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速度 내는 憲裁, 回避하는 靑瓦臺 ‘彈劾時計’ 빨라지는 理由는?|주간동아

週刊東亞 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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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

速度 내는 憲裁, 回避하는 靑瓦臺 ‘彈劾時計’ 빨라지는 理由는?

“憲裁 位相 强化할 絶好의 機會…2月 初 가닥 展望”

  • 정호재 記者 demian@donga.com

    入力 2017-01-13 17: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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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月 10日 午前 9時 15分. 박한철 憲法裁判所長을 태운 乘用車가 서울 종로구 재동 憲法裁判所(憲裁) 正門을 通過했다. 삼청동 憲裁所長 公館에서 午前 9時 무렵 떠난 셈이다. 憲裁所長 公館은 한때 靑瓦臺가 安家로 使用했을 程度로 靑瓦臺와 가깝다. 따지고 보면 같은 洞네 住民이다.

    그를 憲法裁判官으로 擇한 이는 前任 大統領이지만 所長 地名은 朴槿惠 大統領이 했다. 그는 歷史上 最初로 自身을 任命한 最高指導者의 進退를 가늠해야 하는 일을 맡았다. 게다가 그의 任期(5期 所長)는 이番 달로 마무리된다. 어떤 決定을 내리든 現代史에 빠질 수 없는 人物이 됐다.

    車에서 내리자 유난히 큰 그의 눈瞳子를 向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고개를 15度 程度 숙인 그는 쏟아지는 記者들의 質問을 뒤로한 채 빠른 발걸음으로 執務室로 向한다. 記者들도 豫想했다는 듯 더는 묻지 않는다.



    彈劾審判 3次 辯論期日 재동 風景

    午前 10時에 열린 3次 辯論의 焦點은 國政壟斷 核心인 최순실, 安鍾範, 정호성 等의 出席 與否. 카메라 記者들이 憲裁 建物 오른便에 마련된 裁判廷 入口에 줄지어 섰다. 憲裁를 象徵하는 600年 된 天然記念物 白松이 내려다보는 자리다.



    하지만 崔氏는 前날 豫告한 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安 前 大統領祕書室 政策調整首席 亦是 刑事裁判을 理由로 出席을 拒否했다. 이날의 唯一한 成果는 憲裁가 補完을 要求한 朴 大統領 側의 ‘歲月號 7時間’ 疏明資料가 全部. 하지만 이番의 解明은 ‘言論의 誤報’를 탓하는 데 集中돼 以前과 差異는 없었다.

    점잖기로 有名한 憲法裁判官들의 發言에 가시가 돋기 始作했다. 朴 所長이 砲門을 열었다.

    “앞으로는 辯論 準備 時間이 不足하다는 事由로 立證이 遲延되는 일이 없도록 留念해주십시오.”

    그는 이어 豫定에 없던 ‘特別期日’까지 잡고 다음 週 3回 裁判을 열겠다고 밝혔다. 必要하다면 强制拘引에 나설 뜻도 내비쳤다. 一般的으로 刑事裁判은 週 1回 公判을 열면 “지나치게 빠르다”는 評을 받는다. 週 3回는 憲裁에 前例가 없는 超高速 行步. 盧武鉉 前 大統領 彈劾 때도 週 1, 2回 程度였다.

    法曹界는 5期 憲裁의 任期가 事實上 ‘1月 31日’까지 라는 點을 考慮한 超强手라는 解釋을 내놓았다.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는 이番 事件의 主審을 맡은 강일원 憲法裁判官에게 쏟아졌다. 서울 出身인 그는 2012年 與野 合意로 推薦된 中道性向의 人物.

    “主審인 제가 釋明을 要求한 部分에 아직까지 (靑瓦臺 側) 答辯이 없다. 좀 답답하다.”

    ‘歲月號 7時間’ 行跡을 묻는 質問이었다. 이에 “다른 書面을 準備하느라 늦어졌다”고 答한 辯護人. 心理가 本格化된 以後 憲裁의 關心은 ‘세월호 慘事’와 關聯된 解明 確保에 全力을 쏟는 氣色이다. 政治權이 彈劾訴追案을 만드는 過程에서 ‘세월호 慘事’를 傍觀한 責任 包含 與否를 놓고 激論을 벌인 것과는 正反對 狀況인 것. 結局 서울 光化門廣場에 모인 1000萬 市民의 喊聲 德에 ‘國民의 生命과 安全을 保護하기 위한 積極的 措置가 없었다’는 理由를 憲法 違反 根據에 넣을 수 있었다.

    태블릿PC로 觸發된 최순실 게이트는 現在 法院의 判斷과 特檢 搜査가 맞물린 狀況. 時間에 쫓기는 憲裁가 刑事裁判 中인 事案의 實體的 眞實에 接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重大한 憲法 違背 行爲’와 關聯해 歲月號 慘事에 對한 袖手傍觀을 根據로 삼을 수 있음을 示唆하는 대목이다.

    彈劾訴追 審判은 一般 刑事裁判과 달리 立證 責任이 被訴追認, 卽 朴 大統領에게 있다. ‘歲月號 7時間’에 對한 解明이 不實한 것만으로도 彈劾訴追案이 引用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朴 大統領은 새해 첫날 記者懇談會를 열어 스스로를 辯護한 反面, 憲裁 出席은 外面해 嚬蹙을 샀다.

    彈劾을 最大限 늦춰야 하는 辯護人 側은 이番 裁判의 焦點을 ‘최순실 實體 論難’으로 몰아가자는 戰略이다. 辯護人은 새해 初 憲裁에 證人 37名과 태블릿__ 等 62件의 事實照會를 무더기로 申請했다.  

    하지만 江 憲法裁判官은 이날 “이 裁判은 犯罪 嫌疑를 찾아내는 刑事裁判이 아니다”라면서 “태블릿__3 爭點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番 彈劾審判 最高 하이라이트로 손꼽을 만한 場面인 셈이다.

    이 같은 發言이 오가던 무렵 憲裁 正門에서는 輿論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豫想과 달리 彈劾 贊成을 외치는 목소리는 녹색당員으로 보이는 젊은이 4~5名에 不過했다. 正門 앞을 掌握한 이들은 ‘박사모’ 會員으로 보이는 60代 以上 어르신 100餘 名. 그들이 든 손牌말에 核心 主張이 고스란히 담겼다. ‘無罪推定의 原則을 지켜라!’ ‘김대중은 연평海戰 때 蹴球 觀覽, 노무현은 颱風 올 때 演劇 觀覽, 朴槿惠는 세월호 때 官邸 勤務!’

    하지만 이들의 深刻한 表情에 비해 出勤하는 市民들의 反應은 싸늘했다. 이들이 “煽動彈劾, 源泉無效”라는 口號를 연신 提唱하자 警察이 나서 “法廷에서 辯論이 進行되고 있으니 口號 提唱은 禁止한다”고 警告한 뒤에야 潛潛해졌다. 2時間이 지나자 이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한 어르신은 “다음 辯論期日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事件番號 ‘2016헌나1’ 大統領(박근혜) 彈劾

    “우리 憲法裁判所는 大統領에 對한 彈劾審判 心理가 우리 憲政秩序에서 갖는 重且大한 意味를 잘 알고 있으며 무거운 責任을 느낍니다.”(박한철 所長 新年辭)

    5·16 軍士쿠데타로 사라졌던 憲裁는 1987年 民主抗爭으로 이뤄진 9次 改憲으로 88年 復活했다. 올해 햇數로 서른 살 ‘而立(而立)’이 됐다. 最上位法인 憲法 關聯 裁判을 總括하는 憲裁의 位相은 出帆 初期 獨立 廳舍조차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던 것과 比較하면 天壤之差다. 2014年 통합진보당 解散 決定에서도 알 수 있듯, 大法院과 位相을 나란히 하는 最高裁判所로 자리매김한 것.

    法曹界는 憲裁의 存在感이 浮刻된 事件으로 ‘2004年 盧武鉉 大統領 彈劾審判’과 ‘行政首都法 違憲審判’을 꼽는 데 異見이 없다. 이番 彈劾審判(2016헌나1)은 2004年 彈劾審判과 여러모로 比較된다. 게다가 當時 彈劾訴追를 擔當한 이가 金淇春 國會 法司委員長이었던 點도 ‘歷史의 아이러니’로 불린다. 當時 그는 “大統領 彈劾은 以前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최순실 게이트에 對한 眞實 確認이 빨라지면서 憲裁를 둘러싼 가장 큰 關心은 決定 內容보다 오히려 決定 時點에 쏠린다. 勝負는 이미 갈렸지만 언제, 누가 내릴 것인가 하는 點이다.

    2004年 彈劾 當時 憲裁 決定에 所要된 期間은 總 63日로 두 달 남짓이었다. 그사이 總選을 치러 世間에서는 “結局 輿論 눈치를 본 것”이라는 非難도 쏟아졌다. 하지만 史上 最初의 彈劾審判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解明도 뒤따랐다. 李相庚 前 憲法裁判官은 “史上 初有의 事態였기 때문에 裁判 初期 많은 時間을 (海外) 資料를 찾는 데 써야 했다”고 回顧했다.

    憲裁에 주어진 時間은 最大 180日. 그러나 주어진 時間을 充分히 活用해 6月 初까지 審判을 미룰 수는 없을 것이란 展望이 優勢하다. 當場 박한철 所長과 李貞味 憲法裁判官의 退任이 1月 31日과 3月 13日로 코앞에 다가온 데다 黃敎安 大統領 權限代行 國務總理가 새로이 裁判官을 임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國政 空白 長期化에 對한 憂慮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負擔이다. 1月 11日에는 改新敎, 佛敎, 天主敎 等 5大 宗團 宗敎人이 모여 “國政運營이 中斷되고 經濟危機와 安保危機가 同時에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며 “憲裁가 彈劾審判을 迅速히 決定해야 한다”고 促求했다.

    그러나 憲裁가 빠른 結論을 내릴 것이라고 法曹界가 豫想하는 理由는 大法院과 憲裁 間 뿌리 깊은 競爭意識 때문이다. 現在 서울中央地方法院에서 최순실 게이트 關聯 裁判이 進行 中이고, 2月 末 終了를 目標로 速度를 높이는 特檢의 搜査 內容도 言論報道를 통해 傳達되는 狀況. 法院과 特檢, 憲裁 모두 이番 事態의 키를 쥔 셈이다.

    그동안 憲裁는 最高裁判所로서 位相을 높이고자 不斷히 努力해왔다. 이미 實體가 드러난 事件에서 憲法 違反의 ‘重大性’만 따지면 되는 憲裁가 決定을 뒤로 미룰 理由가 없다는 展望이 나온다. 憲裁硏究官 出身인 한 辯護士는 “法院의 1審 判決 뒤 나오는 憲裁의 彈劾審判은 意味가 크게 退色될 것”이라며 “憲裁 處地에선 이렇게 좋은 機會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展望했다.

    지난 30年間 憲裁를 거친 수많은 先輩 憲法裁判官의 잇따른 發言도 影響을 끼칠 것이란 展望이 나온다. 송두환 前 憲法裁判官처럼 進步性向의 判事는 勿論, 中道로 分類된 金鍾大 前 憲法裁判官까지 “이番 審判은 報酬나 進步의 問題가 아니라 常識과 非常識, 愛國과 悲哀國의 問題”라며 彈劾訴追案 引用 決定에 힘을 보탤 程度. 第1號 憲裁硏究官 出身인 이석연 前 法制處長은 “早速한 結論을 못 낸다면 오히려 憲裁가 國民 抵抗의 對象이 될 수도 있다”고 警告했다.



    遲延 戰術은 얼마나 通할까

    하지만 愼重論도 없지 않다. 먼저 朴 大統領 側의 遲延 戰術이 만만치 않기 때문. 憲裁에서 19年을 硏究官으로 勤務하다 이番에 彈劾訴追 側 代理人으로 이름을 올린 이명웅 辯護士는 “憲裁는 節次的 正當性 確保가 무엇보다 重要하기 때문에 被請求人 側이 申請한 證人과 證據를 完全히 無視하기 어렵다”며 “하나하나 節次를 다 밟다 보면 國民 期待만큼 빨라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被請求人(朴 大統領) 側이 露骨的으로 遲延作戰을 쓰는 理由는 彈劾訴追案이 引用되는 瞬間 朴 大統領은 民間人 身分이 되기 때문이다. 認容 時點이 特檢 搜査 途中이라면 拘束 可能性이 높다. 憲裁 決定이 늦어지면 光化門廣場의 촛불이 줄고 친(親)박근혜 示威隊가 늘어날 수 있다는 期待도 朴 大統領 側의 遲延作戰에 힘을 실어주는 要素다.

    그러나 1月 10日 3次 辯論을 起點으로 憲裁의 行步에 加速度가 붙었음이 確認되면서 當初 豫想보다 結晶이 크게 앞당겨질 것이란 展望이 優勢해지고 있다. 3月 決定도 너무 늦고, 적어도 2月 初까지는 앞당길 수 있다는 意見이다. 이럴 境遇 4月 初 ‘벚꽃 大選’을 치를 수 있다.  

    綜合編成채널 채널A 時事프로 ‘外部者들’에 出演한 정봉주 前 議員은 “憲裁所長의 任期가 끝나기 前인 1月 안에 評議가 이뤄진다면 朴 所長의 意見이 包含될 수 있다”면서 “判決文 作成에 必要한 2週 時間을 包含하면 2月 8日 前後가 될 수도 있다”고 展望했다. 靑瓦臺 側의 不實한 答辯이 繼續되는 것 또한 ‘大義名分’을 重視하는 憲裁의 빠른 判決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分析도 나온다.



    “憲裁 없앤 아버지, 憲裁 審判받는 딸”

    2004年 彈劾審判 當時 가장 注目을 끈 것은 주선회 主審 裁判官과 盧武鉉 大統領의 惡緣이었다. 公安檢事 出身인 週 裁判官은 1987年 옥포造船所 罷業 當時 노무현 辯護士를 3者 介入 嫌疑로 拘束한 張本人이었다. 主로 保守的 判決을 내려왔기 때문에 ‘政治 判決’에 가까운 彈劾審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憂慮가 높았다.  

    그러나 數年이 흐른 뒤 公開된 彈劾訴追案 認容 少數 意見 3名 가운데 主 裁判官은 包含되지 않았다. 그가 決定을 앞두고 數次例 “冷靜하게 判斷할 것”이라고 公言한 대로 實踐한 것이다.

    事件 初期 野黨이 彈劾 決定을 躊躇했던 理由는 保守的인 憲裁 雰圍氣가 한몫했다. 公安檢事 出身인 憲裁所長은 勿論, 相當數가 保守政權에서 임명한 裁判官이기 때문이다. 實際 2014年 통합진보당 解散請求 審判에서 8 對 1이라는 壓倒的인 票差가 나왔다. 그러나 朴 所長을 잘 아는 檢察 周圍에선 “누구보다 名譽를 所重한 價値로 여기는 人物이라 理念이나 政治的 見解와 無關한 判決을 내릴 것”이라는 坪이 主를 이뤘다.

    特히 2004年과 가장 크게 달라진 環境은 모든 憲法裁判官의 立場이 義務的으로 公開된다는 點이다. 卽 少數 意見이라도 根據를 詳細히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憲法裁判官들의 負擔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盧武鉉 大統領 彈劾 棄却에 憤怒한 金淇春 當時 法司委員長의 提案으로 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法曹界에서는 “이番 彈劾審判이 憲裁 機能의 完成이자 1987年 體制의 마침標日 것”이란 分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또 朴正熙 前 大統領이 5·16 軍士쿠데타로 憲裁를 없애고 그 딸은 憲裁 審判臺에 올라선 대목은 後날 ‘歷史의 아이러니’로 敎科書에 실릴 可能性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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