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싸우는 火가’ 정복수 個人展
1979年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靑年作家會館. 當時 20代 初盤이었던 畫家는 展示場 壁이 아닌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고깃덩어리처럼 사지 없이 고함치는 몸 그림은 觀覽客 발에 짓밟히는 身世가 됐다. 作家 정복수(61·寫眞)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첫 個人展, ‘바닥火―밟아주세요’였다. 어느덧 손꼽히는 中堅 作家가 된 그가 最近 서울 강남구 갤러리세人에서 29番째 個人展 ‘몸의 劇場’을 열었다.
情 作家의 그림은 事實 처음 보는 사람은 不便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이番 展示도 臟器가 훤히 보이는 身體를 그린 作品이 大多數이기 때문이다. “人間은 不完全하다”는 생각에 팔다리도 種種 省略한다. 예쁜 그림을 選好하는 이들에겐 ‘무섭다’ ‘징그럽다’는 反應도 적지 않다. 하지만 評壇이나 後輩 藝術家들은 그를 躊躇 없이 ‘作家들이 좋아하는 作家’로 부른다.
情 作家가 이런 무시무시한 그림에 穿鑿하는 理由는 뭘까. 그는 “畫家는 그림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普通의 境遇라면 보기 싫은 것, 미운 것은 안 보이게 치워 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림과 싸우는’ 作家는 그것을 正面으로 보고 낱낱이 記錄해야 한단다. 身體에 그려진 斑點들은 ‘살아가면서 맺힌 응어리’로 說明한다. 그 응어리가 어떤 順序로 생겼는지 番號까지 매기며 作家는 包裝하려는 欲求와 끊임없이 싸운다.
젊은 時節부터 그려온 바닥火 亦是 같은 軌跡에서 풀이할 수 있다. 情 作家는 “西洋美術의 亞流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强調했다. 남을 따라가지 말고, 人間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로 했다. 天障畫가 神을, 壁에 걸린 그림이 權力者를 向한다면 바닥은 삶의 悽絶한 憤怒와 아픔이 담긴 現實 世界다.
어떤 裝飾도 없이 表現한 거친 現實的 畫風은 世上에 對한 悲觀이 담긴 걸까. 하지만 作家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西洋美術은 傳統的으로 神만 完全하다고 봤다. 이런 限界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人間도 完全한 狀態가 될 수 있다는 것을 表現하고 싶다”고 했다.
情 作家는 한 가지 素材에 安住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摸索해 왔다. 2014年에는 바닥火를 壁과 設置로 擴張해 ‘뼈 속 風景’展을 선보였다. 지난해 서울 鍾路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茶房’에서 열린 ‘家出한 畫家’戰에선 갤러리에서 宿食을 解決하며 그림을 그리는 奇行(?)도 일삼았다. 作家는 “作品의 世界와 領域을 擴張시키고 싶은데, 할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해 새로운 試圖를 繼續하고 있다”고 說明했다.
作家는 最近 ‘신자연注意’ 美學에도 參與했다. 1993年 처음 國內 美術界에 登場한 新自然主義는 境界가 무너지는 現代社會에서 個人의 몸 自體가 中心이 된다는 理論. 지난해 11月 가나人 作家와 ‘신자연注意―두 몸의 만남’에서 이런 흐름을 선보인 것이다.
情 作家는 “나의 作業은 몸의 自然主義다. 西洋에서 人間의 생각과 想像은 現實이 아니라 怪常罔測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個人의 자유로운 생각도 現實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26日까지.
김민 記者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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