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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透明人間’된 여섯살 조나단[히어로콘텐츠/共存]|東亞日報

‘透明人間’된 여섯살 조나단[히어로콘텐츠/共存]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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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存: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2〉移住民들 ‘떠나지 못하는 섬’

지난해 9월 경기 안산시의 빌라 2층에 사는 조나단이 바로 아래층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국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세탁기와 신발장, 빨래 건조대로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베란다가 세상을 알아가는 통로다. 히어로콘텐츠팀
지난해 9月 京畿 안산시의 빌라 2層에 사는 조나단이 바로 아래層 飮食店에서 食事를 마치고 나온 韓國人들을 有心히 바라보고 있다. 洗濯機와 신발欌, 빨래 乾燥臺로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베란다가 世上을 알아가는 通路다. 히어로콘텐츠팀
“未登錄 아이가 있는데 받아줄 수 있나요?”

“未登錄이 뭐예요?”

“父母님이 不法 滯留하는 분의 아이요.”

“어휴, 저희는 안 돼요.”

조나단은 미등록 이주아동이란 이유로 어린이집 입소를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경기 수원에서 조나단의 입소를 거부한 어린이집은 10곳이 넘었다.
조나단은 未登錄 이주아동이란 理由로 어린이집 入所를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京畿 水原에서 조나단의 入所를 拒否한 어린이집은 10곳이 넘었다.

인도네시아人 夫婦가 韓國에서 낳은 조나단(假名·6)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다. 國內에 出生申告조차 되지 않은 未登錄 移住兒童이기 때문이다. 父母가 비자 更新에 失敗하면서 영문도 모른채 未登錄 身分을 물려받았다. 태어났다는 事實조차 證明하기 어려운 ‘透明人間’李 된 셈이다.

조나단은 未登錄 身分 탓에 어린이집도, 文化센터도, 그 어디에도 가기 힘들었다. 조나단에겐 京畿 수원시의 두 坪(藥 7m²) 남짓한 원룸이 거의 唯一한 世界였다. 조나단이 자라며 집은 漸漸 좁게 느껴졌다.

조나단이 돌이 지났을 무렵 엄마 와티(假名·39) 氏는 어쩔 수 없이 조나단을 데리고 뒷山으로, 市場으로 外出을 始作했다. 살얼음板을 걷듯 조심스러웠다. 未登錄 兒童은 病院 治療조차 거부당할 수 있어 걱정이 컸다.

“어디를 데리고 가든 다칠까 봐 怯이 났어요. 비자 滿了 後엔 保健所에서 豫防 接種조차 拒否當했거든요.”


경기 안산의 어린이집 인근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조나단. 엄마가 등을 밀어줄 때마다 한국어로 숫자를 셌다.
京畿 安山의 어린이집 隣近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조나단. 엄마가 등을 밀어줄 때마다 韓國語로 數字를 셌다.

○ 조나단의 두 坪 世界
와티 氏는 아이를 언제까지 放置할 순 없었다. 아이가 滿 세 살이 지난 2019年 末 와티 氏 夫婦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計劃을 세웠다. ‘來年 봄에 돌아가 애를 적응시켜 2學期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지.’ 飛行機便을 알아보고 짐도 쌌다.

그런데 이듬해 初 突然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事態가 터졌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19 確診者가 늘었다. 夫婦는 防疫이 不安한 母國으로 아들을 보내기가 두려웠다. 코로나19街 野俗했지만 方法이 없었다. 生計까지 어려워졌다.
경기 수원시의 원룸에 있는 조나단과 와티 씨. 미등록 신분 탓에 대부분 집에서만 생활했다.
京畿 수원시의 원룸에 있는 조나단과 와티 氏. 未登錄 身分 탓에 大部分 집에서만 生活했다.


日傭職 勞動者인 男便은 月給이 일정치 않았다. 와티 氏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조나단을 맡길 어린이집이 없으니 難堪했다.

2019年 겨울, 食堂 淸掃 일을 求한 적은 있다. 勤務時間은 午前 7時부터 10時까지. 食堂이 門을 열기 前이라 조나단을 데려가 일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겨울옷으로 꽁꽁 싸맨 조나단을 乳母車에 태우고 일터로 向했다. 걸어서 30分 距離를 찬바람 맞으며 오가면서도 일감이 있어 幸福했다.

하지만 코로나19 擴散勢가 甚해져 이마저도 그만둬야 했다. 生計를 이으려면 조나단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집에서 인도네시아 飮食을 만들어 移住民들에게 팔기 始作했지만 生活費는 如前히 不足하다.

어린이집이 조나단을 받아줄 方法은 없는 것일까. 韓國人 兒童이 많은 어린이집은 餘地를 안 주는 便이다. 學父母들 反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더군다나 京畿 水原市 移住兒童은 비자가 있든 없든 保育費를 全혀 支援받지 못한다. 父母가 保育料 全額을 내야 한다. 어린이집은 移住勞動者 父母들의 일자리가 不安定하다는 點을 안다. 保育料가 밀릴까 봐 걱정돼 入所를 拒否하는 것이다. 水原어린이집協議會 側은 “水原市廳이 外國人 兒童을 電算에 登錄해야 入所할 수 있다. 未登錄 兒童은 團體 傷害保險 加入도 안 돼 或是라도 다치면 補償을 못 받는 點도 負擔”이라고 했다.
어렵게 간 어린이집이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조나단의 등원이 중단됐다.
어렵게 간 어린이집이지만 코로나19 擴散으로 조나단의 登院이 中斷됐다.

돌고 돌아 安山 밖엔 答이 없다

未登錄 移住兒童, 어린이집-學校서 받고 進學-비자 相談 先生님들도 있어 돌아와
○ 移住 속의 移住
외국어 간판들이 눈에 띄는 안산역 모습.
外國語 看板들이 눈에 띄는 안산역 모습.
“未登錄 移住兒童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安山에 있대요.”

조나단을 拒否한 어린이집이 10곳이 넘었을까. 조나단을 안타깝게 여긴 水原의 한 敎會 敎師가 지난해 와티 氏에게 안山行을 提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水原으로 移住해 겨우 定着했는데….’

移住에 이은 移住는 버거웠다. 와티 氏는 水原에서 쌓아온 걸 모두 버려야 했다. 未登錄人 조나단을 선뜻 받아준 病院, 育兒用品을 물려주던 집主人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그래도 와티 氏는 5年째 살던 水原을 떠날 勇氣를 냈다. 조나단을 위해서. 多幸히 安山의 한 어린이집이 그해 5月 조나단을 받아주기로 決定했다. 조나단 父母의 旅券과 조나단의 病院 出生證明書만 確認하고 入所를 許諾했다. 어린이집 全體 兒童의 90% 以上이 移住 背景 兒童이어서 별다른 先入見이 없었다. 保育料를 未納한 外國人 父母들을 督勵해 본 經驗도 있었다.

安山의 이러한 保育 環境 뒤엔 地方自治團體의 支援이 있었다. 안산시는 2018年 京畿道에서 처음으로 自體 豫算으로 登錄 外國人에게 保育費를 주기 始作했다. 保育費 支援 德에 安山 어린이집들은 移住兒童들을 수월하게 받게 됐다. 經驗이 쌓이면서 移住民 學父母들의 子女 保育料가 밀릴 것이란 先入見도 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등원이 중단된 안산 어린이집. 지난해 11월 넉 달 만에 공사 중인 어린이집을 찾은 조나단은 낯선 풍경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再擴散으로 登院이 中斷된 安山 어린이집. 지난해 11月 넉 달 만에 工事 中인 어린이집을 찾은 조나단은 낯선 風景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와티 氏는 移徙까지 열흘이 남았는데도 一旦 登院을 始作했다. 조나단 손을 잡고 水原에서 安山까지 地下鐵과 徒步로 1時間씩, 往復 2時間을 오갔다. 조나단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곤 近處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제가 좀 길치거든요. 새로운 집과 어린이집 近處 길을 映像으로 찍어서 외웠어요.”

와티 氏는 登院과 下院을 每日 反復하기 힘겨웠지만 뿌듯했다. 조나단은 새로운 韓國語 單語와 表現을 今方 배워오곤 했다. 엄마와 헤어질 때도 떼쓰지 않았다. 오히려 인도네시아語로 이렇게 힘줘 말했다.

지난해 12월 마침내 임시로 등원이 가능해졌지만 같은 해 6월 한 달밖에 못 다닌 어린이집이 어색해진 조나단은 ‘들어가기 싫다’며 엄마 팔을 잡아당겼다.
지난해 12月 마침내 臨時로 登院이 可能해졌지만 같은 해 6月 한 달밖에 못 다닌 어린이집이 語塞해진 조나단은 ‘들어가기 싫다’며 엄마 팔을 잡아당겼다.
“엄마, 나 너무 빨리 데리러 오지 마. 나 7時間 程度는 있어야 해.”

安山에 定着하는가 싶었다. 조나단이 어린이집을 한 달 다녔을 무렵, 또 危機가 찾아왔다.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再擴散으로 安山 어린이집마저 登院이 中斷됐다. 맞벌이 父母 等 특수한 境遇에만 아이를 돌봐주는 緊急 保育이 始作됐다. 어린이집에선 緊急 保育을 申請하려면 父母의 在職證明書가 必要하다고 했다. 하지만 비자가 滿了돼 日傭職으로 일하는 조나단 아빠는 在職證明書를 낼 수 없었다. 每月 所得이 일정치 않으니 月給 明細서도 내질 못했다.

게다가 와티 氏는 둘째를 妊娠했다. 입덧이 심해졌다. 病院 診斷書까지 받아 어린이집에 냈다. ‘제발, 暫時만이라도 아이를 받아주세요.’ 懇切한 마음이었지만 所用이 없었다.

“詩 매뉴얼을 따라야 했어요. 여긴 코로나 確診者가 많이 나오는 地域이라 (詩 側에) 저희만 봐달라며 (入所를 許容)할 수가 없었어요.”(안산 어린이집 園長)

여섯살 조나단-열여섯 아딜벡
韓國이 自身의 집이라는 조나단
어린이집 찾아 水原서 安山으로 移住
淸州로 移徙갔던 아딜벡, 다시 유턴

○ 言語를 잃다
경기 안산의 원룸에서만 생활하는 조나단은 유일한 친구인 엄마에게 인도네시아어로 쉴 틈 없이 말을 건다.
京畿 安山의 원룸에서만 生活하는 조나단은 唯一한 親舊인 엄마에게 인도네시아語로 쉴 틈 없이 말을 건다.
조나단은 水原에 이어 安山의 원룸에 다시 孤立됐다. 成人 네 名이 앉으면 꽉 차는 空間. 조나단은 먹고 자는 건 勿論이고 工夫와 놀이까지 이곳에서 다 解決해야 한다. 親舊는 結局 엄마뿐이다.

와티 氏는 조나단이 水原에서보다 더 걱정됐다. 韓國語 實力이 제자리걸음度 아닌, 뒷걸음질이기 때문이다. 元來 조나단은 인도네시아語로는 말이 많은 아이다. 周邊 이웃들이 ‘짹짹이’란 別名을 붙여줄 程度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韓國人 親舊들을 만나면 섣불리 다가가질 못한다.

조나단 家族을 돕고 있는 水原 敎會의 인도네시아人 牧師 아구스(假名) 氏도 이 點을 深刻하게 여긴다. 韓國語는 韓國에서 살기 위한 基本 中 基本이기 때문이다.

“조나단이 여섯 살인데 韓國語 水準은 두 살 程度로 보여요. 單語들만 말해요.”

엄마마저 韓國語를 거의 못해 惡循環이다. 조나단은 엄마의 서툰 韓國語를 듣고 자랄 수밖에 없다.

갈 곳이 없다 보니 社會性도 떨어진다. 조나단은 때때로 火를 못 참고 모든 걸 自己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애들은 火가 나면 울거나 떼를 쓰기 마련이지만 조나단은 어른들의 화난 表情을 따라 한다.

조나단이 韓國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가면 모든 게 解決될까. 조나단은 單 한 番도 인도네시아를 가본 적이 없다.

“조나단, 보고 싶어. 인도네시아로 와.”(조나단 할아버지)

“제 집은 韓國이에요. 인도네시아 안 가요.”(조나단)

조나단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映像으로만 만나봤다. 많게는 이틀에 한 番 인도네시아語로 通話한다. 익숙해질 法도 하지만 조나단은 分明히 線을 긋는다. “韓國에서 살고 싶다”고.

와티 氏는 굴레를 언제 벗어날지 알 수 없다. 防疫 與件을 생각하면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말을 배우고 親舊를 사귈 時間을 놓쳐버린다. 未登錄 兒童을 救濟할 方法은 없는 것일까.

法務部는 지난해 4月 “國內에서 태어나 15年 以上 居住하고 國內 中·高校를 다닌 兒童에게 滯留를 許可한다”고 發表했다. 하지만 이 制度는 2025年 2月까지만 施行된다. 조나단은 여섯 살. 9年을 채우고 나면 2031年이 된다. 制度가 終了된 지 한참 뒤일 것이다.

조나단은 지난해 11月 末 艱辛히 어린이집에 가기 始作했다. 父母가 코로나19 백신 接種 證明書를 提出해 登院 許可를 받았다. 暫時 救濟는 받았지만 如前히 不安하다. 臨時로 許可를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未登錄 移住兒童의 保育을 保障하는 制度는 如前히 없다.
○ 安山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안산 선일중 3학년 누르가셰프아딜벡은 청주로 이사 갔다 지난해 안산으로 돌아왔다.
安山 先日中 3學年 누르가셰프아딜벡은 淸州로 移徙 갔다 지난해 安山으로 돌아왔다.
鞍山으로 모여드는 移住民은 조나단 같은 嬰幼兒만이 아니다.

올해 高等學校에 入學하는 누르街셰프 아딜벡(16)은 카자흐스탄에서 왔다. 아홉 살 때인 2015年, 高麗人 3歲인 어머니를 따라 安山에 왔다. 카자흐스탄 經濟가 惡化돼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딜벡 家族은 4年 만에 아버지 職場을 따라 안산시에서 忠北 淸州市로 移徙했다. 아딜벡은 安山에 남으려면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移住民이 많은 安山을 떠나 韓國人이 많은 곳에서 自身의 實力을 確認해보고 싶었다.

아딜벡이 다니던 安山 先日中은 移住背景 學生이 全體의 50%를 넘는다. 하지만 淸州의 學校에선 한 學年에 서너 名 程度뿐이다.

“처음에 애들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거예요. 카자흐스탄에선 絶對 男子들끼리 密接 接觸을 안 하거든요. 安山에선 韓國 애들도 그런 장난 안 쳐요. 우리가 싫어하는 걸 아니까요.”

아딜벡은 文化的 差異에 唐慌했다. 成績도 갑자기 떨어졌다. 淸州 學校에서 본 첫 中間考査 點數는 平均 60點臺였다. ‘元來 班에서 3等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는데….’

아딜벡은 精神이 번쩍 들어 工夫에 매달렸다. 多幸히 이듬해에는 平均 80點臺 後半까지 點數를 끌어올렸다. 이番엔 高等學校 進學이 問題였다.

아딜벡은 카자흐스탄에서 證券社 애널리스트였던 아버지처럼 金融界 進出을 꿈꾸고 있다. 中學校 1學年 때부터 株式 工夫를 始作할 程度로 金融에 關心이 많다. 經營과 金融에 特化된 特性化高 進學이 目標다. 하지만 淸州에선 이런 特性化高를 찾을 수 없었다.

進路나 비자 問題를 相談할 곳이 없는 點도 難關이었다. 安山의 선일中엔 多文化部가 따로 있었다. 러시아語에 能通한 先生님이 비자 問題를 詳細히 案內해줬다. 다른 先生님들도 移住背景 學生들 處地를 워낙 잘 理解해 ‘맞춤型 進路 相談’을 해주곤 했다. 洞네엔 高校 進學을 助言해줄 高校生 移住背景 先輩들도 많았다. 하지만 淸州에선 이 모든 걸 아딜벡이 알아서 해야 했다.

‘安山밖에 答이 없다.’ 아딜벡 家族은 結局 1年도 채 되지 않아 安山으로 돌아왔다.

如前한 冷待에 挫折하는 ‘그들’
安山, 移住民 家族의 保育 環境 越等
京畿道 次元 支援 늘리려하자 거센 反撥
日-獨은 國籍 相關없이 兒童 福祉 惠澤

○ 섬을 징검다리로
2019년 ‘경기돋 이주아동 조례’가 경기도의회에 발의되자 외국인 반대 단체 회원들은 안산시 중앙역 인근에서 집회를 벌였다. 난민대책국민행동 제공
2019年 ‘京畿돋 移住兒童 條例’가 京畿道議會에 發議되자 外國人 反對 團體 會員들은 안산시 중앙역 隣近에서 集會를 벌였다. 難民對策國民行動 提供
安山의 移住民들이 다른 地域으로 수월하게 건너가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試圖도 있었다. 2019年 京畿道議會에서는 ‘京畿道 移住兒童 條例案’李 發議됐다. 條例案은 移住兒童을 ‘大韓民國의 國籍을 가지지 아니한 18歲 未滿의 사람’으로 規定해 惠澤을 保障했다. 條例案이 通過됐다면 조나단度 水原 어린이집에 갈 可能性이 높았다.

하지만 이 事實이 알려지자 條例案을 主導한 김현삼 議員은 勿論이고 100名이 넘는 京畿道議員들에게 ‘文字 爆彈’이 쏟아졌다. 外國人 反對 團體들이었다. 安山에서는 10次例가 넘는 反對集會가 열렸다. 金 議員 집 앞에서도 示威가 벌어졌다.

“反對 團體분들은 移住民들이 아이를 앞세워 韓國에 들어오고, 韓國人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더라고요.”

金 議員은 ‘失敗한 條例案’을 씁쓸하게 回想했다. 1980, 90年代 半月工團에서 일했던 그는 工團 狀況을 누구보다 잘 안다. “移住勞動者가 不足해 注文量을 生産해 내질 못한다고 社長님들이 하소연합니다. 內國人은 採用하고 싶어도 오질 않고요. 그런데도 移住民에 對한 認識은 바뀌지 않아요.”

特히 嬰幼兒 保育은 移住民 支援의 死角地帶다. 初等學校 때부터는 유엔 兒童權利協約에 따라 外國人이든 內國人이든 公敎育을 받을 수 있다. 保育은 다르다. 稅金을 꼬박꼬박 내도 外國人에겐 保育費 支援 惠澤이 없다.

지난해 京畿道議會는 登錄 外國人住民 子女에게 保育費를 直接 支援하도록 明示하는 條例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京畿道 內에서 移住兒童에게 保育費를 別途로 支援하는 地自體는 鞍山, 富川, 始興, 군포시 等에 그친다. 그마저도 詩 自體 豫算으로 解決한다.

京畿道는 條例 通過 뒤에도 支援 豫算을 編成하지 않았다. 京畿道 側은 “外國人 保育費 支援은 豫算이 많이 들고, 中央政府가 해야 할 일”이라고 說明했다.

다른 國家들은 어떨까. 日本은 2019年부터 國籍을 묻지 않고 滿 3∼5歲 어린이에게 無償保育과 父母 對象 育兒敎育을 始作했다. 獨逸은 自國에서 태어난 모든 兒童에게 出生證明書를 發給한다. 出生登錄이 되면 保育 支援이나 豫防接種 等 福祉 惠澤을 받기 수월해진다.

조나단처럼 ‘保育 差別’을 받는 아이들이 많다. 조나단의 水原 親舊인 미카엘(假名·3)과 안나(假名·2)도 未登錄 移住兒童이다. 韓國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린이집에 갈 수가 없다. 아이 父母는 조나단처럼 어린이집을 찾아 水原에서 安山으로 移徙할지 苦悶 中이다.

國家人權委員會에 따르면 國內 未登錄 移住兒童은 約 2萬 名 規模로 推算된다. 人權團體는 規模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豫想한다. 外國 國籍 兒童은 出生 登錄을 하지 않아 統計에 잡히지 않은 兒童들이 있을 수 있다.

와티 氏는 아이들이 父母 탓에 不幸으로 삶을 始作하질 않길 懇切히 바란다.

“아이는 神이 주신 祝福이잖아요. 아이의 未來에 父母가 걸림돌이 되는 안타까움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요.”

히어로콘텐츠팀

▽팀長:
이새샘 記者 iamsam@donga.com
▽記事 取材: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記者
▽寫眞·動映像 取材: 양회성 송은석 남건우 記者
▽그래픽: 김충민 記者
▽編輯: 한우신 記者
▽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
▽사이트 開發: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動映像 編輯 : 남건우 記者 박세진 PD 안채원 CD


QR코드를 스캔하면 ‘共存’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具現한 사이트( original.donga.com/2022/together2 )로 連結됩니다.

히어로콘텐츠팀
신희철 記者 hcshin@donga.com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남건우 記者 woo@donga.com
#共存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移住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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