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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서 눈뜬 유준이… 生後 11日, 세 番의 理事[히어로콘텐츠/미아①]|東亞日報

베이비박스서 눈뜬 유준이… 生後 11日, 세 番의 理事[히어로콘텐츠/미아①]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12月 17日 17時 00分


코멘트

“왜 날 떠났나요”…품을 잃은 아이들

유준(가명)이가 올해 9월 12일 서울 노원구 성모자애드림힐에서 보육사가 온수를 받는 동안 욕실 앞에 누워 있다. 9월 2일 유준이를 낳은 엄마는 이틀 후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유준이를 두고 떠났고, 유준이는 관악구청 공무원과 서울시아동복지센터 관계자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뒤 아동양육시설인 이곳에 도착했다. 10일 성모자애드림힐에서 100일을 맞은 유준이는 자신을 입양할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幽峻(假名)이가 올해 9月 12日 서울 蘆原區 聖母子애드림힐에서 保育師가 溫水를 받는 동안 浴室 앞에 누워 있다. 9月 2日 유준이를 낳은 엄마는 이틀 後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유준이를 두고 떠났고, 유준이는 관악區廳 公務員과 서울市兒童福祉센터 關係者 等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뒤 兒童養育施設人 이곳에 到着했다. 10日 聖母子애드림힐에서 100日을 맞은 유준이는 自身을 入養할 父母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보배인 低出産 時代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親父母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遺棄된 아이들. 그리고 父母가 放任한 아이들까지.

올해 出生申告를 義務化하되 ‘匿名 出産’을 許容하는 두 法이 國會를 通過했지만 우리 周圍엔 如前히 迷兒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堪耐하며 살아왔을까. 東亞日報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父母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箱子)를 500時間 동안 觀察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歲 兒童·靑年 47名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未安해 아가야.”


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

[1] 베이비박스에 놓인 유준이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 벽에는 건물 안팎에서 문을 열 수 있는 상자가 설치돼 있다. 출산을 했지만 어디에도 알릴 수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게 한 ‘베이비박스’다. 감시카메라와 조명, 온도유지장치가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바깥쪽 문에는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 예방접종 기록을 남겨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이비박스를 열고 살펴보는 황민숙 센터장을 박스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
財團法人 주사랑共同體가 運營하는 ‘危機嬰兒緊急保護센터’ 壁에는 建物 안팎에서 門을 열 수 있는 箱子가 設置돼 있다. 出産을 했지만 어디에도 알릴 수 없는 父母들이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게 한 ‘베이비박스’다. 監視카메라와 照明, 溫度維持裝置가 設置된 베이비박스의 바깥쪽 門에는 아이의 이름, 生年月日, 豫防接種 記錄을 남겨달라는 案內文이 붙어 있다. 베이비박스를 열고 살펴보는 황민숙 센터長을 박스 內部에서 바라본 모습.
눈을 뜬 지 사흘. 이유준(假名)은 세 番째 寢臺에 누워 잠이 들었다.

産婦人科 分娩室의 바퀴 달린 移動式 寢臺, 山洞네 언덕배기 ‘베이비박스’의 나무 寢臺를 거쳐 兒童一時保護소의 寢臺에 只今 막 到着했다. 中間에 暫時 들렀던 病院 檢診室과 授乳室, 相談室의 寢臺까지 包含하면 사흘間 옮겨 다닌 寢臺는 6個나 된다.

유준이가 거쳐 간 품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유준이를 가장 먼저 품었다가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엄마다. 9月 2日 午前 11時 22分 엄마 배 속을 나온 유준이는 病院에서 두 밤을 보냈다. 소나기가 남긴 축축한 濕氣를 맡으며 退院한 아이가 向한 곳은 엄마의 집이 아니었다.

車로 40分을 달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베이비박스에 到着했다. 작은 十字架가 솟은 붉은 建物 外壁에 ‘財團法人 駐사랑共同體 危機嬰兒緊急保護센터’라고 적힌 看板이 보였다. 아이를 안은 엄마가 反層 階段을 올라 玄關에 들어서자 플라스틱 遮陽 밑으로 푸른빛이 비쳤다. 하늘色 앞치마를 입은 保育師가 나왔다.

주사랑공동체 보육사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입소한 아기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있다.
駐사랑共同體 保育師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入所한 아기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있다.
保育師는 유준이를 건네받아 ‘베이비룸’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玄關 아래 ‘相談室’로 向했다. 이 瞬間부터 아이와 엄마는 아무 關係가 없는 남남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嵐氣는 便紙 맨 윗줄에 ‘이유준. 2023年 9月 2日’이라고 적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 울었다. 목이 터져라 울음을 吐해내는 3.5㎏ 아이를 夜間 保育師와 自願奉仕者들이 번갈아 달랬다. 恐喝젖꼭지를 물려도 아이는 繼續 뱉어냈다.

“그래도 좀 있으면, 來日 아침이면 나가니까….”

保育師는 아이에게 恐喝젖꼭지를 다시 물렸다. 父母가 있지만 없는, 出生申告도 하지 못한 遺棄兒童 유준이 人生의 旅程은 이렇게 出發했다.

유준이가 겪은, ‘引受引繼’
올 9월 27일 촬영한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의 베이비룸 내부. 최근 센터에는 유기 아동 외에도 친부모들이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키워달라며 맡기고 간 아이들이 더 많다. 화이트보드가 아이들의 목록과 ‘위탁, ’입양‘으로 빼곡하다.
올 9月 27日 撮影한 危機嬰兒緊急保護센터의 베이비룸 內部. 最近 센터에는 有機 兒童 外에도 親父母들이 形便이 나아질 때까지 키워달라며 맡기고 간 아이들이 더 많다. 화이트보드가 아이들의 目錄과 ‘委託, ’入養‘으로 빼곡하다.
“주사랑共同體예요. 아이가 한 名 들어왔어요.”

날이 밝았다. 電話를 받은 관악警察署 난우派出所 警察官이 베이비박스를 訪問했다. 2009年 末 만들어진 베이비박스는 法的 根據가 있는 兒童保護施設이 아니라 非認可 施設이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간 ‘嬰兒 遺棄’ 犯罪가 벌어졌다는 ‘申告 電話’는 그렇게 차분했다.

閉鎖回路(CC)TV 8臺로 둘러싸인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무턱대고 버리는 父母는 이제 거의 없다. 24時間 常住하는 職員과 相談한 뒤 아이를 두고 떠나는 父母들이 嬰兒 遺棄 犯罪者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狀況에서 比較的 安全한 곳에 아이를 맡긴 것인지를 놓고 只今까지 論爭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警察과 서울市, 政府 等 關係機關은 아이를 버린 엄마와 아이를 거둔 週 사랑共同體를 默認했고, 2000名이 넘는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유준이를 만나러 出動한 警察官 亦是 차분했다. 그는 “아이를 버린 엄마가 누구냐”고 캐묻지도, CCTV를 보여달라고 要求하지도 않았다. 익숙한 일인 듯 아이의 이름, 生年月日, 豫防接種 與否만 물으며 몇 줄의 陳述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아이 寫眞을 찍고, 아이 입에 綿棒을 넣어 DNA(遺傳子)를 採取하고는 派出所로 復歸해 嬰兒遺棄發見通報書를 作成했다.

베이비박스 보육사가 아이들마다 수유량을 적어둔 시간표에 수유를 마친 시각을 적고 있다.
베이비박스 保育師가 아이들마다 授乳量을 적어둔 時間表에 授乳를 마친 時刻을 적고 있다.
2時間 後. 베이비박스 建物을 撮影하는 CCTV 畵面에 乘合車가 나타났다. 관악구청에서 아이를 데리러 나온 兒童保護專擔要員들이었다.

“粉乳는 9時에 35밀리리터 程度 먹었어요. 애가 혀가 조금 말려서 粉乳를 잘 못 빨아요.”

유준이를 겉싸개로 감싸 품에 안은 保育師가 밤새 把握한 注意事項을 傳達했다. 아이의 移徙짐은 엄마가 입혔던 옷과 粉乳가 담긴 종이가방, 아직 包裝을 뜯지 않은 授乳패드가 全部였다. 乘合車에 移徙짐을 옮기는데 5分이면 充分했다. 듬직한 體格의 兒童保護專擔要員 박경태 氏가 아이를 넘겨 들곤 익숙하게 받쳐 안았다.

이들은 瑞草區 市立어린이病院을 먼저 들렀다. 朴 氏가 이 일을 始作한 지 3年이 넘었는데도 健康檢診을 받으러 올 땐 마음이 늘 不便하다. 普通의 아이들은 初等學校에 들어가기 前까진 血液檢査라는 걸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親父母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는 新生兒라도 血液檢査를 받아야 했다.

生後 사흘 된 유준이는 血管이 잘 잡히지 않았다. 醫療陣은 成人 손가락만 한 팔뚝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結局 머리에서 피를 뽑기로 했다. 아이는 粉乳를 게워가며 울고 또 울었다. 採血은 30分이나 걸렸다.

올 9월 5일 베이비박스를 나온 유기아동 이유준(가명)이 서울 서초구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에서 채혈을 받고 있다.
올 9月 5日 베이비박스를 나온 遺棄兒童 이유준(假名)이 서울 서초구 서울特別市 어린이病院에서 採血을 받고 있다.
艱辛히 檢診을 마친 뒤 閑寂한 길을 20分 달려 江南區 수서동의 한 甓돌 建物에 到着했다. 1998年 세워진 이곳은 서울에 遺棄된 兒童들이 모두 거치는 一時保護施設, ‘서울特別市 兒童福祉센터(센터)’였다.

1層 相談室에 到着한 朴 氏는 各種 書類와 物品을 넘기고, 兒童身柄引受引繼書에 署名한 뒤 텅 빈 乳兒車를 乘合車에 싣고 떠났다. 센터 職員들은 유준이를 2層 新生兒房 寢臺로 옮겼다. 保育師가 기저귀를 열어보는 동안 유준이가 모빌 아래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便하게 해줄게요. 다 됐어요~”

새 배냇저고리와 속싸개가 몸을 덮자 비로소 安靜을 되찾은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유준이는 몰랐다. 한 週 後 移徙를 또 해야 한다는 것을.

건강검진을 마친 아이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센터의 2층 신생아방으로 옮겨졌다. 보육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속싸개로 아이를 감싸고 있다.
健康檢診을 마친 아이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울特別市 兒童福祉센터의 2層 新生兒房으로 옮겨졌다. 保育師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속싸개로 아이를 감싸고 있다.
生後 열하루째 되던 날. 센터 앞에 베이지色 車輛이 멈춰 섰다. 빨간 셔츠의 女性이 運轉席에서 내려 센터 出入門을 열었다. 노원구의 兒童養育施設‘聖母子애드림힐’(聖母子애)의 김윤현 養育팀長이었다. 때맞춰 센터 職員도 유준이를 안고 相談室에 登場했다.

“오구 오구 이뻐라. 세상에, 世上에나.”

5名이 同時에 歎聲을 터뜨렸다. 놀란 유준이가 울기 始作했다. 아이들을 돌본지 20年 次인‘베테랑’ 金 팀長은 스마트폰을 유준이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 寫眞을 찍었다.

“목소리가 크십니다? 存在感이 있는데?”

“애가 表現이 確實하더라고요.”

일주일 뒤인  9월12일 유준이는 다시 서울 아동복지센터에서 서울 노원구 성모자애드림힐로 옮겨졌다. 붉은 옷을 입은 성모자애 직원들이 센터의 담당자들과 인수인계 서류를 살펴보는 가운데, 유준이는 간호사의 품에 안겨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분유를 먹었다.
一週日 뒤인 9月12日 유준이는 다시 서울 兒童福祉센터에서 서울 蘆原區 聖母子애드림힐로 옮겨졌다. 붉은 옷을 입은 聖母自愛 職員들이 센터의 擔當者들과 引受引繼 書類를 살펴보는 가운데, 유준이는 看護師의 품에 안겨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粉乳를 먹었다.
引受引繼가 다시 始作됐다. 小兒靑少年科 檢診 結果와 健康 狀態 說明이 끝난 後 유준이는 看護師 품에 안겨 뒷座席에 올랐다. 서울 東部幹線道路를 40分間 달리는 동안 한 番 울지도 않았다. 구름 模樣 看板을 단 聖母子애 建物에 두 사람이 아이를 안고 들어섰다.

“어머나 예뻐라!” 여기서도 똑같은 歎聲과 節次가 이어졌다.

“이 아이는 黃疸이 있어요?”

灰色 修女服을 입은 노은희 院長이 유준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一週日 새 조금 빠지긴 했지만, 아이 얼굴은 如前히 노란빛을 띠었다. 新生兒들이 머무는 4層 房으로 옮겨진 유준이를 먼저 와있던 兄들 옆에 保育師가 눕혔다. 看護師는 센터에서 들려준 注意事項을 傳하며 세 番째 引受引繼를 마무리했다. 保育師는 아이의 귀에 體溫을 재고, 한 番 더 寫眞을 찍고, 溫水에 씻기고, 배냇저고리를 갈아입혔다. 벌써 유준이가 누운 네 番째 잠자리다. 또다시 낯선 곳에서 칭얼거리던 아이는 젖甁을 물리자 이내 潛潛해졌다.

“빠는 힘은 좋네.”

保育師는 혼잣말을 했다.

성모자애 4층 신생아방 보육사가 아이를 씻기기 전에 몸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앞모습과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버둥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보육사는 연신 “아유 미안해, 미안해”라며 달랬다.
聖母子애 4層 新生兒房 保育師가 아이를 씻기기 前에 몸 狀態를 記錄하기 위해 앞모습과 뒷모습을 寫眞으로 찍었다. 버둥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保育師는 연신 “아유 未安해, 未安해”라며 달랬다.


아이 앞에 펼쳐진 두 갈래 人生
新生兒房엔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保育師 한 名이 돌볼 수 있는 新生兒는 最大 두 名이다. 유준이가 오면서 定員을 超過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받아야 했다. 서울에서 베이비박스 男子아이를 優先的으로 받는 養育施設은 聖母子애를 包含해 3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 앞으로 많은 書類가 만들어졌다. ‘未詳’으로 記載됐던 본적은 姓本創設이 마무리되면서 ‘漢陽 李 氏’로 定해졌다. 出生申告는 노원구청에서 生後 44日에야 이뤄졌다.

가장 어려운 段階는 只今부터다. 지난해 兒童保護政策이 改編되면서 ‘家庭型 保護 優先’ 原則이 導入됐다. 最優先은 元來의 父母 家庭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一般的인 家族에 가장 가까운 ‘入養’, 다음으로 一時的으로 兒童을 맡아 기르는 ‘家庭委託’, 그리고 小規模의 共同生活家庭(그룹홈)을 次例대로 考慮해야 한다. 흔히 保育院이라 부르는 兒童養育施設은 이 모든 게 不可能할 境遇 選擇하는 마지막 ‘집’이다.

유준이가 온 聖母子애는 마지막 順位인 保育院이다. 아직 終着地는 아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入養이 되길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이날부터 여기에서 살며 입양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이날부터 여기에서 살며 入養 節次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市 兒童福祉센터는 올해 5月 入養에 積極的인 保育院 네 곳에 베이비박스 兒童을 集中的으로 보내기 始作했다. 길고 複雜한 入養 節次를 短縮하기 위해서다. 김민주 센터 所長은 “아이가 어릴수록 入養家庭에 가서도 쉽게 適應하니까 期間을 줄이는 게 좋다”며 “근데 入養이란 게 施設長의 經驗과 意志가 무척 重要한 일이라 遺棄兒童 專擔保護施設을 選定했다”고 말했다.

그 네 곳 中 하나가 聖母子애다. 지난달 21日 유준이는 ‘入隊確認서(입양대상아동확인서)’를 받았다. 그새 黃疸氣가 完全히 빠지고 토실토실하게 살도 올랐다. “生後 80日 만에 나온 거니까 예전보단 훨씬 빨라진 便이에요” 김윤현 팀長이 말했다. 유준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옆자리에 있었던 兄은 벌써 豫備 養父母를 만났다.

하지만 유준이가 언제 어떻게 어떤 養父母와 맺어질지까지는 아무도 確信할 수 없다. 이제부턴 時間 싸움이다. 國內 入養에선 已往이면 어린아이, 旣往이면 아들보다 딸을 願하는 父母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돌이 지나고 나이가 漸漸 들면, 아이는 어느 瞬間부터 이곳을 ‘우리집’으로, 여기의 職員들을 ‘姨母’나 ‘三寸’으로 부르며 成人으로 자랄 것이다.

유준이의 ‘先輩’ 아이들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 건물 밖에서 베이비박스를 열어본 모습. 창틀 위에는 아이의 출생일과 이름, 예방접종 기록을 적어달라는 메모지가 놓여 있다.
危機嬰兒緊急保護센터 建物 밖에서 베이비박스를 열어본 모습. 窓틀 위에는 아이의 出生日과 이름, 豫防接種 記錄을 적어달라는 메모紙가 놓여 있다.
71名의 아이가 사는 聖母子애엔 유준이의 ‘先輩’가 많았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온 아이만 65名에 이른다.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건 2009年 12月이지만, 아이들이 急增한 건 2012年 末부터다. 入養特例法 改正으로 ‘出生申告가 이뤄진 아이’만 國內 入養이 可能해지면서 여러 事情으로 出生申告를 할 수 없는 父母들이 몰려온 것이다.

父母가 “當場 키울 수 없으니 暫時 맡아달라”며 맡긴 아이까지 包含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2012年 79名에서 이듬해 252名으로 치솟았다. 出生兒 10萬名當 아이 數로 따지면 58名에 이른다. 이 數値는 2018年 66名까지 올랐다가 多少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如前히 42名이었다.

그렇게 聖母子애로 넘어온 아이들의 눈엔 不安感이 자주 비쳤다. 때때로 躁症(躁症)이 온 것처럼 躁急하고 銳敏해졌다. 明朗한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깔깔댔고, 火가 많은 아이는 手榴彈처럼 危險해졌다. 아이들은 日常에서 늘 사랑과 關心을 渴求했다. 하지만 너무나 거칠게 渴求한다는 게 問題였다. 날이 우중충하거나 비가 오면 아이들의 銳敏함은 더 極에 達했다.

“다녀왔습니다!”

下校한 初等學校 1學年 男子아이가 신발주머니로 風車를 돌리며 악을 썼다. 유준이처럼 베이비박스에서 이곳으로 온 아이다. 웃옷은 바지에서 삐져나왔고 가방도 折半쯤 열렸다. 저 狀態로 房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며 싸울 것이 분명했다. 盧 院長이 아이를 붙잡고 찬물과 菓子를 주며 진정시켰다.

“자자, 신난 건 알겠어. 그러다 울지도 몰라. 一旦 물 좀 마셔라.”

조금 뒤 발을 구르며 들어온 2學年 男子아이는 눈썹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얼굴로 혼자 씩씩댔다. 生活館은 4層이었지만 憤氣撐天하는 火를 이길 수 없었는지 엘리베이터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꽝꽝’하고 부서져라 階段을 밟는 소리가 回廊에 울렸다. 金 팀長은 携帶電話 通話 버튼을 눌렀다.

“네, 先生님. 方今 올라간 아이 좀 얼굴이 안 좋아요. 잘 보셔야겠어요.”

學校에서도 아이들은 感情調節에 애를 먹었다. 先生님들도 種種 聖母自愛에 ‘SOS 電話’를 걸었다. 한 아이가 授業 時間에 가벼운 指摘을 받자 冊床을 밀치고 油印物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날이었다. 擔任 敎師는 通話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집(保育院)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솔루션 같은 게 있으면 페이퍼(文書)로 좀 付託드려도 될까요….” 하루하루가 살얼음板이었다.

每日 바뀌는 엄마, 자꾸 떠나는 李某
‘아이들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

총신대 社會福祉學科 오혜정 敎授는 올해 初 聖母子애 等 서울 市內 養育施設 34곳에 사는 베이비박스 兒童에 關해 硏究에 着手했다. 지난해 保健福祉部 兒童養育施設 評價委員으로 現場 調査를 다니면서 同僚에게 들었던 말이 腦裏에서 사라지지 않아서다.

“個人的인 느낌이긴 하지만,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좀 어려움이 많은 便인 것 같아요.”

吳 敎授는 베이비박스 出身 初等學生(3~6學年) 241名을 設問 調査해봤다. 調査 對象의 折半이 넘는 아이들은 “現在 相談 治療를 받고 있다”라고 答했다. 2016年 京畿道가 養育施設 兒童을 對象으로 같은 質問을 던졌을 때 나온 數値(25%)의 두 倍를 넘었다. 생각보다 높은 數値였지만, 保育院에서 아이들을 積極的으로 相談한 結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注目해야 할 結果가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인 ‘生活指導원’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에 對한 調査였다. ‘가장 짧게 生活한 사람과 보낸 時間’을 묻자 “1年이 되지 않는다”라는 아이가 73%나 됐다. 第一 길었던 사람과 보낸 時間은 ‘3年 未滿’李 折半이었다. 吳 敎授는 “이렇게 자주 바뀔 줄은 몰랐는데, 數字를 보고 正말 衝擊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은 大部分 ‘願치 않은 妊娠’으로 태어났다. 父母들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오면서 남긴 쪽紙엔 그때의 感情이 穩全히 담겨있다.

“너의 存在를 알았을 때 正말 죽을 것 같았어.”

“10個月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텐데 未安해.”

“좋은 것만 먹고 幸福한 생각만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달랐으니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들이 남긴 편지엔  임신 중의 불안감과 출산 직후의 혼란이 그대로 묻어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父母들이 남긴 便紙엔 妊娠 中의 不安感과 出産 直後의 混亂이 그대로 묻어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不安은 成長 過程에서도 日常이었다. 保育院에선 3交代로 勤務하는 生活指導원의 손에 자랐다. 아이들이 姨母와 三寸으로 부르는 그들은 밤낮으로 맞交代하는 것은 勿論, 入社와 退社도 反復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離別에 익숙해졌다. 吳 敎授가 만난 한 生活指導院은 다리를 다쳐 入院한 일을 털어놓았다. 며칠 만에 退院한 그가 保育院으로 돌아오자 한 아이가 달려와 안기며 “엄마가 그만둔 줄 알았어요. 가버린 줄 알았어요”라고 엉엉 울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吳 敎授의 마음은 複雜했다. 그에게도 아들이 있다. 엄마가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暫時 먼 곳에 다녀온다고 해도 아들은 “엄마가 날 버린 걸까”라는 疑心을 떠올릴 理가 없었다. 그런데 吳 敎授가 調査한 아이들은 달랐다. 家族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않는 存在여야 하는데, 아이들에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한 番 엄마는 永遠한 엄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
聖母子애 職員들은 첫 베이비박스 兒童인 준서(假名)와 民庶(假名)가 들어왔던 2013年을 생생하게 記憶한다. 新生兒를 볼 일은 드물었는데, 入養特例法 改正으로 갓난아기가 6名이나 들어온 것이다.

“첫해 아이들은 情緖的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사랑을 眞짜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아이들은 다달이 次例대로 들어왔고, 保育師들도 비록 交代로 勤務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사랑을 쏟아줄 餘力이 充分했다. 김윤현 팀長도 事務室 職員들과 쉬는 時間마다 “막둥이 보러 가자”라며 우르르 올라가 앞다퉈 안아주고 얼러줬다. 生涯 첫 100日 동안 온 食口들의 關心을 담뿍 받은 아이들은 당차고 好奇心이 넘쳤다.

준서에게 “나중에 커서 결혼한다면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라고 묻자  이런 그림을 그리며 답했다. “결혼할지 말지는 반반인데, 하면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고 싶죠. 같이 요리도 하면서요.”
준서에게 “나중에 커서 結婚한다면 어떤 家族을 꾸리고 싶어요?”라고 묻자 이런 그림을 그리며 答했다. “結婚할지 말지는 半半인데, 하면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고 싶죠. 같이 料理도 하면서요.”
“제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요, 얼굴이 잘생긴 건 相關은 없어요. 良心이 있고, 그다음에 配慮心 많은 사람! 잘생긴 건 그다음이에요…. 근데 先生님(記者)은 몇 살이에요?”(준서)

민서가 “가족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해볼게요. (성모자애에 있는) 우리 가족 모두한테” 라며 이렇게 썼다.
民庶가 “家族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는 要請을 받자 “해볼게요. (聖母子애에 있는) 우리 家族 모두한테” 라며 이렇게 썼다.
“10年 뒤에는 小說家나 漫畫家가 되고 싶어요. 日本에서 漫畫家로 데뷔한 다음에 韓國으로 돌아와서 親舊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只今 日本語 工夫도 하고 있어요.”(민서)

2014年부터 狀況이 달라졌다. 每年 두 자릿數씩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生活指導원 혼자서 젖먹이 7名을 돌봐야 했고, 준서·民庶와 같은 紐帶關係를 形成하긴 어려웠다. 粉乳를 먹이고 잠을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남긴 편지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父母들이 아이와 함께 남긴 便紙들.
幼兒 時節 아이와 養育者 간 形成되는 愛着은 아이의 成長에 決定的인 影響을 미친다. 그 愛着 形成의 ‘골든타임’을 놓친 ‘1世代 베이비박스 兒童’들은 이제 思春期의 길목에 서 있다. 自身도 어쩔 줄 모르는 感情 起伏과 不安 속에서 父母가 自身을 떠났다는 事實을 正面으로 마주하기 始作한 것이다.

“저는 엄마 아빠가 없는 줄 알고 先生님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엄마 아빠가 바빠가지고, 그래서 저를 여기에 暫時 내버려 둔 거라고 했어요.”(건우·9·가명)

‘姨母’들은 아이들이 ‘낳아준 엄마와 아빠’에 關해 물어올 때마다 對答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베이비박스’라는 單語를 먼저 言及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4學年生 女子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金 팀長은 檢索記錄에 ‘베이비박스’, ‘未婚母’ 같은 單語들이 있는 것을 發見하고 때가 왔음을 直感했다. 어른들이 答해줘야 할 아이들의 質問은 結局 한 곳으로 歸結됐다.

“엄마. 아빠. 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민서)

올해 6~7월 정부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신생아들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이들은 여름 동안 잠시 끊겼지만 9월 유준이를 시작으로 다시  늘기 시작했다.
올해 6~7月 政府가 出生申告가 되지 않은 新生兒들에 對해 全數調査에 나서면서 베이비박스에 遺棄되는 아이들은 여름 동안 暫時 끊겼지만 9月 유준이를 始作으로 다시 늘기 始作했다.


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은 2020年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番 히어로콘텐츠팀의 ‘迷兒: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價値와 디지털 技術을 融合해 差別化한 報道를 志向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特化한 인터랙티브 記事를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長: 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取材: 詔諭라 李承雨 조민기 記者
▽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 ▽寫眞: 홍진환 記者
▽編輯: 하승희, 양충현 記者 ▽그래픽: 김수진 記者
▽인터랙티브 開發: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如何은 且說 인턴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搖籃 代身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記事로 具現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 original.donga.com/2023/poom1 )으로 連結됩니다.

홍정수 記者 hong@donga.com
詔諭라 記者 jyr0101@donga.com
李承雨 記者 suwoong2@donga.com
조민기 記者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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