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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朽 田園生活에도 다 때가 있더군요”…60~75세가 즐길 수 있는 黃金期[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老朽 田園生活에도 다 때가 있더군요”…60~75세가 즐길 수 있는 黃金期[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9月 9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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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年退職 大學敎授 박의서 氏
“春川이 좋아 春川에 定着했죠”… 다 갖춘 地方都市, 호젓함은 덤
집앞 텃밭 일구는 田園生活하며 地域 文化觀光解說師로 猛活躍
“田園生活 꿈꾼다면 서두르세요”

3年째 春川市 所屬 文化觀光解說師로 活躍하는 박의서(72) 氏는 當初 春川과 緣故가 없는 外地人이었다. 2018年 安養大 觀光經營學科 敎授에서 停年退職하면서 곧장 春川으로 居處를 옮겼다.

18年間 大學에서 敎鞭을 잡았고 그前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22年間 勤務했으니 말 그대로 旅行과 觀光分野 專門家다. 只今은 市內 近郊 住宅에서 텃밭을 일구고 산다.

都市人들의 로망이기도 한 歸村과 全員살이, 그 생생한 體驗談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달 31日 春川을 찾았다.

집 앞 텃밭에서 일하는 박의서 신재희 夫婦. 最近에는 30坪 程度 空間에 10餘 가지 菜蔬를 키우고 있다. 春川=서영아 記者 sya@donga.com


“春川은 우리 家族의 블랙홀이었다”
요즘 朴 氏 家族은 두 딸 內外와 손주 4名까지 모두 10名이 春川에서 산다. 세 집이 自動車로 5~10分 거리에 있다.

一家의 春川 入城 契機는 2011年頃 둘째 사위의 軍服務였다. 入隊 前 結婚해 아들을 둔 둘째 사위의 勤務地가 春川이었다. 部隊 近處에서 살던 딸 內外는 除隊 뒤에도 그냥 春川에 눌러살기로 했다.

큰딸네는 딸 둘, 작은딸네는 아들 둘을 키운다. 보물 같은 손자손녀들이 한자리에 모인 크리스마스 무렵 어느 날. 박의서 씨 제공.
큰딸네는 딸 둘, 작은딸네는 아들 둘을 키운다. 寶物 같은 孫子孫女들이 한자리에 모인 크리스마스 무렵 어느 날. 박의서 氏 提供.
朴氏 一家는 둘째 딸 家族이 春川에 터를 잡은 것을 契機로 春川의 魅力에 눈을 떴고 漸次 모두가 옮겨왔다. 이 寫眞을 撮影한 날은 둘째 딸(가운데)李 둘째 아들을 公開入養韓 아주 重要한 날이었다고 한다. 家族의 웃는 表情이 서로 닮았다. 박의서 氏 提供

-名門大를 나온 젊은 夫婦에게 適當한 일자리가 있었나요.

“둘이 똑같이 미니멀리스트예요. 딱 먹고 살 만큼만 일하면서 農家住宅을 빌려 改造해서 재미나게 살더군요. 처음에는 걱정도 하고 잔소리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賢明했다’고 하게 되더군요.”

뒤늦게 結婚한 큰딸도 몇 番 와보고는 春川이 좋다며 다 整理하고 내려와 버렸다. 只今은 큰 사위만 서울로 出勤하는 生活을 한다. 田園生活과 歸村은 박의서 氏의 로망이기도 했다. 정년과 同時에 서울 生活을 果敢히 整理하고 딸들이 사는 곳, 春川으로 옮겼다.

“春川이 우리 一家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지요. 하하.”

“隱退하고 歸村해도 消日거리는 있어야 해요”
歸村하면 그저 隱退生活에 充實할 생각이었다. 春川에 地緣과 學緣이 全혀 없다 보니 工夫도 하고 사람도 사귈 兼 平生學習館이니 圖書館 文化講座 等을 熱心히 다녔는데, 漸次 지루함을 느끼게 됐다.

뭔가 消日거리가 必要했다. 하다못해 幼稚園 버스 運轉이나 注油所 알바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高齡 탓에 여의찮았다. 그러다 偶然히 市廳에서 文化觀光解說師 募集이 있어 應募했다.

“隱退하고 歸村했어도 消日거리는 있어야 하겠더군요. 그때만 해도 ‘大學敎授까지 하고 解說師 하려고 하냐’는 反應들이 있었어요. 英語特技者로 合格했지요.”

面接試驗을 通過하고 集合敎育 100時間, 現場 敎育 100時間을 받은 뒤에야 資格證이 나왔다.

現在 全國에서 3000餘 名이 文化觀光解說師로 活動 中인데, 春川市에는 20名이 있다. 昭陽江댐, 申崇謙 將軍 墓域, 淸平寺 等 春川의 主要 觀光地 8個 地區에서 돌아가며 일한다.

한 사람이 한 달에 10~15日 程度, 午前 10時부터 午後 5時까지 일한다고. 法的으로는 自願奉仕지만 交通費 等의 名目으로 時間當 1萬 원이 支給된다. 그의 境遇 月 80~100萬 원 程度 받는다.

“돈 생각은 全혀 없었는데, 이게 쏠쏠하더군요. 손주들 用돈도 주고 밥도 사고, 아주 즐겁게 하고 있어요.”
文化觀光解說師는 老後에 할 수 있는 最高의 일이라고 朴 氏는 말한다. 最近 심포지엄 參席次 春川을 찾은 KIST 硏究員들에게 英語 解說을 해줬다. 박의서 氏 提供
인터뷰를 한 날, 朴 氏는 本來 勤務였지만 스케줄을 調整했다. 寫眞 撮影을 위해 平素 觀光解說을 하는 場所인 昭陽江댐에 暫時 들렀다. 春川=서영아 記者sya@donga.com


春川의 魅力, ‘다 갖춰져 있는데 호젓하다’
그가 말하는 春川의 長點은 끝이 없다. 山水가 좋고 交通이 便利한데 快適하고 없는 게 없이 다 갖춰져 있다는 것. 例컨대 서울까지는 ITX로 1時間 남짓, 電鐵로도 1時間 半이면 갈 수 있다(심지어 電鐵은 敬老優待가 適用돼 無料다).

요즘 地方에서 盛行하는 파크 골프를 즐기기에도 絶對的으로 유리하다. 파크 골프는 클럽 하나로 치는 골프인데 골프보다 規模는 작지만 재미는 똑같고 費用이 들지 않는다. 세 바퀴 돌면 1萬步 程度 걷게 되니 쏠쏠하게 運動도 된다. 春川에는 只今 파크골프場이 두 군데 있는데, 3군데 더 만들 豫定이라고 한다.

“月會費 몇萬 원이면 每日 나갈 수 있어요. 함께 파크 골프 하는 醫師들 말이, 요즘 老人들 健康管理의 首勳甲이 파크 골프라고 합니다.”

그의 境遇 거의 每日 水泳을 하는데 利用料 1500원에 國際規格 水泳場이 새벽 5時부터 저녁 8時까지 아무 때나 가도 利用할 수 있다. 서울에서 레인別로 時間表 보며 豫約해야 했던 것과는 비할 수 없을 程度로 快適하다.

이뿐인가. 老年의 田園生活에는 단골손님처럼 登場하는 ‘病院에서 멀다’는 指摘도 痛快하게 反駁할 수 있다.

“집에서 15分 距離에 大學病院이 두 군데나 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빅5病院 바로 곁에 살았는데 應急室에 빨리 가면 뭐합니까. 기다려야 하는데. 여긴 기다릴 必要가 없죠. 老人들 살기에는 天國이에요.”

平生 ‘都市女子’였던 夫人 신재희(67) 氏도 大滿足이라고 한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宏壯히 즐기고 있어요. 요즘은 파크 골프에 푹 빠져서 同好會 사람들과 每日같이 나가요. 女子들은 나이 들어도 새 親舊를 잘 사귀더라구요. 男子들은 있던 親舊도 整理하는 마당인데… 하하. 거기에 딸 둘 가까이에 살죠, 텃밭 일에도 재미를 붙여서…”

“田園生活 제대로 즐기려면 60代 初盤에는 옮겨야”
當初 100坪 程度였던 텃밭은 漸次 힘에 부쳐 30坪 程度로 줄였다. 날 때부터 ‘都市 餘地’였던 夫人 申 氏가 더 熱心히 텃밭을 가꾼다. 박의서 氏 提供
田園生活을 滿喫하게 해주는 집 앞에서 夫婦가 포즈를 取했다. 歸村한 지는 5年, 이 집에 들어온 지는 3年쯤 된다. 春川=서영아 記者 sya@donga.com
100坪 程度 짓던 텃밭 農事는 最近 30坪 規模로 줄였다. 主로 申 氏가 고추 호박 가지 상추 等 10가지가 넘는 푸성귀들을 키운다.

“(아내가) 아침에 눈 뜨면 텃밭부터 나가는데, 農作物은 主人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요. 그걸 體感하곤 해요.”

“이렇게 이쁜 애들이 아침마다 절 부르는데 어떻게 안 나와 보나요”(신 氏).

朴 氏는 農事일은 한해가 다르게 힘들어져 몇 年 더 지나면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때는 어떻게 하실 計劃인가요.

“저는 療養院에는 絶對 가기 싫어요. 農事 못 짓더라도 여기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제가 經驗해보니 田園生活을 꿈꾸는 분들은 적어도 60代 初盤에는 옮겨야 15年 程度 田園生活을 누릴 수 있어요. 더 氣力 있을 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시라고 勸하고 싶어요.”

서울에 竣工을 앞둔 再建築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만, 돌아가지 않게 될 것 같다.

“텃勢? 없진 않지만 어디나 사람 사는 곳”
100歲 카페에서 脂肪消滅이니 歸農 歸村에 對한 記事를 쓰면 반드시 地方의 텃勢 問題를 呼訴하는 댓글이 달린다. 理想的인 메시지는 歸農歸村을 奬勵하지만 막상 現實에서는 不條理한 規制니 卓上行政, 地域社會의 따돌림 等으로 발길을 되돌리는 都市民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海拔 100m 높이에 자리한 朴 氏 집에서 周邊을 내려다보면 알프스 같은 느낌이 살짝 든다. 이곳에서는 가끔 아침에도 멋진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당에서 撮影한 아침노을. 박의서 氏 提供
마당에서 예쁜 孫女들과 한잔하는 즐거움. 박의서 氏 提供
-敎授님 境遇 그런 問題는 없습니까.

“사람 사는 世上이니 이런저런 問題가 생기지요. 適當히 잘 지내는 境遇는 괜찮아요. 그런데 利害關係가 얽히거나 外地人이 조금 튀는 行動을 하는 境遇는 逆風을 만나요.

저는 觀光 쪽을 오래 했으니 아무래도 地域 觀光政策에 對해 意見이 있거든요. 地域新聞에 칼럼을 連載했는데, 反應이 아주 차갑더군요. ‘春川에 對해 當身이 뭘 안다고’ 이런 反應들이죠. 그래서 그냥 조용히 지내기로 했습니다.

제 눈에는 春川이 가진 潛在力이 무척 큰데, 콘텐츠를 잘 만들어가면 發展 可能性이 無窮無盡한데, 안타깝지요.”

이웃과의 關係도 어려움에 빠졌다. 이웃집이 道路敷地를 남몰래 大地로 編入한 것을 뒤늦게 알고 抗議했지만 問題提起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過程에서 이웃들과 사이가 不便해졌다.

“節次上 瑕疵가 深刻했는데 통하지 않더라구요. 地緣 學緣으로 얽힌 地域분들끼리 ‘좋은 게 좋은’ 式으로 하는 것은 社會에 좋지 않은 일입니다.

아내와는 ‘이럴 바에야 移徙를 가 버리자’는 말도 했는데, 只今은 關係가 나쁘면 나쁜 대로, 神經 쓰지 말고 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너무 좋으니까요. 不便하긴 하지요.”

晝耕夜讀으로 碩博士 取得
韓國觀光公社 밀라노 支社長 時節. 이탈리아에서 最高로 멋을 부린다면 斷然 韓服차림이다. 박의서 氏 提供

鳥致院 隣近 農家에서 태어나 中學校까지는 奬學金으로 다녔지만 高等學校는 焉敢生心.

뉴욕에서 주경야독으로 마친 석사 졸업식에서. 박의서 씨 제공
뉴욕에서 晝耕夜讀으로 마친 碩士 卒業式에서. 박의서 氏 提供
當時 朴正熙 政權이 育成하던 國立 大專攻展에 進學했다. 高校 3年과 專門大 2年을 합친 5年制 專門學校였다. 建交部에서 末端 公務員으로 일하다가 軍에 入隊했다.

“運 좋게도 美 8軍에 配屬돼 美軍病院에서 일하게 됐어요. 醫師들을 相對하다 보니 高級 英語를 배울 수 있었죠. 제가 平生 써먹은 英語는 여기서 배운 거였습니다. 苦生도 많이 했지만 運도 좋았어요”

除隊 後 觀光公社에 入社했을 때는 京畿大 3學年에 編入한 狀態. 碩士는 美國 뉴욕支社에서 일하면서 夜間大學에서 받았고 博士는 다시 경기대에서 職場生活을 하면서 땄다.

-늘 晝耕夜讀이었네요.

“제가 博士까지 받아 敎授 生活도 했지만 率直히 제대로 工夫해본 적이 없어요. 渦中에 運은 좋은 便이었어요. 博士學位를 따자마자 大學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運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父母 잘 만나 아무 걱정 없이 工夫하고 遊學 하러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요.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주어진 環境에서 最善을 다하면 運도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이 나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幸福합니다”
그는 3年 前쯤 自身의 雅號를 허당(虛堂)이라 지었다. 千字文의 ‘허당습청(虛堂習聽 빈房에서 소리를 내면 울려서 다 들린다는 뜻)’에서 따왔는데, ‘싹 비우고 새롭게 채워 넣겠다’는 覺悟를 담았다. 春川으로 옮긴 直後 다니던 書藝 敎室에서 이 四字成語를 만났다. 그즈음부터 平生 잘못한 것에 對해 ‘거꾸로 쓰는 自敍傳’도 조금씩 쓰고 있다고 한다.

現役 時節에는 ‘記錄 따라 떠나는 韓國古典奇行(2018) ’, ‘極限을 克服한 글로벌 苦戰 奇行’ 等 人文書와 講壇에서 아직도 使用되는 觀光經營 關聯 敎材 等 10餘 卷을 냈다.

서울의 유명 재건축 아파트의 오래된 주민이었다. 이 아파트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등장한 ‘깜이’가 지금 박 씨네 집에서 산다. 영화 관계자가 큰딸의 친구였고, 깜이는 딸을 거쳐 박 씨에게로 왔다.   박의서 씨 제공
서울의 有名 再建築 아파트의 오래된 住民이었다. 이 아파트를 고양이의 視線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映畫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登場한 ‘깜이’가 只今 朴 氏네 집에서 산다. 映畫 關係者가 큰딸의 親舊였고, 깜이는 딸을 거쳐 朴 氏에게로 왔다. 박의서 氏 提供
늘 不足한 것을 메우려 努力하는 삶을 이어와서일까. ‘더할 나위 없이 幸福하다’는 그에게서 어딘가 헛헛한 느낌도 傳해져온다.

“제가 平生 웃는 얼굴로 살았는데, 나이 드니 異常하게 웃음氣가 줄어요. 優雅하게 늙는다는 게 物理的 心理的으로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분명한 건 살다가 머무는 곳이 故鄕이라면 이제 이곳이 제 故鄕이란 겁니다.”

春川=서영아記者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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