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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오빠 보러 競技場 出勤하던 ‘軸德’, 이제 K리그로 出勤합니다|동아일보

김남일 오빠 보러 競技場 出勤하던 ‘軸德’, 이제 K리그로 出勤합니다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8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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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世代가 사는 法] 蹴球 에세이 펴낸 ‘월드컵 키즈’ 양송희 氏
“김남일 選手가 지오디보다 멋져”
“골대로 슛 쏘듯 一旦 저질렀어요”

2013∼2018년 K리그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일한 양송희 씨. 그는 “경기장관리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직접 발로 뛰는 일을 했다”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경기장에 잔디를 직접 심고, 한겨울엔 잔디 보호를 위해 넓은 그라운드를 덮는 차광망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양송희 씨 제공
2013∼2018年 K리그 球團 仁川 유나이티드에서 일한 양송희 氏. 그는 “競技場管理팀 新入社員으로 入社해 直接 발로 뛰는 일을 했다”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競技場에 잔디를 直接 심고, 한겨울엔 잔디 保護를 위해 넓은 그라운드를 덮는 遮光網을 設置했다”고 말했다. 양송희 氏 提供
2002年 韓日 월드컵. 全北 전주시에 사는 열세 살 少女는 蹴球와 사랑에 빠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옷을 입고 다녔다. 틈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K리그 競技場으로 달려갔다. 어른이 된 少女는 K리그 選手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고, 멈추지 않는 蹴球 사랑은 그를 英國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까지 이끌었다. 20日 에세이 ‘저질러야 始作되니까’(시크릿하우스)를 펴내는 양송희 氏(32) 이야기다.

그는 12日 東亞日報와의 通話에서 “蹴球場에 한 番 간 적 없었던 女中生이 韓日 월드컵을 契機로 歌手 ‘god(지오디)’보다 蹴球選手 김남일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다”면서 “蹴球選手를 좋아하는 마음에 K리그 競技場을 다녔던 게 蹴球 사랑의 始作”이라고 웃었다. “演藝人은 TV 안에만 存在하는데 蹴球選手는 競技場에 가면 實際로 볼 수 있잖아요. 運이 좋으면 사인도 받고, 함께 寫眞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 一寸이 될 수 있었어요. 蹴球야말로 少女 팬이 ‘덕질’(自身이 좋아하는 部分을 파고드는 行爲)을 하기에 가장 完璧한 對象이었죠.”

2010년 전국의 아마추어 여대생들이 출전하는 축구대회에 나간 양송희 씨. 그는 “대학 시절 직접 축구 경기를 하며 팀워크와 도전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양송희 씨 제공
2010年 全國의 아마추어 女大生들이 出戰하는 蹴球大會에 나간 양송희 氏. 그는 “大學 時節 直接 蹴球 競技를 하며 팀워크와 挑戰精神을 배웠다”고 했다. 양송희 氏 提供
‘월드컵 키즈’인 그는 高等學生 땐 夜間 自律學習을 빼먹고 蹴球 競技場에 달려가곤 했다. 國際大會가 열리는 날이면 蹴球 中繼를 보며 밤을 새웠다. 2008年 한국외국어대 國際스포츠學科에 入學하고선 대한축구협회가 여는 女大生 蹴球 大會에도 나갔다. 全國 女大生 中 蹴球選手가 아닌 아마추어만 出戰하는 競技지만 參加者의 多數가 學窓 時節 때 運動을 했던 이들이었다. 蹴球 한 番 해본 적 없는 같은 學科 女學生 中 競技에 뛸 수 있는 最小 人員인 11名을 겨우 맞춰 出戰했다. 그는 “實力은 不足했지만 競技 前날에 蹴球 유니폼을 입고 蹴球 스타킹까지 신고 잤을 程度로 熱意는 넘쳤다”며 “2011年까지 每年 이 大會에 參加했다. 팀 主張도 맡으며 每週 1回 꼬박꼬박 팀 訓鍊을 했다”고 했다.

大學 卒業 後 2013年 K리그 球團인 仁川 유나이티드에 入社했다. 男子 職員이 大多數인 職場이었다. 처음엔 唐慌했지만 蹴球에 對한 사랑만으로 漸次 業務를 배워갔다. 電氣 建築 消防 設備 잔디管理 等 景氣를 支援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京畿 포스터와 칼, 테이프를 넣은 褓따리를 褓負商처럼 이고 지고 다니면서 仁川 市內 全域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모르는 가게의 門을 열고 들어가 ‘포스터를 붙여도 될까요’라고 付託한 뒤 球團에 對한 팬들의 생각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5年 동안 일하면서 더 큰 舞臺에서 蹴球에 對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다. 2018年 여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無作定 英國으로 떠났다. 英國에 到着하자마자 EPL의 여러 球團에 志願書를 넣었고 한 달 만에 런던 토트넘 홋스퍼에 採用됐다. 韓國의 正規職 代身 얻은 他國의 7個月 契約職, 球場을 밟는 代身 選手들의 유니폼이나 記念品을 파는 ‘팬스토어’에서 일했지만 孫興慜 選手가 뛰는 名門 球團에서 일하게 된 것.

그는 “孫興慜 選手의 유니폼을 사이즈別로 파는 一名 ‘孫興慜 존’에서 일하거나 몸으로 뛰는 다른 現場職 業務를 겸했다”며 “徹底하게 팬들에게 즐거운 經驗을 膳賜하기 위해 努力하는 EPL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韓國에서 하지 못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또 “月給이 韓國 돈으로 200萬 원이 채 되지 않아 競技가 없는 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生活費를 充當하며 버텼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고 成長했기 때문에 後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韓國에 돌아온 그는 지난해 1月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弘報팀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러 就業을 위해 ‘스펙’을 쌓진 않았지만 結局 그가 살아온 길이 再就業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蹴球와 關聯된 일을 繼續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해맑게 答했다.

“너무 오랫동안 趣味로 좋아했고, 이젠 職業이 된 이 일이 없는 삶을 想像할 수 없어요. 어쩌면 저처럼 蹴球를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꿈꾸는 일을 찾아 어디든 떠날 거냐고요? 슛을 쏴야 골이 들어가듯 뭐든지 저질러야 꿈이 始作되죠.”

이호재 記者 hoho@donga.com
#mz世代가 사는 法 #월드컵 키즈 #양송희 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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