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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度生’에 眞心인 전희철과 김기만… “우리는 同業者 아닌 同伴者”[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東亞日報

‘함께度生’에 眞心인 전희철과 김기만… “우리는 同業者 아닌 同伴者”[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24日 14時 00分


코멘트

[15] ‘척하면 척, 다른 듯 닮은’
프로籠球 SK 전희철 監督- 김기만 首席코치

프로籠球 SK 전희철 監督(오른쪽)과 김기만 首席코치. 感情共同體인데 利益共同體로도 別 頉 없이 잘 지내고 있다. 監督과 首席코치로 呼吸을 맞추는 3番째 시즌인데, 優勝 한 番에 準優勝 한 番. 그리고 이番 시즌도 플레이오프 進出이 有力하다. 龍仁=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예전부터 正말 親한 親舊끼리는 同業하지 말라고 했다. 親舊는 感情 共同體인데 同業은 利益 共同體다. 親舊는 關心事나 性格이 서로 맘에 들어 맺어진 關係다. 그런데 같은 目標를 達成하기 위해 組織에서 親舊가 利益 共同體 關係로 놓이다 보면 서로 感情이 傷하거나 意見이 衝突해 及其也 關係가 깨지는 境遇를 흔히 본다. 親한 親舊끼리 돈 去來 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利益 共同體에서도 切親 關係가 維持되려면 各自의 캐릭터, 性格에 對한 理解心과 忍耐心 이 必須다. 같은 目標를 達成해가는 過程에서‘내가 더 熱心히 努力을 했다’‘너보다 더 寄與했다’ 式의 持分 따위를 計算하고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各自 役割을 分明히 定하고, 그 役割에 對해 서로가 認定하고 尊敬해줘야 한다. 勿論 利益 共同體에서 나와 鑑定 共同體가 되는 時間도 많이 가져야 한다.

프로籠球 SK의 전희철(51) 監督과 김기만(48) 首席코치는 利益 共同體와 感情 共同體를 오래 넘나들었는데 友情이 안 깨지고 더 깊어지는 오랜 ‘깐부’다. 둘은 監督과 首席코치로 最近 두 시즌 동안 팀을 프로籠球 優勝과 準優勝으로 이끌었다. 이番 시즌도 6强 플레이오프 進出이 有力하다. 前 監督은 歷代 프로籠球 監督 中에서 가장 빠른 時間 안에 100勝을 達成하는 記錄까지 세웠다. 前 監督은 그 功을 金 首席에게 많이 돌린다.

前 監督(92學番)과 金 首席(96學番)도 고려대 先後輩다. 前 監督은 1990年代 暴發的인 籠球 人氣를 主導한 女學生 팬, ‘오빠部隊’의 先鋒將이다. 金 首席이 豫備 大學 새내기로 高麗大 訓鍊에 合流했을 때 前 監督은 이미 ‘에어본’으로 불린 슈퍼 스타였다.

‘오빠部隊’를 몰고 다닌 고려대 在學 時節, 스포츠新聞에 난 自身의 記事를 보고 있는 前 監督. 1面 記事가 ‘전희철’로 塗褙돼 있다. 김기만 提供.
金 首席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악착같은 플레이가 印象的이어서 記憶하는 사람이 많다. 美國프로籠球(NBA) 레전드 데니스 로드맨과 外貌와 霸氣의 籠球 스타일이 닮았다고 해서 ‘로드만’이라는 別名이 붙었는데, ‘김기만’하면 모르는 사람도 ‘로드만’ 하면 안다. 몇 年 前 放送 籠球 藝能 프로그램에 나와 大學 時節 美國에서 玄周燁 先輩의 심부름을 받고 햄버거 프랜차이즈 ‘드라이빙 스루’에 가서 車輛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맨 몸으로 待機한 에피소드를 公開해 話題가 된 바 있다.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인데 稀罕하게 同伴者 느낌이 剛하게 풍긴다. 前 監督은 일에 關해서는 每事에 섬세하고 꼼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 後輩나, 選手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런데 코트 밖에서는 本人 스스로를 武裝 解除를 하고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는 性格이다. 工科 社가 매우 뚜렷한데 속내는 마음의 입, 出口를 다 열어 놓은 사람이다.

金 首席은 이런 ‘전희철’을 아주 悠然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일하는 ‘전희철’을 기다릴 줄 안다. 코트 안팎 ‘전희철의 時間表’를 氣가 막히게 알고 있다. 監督이 말하기 前까지 그의 心理的 空間에 性急하게 끼어드는 法이 없다. 監督 中心으로 생각하는 習慣이 배어 있다. 權力을 讓步할 줄도 안다. 굳이 助言과 慰勞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 代身 장난과 놀이, 위트로 ‘전희철’ 옆에 있다. 그것을 發揮할 時間과 타이밍을 잘 안다. 한 名을 위한 맞춤‘同伴’ 技術이다.

●별 걸 다 記憶하는 ‘김기만’, 兄이 되다
本人 自身도 잊고 있던 人生 스토리를 잘 알고 디테일을 잘 包裝해주는 사람을 누구든 안 좋아할 理 없다. 記憶은 關心이다. 金 首席은 前 監督과 같이 있던 瞬間이 記憶의 總量 優先順位에 있다. 그것이 前 監督에게 友情과 信賴로 천천히 쌓였다.

金 首席은 元來 나이로는 95學番으로 入學해야 했다. 그런데 명지고에서 1年 留級을 해서 96學番으로 入學했다. 95學番이었으면 大學 最高의 籠球 스타 班列에 올라섰던 前 監督과 1年을 大學 舞臺에서 같이 뛸 수 있었다.

“滿期가 1年 일찍 왔으면 나한테 죽었죠. 하하.”

前 監督은 平素 私席에서 ‘欺瞞’首席을 ‘滿期’라고 부른다. 고려대 時節부터 先後輩들에게 親近感 있고, 부르기도 쉬워서 그렇게 불렸다는데 전 監督도 SK에서 金 首席을 만나고부터 愛稱처럼 쓰고 있다.

-金 首席은 大學 入學하고 前 監督을 우러러봤겠어요. 대면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죠?

“普通 高3 學生들은 大學 入學式 하기 傳해 겨울에 訓鍊에 合流하잖아요. 그 때 前 監督님은 卒業 直前이었죠. 當時 스타니 當然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었죠. 아, 첫 印象이 아주 强烈했습니다. 겨울에 群山에서 籠球大잔치 競技가 있었는데 豫備 새내기들도 팀에 合流했었죠, 當時 1學年들이 競技 하루 前날 술을 먹자는 거예요. 저희 同期들은 뭣도 모르고 쫒아갔죠. 1次를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群山 바닷가 옆에 나이트클럽까지 끌려간 거예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運動을 가는데, 고려대 選手들은 큰 버스가 아니고 미니버스로 移動을 했어요. 좁은 버스 안이니 술 냄새가 振動을 하고, 아니나 다를까 監督님한테 딱 걸렸죠. 點心 食事하고 宿所 한 房으로 集合이 되서 1學年들은 머리 박고 있고… 하하. 그런데 여기서 대단한 일이 벌어집니다.”

“金 코치,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競技 前날에는 안 마셨어.”

前 監督이 말을 자르든 말든 金 首席은 그 때 그 瞬間으로 빠져든다.

“當時 監督님이 ‘지기만 져봐’라면서 엄포를 놓으시더라고요. 相對가 한양대였는데 지면 큰 일 나는 狀況이었어요. 그런데 當時 前歷은 高麗大가 앞섰잖아요. 이길 줄 알았는데 웬걸, 막판까지 시소 接戰이었어요. 벤치에서 1學年들이나 新入生들은 벌벌 떨고 있고, 하하. 終了 時間은 얼마 안 남았는데 아예 3點을 지고 있었어요. 그 때 저희들은 ‘죽었구나’ 했어요. 薄한 監督께서 마지막 作戰 타임을 부르시더니 그 때 ‘희철이! 3點 쏴’ 라고 하셨는데 絶望에서 빛을 본 거죠. 그래서 監督님이 들어가서 가운데 自由投 서클 밖에서 3點 슛을 쏘는데….”

“金 코치, 오른쪽 45度 地點이야.”

“아, 그래서 監督님이 슛을 쏘는데 相對 (李)흥섭(DB 事務局長) 兄이 파울을 한 거예요. 그래서 自由投 3個를….”

“率直하게 파울은 아니었어요. 只今으로 따지면 플라핑(파울을 誘導하는 액션)이었죠.”

“自由投를 3個 다 넣어서 延長으로 갈 수 있었고, 나중에 이겼어요. 그 때 監督님 때문에 ‘살았다’를 외쳤죠. 하하.”

“그러면서 내가 다음 날 新聞에 ‘肝 큰 男子’라고 나왔다니까.”

最古參 先輩 前 監督이 막내 豫備 새내기 金 首席의 ‘生命의 恩人’李 된 날, 金 首席 ‘전희철’ 帶域으로 화끈하게 大尾를 裝飾하고, 前 監督에게 剛한 印象을 남겼다.

“더 웃긴 에피소드가 있어요. 競技에서 그렇게 이기고, 體育館을 빠져 나가야 되잖아요. 監督님을 보러 女學生 팬들이 陣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正常的으로 빠져 나갈 수 없었어요. 競技 끝나고 매니저 兄이 저하고 이규섭 等 몇몇 豫備 新入生들한테 先輩들의 유니폼하고 츄리닝을 입히더라고요. 말하자면 假짜 ‘전희철’로 만든 거죠. 그리고 팬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던 出口로 내보내더라고요. 팬들 몰이를 저희 쪽으로 해놓고 眞짜 監督님과 (金)병철 兄 같은 스타들은 反對便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던 거예요. 出口로 나가자마자 한 팬이 저를 보고‘아이 XX, 아니야, 아냐’라고 憤慨하며 監督님을 찾아 反對便 出口로 달려가는데…지금도 그 學生의 찰진 말 한 마디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하하.”

金 首席은 大學 新入生 때부터 直接 눈으로 보거나 傳해 오는 前 監督의 消息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다. 자잘한 얘기부터, 프로籠球 出帆 前 實業팀에서 얼마나 대단한 스카우트 提議를 받았는지, 國家代表팀에서도 綺羅星 같은 先輩들과 어떻게 競爭하며 主戰으로 뛰었는지 等等. 自身이 알고만 있어도, 記憶만 잘해도 平生 籠球 人生에 補藥이 될 것 같았다. 누가 前 監督의 自敍傳이라도 써달라고 하면 自身 있게 나설 수 있다.

只今도 金 首席이 ‘전희철’의 別 것을 記憶해내는 일이 많다고 한다. 前 監督 立場에서는 記憶 저便에 묻혀진, 잘 나갔을 때의 追憶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어 氣分도 좋고, 熾烈하게 籠球를 했던 初心으로 돌아가게 해 마음의 整備도 된다고.

韓國의 ‘로드만’ 金 首席의 SK 活躍 時節. KBL提供.
SK에서 함께 뛰며 둘은 24시간 붙어다녔다. 김기만 제공
SK에서 함께 뛰며 둘은 24時間 붙어다녔다. 김기만 提供
-監督님은 프로籠球가 出帆(1997年) 안하고 그 前에 實業팀으로 갔으면 白紙手票를 받았을 거예요(김기만).

“眞짜 大學 卒業할 때 現代電子(現 KCC)에서 白紙手票에 쓰고 싶은 만큼 額數 적으라고 했어. 오너께서도 그러셨던 걸로 알고 있고, 籠球團 안에서도 ‘그룹에서 달라는 額數로 주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었어. 나도 現代를 가고 싶었거든. 포지션도 4番(파워포워드)이라 稀貴聖徒 있었지. 나중에 東洋(現 消奴)으로 于先 指名될 때에는 臺灣에서도 提議가 있었어.”

金 首席은 프로에 와서도 自己 코가 석자인데, 前 監督의 슬럼프를 自己 일처럼 매우 神經 쓰고 걱정하기도 했다. 當時 하늘같은 先輩라 뭐라 慰勞를 할 수도 없고, 멀리서 先輩의 彷徨에 어쩔 줄 몰라 했었다고. 金 首席이 言及한 그 記憶은 前 監督이 只今 監督 자리에 있으면서 初心을 다질 때 가끔 거슬러 追憶해보는 일이다. 分明 現役 時節 가장 없애고 싶은 成績表인데 要緊 指導法으로 活用한다.

前 監督이 2003~2004시즌 KCC에서 이상민, 추승균 等 當代 最高의 스타들과 뛸 때다. 그 시즌 前 監督은 18競技에 競技當 平均 21分 出戰해 5.9得點에 그쳤다.

“選手가 指導者에게 맞추는 것도 맞고, 指導者가 選手의 性向을 잘 把握해 戰術 配慮를 해주는 것도 맞죠. 이 點을 前提로 當時 저는 팀에서 外郭에 서 있다가 3點 슛을 쏘라는 注文만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는 아니었어요. 나는 슛만 쏘는 選手가 아닌데 슛만 쏘라고 하고, 안 들어가면 세게 指摘을 받았어요. 모든 패턴의 始作은 제가 밖에 서 있는 것이었어요. 안 하면 안 됐죠. 골밑으로 잠깐 들어가면 패턴을 깬다고 또 指摘을 받았죠. 그러면서 言論 等에서‘이제 전희철이 몸싸움을 안 하고 避한다. 밖에서 便하게 슛만 쏘려 한다’는 말이 나오기 始作하더라고요.”

多分히 選手의 잘못된 意志로 誤解를 받았던 氣分 좋지 않은 記憶이다. 그렇지만 팀을 이끌면서 選手 立場과 事情을 챙겨보고자 할 때 刺戟삼아 되돌아보면 나름 意味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눈치 빠르게 金 首席이 얘기를 꺼낸 것이다.

●‘전희철’ 隱退式 때 울어버린 ‘김기만’, 그래서 동생이 되다
‘이 사람의 眞짜 동생이 되고 싶다’, 이 생각이 들 때가 언제였을까. SK에서 함께 뛰면서 서운한 적도 있고, 뭔가 말하기 어려운 좁혀지지 않는 距離感도 있었다. ‘전희철’이라는 스타의 이름값에서 느껴지는 멀어짐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感情이 無意味하다고 整理된 瞬間이 왔다. 金 首席은“전 監督님의 隱退式이 우리 關係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했다.

2008年 11月 ,前 監督은 25年 동안의 華麗했던 選手 生活을 整理하고 隱退를 했다. 隱退式 途中 感情에 북받쳐 뜨거운 눈물도 흘렸다. KBL提供
2008年 11月. 前 監督은 SK에서 25年間의 選手 生活을 마무리했다. 球團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마련해준 隱退式에서 그는 꽃다발과 感謝牌를 받으면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때 金 首席은 조용히 觀衆席 구석에서 前 監督의 눈물을 지켜보고 自身도 눈물이 터졌다고. 金 首席은 當然히 전 監督 옆에서 꽃다발도 주고, 抱擁도 나눠야 하는 SK 選手였다. 하지만 여러 事情으로 籠球를 하느냐 마느냐, 몇 個月 空白을 갖다가 어렵게 2軍에 合流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時點이었다. 招待받지 못한 손님 같아 先輩 옆에 自信 있게 서기 어려웠다. 누구보다 더 感動的으로 祝賀해주고 싶은 마음을 表現할 狀況이 못 됐다.

觀衆席에서 마음으로는 ‘苦生하셨다, 수고했다’라며 深博 調節을 했지만 눈에서 洞空 調節이 안 됐다고. 當時 前 監督도 選手 生活 延長 岐路에서 隱退라는 決斷을 내리기까지 마음苦生을 많이 했다. 말을 안 해도 以心傳心, 前 監督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 울컥하고 또 울컥한 記憶이 아직도 선하다. 金 首席은 이 얘기를 꺼내면서 또 感情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監督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믿음이 생긴 날이었어요. ‘다른 사람하고 比較할 수 없다, 平生 따라다니는 동생이 되자’, 코트에서 우는 監督님을 보며 그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 나에게 隱退 提案, 그리고 報告書까지 던져 버린 ‘兄’
같은 팀에서 있다보니 생각하지도 못한 選擇을 해야 할 일도 생기고, 얼굴 붉힐 일도 있을 텐데 둘은 자칫 誤解를 할 수도 狀況에서 各自의 意圖를 잘못 짚지 않았다.

2011年 4月, 當時 코치를 맡고 있던 문경은 前 監督이 새롭게 指揮棒을 잡으면서 둘의 身上 變化가 생겼다. 運營팀長이었던 前 監督이 코치가 되면서 現場으로 復歸했고, 2軍 選手로 있던 金 首席이 1군으로 올라가 다시 뛸 餘地가 생길 수도 있는 狀況. 그런데.

“前任 監督이 辭任하시고 저는 2軍 宿所에 박혀서 運動하고 있을 때였죠. 하루는 午前에 웨이트訓鍊을 하고 있는데 門 監督께서 監督으로 赴任했다고 記事가 난 거예요. 前 監督님은 코치가 된다고 나오고. 그 때 속으로 ‘이제 좋다. 됐다’ 싶었죠. ‘나이도 많은데 나도 末年에 제대로 뛰어보자’ 그랬죠. ‘희철이 兄이 나를 버리진 않을 거야’라고 얼마나 期待를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期待를 하고 있던 마당에 前 監督님이 2群 訓鍊場으로 오셨죠. 저를 불러 하시는 말이…‘은퇴하게’였어요, 하하. 期待하고 完全히 反對였죠.”

勿論 팀 事情 때문이었다.

“‘滿期’에게 戰力分析을 맡기려고 한 거죠.”

“전 監督님이 當時에 文 監督하고 팀을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隱退에는 同意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노트북만 만지고 있는 것보다 現場에서 움직이는 게 性向에 맞으니 D리그(2軍)를 보고 運營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죠. 前 監督께서 會社하고 相議해보더니 어렵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다음 날부터 팀 運營 方向 等에 關한 報告書를 써야 하는 處地가 된 겁니다.”

-疲困해졌겠네요.

“金 코치가 많이 혼났죠. 저도 戰力分析을 해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잖아요. 報告書만 봐도 어느 程度 일을 한 건지 알죠.”

“主로 홈 競技를 보고 工夫도 하고 分析을 했어요. 한 番은 競技가 끝났는데 文 監督께서 記者들하고 술 한 盞 하면서 食事를 해야 하는데 人員이 不足하다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까지 길게 술을 마시게 됐죠. 다음 날도 競技라 바로 끝난 競技 報告書를 點心食事 前까지 前 監督님께 드려야 했어요. 새벽에 들어와서 힘든데도 나름대로 報告書를 만들어서 보내고 映像 分析은 아직 實力이 不足하니 食事 後에 드리겠다고 했는데, 바로 엄청 깨졌죠. 前 監督님이 ‘할 일은 하고 술을 마셔야지’라고 食堂에서 選手들 보는 앞에서 막 魂을 내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하하.”

“誤打는 엄청 殺伐하게 내고 와서.”

-그래도 서로의 眞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때 關係가 틀어지지 않았죠?

“親分, 뭐 義理를 떠나서 가장 어이없고 火가 나는 건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 狀況에 맞지 않는 行動을 할 때잖아요. 그 때 그런 제 마음을 欺瞞 코치는 잘 理解한거죠. 組織에서 上級者, 先輩들 잘 모시는 것 같은 社會生活 金 코치가 참 잘해요. 長點 中에 가장 좋은 건 같이 다닐 때 神經을 안 쓰게 한다는 거예요. 같이 있으면 이것, 저것 全部 챙겨줘야 하고, 神經을 많이 써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後輩가 아닌 男子의 立場에서 둘이 다니는데, 나한테 被害만 안 주면 正말 고맙거든요.”

前 監督의 性格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고, 낄 타이밍에 끼고 빠질 때는 確實히 距離를 두는 金 首席. 陵구렁이다. KBL 提供
-監督에게는 最適化된 코치 아닌가요.

“잘 스며들어요. 잘 챙기고. 내가 잊어버릴만한 일들을 어떻게 알고 저의 빈틈으로 들어옵니다. 살짝 귀띔해주거나 本人이 處理해놔요. 監督이 完全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코치는 分明 監督이 뭔가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認知하고 있어야죠. 그렇게 둘이 잘 커버가 돼야 서로 하나의 ‘세트’가 되지 않겠어요? 일이든 人間關係든. 저의 ‘死角地帶’를 보는 視力이 참 좋습니다. 金 코치가.”

● 先輩 監督들 失手 反復 안 하려는 ‘兄’… 그것을 ‘카피’하는 ‘동생’
初步 監督으로 데뷔하지마자 프로籠球 統合 優勝을 일궈낸 두 사람이 2年 만에 優勝 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取했다. 龍仁=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이제 監督과 코치로 3시즌 째. 前 監督은 첫 프로팀 指揮棒을 잡자마자 優勝을 거뒀고, 지난 시즌에는 아쉽게 準優勝을 했다. 初步 監督으로 프로籠球 歷代 指導者로 最小 競技 100勝을 達成했다. 147競技 만에 100勝. 대단하다. 施行錯誤野 分明 있었겠지만 둘이 팀을 다지고 끌어온 過程과 結果가 期待 以上이라는 評價가 支配的이다.

金 首席은 前 監督과의 ‘同居’ 3年 동안 金錢的 價値로 換算할 수 없는 人生 所得을 얻었다고 했다. KBL提供
金 首席에게는 지난 3시즌 前 監督의 팀 運營을 보고 배운 것을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고 했다. 金 首席은 “나중에 어떤 팀을 맡더라도 自身 있다. 지난 3年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갖고만 있으면 되고, 아니 갖고 있어서 좋다. ‘카피’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어디서든 잘 適用이 될 수 있다는 確信이 든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前 監督에게 깨지고 또 깨지고, 숙제하고 또 宿題 檢査 받는 게 지겹고, 한便으로는 自尊心 도 무너지는 過程을 겪었지만 지나가보니 맞는 길을 찾았다고 본다. 兄을 잘 만난 德으로 돌린다.

-全 監督께서 보기에, 金 코치가 뭘 보고 배워서 저렇게 滿足해할까요. ‘전희철票 地圖’의 核心으로 連結되는 問題네요.

“저도 여러 監督들을 모셨고, 지켜봐왔는데 各自 長點과 短點이 있잖아요. 그런데 長點이라는 건 客觀的 指標로도 보일 수 있는 거고, 그런데 短點은 宏壯히 主觀的인 意思에 달려 있는 거잖아요. 코치를 할 때부터 先輩 監督들의 좋은 部分을 ‘集中的으로 배워보자’가 아니라 短點은 하지 말자라는 點에 基準을 두고 일을 했어요. 사람마다 長點 캐릭터가 있잖아요. 그것을 내 것으로 승화시키기는 宏壯히 어려운 일이에요. 元來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先輩 監督들의 失手를 踏襲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죠.”

-經驗에서 얻어진 信念 같은데요.
“以前 監督들이 한 行動들에 對해 選手들이 싫어하는 部分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長點은 分明히 있잖아요. 다른 監督들의 長點을 따라가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後悔가 안 생기도록. 그러면서 以前 監督들의 短點들을 내가 보여주지 말자는 겁니다. ‘短點을 하지 말자’라고 하면 補完策을 생각해 놓겠죠. 그 補完策을 實行으로 옮기다보면 그게 새로운 저의 長點이 될 테고요.”

前 監督은 지난 10日 프로籠球 歷代 監督 中에서 最小 競技 100勝을 達成했다. 前 監督은 功을 金 首席에게 돌렸다. 둘만의 記念 샷은 必須. 김기만 提供.
-꼼꼼한 性格인데 本人에게도 같은 基準을 適用?

“저의 이런 이미지가 正答은 아니죠. 이 팀에서도 코치든, 選手들이든 狀況에 따라 저에 對해 뭔가의 短點을 發見하고 찾겠죠. 내 意志대로만 팀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제가 100% 完璧한 게 아니기 때문에요. 以前 監督들의 短點을 踏襲하지 말자라는 건 팀 運營을 하는데 있어서 朝廷과 調律을 하겠다는 意志입니다. 여기서 좋은 結果物을 내면 그게 또 저의 것, 長點이 되고요. 제 스스로도 모니터링을 합니다. 例를 들어 中繼 카메라의 잡힐 때 選手들을 對하는 말과 表情 等까지도 체크를 하죠. ‘아, 이렇게 火를 낼 때 選手들은 어떤 感情이 들겠구나’ 하고 곱씹어보죠. 그러면 다음 같은 狀況에서 마음을 비운다던가, 스스로도 短點을 줄이는 過程을 겪죠.”

-이제 ‘김기만’에서 그런 ‘전희철’의 모습이 많이 비춰질 수도 있겠네요.

“金 코치는 많이 배운다고 하는데, 저는 배워보라고 하는 것보다, 들었으면 좋겠다는 程度에요. 저의 長點을 가져가라, 배워가라고 하면 힘들 거예요. 한 相關을 모시고 平生 職場을 다닐 거면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서는 팀, 監督도 자주 바뀔 수 있고, 選手 世代도 今方 바뀌잖아요. 그러면 내 哲學이 맞다, 이거죠. 長點만 따라가서 複寫하려면 方向性을 못 잡습니다. 例를 들어 카리스마 있는 監督이 있고, 溫和하게 指導하는 監督이 있을 수 있고, 또 유머 있는 監督?… 내가 유머가 없는데 어떻게 따라갈 거예요? 無條件 따라한다고 해서 내 것이 되기 어렵다는 거죠. 만들었다 해도 내 스타일이 없어지죠. 短點을 안 하는 게 複雜하지 않고 쉽다, 短點만 안 하면 最小限 辱은 안 먹는 監督이 된다는 點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러니까 되게 便해요. 監督님이 머리 아프면서 整理해놓으셨잖아요. 이런 短點, 저런 短點 안해야 되고…나름 좋은 監督賞을 整理하셨잖아요. 저는 머리 안 굴리고 그대로 따라가면 되죠. 하하.”(김기만)

거의 한 動作의 本體와 그림자로 움직이는 것 같다. 前 監督이 하는대로 金 首席도 따라하고 싶다. 複寫한다고 批判받아도 좋다. KBL 提供.
내 것은 穩全히 다하고 또 硏究해서 좋은 쪽으로 發揮하고, 안 좋은 것은 하지 않는 實踐. 籠球를 떠나 ‘전희철’이 사는 人生法이라 느껴진다. 그게 穩全히 동생에게 移植되고 있다.

-解釋이 그럴 듯한가요?
“監督도 다 먹고 살자고, 周邊 사람들과도 좋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같은 組織에서 같은 目標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참 재밌는 게 10年 前의 제 모습을 다 記憶 못해요. 오래 같이 있던 사람들도요. 그래서 저를 繼續 變化시키고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이미지라는 게 나쁘다가도 좋게 되거든요. 籠球를 잘 工夫하고 파헤치면서, 팀을 바르게 運營하는 것이 重要한데 이것이 저의 社會的인 이미지에도 連結이 되니까요.”

-金 코치는 그런 監督님의 變化가 크게 느껴지겠습니다.

“저는 自負할 수 있어요. 兄嫂님 다음으로 大韓民國에서 前 監督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表情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는 알아요. 그런데 短點을 繼續 지우고 계셔요. 普通 같으면 화이트보드를 던져 날아갈 狀況인데, 誇張 없이 얘기하면 10番 날아갈 게 한 番도 안 나왔어요. 아직 監督님의 短點은 안 보입니다. 하하.”

● 눈물까지 닮고 싶다
가슴을 스스로 후벼파는 前 監督의 自責과 눈물을 처음 봤다. 2022~2023시즌 챔피언決定戰 6次戰에서 한 때 15點까지 앞서다 4쿼터 逆轉을 내주고 不便함을 감추지 못하는 前 監督. 곁에 있는 金 首席도 坐不安席이었다. KBL 提供
初步 監督으로 指揮棒을 잡자마자 統合 優勝을 하고 두 番째로 맞이한 2022~2023시즌. 前 監督은 또 한 番 SK를 프로籠球 챔피언決定戰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正官庄을 相對로 3勝 2敗로 앞선 狀況에서 치른 6次戰에서 3쿼터 한 때 15點 差異로 앞서가다 痛恨의 逆轉敗를 當했다. 7次戰에서 雰圍氣를 넘겨주며 거의 손에 넣었던 優勝을 놓쳤다. 前 監督은 7次戰이 끝나고 6次戰을 服朞하며 4쿼터 自身의 戰略이 失敗였고, 選手들에게 未安하다는 말을 하며 거의 家族 누가 世上을 떠난 것처럼 눈물을 쏟았다. 金 首席은 批判과 非難을 기꺼이 自己 責任으로 돌리는 監督의 눈물 始作과 끝을 다 봤다. 金 首席이 “그 때 진 건 저한테도 持分이 있다…”고 말하자 前 監督이 말을 끊었다.

“金 코치. 그 때는 監督의 잘못이야. 3쿼터 이기고 있을 때 作戰 時間을 부르면 안 되는 狀況이야. 여태껏. 15點을 이기고 있는데. 그런데 나한테 萬若 그 狀況이 똑같이 왔다고 하면 作戰 타임 또 부를 거야. 그 때는 選手를 쉬게 해주는 게 맞아. 쉬게 하면서 템포 調節하고 整理해서 이기고 있는 點數를 지키는 게 맞아. 하지만 結果論的으로 點數를 지키지 못한 게 잘못이지, 몇몇 팬들은 ‘미친 作戰 타임’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只今도 自身 있게 作戰 타임을 똑같이 부를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 選手들이 體力的으로 힘든 狀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때와 달리 主力 3名을 作戰 타임 때 쉬게 하면서 벤치에 앉혀두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을 거야. 그래도 當時 全體的인 判斷에 對해서는 良心의 呵責을 느껴.”

-金 首席은 監督을 너무 잘 아니까, 助言할지 말지 생각이 많았겠어요. 當時에.

“監督님은 ‘레파토리’를 여러 個 準備하고 오니까….”

“아니, 내가 못 볼 수도 있는 것을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전희철)

“그런데 저는 監督님이 다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萬若에 이런 저런 狀況에 맞는 助言을 드렸는데 監督님이 ‘그랬어?’라고 하면 다들 속으로 ‘그것도 把握 못했어’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監督에 對한 信賴가 떨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監督님이 그런 적이 없으니까 判斷을 잘 하실 거라 믿었죠.”

-金 首席이 監督님 判斷에 介入할 餘地가 많지는 않겠어요.

“競技 中에 相對 選手 누가 우리 選手 뒤통수를 때렸는데 내가 못봤을 때? 金 코치가 正말 때린 것을 봤다고 큰 소리를 내면 ‘그래? 때렸어?’라고 같이 열 받아할 수 있겠죠. 하하.”

-金 코치의 役割이 莫重합니다.

“定해놨어요. ‘뒤에서 내 辱하다 걸리면 다 잘라버린다’고요. 하하.”

-스스로가 完璧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熱心히, 팬들 의식하면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왜 籠球에 眞心인 줄 아세요?. 監督으로 왜 죽기 살기로 이기려고 하느냐면, ‘남들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에요. 싫은 소리를 弄口하면서 너무 많이 들어서 제발 안 들었으면 해서 眞心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이겨서 喜悅을 느낀다기보다 ‘아 싫은 소리 안 듣겠다’, 이게 더 좋아요. 프로니까 이기면 싫은 소리 안 나오잖아요.”

“챔피언決定戰에서 準優勝하고 저라도 監督님처럼 눈물이 났을 거예요. ‘내가 正말 그렇게 했다고’ 하면서 自責하는 눈물로 보였거든요. 저도 같은 狀況이면 똑같이 그랬을 거예요. 저도 이제 누구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選手들한테도 週期的으로 ‘뭐 하지 마라’식으로 注意를 많이 주죠. 귀찮을 겁니다. 그래도 재밌게 받아들여달라고 해요. ‘니喜들 때문에 나 監督님한테 욕먹는다. 監督님 性格 알지? 나 죽는다. 平常時처럼 착한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고요.”(김기만)

떨어질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前 監督은 金 首席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 ‘滿期’라고 부르는데. 둘이 서로에게 들어둔 積金은 ‘滿期’가 없을 것 같다. 龍仁=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듣다보니 척하면 尺이다. 둘이 平生 같은 길을 안 가면 語塞할 것 같다. 前 監督은 “ ‘滿期’가 ‘正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라고만 안하면 둘이 平生 籠球로 붙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金 首席은 이미 몇 年 前 首席코치였던 前 監督이 女子프로籠球 팀 監督 提案을 받았을 때의 對話로 ‘平生 깐부’로 지낼 것을 確信했다고.

“監督님이 그러시더라고요.‘만기야, 女子 選手 3點 슛 姿勢 제대로 잡아주고 가르칠 줄 알아?’라고 해서 ‘모르겠는데요’라고 했죠. 그러니까 ‘그렇지? 나도 몰라, 안 갈래. 그냥 여기 있자’라는 거예요. 얼마나 웃었는지….”

各自의 利益을 于先 念頭에 두는 同業者였다면, 分明 이 對話 뒤에 숨겨진 意圖와‘트릭’이었을 거다. 繼續 곁에서 배운다는 金 首席이 同伴者로 前 監督에게 하나 드릴 게 있다고 한다. 말 膳物이다. 돈은 없으니.

“監督님 혼자 가는 길에 嚴한 짓 제가 안 할 테니, 가고 싶은 길로 가시고,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제가 周邊 整理 할 테니.”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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