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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花]④‘魔돌캠’, 殉職 消防官 遺族들의 버팀木이 되다[히어로콘텐츠/산화]|동아일보

[散花]④‘魔돌캠’, 殉職 消防官 遺族들의 버팀木이 되다[히어로콘텐츠/산화]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8月 1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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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花]④‘
“홀로 슬퍼 말아요” 서로를 꼭 안았다
〈4〉살아간다, 完成된 퍼즐 조각

지난달 3일 서울역. 순직 소방관 아내 박현숙(오른쪽)이 다른 유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헤어지기 싫은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히어로콘텐츠팀
지난달 3日 서울驛. 殉職 消防官 아내 박현숙(오른쪽)이 다른 遺家族과 作別 人事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헤어지기 싫은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히어로콘텐츠팀

지난 이야기
2017年 9月 江原 江陵의 木造 建物 石蘭亭에서 불이 났다. 火災를 鎭壓하기 위해 內部로 들어갔던 이영욱 消防警과 이호현 消防校가 建物이 무너지면서 死亡했다. 蘡薁의 아내 이연숙과 호현의 아버지 李光洙는 周邊 사람들이 無心코 던진 말에 지울 수 없는 傷處를 받았고, 홀로 아픔을 삼킨 채 살아갔다. 그리고 消防廳 조인담 主任의 說得으로 딸 少尹과 함께 消防官 遺家族 모임에 參席한 박현숙. 靈魂 없이 앉아 있던 賢淑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얘네度 消防官 아빠 없어요?”
서울에서 이틀間 열린 消防官 遺家族 모임. ‘消防 家族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太白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小尹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消化하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記憶 外엔 머릿속에 남은 게 別로 없었다.

少尹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家族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機會도 없었다.

賢淑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携帶電話를 집어 들었다. 消防廳 조인담 主任이 만들어둔 團體 카톡房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寫眞들을 올렸다. 消防官 아내와 男便 等 12名이 모여 있는 카톡房이 暫時 活潑해지다 곧 潛潛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畵面을 바라보던 賢淑은 ‘쩝’ 소리를 냈다.

이틀 뒤였다. 賢淑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携帶電話를 집어 들었다. 消防官 家族 中 한 名이 보낸 메시지였다.

‘周邊에 한父母 家庭이 없어서 親舊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共感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處地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安東 산다고 했던 엄마네….”

레크리에이션 때 賢淑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女의 둘째 딸이 少尹과 同甲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答狀을 썼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時間 距離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같은 슬픔끼리 만났다…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2018年 出帆 ‘마음돌봄 캠프’ 契機, 또래 遺族들 團톡房 ‘魔돌캠’ 開設
各自의 苦悶 꺼내며 柳大監 形成… 망설였던 ‘子女 心理相談’도 始作
모임 낯가리던 아이들 금세 親舊돼 “보다 많은 家族 參與하게 합시다”

○ 같은 模樣의 슬픔

時間이 지나며 對話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自身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始作했다.


[하재웅] [午後 3:26] 退勤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解止하고 왔어요. 書類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携帶電話냐고 繼續 물어보는 職員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罪悚해요.


賢淑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記憶이 났다. 唯一한 아빠였다. 그는 少尹과 同甲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消防官 夫婦였던 재웅은 몇 달 前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出勤하기 前 極端的 選擇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人事移動 等으로 받은 스트레스 外에는 世上을 떠날 理由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賢淑의 코끝이 찡해졌다.

[金浦맘] [午後 3:30] 음 ㅠㅠ 맘이 안 좋으셨을 듯. 저도 新郞 폰 解止할 때 그 마음이 생각나네요∼ 괜찮아요! 그런 마음 우리 말고 누가 알아주겠어요.

[서울맘] [午後 3:41] 저는 얼마 前에 하늘나라로 간 男便 番號를 눌러 電話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男子가 그 電話를 받는 게 瞬間 너무 서글퍼서 大聲痛哭을 했네요. ㅠㅠ

[박현숙] [午後 4:26] 재웅님 未安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賢淑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始作했다. 午後 11時 넘어 끝난 對話는 다음 날 午前 7時부터 다시 始作됐다.

“엄마, 電話機 그만 봐!”

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終日 携帶電話를 들여다보는 賢淑에게 소리를 쳤다. 賢淑은 小尹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安東맘] [午後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消防 家族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魔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유가족을 위해 2018년 6월 29일 처음 기획한 ‘마음돌봄 캠프’(마돌캠)에서 자녀들이 마술 공연을 보고 있다. 다음 날 마돌캠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消防廳 조인담 主任이 遺家族을 위해 2018年 6月 29日 처음 企劃한 ‘마음돌봄 캠프’(魔돌캠)에서 子女들이 魔術 公演을 보고 있다. 다음 날 마돌캠이 끝난 뒤 遺家族들은 團體 카톡房에서 對話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기 始作했고, 只今은 家族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人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房을 지켜봤다. 家族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漸漸 確信이 생겼다. 操心스럽게 다음 事業을 始作했다. 家族들의 心理相談 支援이었다.

[安東맘] [午後 1:29] 心理相談을 하면 內容이 記錄에 仔細히 남羅요? 相談 간다고 하니 食口들이 記錄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

[조인담] [午後 1:34] 1. 相談센터는 醫療 行爲가 아니라 銳敏한 個人情報가 남지 않음. 2. 相談은 一旦 無條件 받아보시는 것을 推薦. 생각보다 相談師님 意見에 共感됨.


賢淑度 망설였다. 男便이 世上을 떠난 直後 周邊에서 相談을 勸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傷處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相談師가 自身과 딸의 이야기를 定해진 基準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解釋하는 것도 싫었다.

카톡房에선 인담의 說得으로 心理相談을 받고 온 家族들이 남긴 後記가 조금씩 올라왔다. 豫想보다 좋았다는 反應이 大部分이었다. 賢淑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番 가볼까.’

賢淑은 小尹을 데리고 人談이 連結해준 心理相談센터를 찾았다.

“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感情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關해서도 조금씩 說明을 始作하는 게 좋아요.”

그동안 賢淑이 애써 外面했던 이야기를 相談師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少尹度 親舊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賢淑은 소윤이 아빠에 對해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始作했다.

“少尹아, 아빠는 救急車를 타고 出動하는 消防官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道憂慮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始作했다. 賢淑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度 많이 보고 싶지?”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

少尹의 엉뚱한 대꾸에 賢淑은 울다가 웃곤 했다.


時間이 흐를수록 魔돌캠 家族들은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消防廳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家族들은 卽席 모임을 했다. 各自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對話를 이어갔다. 周邊 사람에게서 받은 傷處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親舊들을 兄弟姊妹처럼 생각했다.

[安東맘] [午前 9:52] 遺家族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家族들이 徐徐히 回復하는 모습을 直接 確認한 人담은 後援 企業과 機關에 宣言했다.

“우리 이거 繼續하시죠. 定期的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家族이 參與하게 해요.”
○ 다른 이에게 내민 손
魔돌캠 結成 直後 賢淑은 競技 金浦에서 消防官 2名이 世上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出動을 나간 受難救助隊의 보트가 顚覆되면서 發生한 事故였다. 消防官 한 名은 돌이 갓 지난 雙둥이 子女를 남겨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賢淑은 인담에게 電話했다.

“主任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家族들을 만나면서 正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다른 消防官 家族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一旦 弔意金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賢淑은 2年 前을 떠올렸다. 男便의 殯所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自身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慰勞가 되지 않는 時間. 그 마음은 賢淑이 第一 잘 알았다.

賢淑은 인담을 통해 弔意金을 傳하고 마돌캠의 存在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當身과 똑같은 家族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얘기를 弔意金 封套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 後 人談이 먼저 賢淑에게 電話를 했다.

“소윤 엄마, 原州에 이연숙 女史님이라고 계세요. 消防官 男便이 1年 前에 江陵에서 殉職했는데,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連絡하며 지내보세요.”

賢淑度 記憶하는 事件이었다. 男便 殉職 1年 後 江陵 경포호 앞 木造 建物 石蘭亭에서 發生한 火災. 뉴스를 보며 賢淑度 男便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永訣式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은 正말 空虛할 텐데. 그때 賢淑은 當場 江陵 葬禮式場으로 달려가 遺家族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怯이 났다. 이番에 인담의 電話를 받고 賢淑은 마음을 먹었다.

共感의 퍼즐을 찾은 사람들 “더 아픈 사람 도울 것”


魔돌캠 만든뒤 金浦서 消防官 殉職… 賢淑 “다른 遺族에 도움되고 싶다”
인담 通해 弔意金 傳達-魔돌캠 紹介… 연숙과도 알게 되며 連絡 이어가
7月 서울서 코로나로 미뤘던 모임… 아이도, 어른도 서로를 안아줬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제복 입은 그대들이 있기에… 올해 6월 21일 서울 은평구 서울소방학교에서 열린 ‘최강 소방관 선발대회’에서 한 
소방관이 호스를 어깨에 짊어진 채 달리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총 44명. 같은 기간 
6155명의 소방관이 공무 중 부상을 당했다.
制服 입은 그대들이 있기에… 올해 6月 21日 서울 恩平區 서울消防學校에서 열린 ‘最强 消防官 選拔大會’에서 한 消防官이 호스를 어깨에 짊어진 채 달리고 있다. 2012年부터 지난해까지 10年間 殉職한 消防官은 總 44名. 같은 期間 6155名의 消防官이 公務 中 負傷을 當했다.
그해 10月 國立大前賢充員에서 殉職 消防官 合同 追慕 行事가 열렸다. 每年 같은 時期에 열리는 行事였다. 현숙이 墓域에 到着하자 男便 墓碑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女性이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그女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연숙 女史님 맞으시죠? 조인담 主任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太白 허승민 消防官…?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男便들이 같은 消防本部 所屬인데, 여태 人事도 못 했네. 자주 連絡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每日 집에만 있는데….”

그때부터 賢淑과 연숙은 連絡을 이어갔다. 살아온 環境이 다르고 나이가 달랐어도 消防官 男便을 잃은 아픔은 똑같았다.

“소윤 아빠가 소파 앞에 누워서 野球 中繼를 봤는데, 딸이 그 姿勢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걸 안 보고 자랐는데, 神奇해갖고.”

“아니, 우리 孫女도 食性이며 이런 게 다 할아버지를 닮았어. 하는 짓도 그렇고. 眞짜 깜짝깜짝 놀라. 아주 웃긴다니까.”

연숙과 賢淑은 서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電話를 했다. 한番 通話를 始作하면 1時間이 훌쩍 넘었다. 男便에 對한 그리움, 傷處를 주는 사람들에 對한 서운함. 家族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賢淑과 연숙 모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氣分을 느꼈다.

올해 2月. 賢淑은 연숙의 勸誘로 平生 살아왔고 男便과의 追憶이 남아 있는 太白을 떠나 原州로 移徙를 왔다. ‘마돌캠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이젠 正말 想像도 안 된다.’

賢淑은 魔돌캠 家族들을 만난 것이 運이라고 생각했다. 人談이 家族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主任님, 마돌캠을 非營利團體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遺家族들을 體系的으로 도울 方法은 없을까요? 殉職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慰勞해주고…. 魔돌캠 2期, 3期 이렇게 繼續 만들면 좋잖아요.”

人담은 賢淑의 이야기가 正말 고맙고, 반가웠다.

‘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

賢淑의 아이디어는 美國에선 이미 20餘 年 前부터 자리 잡은 文化이자 制度였다. 全美殉職消防官財團(NFFF)과 警察遺家族돌봄財團(COPS)은 남겨진 家族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運營한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같은 經驗을 한 사람이 理解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始作된 文化다. 國內에선 殉職消防公務員追慕記念會가 1年에 한 番씩 消防官 遺家族과 追慕式을 열지만 美國처럼 家族끼리 모일 수 있는 機會는 거의 없다.

그러나 人담은 現實的인 答을 줄 수밖에 없었다. 人담은 갑작스러운 人事로 다른 業務를 하고 있었다. 關聯 制度나 豫算도 없었다. “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具體的으로 計劃을 세워야 해요. 現實的으로 큰돈도 必要하고요. 저도 더 苦悶해 볼 테니, 다른 家族들이랑 論議도 해보고 잘 생각해 봐요.”

인담의 答을 들은 賢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흩어진 조각이 모였다
2022年 7月 1日. 魔돌캠 4周年. 賢淑은 原州에서 서울行 高速鐵道(KTX)에 몸을 실었다.

“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

少尹은 座席 끝에 걸터앉은 채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年 前에는 列車에 앉아도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았는데 어느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에 賢淑의 얼굴에 微笑가 번졌다.

코로나19 탓에 거의 1年 만에 열린 魔돌캠 모임이었다. 少尹과 묶여 세雙둥이로 불리는 同甲내기 女子아이 둘도 왔다. 少尹은 오랜만에 보는 親舊들이 語塞했는지 暫時 엄마 뒤에 숨었지만, 暫時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時도 떨어지지 않았다.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는 ‘마돌캠’ 2016년 순직한 허승민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왼쪽에서 네 번째)과 딸 소윤이 
올해 7월 2일 서울 롯데월드에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범퍼카를 타고 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기획한 ‘마음 돌봄 캠프’로 
인연을 맺은 유가족들은 이날 1년 만에 만나 2박 3일을 함께했다.
함께 즐거운 時間 보내는 ‘魔돌캠’ 2016年 殉職한 허승민 消防官의 아내 박현숙(왼쪽에서 네 番째)과 딸 소윤이 올해 7月 2日 서울 롯데월드에서 다른 遺家族들과 함께 범퍼카를 타고 있다. 消防廳 조인담 主任이 企劃한 ‘마음 돌봄 캠프’로 因緣을 맺은 遺家族들은 이날 1年 만에 만나 2泊 3日을 함께했다.
이튿날 魔돌캠 家族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向했다. 고양이 귀 模樣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汽車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붙잡고 걸었다. 回轉木馬를 탈 때도 接着劑로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 고양이다? 야옹.” 다른 놀이器具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少尹이 갑자기 兩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

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 “멍멍! 멍멍! 멍멍!”

까르르. 세 아이가 同時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氣分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微笑를 지었다.

롯데월드에 이어 水泳場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時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宿所에 모여 夜食을 시켜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始作했다.

“그러고 보니, 前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

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世上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公務上 災害로 인정받기 위한 行政 節次를 準備하고 있었다.

“辯護士와 같이 資料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消防官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壓迫感을 느꼈는지를 證明하는 수밖에 없어요.”

暫時 靜寂이 흘렀다.

“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

賢淑과 다른 家族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對話가 이어졌다.

日曜日이 왔다. 이제 各自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泊 3日間 6名의 아이를 함께 돌본 魔돌캠 家族 5名은 서울驛 近處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

少尹과 同甲내기인 딸을 키우는 安東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너무 덥다. 우리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湖水 等 이番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分도 지나지 않아 自然스럽게 또 가을에 모일 日程을 잡았다.

汽車 時間이 다가왔다. 먼저 내려가야 하는 安東맘이 賢淑에게 손을 흔들었다. 賢淑은 같이 손을 흔들다가 그女에게 다가가 安東맘을 꼭 끌어안았다. 安東맘도 賢淑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苦生 많았어. 健康히 지내고 있어.”

賢淑과 安東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雙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줬다.

賢淑이 뒤이어 汽車를 타러 뛰었다. 階段을 내려가다가 賢淑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家族들이 如前히 그곳에 서 있었다. 賢淑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人事를 했다. 賢淑度 微笑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少尹의 손을 잡고 남은 階段을 내려갔다.

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은 2020年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價値와 디지털 技術을 融合한 差別化된 報道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空間에서만 經驗할 수 있는 斬新한 記事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申告 接受부터, 現場 出動이 끝난 後까지 이어지는 消防官들의 이야기를 담은 ‘當身이 119를 누르는 瞬間’(original.donga.com/2022/firefighter/part01) 記事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長: 지민구 記者 warum@donga.com
▽取材: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記者
▽프로젝트 企劃: 位은지 記者
▽寫眞: 홍진환 전영한 記者
▽編輯: 李承乾 記者
▽그래픽: 김충민 記者
▽사이트 開發: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金素延 인턴


히어로콘텐츠팀
지민구 記者 warum@donga.com
김예윤 記者 yeah@donga.com
이소정 記者 sojee@donga.com
이기욱 記者 71wook@donga.com
#殉職 消防官 #事故 #酸化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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