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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희, 故 김수용 監督 追悼辭 “내게 늘 커다란 山이자 어른, 對스승”|東亞日報

장미희, 故 김수용 監督 追悼辭 “내게 늘 커다란 山이자 어른, 對스승”

  • 뉴스1
  • 入力 2023年 12月 5日 13時 23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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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한민국영화인장으로 엄수된 고(故)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에서 배우 장미희 씨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만추’ 등을 연출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김 감독은 지난 3일 94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2023.12.5. 뉴스1
5日 午前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葬禮式場에서 大韓民國映畫印章으로 嚴守된 故(故) 김수용 監督의 永訣式에서 俳優 장미희 氏가 追悼辭를 하고 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晩秋’ 等을 演出하며 1960年代 韓國映畫를 代表하는 金 監督은 지난 3日 94歲의 一期로 永眠에 들었다. 2023.12.5. 뉴스1
俳優 장미희가 故(故) 김수용 監督의 永訣式에서 故人과의 追憶을 떠올리며 追悼辭를 傳했다.

장미희는 5日 午前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病院 葬禮式場 行事場에서 열린 故 김수용 監督의 永訣式에서 “이 자리가 形式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서 監督님은 늘 커다란 山이셨고 그리고 내가 늘 우러러 보던 어른이셨고 臺(大)스승이어서 그러하다”고 追悼辭를 열었다.

이어 장미희는 “나는 監督님께서 데뷔 作品을 만드셨을 때 태어났다, 그래서 늘 韓國의 映畫 巨匠 김수용 監督님, 이렇게 新聞이나 放送이나 라디오에서 듣고 자란 世代다, 그래서 함께 映畫 作業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俳優가 됐어도 監督님은 내게 너무 어려운 큰 어른이셨다”고 밝혔다.

장미희는 “내가 監督님을 옆에서 뵙게 된 것은 監督님이 映像物等級委員長으로 계실 때인데 나는 映畫 分課 委員會에서 2年間 일했을 때다, 아이러니한 건 ‘허튼소리’ 檢閱로 큰 일을 겪으셨는데 映像物等級委員長이 되신 게 뭐라고 할까”라고 檢閱로 因해 故人이 한 次例 隱退 宣言을 했던 1986年度의 事件을 言及했다.

더불어 “監督님의 삶을 사셨지만 (청주대학교에서)교육자로 後輩 養成에 生을 바치셨고 映畫界를 위해 映像物等級委員長을 맡으셨다, 敎育者로서 映畫人으로서 社會人으로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데 큰 感動을 받았다, 나 또한 演技者로 있으면서 俳優로서 어떤 指向點을 가져야 하는냐고 할 때 김수용 監督님께서 나의 멘討價 되셨다, 敎育을 하고 實際를 같이 兼備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라며 故人이 自身에게 끼친 影響力에 對해 알렸다.

또한 “社會人으로, 專門人으로 한 系統 文化人의 首長으로 계실 때 그분의 奉仕精神은 나로 하여금 (나 亦是)映畫界를 위한 꽃과 꿀만을 따는 俳優가 아니라 團體에 寄與하며 사랑 받은 것에 對한 커다란 報答해야한다는 생각에 影響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김수용 監督은 지난 3日 午前 老患으로 別世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만추’ 등을 연출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김 감독은 지난 3일 94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2023.12.5. 뉴스1
5日 午前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葬禮式場에서 故(故) 김수용 監督의 永訣式이 嚴修되고 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晩秋’ 等을 演出하며 1960年代 韓國映畫를 代表하는 金 監督은 지난 3日 94歲의 一期로 永眠에 들었다. 2023.12.5. 뉴스1
1929年生인 김수용 監督은 1960年代와 70年代 韓國 映畫를 代表하는 監督으로, 1958年 ‘恐妻家’로 데뷔해 90年代까지 約30餘年 넘게 旺盛한 活動을 펼쳐왔다.

代表作으로 ‘굴비’(1963) ‘血脈’(1963) ‘갯마을’(1965)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山불’(1967) ‘射擊場醫아이들’(1967) ‘안개’(1967)를 비롯하여 1970年代의 ‘夜行’(1977), ‘華麗한 外出’(1978), 1980年代 作品으로는 ‘都市로 간 處女’(1981) ‘晩秋’(1982) ‘저하늘에도 슬픔이’(1984) ‘허튼소리’(1986)等 多數의 作品이 있으며 1990年代에는 ‘사랑의 默示錄’(1995)과 ‘沈香’(1999)이 있다. 김수용 監督의 演出作은 劇映畫 109篇, 文化映畫 12篇으로 總121篇이다.

故人은 1981年부터 1993年까지 청주대학교 映畫學科 敎授를 歷任했으며 1992年까지 서울藝術大學 映畫學科 特任講師 兼 中央大學校 映畫學科 特任敎授로 後學을 養成했다. 1989年부터 現在까지 대한민국예술원 會員이었고, 映畫監督으로는 最初로 대한민국예술원 會長에 오르기도 했다.

김수용 監督의 葬禮式은 映畫人張으로 치러졌다. 아들 김석화氏와 俳優 안성기 이장호 監督, 俳優 장미희, 정지영 監督이 共同葬禮委員長을 맡았다. 또한 葬禮委員으로 金憓秀, 류승완 監督,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봉준호 監督, 윤제균 監督, 李榮愛,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等 有名 映畫人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永訣式에서는 俳優 申榮均, 製作者 황기성, 이장호 監督, 양윤호 韓國映畫人總聯合會 理事長, 俳優 장미희, 金性洙 監督, 김경식 청주대학교 藝術大學校 學長 等이 追悼辭를 傳했다.

한便 故 김수용 監督의 葬地는 서울追慕公園에 마련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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