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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레카미에 夫人의 肖像’|新東亞

박상희의 美術科 마음 이야기 <마지막 회="">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레카미에 夫人의 肖像’

  • 박상희|샤론精神健康硏究所 所長

    入力 2017-08-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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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前 20代의 제게 한 先輩가 물었습니다. “너는 只今 政府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니?” 先輩가 相當히 過激한 政治的 見解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저는 부담스러워 대충 對答했습니다. “글쎄요. 前 政治에 對해선 특별한 마음이 없어요. 於此彼 뽑혔으니까 부디 잘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先輩는 시니컬한 表情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政治意識이 弱하다는 건 世上에 對한 關心이 없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世上에 對한 關心이 없는 이들이 사람에 對해선 愛情이 있다고 할 때 나는 正말로 理解가 되질 않아.”

    40代가 된 只今의 저는 政治에 無關心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先輩가 한 質問에 對한 答은 如前히 잘 모르겠습니다. 政治에 對한 마음이 없다고 世上과 사람에 對한 愛情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니까요.

    政治에 對한 態度는 個人의 自由입니다. 누구든 政治에 無關心한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政治的 無關心은 오늘날 世界的인 現象이기도 합니다. 特히 젊은 世代의 境遇 이 無關心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同時에, 어떤 이들에게 政治는 뜨거운 關心을 갖게 하는 對象이기도 합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空間에서 政治는 가장 즐겨 討論되는 主題입니다.

    政治에 對한 關心은 大統領選擧나 總選과 같은 政治의 季節에 높아집니다. 特히 大統領制를 選擇한 우리나라에서 大選이 치러지면 政治는 全 國民的으로 뜨거운 關心을 모읍니다. 지난 5月에 치러진 大選도 例外가 아니었습니다. 朴槿惠 大統領 彈劾으로 치러진 早期 大選이었기 때문인지 그 熱氣는 여느 大選 때보다도 한層 뜨거웠습니다.



    革命 그린 新古典主義 畫家

    政治를 생각할 때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畫家는 프랑스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1748~1825)입니다. 다비드가 살았던 18世紀 後半과 19世紀 前半의 유럽은 ‘革命의 時代’였습니다. 1789年 프랑스大革命은 이 革命의 時代를 象徵하는 一大 事件이었습니다.

    西洋 繪畫 歷史에서 같은 時代를 살아갔지만 全혀 다른 느낌을 주는 畫家들이 있습니다. 같은 유럽이더라도 나라가 다를 境遇 그 느낌의 差異는 더욱 커집니다. 西洋 近代 繪畫에서 이런 差異의 느낌을 確然히 안겨준 畫家는 다비드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입니다.

    두 畫家는 모두 革命의 時代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다비드가 革命의 本山인 프랑스에서 活動했다면, 고야는 革命의 邊方인 스페인에서 살았습니다. 두 사람의 畫風은 달랐습니다. 다비드가 新古典主義를 이끈 畫家였다면, 고야는 浪漫主義에 가까운 畫家였습니다. 現在는 고야가 더 널리 알려졌지만, 當代에는 다비드가 더 有名했습니다. 當時 프랑스는 유럽 政治의 中心을 이뤘고, 그 政治의 意味를 畫幅에 담은 畫家가 바로 다비드였습니다.

    다비드는 新古典主義를 代表하는 畫家로 알려져 있습니다. 新古典主義는 裝飾的인 로코코에 맞서서 일어난 美術運動이자 樣式입니다. 그리스·로마로 대표되는 古代 時代의 모티프를 活用하고 構圖 및 表現에서 調和, 節制, 均衡의 美學을 重視하는 樣式이기도 하지요. 新古典主義는 프랑스大革命 前後 유럽 全域에서 일어난 고대에 對한 烈風을 反映하고 있었습니다.

    다비드의 出世作인 ‘호라티우스의 盟誓’는 新古典主義의 代表作 中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悲歎에 잠긴 家族들을 뒤로하고 戰爭에 나가는 이들의 決然한 모습은 私的 感情보다 公的 異常을 優先視하는 다비드의 問題意識을 잘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事實은 프랑스大革命의 理想을 드러낸 이 作品이 革命에 依해 犧牲된 루이 16歲의 依賴로 製作됐다는 것입니다.

    다비드는 프랑스大革命을 熱烈히 支持한 畫家였습니다. 西洋 繪畫 歷史에서 그는 어떤 畫家보다도 政治的이었습니다. 革命을 이끈 國民公議會 議員이었고, 急進派를 主導한 로베스피에르와 親分이 두터웠습니다. 大革命 時期에 그려진 다비드의 作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은 ‘마라의 죽음’(The Death of Marat·1793)입니다.


    未完成의 아름다움

    ‘레카미에 夫人의 肖像’(Portrait of Madame Recamier·1800)은 다비드의 그림 가운데 未完成 作品입니다. 只今 한 女人이 긴 椅子에 누워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畵面 構成은 매우 單純합니다. 椅子, 쿠션, 발받침, 촛臺가 全部입니다. 單純한 構圖는 女人의 아름다움을 도드라지게 합니다. 헤어밴드를 한 자연스러운 머리, 堂堂한 얼굴 表情, 자연스러운 포즈, 古代 로마風의 흰色 옷은 單純함과 品位를 追求한 新古典主義的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데 成功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군데군데 캔버스의 흰色 部分이 보일 程度로 未完成 狀態로 남아 있는 作品입니다. 다비드는 當時 프랑스 社交界를 주름잡던 레카미에 夫人으로부터 肖像畫를 依賴받았지만, 이 作品을 完成하기도 前에 夫人이 다비드 弟子에게 肖像畫를 다시 依賴함으로써 다비드는 이 作品의 製作을 中斷했습니다. 未完成임에도 不拘하고 ‘레카미에 夫人의 肖像’은 다비드가 肖像畫에도 뛰어난 畫家였음을 보여줍니다. 單純, 節制, 均衡이라는 新古典主義 以上을 效果的으로 再現함으로써 다비드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담은 肖像畫의 한 典型을 成就했습니다.

    프랑스大革命과 나폴레옹 時代를 代表하던 畫家 다비드의 末年은 幸福하지 못했다고 傳해집니다. 나폴레옹이 失脚한 後 1816年 그는 프랑스에서 追放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갔고, 10年 가까이 그곳에서 亡命 生活을 하다가 死亡했습니다. 革命의 時代에 政治的 性向이 뚜렷한 畫家로서의 삶을 追求했던 만큼 不遇한 삶의 最後는 어쩌면 自身의 選擇에 따른 結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비드가 죽고 난 後 그의 名聲도 이내 시들해졌습니다. 浪漫主義와 印象派가 큰 影響力을 行使했고 다비드 그림과 같은 新古典主義는 陳腐하고 딱딱한 樣式으로 評價됐기 때문입니다. 다비드 作品이 다시 關心을 모은 것은 第2次 世界大戰 以後였습니다. 르네상스에서 印象派에 이르는 西洋 美術의 歷史가 樣式의 變化에 따라 整理되면서 다비드는 新古典主義를 代表하는 畫家로, 美術과 政治의 關係를 劇的으로 보여준 畫家로 再評價됐습니다.



    政治的 效果 極大化한 藝術

    美術이라고 해서 政治와 無關할 수는 없습니다. 美術이 우리 삶을 反映하는 藝術의 하나라면, 그 삶의 한 部分이 政治로 이뤄진 만큼, 美術이 政治에 對해 다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直接的이든 間接的이든 美術이 政治를 다룰 때 藝術로서의 美術이 가져야 할 自律性을 喪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點을 注目할 때 다비드는 참으로 놀라운 畫家입니다. 感動의 源泉이 되는 美術의 藝術性을 損傷하지 않으면서도 美術이 가질 수 있는 政治的 效果를 極大化한 畫家라는 點에서 그렇습니다.

    早期 大選이 가져온 뜨거운 政治 烈風도 새 政府가 出帆하면서 徐徐히 잦아들고 있습니다. 政治의 季節이 지나간다고 해서 政治가 우리 視野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 政府에 對한 國民의 支持率이 80%를 넘는다고 합니다. 부디 새 政府가 任期를 다할 때까지 傷處받은 國民을 治癒해주고 삶에 對한 새로운 希望을 안겨주기를 바랍니다.





    박상희
    ● 1973年 서울 出生
    ● 이화여대 基督敎學科 文學博士,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房文學者
    ● 現 샤론精神健康硏究所 所長, JTBC ‘事件班長’ 固定 패널
    ●著書 : ‘自己對象 經驗을 통한 逆機能的 하나님 表象의 變化에 對한 硏究’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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