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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筆跡]〈47〉淸雅한 정인보|東亞日報

[구본진의 筆跡]〈47〉淸雅한 정인보

  • 東亞日報
  • 入力 2019年 2月 2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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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運動家부터 歷史學者, 양명학자, 言論人, 時調詩人, 散文作家, 敎育者, 書藝家까지. 爲堂 鄭寅普는 多樣한 分野에서 活躍했고 가는 곳마다 頭角을 나타냈다. ‘朝鮮의 始祖 檀君은 神이 아니라 人間이었다’라고 始作하는 ‘朝鮮史 硏究’를 보면 厖大한 知識과 洞察力에 머리가 절로 숙어진다. 代學者 집안 出身이라는 背景, 타고난 才能, 最上의 敎育만으로는 이런 境地에 오른 理由를 說明하기 어렵다.

先生은 1910∼1920年代 民族主義 學派가 빠진 神祕主義나 英雄主義 史觀을 克服하고 文獻 考證에 熾烈하게 努力했다. 또 歷史의 中心에 多重과 集團으로서의 民族이 놓여야 함을 强調했다. 그리고 著述, 新聞 連載, 大衆 講演을 통해 우리의 ‘얼’을 지키고자 眞心으로 努力했다.

先生의 글씨에 對한 첫印象은 맑고 부드러우며 힘이 있어서 端雅하다. 筆劃이 깨끗하고, 잡스럽거나 濁한 기운이 섞이지 않았다. 마음이 맑고 바르고 正直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씨體다. 理想的인 글씨體를 驅使한 茶山 丁若鏞의 筆體와 닮았다. 모서리에 角이 지지 않고 筆劃이 부드러워 仁慈하고 너그러우며 溫和했음을 알 수 있다. 固陋하거나 我執에 빠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劃 사이의 間隔이나 글字 사이의 間隔이 充分한 것을 보면 새로운 環境에 適應을 잘하고 勇氣도 갖추고 있었다.

글씨의 模樣이 正四角形 爲主이고 均衡이 잡혀 있으며 ‘書(徐)’, ‘憲(헌)’字 中에서 가로劃의 間隔이 正確하게 均分되는 等 흐트러짐이 없다. 이는 바르고 保守的이며 論理的이고 理性的임을 알려준다. 先生의 著書를 보면 어느 한쪽에 얽매이거나 치우치지 않았고 無理한 主張을 펼치지 않았다. 爲堂의 歷史意識은 丹齋 申采浩의 民族主義 私學의 傳統을 이었지만 獨立 鬪爭의 方道로서 民族史 硏究를 志向하던 丹齋의 民族史學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嚴密한 史料的 追跡에 依한 事實 認識과 그에 對한 民族史的 意味의 浮刻을 意圖하는 新民族主義 私學의 立場이었다.
 
구본진 辯護士·筆跡 硏究가
#정인보 #獨立運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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