰 傳承하여 그 해 優勝을 차지하였다.
이는 LG 트윈스의 當時 '신바람 野球'에서 始作되어 붐으로 일어나게 되는 契機가 되었다.
1994年~1998年
[
編輯
]
이광환
監督 特有의 스타일인 '自律 野球' 아래에서
1994年
에
유지현
,
김재현
,
서용빈
의 新銳 3人坊과 座
投手
'野生馬'
이상훈
, 마무리
投手
金龍洙
等 大活躍에 힘입어 81勝 45敗 (勝率 0.643)으로 2位
太平洋 돌핀스
를 無慮 11.5게임차로 밀어내며 正規 리그 1位를 確定지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
를 3戰 全勝으로 擊破한
太平洋 돌핀스
와 가진
1994年 韓國시리즈
에서, 1次戰 延長 11回末
김선진
의 끝내기 홈런을 通한 勝利를 始作으로 내리 4連勝으로 달리면서 두 番의 優勝을 모두 시리즈 스코어 4勝으로 스윕하여 優勝하는 眞記錄을 세우면서 球團 2番째 優勝을 차지하게 되며
이광환
監督은 優勝 뒤 3年 再契約을 맺어
[4]
1997年
10月
까지 監督을 맡기로 했다. 이듬해
1995年
에도
OB 베어스
에 0.5게임차 뒤진 2位로 포스트 시즌에 合流하며 優勝을 노렸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
에게 시리즈 스코어 2勝 4敗로 敗北를 當하고 만다.
以後
1996年
世代交替 失敗 및 負傷選手 續出 等으로 팀 戰力이 크게 弱化되어
[5]
正規 시즌 7位에 그치며
이광환
監督이 시즌 中 解任되었고 後任으로 首席코치
천보성
李 監督으로 任命되었다.
1997年
에는
이병규
와
임선동
,
차명석
等의 活躍에 힘입어 正規시즌 2位를 記錄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쌍방울 레이더스
를 相對로 勝利하고 플레이오프에 進出한
三星 라이온즈
를 맞게 되었고,
서용빈
의 活躍 等으로
三星 라이온즈
를 꺾고
韓國시리즈
까지 進出했으나
해태 타이거즈
에게 1勝 4敗로 敗해 準優勝에 머물렀다.
1998年
에도 正規 리그 3位를 마크하며 포스트 시즌에서
OB 베어스
, 플레이오프에서
三星 라이온즈
를 꺾으며 韓國시리즈까지 進出했으나 韓國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
에게 시리즈 스코어 2勝 4敗의 敗北를 當하며 準優勝에 그쳤고, 이 해를 마지막으로 '신바람 野球'라 불렸던 黃金期를 마감하게 되는데
천보성
監督은 主戰 마무리였던
앤더슨
이 中盤 以後 不振을 보이자
1996年
中盤부터 先發로 轉向한
金龍洙
를 選拔-救援-마무리로 마구잡이 投入시키는
[6]
소강수를 뒀으며 이 탓인지
金龍洙
는 選拔로만 17勝을 거둔 현대
정민태
때문에 三星
스콧 베이커
와 15先發勝으로 先發勝 共同 2位에 머무른 데다 正規시즌 MVP도 홈런-打點 2冠王인 OB
우즈
에게 빼앗기는
[7]
受侮를 當했다.
1999年~2002年
[
編輯
]
1999年
매직 리그, 드림 리그로 나뉘어 兩大 리그 體制의 出帆에 따라 LG 트윈스는
三星 라이온즈
,
한화 이글스
,
쌍방울 레이더스
와 함께 매직 리그에 屬하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三星과 한화에게 큰 競技 次로 밀리며 매직리그 3位에 그쳐 플레이오프 進出에 失敗하였고
천보성
監督이 물러나게 된다. 前年度 主戰 마무리였던
앤더슨
이
쌍방울
로 移籍瑕疵
1996年
中盤부터 先發로 轉向한
金龍洙
를 마무리로 돌렸지만
최향남
이 시즌 막판 腸炎 때문에 1軍 엔트리에서 除外되어
[8]
先發로 補職 變更시키기도 하였다. 뒤이어 MBC 時節 元年 멤버이자
1990年 韓國시리즈
優勝 멤버 出身
李珖은
監督이 就任하며 새로운 시즌을 準備한다.
이듬해
2000年
시즌, 67勝 3無 63敗(勝率 0.515)를 記錄하며 매직리그 1位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다시 進出하게 된다. 하지만, 드림리그 2位였던
두산 베어스
에게 시리즈 스코어 2勝 4敗로 敗하며 다시 한 番 시즌을 마감하고 마는데 마는데 周邊 코치들의 挽留에도 마무리로
장문석
을 繼續 밀어붙인 것이
[9]
시리즈 敗北의 決定的인 原因으로 作用하였다.
더군다나,
李珖은
監督이 옛 스승
김동엽
監督 스타일(스파르타式 訓鍊)
[10]
을 길들여 反撥이 作用했으며 이 過程에서 最古參
金龍洙
가
李珖은
監督과 選手團 掌握 問題를 놓고 不和를 빚어
2000年
시즌 後 隱退式 없이 옷을 벗었으며 이 같은 衝擊 탓인지
2001年
시즌부터 다시 兩大 리그가 統合되면서 單一 리그로 進行되었다. 하지만 LG 트윈스는 시즌 내내 不振을 겪었다. 結局 그 해
5月 16日
李珖은
監督을 解任하고 시즌 中 首席코치로 올린
김성근
을 1군 監督 代行으로 올려 시즌을 치르는 超强手를 두었으나 結局 4位와 1競技 差로 正規 시즌 6位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後
김성근
이 LG 트윈스의 正式 監督으로 昇格되었으나 前任
李珖은
監督이 옛 스승
김동엽
監督 스타일(스파르타式 訓鍊)
[11]
을 길들인 것처럼 스파르타式 訓鍊으로 一貫해 프런트와 럭키回 等에서
李珖은
김성근
두 監督에 對한 反感이 심해지기도 했다.
2002年
김성근
監督의 指導 아래서 66勝 6無 61敗를 記錄하며 2競技 差異로
두산 베어스
를 누르고 4位로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하게 된다. 하지만, 준 플레이오프에서
1窶籔
최동수
의 活躍으로
現代
를 2勝으로 스윕했고, 플레이오프에서 新人
外野手
박용택
의 活躍으로
KIA
를 시리즈 스코어 3勝 2敗로 누르며
1998年
以後 4年 만에, 4位 팀으로는 通算 3番째로
韓國시리즈
進出에 成功한다. 三星을 꺾었던
1990年 韓國시리즈
優勝 以後
三星 라이온즈
와 리턴 매치를 갖게 되었다.
2002年 韓國시리즈
에서
三星 라이온즈
의 壓倒的 勝利가 豫想되었음에도 不拘하고 LG 트윈스는 시리즈를 比較的 잘 이끌어 나가며 勝負를 6次戰으로 넘기게 되어 勝負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준 플레이오프부터 競技韓 選手들이 지친 데다가 불펜에 過負荷가 걸리기 始作했고,
大邱
에서 열렸던 6次戰에서는 9回末까지 9:6으로 유리하게 앞서 나가다가 9回 末 救援 登板한
이상훈
이
李承燁
에게 3點 同點 홈런을 맞았고,
이상훈
을 이어 登板한
최원호
가
마해영
에게 백투백 솔로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三星 라이온즈
最初의
韓國시리즈
優勝을 獻納하였다.
2002年 韓國시리즈
는 兩 팀의 알 수 없었던 競技 흐름 때문에 많은 野球 팬들에게는
韓國시리즈
史上 最高의 名勝負로 話題가 되고 있는 시리즈다.
[12]
하지만, 豫想 外의 좋은 成果를 이룬
김성근
監督의 留任이 確實해 보였으나,
1993年
부터
1998年
까지 LG 野球,蹴球,씨름,排球團長을 거쳤지만 다른 系列社로 發令이 나서 野球團을 떠났다가
2001年
시즌 後 LG스포츠 社長으로 赴任한
[13]
어윤태
前 LG 野球團 團長과 럭키膾가 신바람 野球가 아니다라고 主張하며
韓國시리즈
가 끝난 後 解任, 좋지 않은 마무리를 보이고 마는데
김성근
監督은
어윤태
社長의 前任 社長이 임명한 사람이라 어윤태 社長과 不和가 더욱 甚했다.
2002年 韓國시리즈
以後 김성근 監督을 解任한 LG 트윈스는 急激히 내리막길로 치닫았고, 2003年부터 2012年까지 포스트 시즌 進出에 失敗해 잃어버린 10年을 겪으며 苦難의 時間을 보내야 했다. 이를 두고 "
김성근
의 詛呪"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14]
2003年~2006年
[
編輯
]
前任
李珖은
監督이 옛 스승
김동엽
監督 스타일(스파르타式 訓鍊)
[15]
을 길들인 것처럼 스파르타式 訓鍊으로 一貫해 프런트와 럭키回 等에서 反感을 산 데 이어
2002年 韓國시리즈
準優勝에 머물렀다는 것과
1998年
까지 LG 野球,蹴球,씨름,排球團長을 거쳤지만 다른 系列社로 發令이 나서 野球團을 떠났다가
2001年
시즌 後 LG스포츠 社長으로 赴任한
[16]
어윤태
前 LG 野球團 團長 等 球團 高位層과
2002年
시즌 내내 摩擦을 빚은 데 이어
[17]
LG의 팀 컬러와 監督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理由로
김성근
監督이 解任되면서 팀 成績이 다시 急激히 墜落하게 되는데
김성근
監督은
어윤태
社長의 前任 社長이 임명한 사람이라 어 社長과 不和가 더욱 甚했다.
이 過程에서 팬 클럽 會員 30餘 名이
2002年
11月 26日
午後 7時에
어윤태
當時 社長과 유성민 當時 團長 同伴 退陣 決意를 要求하였는데
[18]
2003年
에
1994年 韓國시리즈
優勝의 主役
이광환
監督을 복귀시키며 野心차게 優勝을 노렸다. 11勝을 記錄한 左腕 에이스
이승호
의 活躍을 筆頭로 시즌 中盤 때만 해도 上位圈을 維持해 오다가 中後半 무렵 가면서 漸漸 떨어져 갔고 結局 正規리그 6位에 그치며
이광환
監督은 辭任 意思를 表明하고 2군 監督으로 내려갔다.
2004年
에 後任으로
이순철
首席코치가 監督으로 任命되었다.
그러나
이순철
監督 時節 LG 트윈스는 팬들이 期待했던 것 以下로 크게 不振하였고 一定한 野球 스타일을 보여 주지 못해 繼續해서 墜落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2004年
·
2005年
6位,
2006年
最下位 8位에 그치며 限界를 切感한다. 特히나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유지현
,
김재현
,
이상훈
等이
2002年 韓國시리즈
準優勝 以後 球團과의 葛藤으로 次例로 팀을 떠났으나 팀에서 별다른 人材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 큰 打擊이 되었다.
이순철
監督은
2006年
시즌 中 물러났고
어윤태
社長은
2004年
을 끝으로 LG스포츠 社長職에서 물러났으며 유성민 團長은
2005年
을 끝으로
[19]
野球團 團長職에서 辭退하였다.
FA로 迎入하였던
홍현우
는 먹튀 論難을 불러 일으키며
2004年
11月에 契約이 끝난 後
KIA 타이거즈
로 2:2 트레이드되었고, 이 트레이드 때 같이 간
中堅手
이용규
는 트레이드된 以後
KIA 타이거즈
의 테이블 세터로 猛活躍하여 LG에게는 마이너스가 되었다.
2005年
시즌 後
KIA 타이거즈
와 또 한 次例 3:3 트레이드를 斷行했으나 兩 팀 모두 별다른 利得을 내지 못했고, 이 트레이드 相對 選手들 中 트레이드된 後 곧바로 상무에 入隊하여 兵役을 마친
서동욱
만이 뒤늦게 멀티플레이어로써 빛을 보았다.
2007年~2009年
[
編輯
]
切齒腐心한 LG 프런트는
2006年
시즌이 끝난 뒤
1990年 韓國시리즈
優勝 멤버이자
현대 유니콘스
에서 4回 優勝을 이룬
김재박
監督을 迎入하고,
두산 베어스
에서 FA를 宣言한
投手
박명환
을 迎入해 오면서 새롭게 시즌을 맞을 準備를 하게 되는데 이들 中
김재박
監督은
1991年
시즌 後
백인천
監督 後任 物望에 한때 擧論됐으나 年輪·經驗不足 等의 理由 뿐 아니라
[20]
다음 해
太平洋
으로 無償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挫折됐으며
정동진
前 三星 監督에게도
백인천
監督 後任 提案이 갔는데 鄭 監督의 親兄이 當時 LG(當時 럭키금성)그룹 常務로 勤務했었던 것으로
[21]
풀이되지만 太平洋 監督으로 가면서 不發됐고 LG스포츠(當時 럭키금성스포츠)에서 販促課長으로 勤務한 적이 있었던
[22]
허구연
MBC 野球解說委員에게도
백인천
監督 後任 提案이 갔었다. 이러한 準備와 함께
이대형
, 그리고 急成長한
조인성
等의 活躍과 함께 三星과 막판 4强 競爭을 벌이는 듯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으나, SK戰에서 저지른 김우석의 失策으로 雰圍氣가 가라앉았고 막판 接戰 끝에 5位에 그치며 가을 野球에 參加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希望的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7 시즌을 마치게 됐다.
그렇게 맞은 2008 시즌은 昨年 팀을 이끌었던
박명환
의 負傷, 돌아온
박용택
과 巨額 FA 契約을 締結했던
조인성
의 不振과 맞물리면서 시즌 中盤 傭兵으로 迎入된
投手
크리스 옥스프링
과
1窶籔
로베르토 페타지니
의 猛活躍에도 不拘하고 46勝 80敗(勝率 0.365)에 그치며 不過 2年 만에 恥辱的인 8位를 다시 經驗한다.
2009 시즌, 또다시 切齒腐心으로
SK 와이번스
에서 活躍하던
이진영
과 히어로즈에서 뛰던
정성훈
을 迎入하며 한 해를 準備한 LG는 시즌 한 때 强力한 打力을 바탕으로 2位까지 치고 오르며 氣勢 좋은 모습을 보여 줬으나, 傭兵
크리스 옥스프링
의 뜻밖의 팔꿈치 負傷과 急激한
投手
陳 崩壞를 이겨내지 못하고 또다시 7位를 記錄하며 不振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渦中
박용택
이 奮戰하며 打擊王을 차지하나, 큰 論難을 불러일으켰다. 結局
2009年
시즌이 마감된 後 큰 期待를 모으며 就任했던
김재박
監督은 別 成果 없이 契約 期間이 滿了되어 물러났다. 特히
2009年
金相賢
의 트레이드는 LG 트윈스에게
이용규
의 트레이드와 더불어 뼈아픈 트레이드가 되었다.
2010年~2011年
[
編輯
]
김재박
監督이 成績 不振 및 契約 期間 滿了로 물러난 뒤 當時 두산 베어스의 2군 監督을 맡았던
박종훈
監督을 迎入한 LG는 現金 트레이드를 통해서
넥센 히어로즈
의 外野手
이택근
을 迎入했고
넥센 히어로즈
에서 放出된 左投手
이상열
을 左腕 불펜 强化 次元에서 迎入하여 2010年 시즌을 準備하게 된다. 그러나 시즌 開幕과 同時에 여러 雜音이 發生하게 되는데, 4月 2日 投手
이형종
이 自身의 미니홈피에
박종훈
監督을 非難하는 글을 올려 波紋이 일었고, 에이스
봉중근
의 夫人이
봉중근
이 2軍行을 通報받자 그의 미니홈피에
박종훈
監督을 非難하는 글을 올렸다가 削除하는 事件이 發生하기도 했다.
이형종
은 5月 16日 蠶室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競技에 先發 投手로 登板해 5이닝 2失點으로 프로 데뷔 첫 先發勝을 申告했으나, 以後 負傷으로 2군에 다시 내려가 또 다시 雜音을 일으킨 뒤 8月 10日에 任意脫退 公示되었다. 그리고 彷徨 끝에 2013年에 復歸를 宣言하였다. 그 해 7月에는 投手 서승화가 自身의 홈페이지에 野球를 그만두겠다는 發言 等 안팎으로 紅疫을 치른 LG는 SK 와이번스와의 4:3 트레이드로 投手
박현준
,
김선규
, 捕手
윤상균
의 迎入 및 그 해 猛打를 휘두르며 골든 글러브를 받은 捕手
조인성
의 猛活躍에도 不拘하고 그 해 57勝 71敗 5無(勝率 .429)로 6位에 그치면서 포스트 시즌 進出에 失敗하게 된다.
2011年 LG는 시즌 初盤 잠깐이지만 1位에 오르는 等 乘勝長驅하게 된다. 에이스 봉중근이 팔꿈치 負傷으로 토미 존 手術을 받게 되어 시즌을 마감했지만, 先發 投手 빅 3라 불리는
박현준
과
레다메스 리즈
,
벤자민 駐키치
의 活躍으로 8個 球團 中 30勝에 先着했고, 勝敗마진이 +10까지 올려놓았다. 그러나, 6月 17日 蠶室 SK戰에서 마무리로 登板한 高卒 新人 投手
임찬규
가 9回初 2死 後 밀어내기 4失點으로 逆轉敗 當한 以後 페이스가 흔들리기 始作하더니, 7月 21日 牧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3連戰을 모두 敗하면서 勝敗마진이 0으로 墜落하면서 시즌 前半期를 마치게 된다. 그 해 유난히 넥센 히어로즈만 만나면 熾烈한 競技가 펼쳐져서 엘 클라시코를 본뜬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새로운 서울 더비를 나타내는 新造語인 엘 넥라시코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7月 31日 트레이드 마감 時限을 3時間 남기고
넥센 히어로즈
와의 트레이드로 投手
심수창
과 內野手
박병호
를 내주고 投手
송신영
과
김성현
을 迎入하는 두고두고 膾炙될 만한 歷代級 失手를 저지르며 雰圍氣 反轉을 꾀했으나, 多少 늦은 感이 있었다. 8月 3日 文學 SK戰에서 끝내기 逆轉敗를 當한 以後 LG는 5位로 떨어졌고, 9月 24日 蠶室 SK戰 敗北로 9年 連續 포스트 시즌 進出에 失敗하게 됐다. 이는 KBO 리그 史上 最初의 일이다. 한便 시즌 初 投手
오상민
이 私的인 雜音을 일으켜 일찌감치 웨이버 公示되었고, 8月에는 投手
이범준
이 投手들이 많이 들어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自身의 트위터에 不滿을 表示하기도 하였다. 시즌 後에는
서승화
가 또 다시 온라인에서 雜音을 일으켜 選手團 內部가 如前히 어수선했다.
서승화
는 시즌 後 放出當했다.
2012年
[
編輯
]
2011年
10月 6日
三星과의 最終戰을 마친 後
外野手
出身 監督의 限界를 넘어서지 못한
박종훈
監督은 成績 不振의 責任을 지고 辭任했고, 後任으로 首席코치
김기태
가 就任했다. 그러나 그 해 시즌 後 스토브 리그에서
FA
를 宣言한 選手 中
投手
이상열
萬 잡는 데 그쳤고
이택근
,
송신영
,
조인성
을 잃어 電力 出血까지 생겼다. 게다가
2012年
2月 14日
投手
박현준
과
김성현
이
勝負造作 事件
에 휘말려 檢察 調査를 받았다. 김성현은
2月 28日
緊急 逮捕되어 勝負 造作 事實을 是認했고,
박현준
도
3月 2日
檢察 調査에서 勝負造作 브로커와
김성현
과의 對質審問 끝에 勝負造作 事實을 一部 是認했다.
3月 5日
KBO
는
박현준
과
김성현
에 對해 一旦 野球 活動 停止 處分을 내렸고, 追後 刑事 處罰이 確定되면 永久 除名 等의 强力한 重懲戒를 加할 方針이라고 發表했다. 또한 LG도
3月 6日
이들 두 選手를 放出했고, KBO에 永久 除名을 要請하게 되고 同時에 除名案이 確定되었다.
3月 14日
檢察 搜査 結果
김성현
은 拘束 起訴,
박현준
은 不拘束 起訴로 最終 決定됨으로써 두 사람은 事實上 選手 生命이 끝나게 되었다. 이 事件으로
2010年
SK
,
2011年
넥센
을 相對로 한 LG의 트레이드는 또다시 失敗로 끝나게 되었다. 結局 시즌 始作 前에 全力 出血이 크게 생긴 LG는 憂慮했던 대로
2012年
正規 시즌 7位에 그치며 10年 連續 포스트시즌 進出 失敗이자 두자릿數 連續 포스트시즌 進出에 失敗한 最初의 팀이 되었다. 그나마
김기태
監督이 赴任한 以後 팀 內 선수진에서 雜音이 없어진 것은 큰 所得이었다.
2012年
FA
市場에서
三星 라이온즈
의 右腕 불펜
投手
정현욱
을 期間
4年
間 總額 28億 6千萬 원의 條件으로 迎入하는 데 成功했다. 또한 內部
FA
였던
이진영
과
정성훈
을 일찌감치
FA
優先協商 期間 初期에 各各
4年
間 總額 34億 원에 契約, 팀에 殘留시키면서 成功的인 內部 團束과 함께
FA
市場을 마무리했다.
2012年
12月 14日
三星 라이온즈
와 球團 間 最初로 트레이드를 斷行했다.(
현재윤
,
김효남
,
손주인
(
三星
→
LG
) ↔
김태완
,
정병곤
,
노진용
(LG→
三星
)
한便,
2013年
1月에는
海外派 特別 指名
을 받았던
投手
류제국
이 兵役을 마치고 入團을 確定하였다.
2013年
[
編輯
]
5月 中旬에는 7位까지 쳐졌으나
5月 17日
SK前부터
6月 23日
三星戰까지 一名 '運命의 33連戰'에서 22勝 9敗(雨天取消 2競技)라는 놀라운 勝率을 記錄하였으며,
6月 30日
SK戰에서 勝利하면서 10連續 위닝 시리즈를 達成하였다. 시즌 終了를 2競技 앞두고 自力으로 플레이오프에 直行할 수 없는 狀況이 되었으나
10月 5日
서울綜合運動場 野球場
에서 열린 두산과의 시즌 最終戰에서 勝利하였고, 2位를 눈앞에 두었던
넥센 히어로즈
가 같은 時刻
한밭綜合運動場 野球場
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戰에서
데니 바티스타
의 12脫三振 好投에 마무리
송창식
의 力投로 막혀 敗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LG는 劇的으로 2位를 確定지으며 플레이오프 直行에 成功, "잃어버린 10年"을 淸算했다. 11年만의 포스트시즌 進出이자, LG의 플레이오프 直行은
1997年
以後 16年 만이었다. 같은 날 마무리 投手
봉중근
은 한 시즌 팀 最多 세이브(38세이브)를 達成하였다. 또한 이날 競技 後에는
1窶籔
최동수
의 隱退式이 열렸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直行한 LG 트윈스는 準플레이오프에서 리버스 스윕을 하고 올라온
두산 베어스
에 플레이오프에서 3-1로 敗하면서,
2013年 韓國시리즈
進出에 失敗했다.
2013年
의 宣傳의 背景에는 各各 打率 部門 1, 3, 4, 10位를 차지한
이병규
,
이진영
,
박용택
,
정성훈
을 비롯한 베테랑 野手들의 活躍과
정의윤
,
김용의
,
문선재
,
손주인
等 新進 勢力의 成長이 있었으며,
봉중근
,
이동현
等 健在한 불펜과 2年 만에 10勝 投手 3名(
류제국
,
레다메스 리즈
,
우규민
)이 登場한 先發陣은 팀 平均自責點 1位 (3.72)를 達成하였다.
2014年
[
編輯
]
2014年
4月 23日
시즌 開幕 後 17게임만 進行된 狀態에서
김기태
監督이 成績 不振으로 辭意를 表明하면서
조계현
監督 代行이 暫時 팀을 이끈다.
김기태
監督의 辭退 以後 2014年 시즌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10勝을 達成한다. 以後 2014年
5月 11日
넥센
前 以後
양상문
MBC Sports+
解說委員을 新任 監督으로 맞이 하게 된다. 그 以後로 팀을 잘 이끌며 中盤에는 中位圈까지 끌어올렸다. 後半期에는
황목差勝
等 2軍에서의 選手를 끌어올리면서 4位에 安着하였다. 하지만 最終戰에서 10月 17日에 롯데에 敗하여
2014年 KBO 포스트시즌
進出이 어려워지는 듯했으나
넥센 히어로즈
가
SK 와이번스
를 沮止하면서 LG의 4位가 本格的으로 確定되어 準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
를 3勝 1敗로 누르고 넥센 히어로즈와 PO景氣를 치르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오프에 進出한 LG 트윈스는 正規시즌 2位인
넥센 히어로즈
와 史上 最初의
엘넥라시코
競技를 펼쳤지만 시리즈 全的 1-3으로 敗하면서
2014年 韓國시리즈
進出에 失敗하였다.
2016年
[
編輯
]
2016시즌을 앞두고, 팀의 主張인
이진영
은 2次 드래프트에서
KT 위즈
에 指名을 받아
KT 위즈
로 移籍하였다.
양상문 監督은 시즌 始作을 앞두고 리빌딩을 闡明하면서, 팀의 色깔을 뛰는 野球로 바꾸겠다고 宣言했다. 2015年 7月
정의윤
,
신재웅
,
신동훈
을 SK 와이번스로 移職시키고,
임훈
,
진해수
,
여건욱
을 받는 3:3 트레이드를 斷行하고 FA 정상호를 迎入하면서, 최승준이
SK
로, 2次 드래프트를 통해
나성용
이
三星 라이온즈
로 갔다.
팀의 애物단지였던 巨砲들을 次例로 보내고, 잠실야구장에 맞는 野球를 보여주겠다고 宣言하면서, LG 트윈스는 2016年 4月 1日
한화 이글스
와 開幕 시리즈에서 競技를 하였다.
여기서 LG 트윈스는 두競技 連續 延長 끝내기 勝이라는 KBO 最初의 記錄을 세우고, 單獨 1位로 오르지만,
SK
에게 시즌 첫 스윕敗를 當하고 만다. 5月에는 잘했고 6~7月에 不振하다가 7月末부터 다시 잘하여서 4位와 半 게임차까지 좁혔다. 10月 3日
三星 라이온즈
를 相對로 勝利한 LG는 포스트시즌 進出을 確定지었다. 以後 2016年 10月 10日부터 열린 와일드카드 決定戰 1次戰에서는 (投手 :
허프
)
KIA
를 相對로 敗北하였지만, 2次戰에서 (投手 :
류제국
) 김용의의 犧牲플라이로 1:0으로 勝利하면서 準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넥센과의 準플레이오프 1次戰은 7對0으로 勝利했다. 2次戰은 밴헤켄에 막혀 1:5로 敗北했다. 3次戰은 허프의 好投와 유강남의 홈런을 앞세워 4:1로 勝利했다. 4次戰은 오지환의 4安打 活躍에 힘입어 시리즈 全的 3:1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플레이오프에 進出한 LG 트윈스는 正規시즌 2位인
NC 다이노스
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1次戰
헨리 素砂
와
에릭 해커
의 投手戰으로 흘러갔고 7,8回의
루이스 히메네스
와
정상호
의 홈런으로 앞서 갔으나, 9回
임정우
가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鋼板되었고,
김지용
이
용덕한
에게 끝내기 安打를 맞는 等 2:3으로 逆轉敗하였다. 2次戰에서도
데이비드 허프
가 好投했으나 7回
박석민
에게 2點홈런을 許容하였고, 팀 打線도
재크 스튜어트
의 球威에 눌리며 0:2로 敗했다. 3次戰에서도 數次例 滿壘찬스를 놓치고 17個의 殘壘로 苦戰했으나, 11回
나성범
의 打毬를 잡아낸
안익훈
의 好守備,
양석환
의 끝내기 安打로 3次戰을 가져갔다. 4次戰에서도
우규민
이 好投했으나, 4回
에릭 테임즈
에게 同點홈런을 맞았고, 7回에는 救援登板한
데이비드 허프
가
박석민
,
김성욱
에게 各各 홈런을 맞고 말았다. 結局 4次戰 3:8로 敗하면서 韓國시리즈 進出이 또 다시 挫折되었다.
시즌 終了 後,
12月 5日
우규민
은 4年 65億원에 FA 契約을 締結하여
三星 라이온즈
로 移籍하였고 12月 14日
차우찬
을 迎入했다(4년 95億).
2017年
[
編輯
]
2017年 球團 歷史上 처음으로 開幕 6連勝을 達成했지만 6連勝 以後 5連霸를 달려 아쉬움을 남겼다. 最終的으로 6位를 記錄하여 포스트시즌 進出에 失敗하였고, 시즌 終了 後,
양상문
이 團長으로 昇格하고 그의 後任으로는 全
三星 라이온즈
監督인
류중일
이 第 17代 監督으로 選任되었다.
시즌 終了 後 4年 115億원으로
김현수
와의 契約에 成功하였다.
2018年
[
編輯
]
8月까지 2-3位를 다툴 程度로 시즌 初盤 善戰하였지만 두산과의 나쁜 戰績과 다른 競技들 때문에 9月부터 級 下落勢를 타기 始作했고 結局 最終的으로 8位까지 墜落하여 2年 連續으로 포스트시즌 進出에 失敗하였다.
2020年
[
編輯
]
이 해에 LG 트윈스는 最終戰까지도 꽤 宣傳한 競技를 했었고, 3位까지 올라갔다. 最終戰에서 LG 트윈스는 이기거나 비기기만 하면 다른 競技 相關없이 3位를 維持할 수 있는 狀態였다. 지면 無條件 4位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一旦 勝利하면 安定的으로 3位로 올라갈 수 있는 狀態였고,
KT 위즈
가 敗하면 2位가 될수도 있었다. 하지만, 最終戰에서
SK 와이번스
에게 1點差로 敗北하는 바람에 4位로 떨어졌다.
와일드카드
競技에서
키움 히어로즈
를 4:3으로 이겨
2020年 KBO 포스트시즌
에 直行했으나, 準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
에게 敗北하였다.
시즌 後
류중일
監督은 契約 滿了를 앞두고 辭退했고,
류지현
首席코치가 後任 監督으로 昇格했다.
2021年
[
編輯
]
LG 트윈스는 最終戰을 앞두고
2020年
때처럼 똑같이 3位를 維持했지만, 4位
두산 베어스
와의 隔差가 많이 났기 때문에 事實上 LG 트윈스는 安定的으로
2021年 KBO 포스트시즌
進出을 確定지었다. 하지만 最終戰에서
롯데 자이언츠
에게 2點差로 지는 바람에 그대로 3位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2020年
처럼
2021年
때에도
키움 히어로즈
를 꺾은
두산 베어스
를 만나 敗北하였다. 2021年 시즌 終了 後,
三星 라이온즈
에서 活躍한
박해민
을 契約 期間 4年과 總額 60億원에 契約을 締結하여 迎入하였다.
2022年
[
編輯
]
球團 正規리그 最多勝 新記錄으로 87勝을 하여 2位로 플레이오프에 直行하였으나,
키움 히어로즈
에게 1勝 後 3連敗로 리버스 스윕을 當해 韓國시리즈 進出에 失敗하였다. 이 餘波로
류지현
監督은 契約 滿了 後 재계약하지 못하고
염경엽
에게 監督職을 넘겨야 했다.
2023年 - 29年 만에 이룬 韓國시리즈 優勝
[
編輯
]
플레이오프 리버스 스윕敗의 餘波로 LG 트윈스는
류지현
監督과 재계약하지 않고,
염경엽
을 後任 監督으로 迎入했다.
염경엽
監督이 赴任하고
염경엽
이
김성근
의 아들인
김정준
을 首席코치로 迎入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說往說來가 오갔으나, 시즌 中間부터 치고 나가며 29年만에 正規리그 1位를 차지,
2002年 韓國시리즈
準優勝 以後 21年만에 韓國시리즈 直行에 成功하였다. 以後
kt 위즈
와 相對하여 全的 4勝 1敗로
kt 위즈
를 制壓, 29年 만에 팀 通算 3番째 韓國시리즈 優勝을 차지하며 苦難의 時間을 淸算했다.
通算 記錄
[
編輯
]
韓國시리즈
[
編輯
]
選手團
[
編輯
]
現 選手團
[
編輯
]
|
---|
監督
| |
---|
코치
| |
---|
퓨처스 監督
| |
---|
퓨처스 코치
| |
---|
殘留軍/再活群 코치
|
- 77
정주현
(1壘/內野守備)
- 78
양영동
(3壘/外野手費)
- 79
손지환
(責任/打擊)
- 92
최상덕
(再活投手)
- 93
장진용
(投手)
- --
김종욱
(再活(컨디셔닝))
- --
최재훈
(컨디셔닝)
|
---|
불펜 捕手/베팅볼 投手
|
- 02
임영재
(불펜 捕手)
- 03
임형섭
(불펜 捕手)
- 04
안다훈
(불펜 捕手)
- 05
祖父兼
(베팅볼 投手)
|
---|
投手
| |
---|
捕手
| |
---|
內野手
| |
---|
外野手
| |
---|
軍入隊 選手
| |
---|
2024年 新人指名 選手
|
- 66
金鉉宗
(2라운드 指名)
- 56
손용준
(3라운드 指名)
- 48
진우영
(4라운드 指名)
- 64
김대원
(5라운드 指名)
- 49
정지헌
(6라운드 指名)
- 116
背講
(7라운드 指名)
- 103
김종우
(8라운드 指名)
- 104
강석현
(9라운드 指名)
- 107
김도윤
(10라운드 指名)
- 108
심규빈
(11라운드 指名)
|
---|
歷代 監督
[
編輯
]
LG 트윈스(當時 MBC 靑龍)의 創團 監督은
백인천
이었으며, 現 監督은 19代인
염경엽
이다.
歷代 選手
[
編輯
]
歷代 外國人 選手
[
編輯
]
韓國 프로 野球上 受賞者
[
編輯
]
LG 트윈스에서는
韓國 프로 野球 最優秀 選手
受賞者가 아직 한 名도 나오지 않았다.
1次 指名 地域 緣故
[
編輯
]
歷代 2次 드래프트 指名
[
編輯
]
2次 드래프트
는
韓國 野球 委員會
에서 2年마다 11月 末에 開催되며, 他 팀에서 FA 申請選手를 除外한 35名의 保護選手에서 除外된
選手
를 指名할 수 있다.
鳶島
|
1라운드
|
2라운드
|
3라운드
|
2012
|
김일경
(
키움 히어로즈
, 內野手)
|
윤정우
(
KIA 타이거즈
, 外野手)
|
최동수
(
SK 와이번스
, 內野手)
|
2014
|
임재철
(
두산 베어스
, 外野手)
|
이창호
(
NC 다이노스
, 投手)
|
정혁진
(
두산 베어스
, 投手)
|
2016
|
김태형
(
키움 히어로즈
, 投手)
|
윤대영
(
NC 다이노스
, 內野手)
|
윤여운
(
KT 위즈
, 捕手)
|
2018
|
이진석
(
SK 와이번스
, 外野手)
|
장시윤
(
키움 히어로즈
, 內野手)
|
신민재
(
두산 베어스
, 內野手)
|
2020
|
백請訓
(
SK 와이번스
, 投手)
|
정근우
(
한화 이글스
, 內野手)
|
김대유
(
KT 위즈
, 投手)
|
2024
|
빈칸
|
빈칸
|
이종준
(
NC 다이노스
, 內野手)
|
應援團
[
編輯
]
關聯 팀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
---|
|
球團
| |
---|
競技場
| |
---|
訓鍊場
| |
---|
라이벌戰
| |
---|
永久 缺番
| |
---|
시즌(34)
| |
---|
優勝(3)
| |
---|
|
---|
KBO 리그
(
2024
)
| |
---|
過去 參加 球團
| |
---|
記錄
| |
---|
시리즈
| |
---|
올스타 게임
| |
---|
施賞式
| |
---|
關聯 團體
| |
---|
關聯 項目
| |
---|
|
---|
1980年代
| |
---|
1990年代
| |
---|
2000年代
| |
---|
2010年代
| |
---|
2020年代
| |
---|
|
---|
|
系列社
| 電子
| |
---|
化學
| |
---|
通信·서비스
|
- LG유플러스
- LG헬로비전
- LG CNS
- 비즈테크파트너스
- LG經營開發院
- S&I 코퍼레이션
- D&O
- S&I建設
- S&IFM
- V-ENS
- 非앤이파트너스
- 遊說스파트너스
- 트윈와인
- 지오바인
- 픽스딕스
- HSAD
- 와이즈벨
- 탐스미디어
- 알키미디어
- 더블유브랜드커넥션
- 지아웃도어
- 벅스컴애드
- 지흥
|
---|
敎育
| |
---|
文化·藝術·科學
| |
---|
社會貢獻
| |
---|
스포츠
| |
---|
| |
---|
移轉 系列社
| |
---|
傍系會社
| |
---|
人物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