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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로 호세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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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로 호세 셀라의 銅像

第1代 이리아플라비아 侯爵 카밀로 호세 셀라 이 트룰로크 (Camilo Jose Cela y Trulock, 1st Marquis of Iria Flavia, 1916年 5月 11日 ~ 2002年 1月 17日 )은 스페인 小說 가이子 1989年 노벨 文學賞 受賞者이다.

成長 背景 [ 編輯 ]

1916年 5月 11日 라꼬루냐(La Coruna) 地方의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에서 태어나 9歲에 家族과 함께 마드리드 로 移住하여 에스꼴라삐오스데뽀르리에르los Escolapios de Porlier 學校에入學했는데 이 學校는 當時 가난한 學生들을 위한 宗敎團體에서 세운 學校였다. 그는 1931年 肺結核으로 過多라마(Guadarrama) 保健所에 入院하게 되고 이 療養期間을 통해 오르떼가 이 街셋(Ortega y Gasset)全集과 리바데네이라(Rivadeneyra) 판 스페인 古典文學 選集을 讀破하기 始作했다.

1936年 에 그는 마드리드 大學에서 法學을 專攻하고 是認 으로 活躍을 한다.1936부터 勃發한 스페인內亂 동안 國民病을 組織해 現場에서 戰爭의 悲劇 體驗을 하기도 한 그는 1942年 內戰 後 混亂時代에 《파스쿠알 두아르테의가족 (La familia de Pascual Duarte)》을 發表하였다. 하지만 冊의 成功에도 不拘하고 裁判 發行은 檢閱 에 依해 禁止當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44年 3月 12日 마리아 델 로사리오 꼰데삐까베아(Maria del Rosario Conde Picabea)와 結婚하여 외동아들을 둔다. 그리고 1946年 6月 6日에서 15日까지 알까리아로 旅行을 하는데 이 곳에 그가 겪은 이야기들은 1948年 出版한 《알까리아로의여행 Viaje a la Alcarria》에 그 內容이 담겨있다. 1951年 에는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政府의 檢閱과 힘겨루기를 한 後에 《벌집(La colmena)》이라는 作品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서 出刊했으나 이 作品은 스페인 에서는 또 다시 禁書 目錄에 올랐다. 1953年 翰林院 任員으로 拔擢된 카밀로 호세 셀라는 1956年 이 되자 빨마데마요르까(Palma de Mallorca)로 居住地를 移轉하여 文學誌 《빠뻴레스 데 손 아르마단스 Papeles de Son Armadans》를 主管하는 擔當者가 되었다. 以後 그는 1977年 스페인 國王 후안 까를로스 1世에 依해 上院議員으로 任命되고 1978年 프란시스코 프랑코 死後에 스페인 民主憲法 基礎委員으로 活躍을 한다. 以後 1982年 에는 自身의 小說이었던 《벌집》을 스스로가 監督으로 메가폰을 잡으면서 活躍하기 始作한다. 以後, 그는 1989年 스페인 에서는 다섯 番째로, 小說家로는 처음으로 노벨 文學賞 을 受賞하게 된다.

第 1代 이리아 플라비아 後作인 셀라의 文章(紋章)

그의 文學的 功勞가 認定되어 1996年 5月 17日 후안 카를로스 1歲 國王은 그에게 '이리아 플라비아 侯爵' 爵位를 授與한다. 그가 死亡한 뒤 作爲는 그의 아들 카밀로 호세 셀라 콘데가 習作했다.

時代的 狀況 [ 編輯 ]

카밀로 호세 셀라가 作品活動을 하던 時期는 스페인 內亂 以後인 1950年 代 時代였다. 이 當時 스페인은 1955年 유엔 에 正式으로 加入함으로써 國際的 孤立에서 脫皮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社會的, 文化的 開放의 흐름에 依해 자연스럽게 觀光 붐을 이룬다. 이러한 時代의 背景은 스페인 文學에 있어서도 變化를 가져다 주었다. 檢閱에서도 寬容成果 柔軟性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外國 小說의 普及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當時 1950年代의 스페인 小說은 雰圍氣 面에서 相對的 自由를 가지고 있으며 一種의 解氷의 기운 및 어는 程度는 制限된 開放의 雰圍氣를 가지고 있었다. 當時 文學의 主題에 있어 새로운 傾向들이 登場하기 始作하는데 크게 5가지로 分類할 수 있다.

  • 戰爭 을 主題로 삼는 境遇 새로운 技法으로 다루고 있다.
  • 傳統的이고 실존적인 寫實主義 가 存續한다.
  • 社會的 主題가 增加했다.
  • 客觀的이고 社會的인 新寫實主義가 나타난다.
  • 作家의 虛構的 創作力과 想像力이 돋보이는 小說이 나타난다.

이러하듯 1950年代 스페인은 實質的으로 寫實主義 美學 이 支配恨 時代라고 要約하여 말할 수 있다.

作品 目錄 [ 編輯 ]

  • 1942年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家族』
  • 1943年 『休養所』
  • 1944年 『라사里요 데 또르메스의 새로운 事件과 不運들』
  • 1948年 『알까리亞로의 旅行』
  • 1951年 『벌집』
  • 1952年 『美뇨에서 非多少兒까지』
  • 1953年 『콜드웰 夫人이 아들과 나누는 對話』
  • 1955年 『라 까띠라』
  • 1956年 『猶太人, 모로 人, 基督敎人들』
  • 1959年 『안달루시아의 첫 旅行』
  • 1960年 『구아다라마의 노트』
  • 1965年 『레리다에서 피레네 山脈까지 旅行』
  • 1969年 『1936年, 산 까밀로』
  • 1973年 『어둠의 作業 5』
  • 1983年 『두 名의 死者를 위한 마수르카』
  • 1986年 『알까리亞로의 새로운 旅行』

代表作 『벌집』 [ 編輯 ]

1951年 에 出刊된 『벌집』은 大單元의 結末도 없는 作品이다. 하지만 內容的으로는 마드리드 라는 社會 底邊의 群像들을 照明하면서 失意와 虛無에 빠진 마드리드 를 表現하고 있다. 줄거리가 全然 없는 42年 겨울을 背景으로 하고 있으며 三日間에 일어난 마드리드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作家는 社會樣相의 偏見 없는 觀照者 役割로서 登場하며 全知全能한 創造者로서의 作家 役割은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觀照와 아이러니, 유머, 揷畵的인 省略法을 통해서 社會의 殘酷性을 드러내는데 이는 讀者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과 숨막히는 아픔을 傳達한다. 人物이 無慮 296名에 達하고 그 中 50名은 實際 人物이라는 點이 흥미롭다. 特히나『벌집』은 스페인 內에서 禁止되어 아르헨티나 에서 出版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밀로 호세 셀라는 벌집으로 스페인 內戰 戰後 作家의 最高의 位置에 올랐다. 빠스꾸알 두아르떼 家族이 그의 出世作이고 그의 存在를 널리 알린 作品이라면, 벌집은 그의 作品의 絶頂이며 셀라 文學의 里程標가 되는 作品이다.

그 外 作品들 [ 編輯 ]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家族》,1942 [ 編輯 ]

1942年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家族』은 前後의 小說史에 있어서 첫 番째 큰 事件이었다. 이 作品은 에스뚜레마두라라는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苦痛스럽고 激情的인 이야기를 다룬 作品으로서 讀者들로 하여금 憤怒뿐 아니라 感動도 함께 자아냈다. 이 小說은 周圍의 限界事項이 主人公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犯罪를 저지르게 만든 이 作品은 오히려 個人의 선,악 基準을 떠나 이 같은 社會에 산다는 것 그 自體가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그러한 實存의 悲劇을 다루고 있다.

《콜드웰 夫人이 아들과 나누는 對話》,1953 [ 編輯 ]

죽은 아들 때문에 미쳐버린 女人이 아들에게 보내는 想像속의 便紙들의 內容을 담은 이 小說은 內部 獨白을 통한 潛在意識의 表出했다. 總 222張의 便紙이지지만 짧은 張으로 散文詩 形式이며 大體로의 內容은 꿈속의 想像으로 가득 차있다.

《라 까띠라》,1955 [ 編輯 ]

이 作品은 카밀로 호세 셀라가 스페인 批評文學賞을 받은 作品으로 中南美 스페인語로 씌어진 리얼리즘 系列의 作品이다. 作品의 背景이 되는 舞臺는 베네수엘라이며 效果的인 語彙, 擬聲語, 리듬 等 끊임없는 유희가 돋보인다.

《1936年, 산 까밀로》,1969 [ 編輯 ]

스페인 內戰以前의 社會的 雰圍氣를 記述한 作品이다.

《두 名의 死者를 위한 마수르카》,1983 [ 編輯 ]

殺人과 復讐劇을 超現實主義 技法으로 燦爛한 이미지속에 展開한 戰慄主義의 블랙유머적 品位와 함께 讀者를 끝없이 魅了하고 있다.

作品 傾向 [ 編輯 ]

그의 各各의 小說들은 各其 相異한 小說技法을 따른다. 그가 내린 小說定義에 따르면 " 小說 은 題目 下에서 그리고 括弧에 넣어 덧붙여서 < 小說 >이라는 單語를 認定하는, 冊이라는 形態로 出版된 모든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小說이라는 장르의 開放된 特徵과 變形의 可能性에 對해 그 스스로 確信이 있음을 보여준다. 삐誤 바로하의 실존적 페시미즘을 聯想케 하는 그의 小說世界는 殘酷하고 辛辣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人間의 苦痛 앞에 微弱하나마 存在하고 있는 愛情, 無限한 同情心의 窓口를 열어놓고 있다. 過去의 美學 注意를 淸算하고 새로운 世代로 轉換하고자 하는 그의 文體 亦是 定型化, 固着化된 모습보다는 오히려 다양하고 深化된 傾向을 보인다. 그는 初期 作品 活動 中에 詩를 썼으며 詩的 技法에 익숙하였던 만큼 詩語가 가질 수 있는 可能性을 小說에서도 人爲的으로 보여주려 한다. 또한 作家의 感情을 强調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使用한 갖가지 修辭學 敵人 技巧는 때때로 諧謔과 함께 시니컬한 諷刺, 블랙 유머, 익살스런 才致가 같이 演出되는 아이러니한 狀況을 빚어내기도 한다. 그의 作品에서는 고통스런 冷酷感, 濁한 유머, 抒情的 語調가 서로 混合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그의 作品의 傾向을 말할 때 가장 많이 登場하는 戰慄主義란 셀라 小說의 文體的 美學 을 말하는 것으로 冷酷하고 殘忍한 人間 實存의 樣相을 仔細하고 緻密하게 그리고 한 오라기 感傷的 解釋이나 評價 없이 至極히 客觀的이거나 或은 아이러니컬하게 提示할 때 오는 소름끼치는 事實感을 말한다.

韓國內 飜譯本 [ 編輯 ]

  • 파수쿠알 두아르테 家族
  • 플로라의 時計
  • 어둠의 作業5
  • 벌집
  • 흘러가는 저 구름들
  • 두 亡者를 위한 마주르카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