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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生 마감한 동생…다른 遺族들과 아픔 나누며 治癒” [따萬事]|東亞日報

“스스로 生 마감한 동생…다른 遺族들과 아픔 나누며 治癒” [따萬事]

  • 東亞닷컴
  • 入力 2023年 10月 26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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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殺 遺族 同僚支援活動家 張俊河 氏
“다른 遺族들의 한마디가 큰 慰勞가 돼…같은 아픔 겪는 遺族들 돕고 싶어”
自殺 豫防講師·‘그루터기’ 自助모임 리더로 活動
“自助모임서 經驗 나누며 혼자인 분들에게 손 내밀고 싶어…”

장준하 씨(왼쪽 세번째)의 가족 사진. 사진= 본인 제공
張俊河 氏(왼쪽 세番째)의 家族 寫眞. 寫眞= 本人 提供
“2018年 5月. 나의 마음은 차가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나날이 날씨가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活動이 많아지는 季節이지만 나는 如前히 寒氣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臨床心理社 張俊河 氏(46)는 5年 前 봄. 동생의 葬禮式을 마치고 동생의 遺品을 整理하면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스스로 生을 마감한 동생을 떠나보낸 張 氏는 몸에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2018年 7月 여름. 張 氏는 精神健康福祉센터에서 相談을 받으며 ‘自殺 遺家族의 介入方案’ 이라는 講演에 처음으로 招請되었다. 그날 한 敎授님을 만났고 張 氏는 講義室에서 瞬間 벼락을 맞은 氣分이었다. 張 氏가 “自殺 遺家族으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라고 마음먹기 始作한 時點이었다. 햇볕이 뜨거웠던 그날처럼 張 氏의 마음에도 따뜻함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講演에서는 한 醫科 大學의 精神健康醫學科 敎授님이 日本의 ‘라이프링크’를 例로 들며, 한 事例를 얘기했다. 日本에서 自殺有子女 手記集 發刊으로 始作된 自殺遺家族의 목소리가 法을 改正하고, 自殺 豫防 豫算을 編成하게끔 했다. 그러한 過程을 통해 90年代 末 OECD 國家 中 自殺率 1位였던 日本이 4位로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自殺 遺家族이 當事者로서 直接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强調하며 自殺 死別者 리더 養成 敎育 프로그램이 紹介되면서 講演이 마무리되었다.

韓 敎授님이 講演 途中 張 氏의 옆자리에 앉더니 名銜을 건넸다. 敎授는 張 氏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리며 “저도 自殺 遺家族입니다”라고 했다. 張 氏가 ‘自殺 遺族 同僚支援 活動家’에 挑戰하게 되는 契機가 되었다.

自殺 遺族 同僚支援 活動家는 같은 아픔을 겪은 ‘同僚’만 活動家 資格이 주어진다. 選拔된 同僚支援 活動家는 다른 患者의 回復을 支援한다.

살기 위해 찾아갔던 自助모임…다른 이들 傷處 治癒하는 리더로
2018年 以前에 張 氏는 本人도 自殺 高危險群에 屬해 있었다. 2011年 張 氏는 집안 事情이 어려워졌고 걸어 다니기 힘들 程度로 몸도 좋지 않아 憂鬱感이 커졌다. 하지만 周邊 知人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漸次 나아지기 始作했다. 每週 日曜日 敎會 사람들과 日常을 나누며 慰勞를 받기도 했다. 張 氏는 “每週 만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漸次 信用回復度 했고, 自殺 危機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以後 그는 自殺 豫防에 도움이 되는 役割이 하고 싶어 2018年 3月 相談大學院에 들어갔다.

그런데 5月 동생이 숨진 채 發見됐다. 힘든 時期를 克服했지만 동생이 갑작스레 떠나면서 張 氏는 두 달間 憂鬱症에 시달렸다.

當時 張 氏에게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自助모임’이었다. 自助모임이란 共通의 問題를 共有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의 經驗을 共有하고 支持함으로써 肯定的인 變化를 스스로 圖謀하는 모임이다. 張 氏가 參與하는 自殺 遺族 自助모임은 家族을 먼저 떠나보낸 遺族들이 自身들의 經驗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共有하고 治癒하는 모임이다.

장준하 씨 자조모임에서 자신의 회복 경험을 나누며 유가족과 유가족을 돕는 실무자들에게 교육를 하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張俊河 氏 自助모임에서 自身의 回復 經驗을 나누며 遺家族과 遺家族을 돕는 實務者들에게 敎育를 하고 있다. 寫眞= 本人 提供.


2019年 張 氏는 一週日에 한 番 ‘自助모임’에 參與했다. 그 모임에서 張 氏는 自殺 遺族들로부터 큰 慰勞를 받았다. 그는 “어떻게 보면 살려고 간 것이다. 그런데 職業意識이 있어서 熱心히 다니기도 했고 慰勞를 많이 받았다”라고 했다. 張 氏는 自殺 遺家族들을 爲한 自助모임이 다양하다고 說明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이 있다는 事實조차 모르거나 모임에 參與하는 것이 두려워 參與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大多數라고 말했다.

張 氏는 現在 自殺 遺族 同僚支援 活動家 2期로서 ‘그루터기’ 自助모임 리더로 活動하고 있다. 3~4名의 遺族이 參與 中이다. 遺族들이 自身의 이야기를 하게끔 이끌고 마지막에 報告書까지 쓰는 것이 張 氏의 役割이다. 모임에서 그는 自身의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遺族들이 自己 經驗과 아픔을 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努力하고 있다.

張 氏에게 가장 힘들었던 記憶은 동생의 屍身을 第一 먼저 發見한 것이다. 동생이 살던 오피스텔 門을 부수고 警察이 案內한 곳으로 들어가 張 氏가 동생을 처음으로 만졌을 때는 너무 차가웠다. 몇 달 내내 그 차가움이 繼續해서 이어졌고 知人들로부터 慰勞를 받기도 했지만, 그 분들의 沈默이 持續되기도 했다. 비슷한 經驗이 없어 어떤 慰勞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大多數였던 것이다. 張 氏는 ‘괜히 얘기했다’라는 생각에 혼자 속상해한 적도 많았다. 그는 自身의 感情을 나누는 데 限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張 氏는 “그때 가장 힘이 돼준 분들은 바로 自助모임에 있던 분들이었다”라며 “그 前에 다른 분들은 큰 슬픔을 慰勞하는 方法을 모르시祈禱 해서 말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 힘들겠군요”…다른 遺族의 한마디
張 氏는 自身의 經驗과 感情들을 自助모임에 있던 분들과 나누면서 內面의 傷處들을 治癒할 수 있었다. 一般 사람들에게 나누기 힘든 部分들을 모임에서 나눴을 때는 “나도 그랬다”와 같은 共感을 얻을 수 있었고 張 氏에게 큰 힘이 됐다. 그中에서 가장 힘이 됐던 말은 “참 힘들겠군요”라는 單純한 한마디였다. 一般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張 氏는 自助모임에 있던 한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처음 들었다. 慰勞의 말을 건넸던 그 분은 實際로 딸을 잃고 한동안 心的으로 힘드신 분이었다. 張 氏는 “그분이 그 말을 해주셨을 때 동생이 世上을 떠난 지 한 달 뒤였다”라며 “‘저도 한 달 됐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眞情性 있는 慰勞를 느꼈고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고 說明했다.

張 氏는 自身의 아픔과 苦痛을 ‘말’로 함으로써 治癒가 될 수 있다고 强調했다. 勿論 安全한 사람들, 空間, 祕密이 保障되는 곳이 必要하다고도 했다. 그는 “自助모임은 어떤 얘기를 해도 慰勞를 해주고 淡淡하게 들어줄 수 있는 곳”이라면서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 自體만으로 도움이 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자조모임에서 유족들은 자조모임 얘기함을 통해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주변에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을 나눈다. 사진= 본인 제공
自助모임에서 遺族들은 自助모임 얘기함을 통해 共通된 主題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周邊에 털어놓지 못했던 感情을 나눈다. 寫眞= 本人 提供


張 氏는 同僚支援 活動家로서 自助모임을 進行할 때 힘든 點이 없냐는 물음에 “다른 遺族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回復했던 傷處가 다시 들춰지기도 한다”라며 “記憶이 聯想돼서 힘들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部分”이라고 答했다.

張 氏는 “하지만 1泊2日 캠프나 遺族들끼리 모여서 힐링할 수 있는 다양한 活動들이 있다. 治癒되는 點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그는 “내가 무언가 役割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다 보니 持續할 수 있다고 傳했다.

“自助모임 통해 다른 遺族들도 日常 回復했으면…”
張 氏는 本人이 힘들었던 時期처럼 비슷한 經驗을 하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면 自助모임뿐만이 아니라 專門家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重要하다고 말했다. 그는 “精神健康醫學科度 좋고 다양한 福祉에 對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住民 센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强調했다. 그러면서 張 氏는 “平素에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危機의 瞬間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機關과 專門家들이 많다”라며 “‘살려고’ 하는 사람 곁에는 ‘살리려고’하는 사람들이 있어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라며 “自殺 危機, 生의 危機에 꼭 도움을 請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진과 만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자살유족 동료지원 활동가 장준하 씨(46). 사진=김예슬 기자. 2023.10.04
取材陣과 만난 韓國生命尊重希望財團 自殺遺族 同僚支援 活動家 張俊河 氏(46). 寫眞=김예슬 記者. 2023.10.04


또한 張 氏는 遺族들이 自身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共有함으로써 社會와 斷絶되지 않는 것이 重要하다고 强調했다. 自助모임뿐만이 아닌 1:1 個人 哀悼 相談 等 遺族들이 자유롭게 參與할 수 있는 自殺 遺族 專擔 人力이 地域의 精神健康福祉센터에 配置되어 있다고 張 氏는 說明했다. 그는 “遺族 분들이 多樣한 프로그램들에 參與하고 專門家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自助모임을 통해 日常을 回復했으면 한다”고 懇切히 所望했다.

張 氏가 가진 삶의 價値觀은 ‘사람과 함께 살며 혼자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張 氏는 어린 時節부터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心理學을 專攻했고 現在 臨床心理社로 일하고 있다. 同時에 그는 自殺 豫防 講師, 自殺遺族 同僚支援 活動家로 活動하고 있기도 하다. 職業 特性上 應急出動을 하거나 자실 試圖를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도 頻繁하다. 그럼에도 張 氏에게 가장 重要한 것은 自身과 비슷한 經驗을 가졌거나 힘든 일로 혼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지오디 노래 中에 ‘촛불 하나’라는 노래가 있어요. 노래 歌詞처럼 지치고 힘든 분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살려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과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自殺 問題는 곧 解決될 수 있어요.”

■ ‘따뜻한 世上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萬事)은 寄附와 奉仕로 나눔을 實踐하는 사람들, 自己 몸을 아끼지 않고 危機에 빠진 他人을 도운 義人들, 社會的 弱者를 위해 空間을 만드는 사람들 等 우리 社會에 善한 影響力을 行使하는 이웃들에 對한 이야기입니다. 周邊에 숨겨진 ‘따萬事’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東亞닷컴 記者 seul5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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