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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신동아

권재현의 審心中中일一언言

“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

冊 속에서 걸어나와 冊 속으로 들어간 歌手 요조

  • 글 권재현 記者|confetti@donga.com , 寫眞 지호영 記者|f3young@donga.com

    入力 2017-08-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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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說 ‘참을 수 없는 存在의 가벼움’의 男子 主人公 토마시는 바람둥이다. 그에게 人生이 一回性의 偶然이듯 사랑 또한 그러하다. 作家 밀란 쿤데라는 바람둥이엔 두 種類가 있다고 主張한다. 오로지 첫사랑의 이미지만 좇는 ‘抒情的 바람둥이’와 多多益善을 追求하는 ‘敍事的 바람둥이’다. 토마시는 後者에 屬한다. 그렇다고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는 스타일이냐 하면 또 아니다. 토마시가 魅力을 느끼는 女性에겐 한 가지 共通點이 있다. 表面의 이미지와 內面의 靈魂이 龜裂을 일으키는 存在라는.

    歌手 요조(本名 신수진·36)야말로 그런 二律背反的 魅力의 化身 아닐까. 이는 그女의 藝名에서부터 유감없이 드러난다. 只今도 많은 사람은 요조라는 이름에서 ‘窈窕淑女’의 요조(窈窕)를 떠올린다. 女性의 行動擧止가 얌전하고 貞淑해 보인다는 意味다. 이는 ‘弘大女神’이란 別名이 뒷받침하는 가냘프고 端雅한 外貌 그리고 特有의 맑고 고운 音聲과도 맞아떨어진다. 쉽게 말해 抒情的 바람둥이들이 딱 좋아할 魅力을 지녔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이름이 指稱하는 對象은 全혀 다르다. 日本 小說家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의 小說 ‘人間失格’(1948)의 主人公 오바 요조(大庭葉藏)의 요조다. 作家가 自殺하기 前 自身을 모델로 삼아 쓴 ‘人間失格’의 主人公은 窈窕淑女의 對稱點에 位置한 人物, 甚至於 男性이다. 內面의 劣等感을 견디지 못하고 至極히 頹廢的 삶을 살다가 結局 自身이 人間으로서 資格 未達이라 告白하고 삶을 마감하는 외롭고 쓸쓸한 靈魂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被害意識이 많고 自尊感이 낮은 ‘民弊 캐릭터’라는 생각에 그 이름을 藝名으로 삼았다는 게 요조의 說明이었다.

    “只今도 잘 모르세요. ‘人間失格’의 主人公 이름을 따서 요조로 活動하게 됐다고 데뷔 때부터 한 萬 番은 얘기한 것 같아요. 하지만 只今도 사람들은 窈窕淑女의 요조로 理解하죠. 그만큼 제가 人氣 歌手가 아니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요즘도 熱心히 얘기하고 다닙니다.”

    ‘窈窕淑女’라는 表面의 이미지와 ‘人間失格’이라는 內面의 初喪이 빚어내는 表裏不同한 龜裂과 緊張이야말로 요조 音樂의 始作과 끝이다. 料理 보고 條理 봐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요조를 서울 홍대 앞 북카페 北티크에서 만났다. 그는 元來는 파란色으로 물들였다는데 草綠色에 가까워져서 더욱 펑키限 느낌 물씬한 헤어스타일에 禮義 窈窕淑女 같은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亦是 요조다웠다.





    濟州道 푸른 밤으로 떠나간 女神

    올해로 데뷔 10周年을 맞은 그는 ‘홍대 女神’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一帶 變身을 試圖 中이다. 5月 中旬 發表한 3輯 앨범 ‘나는 아직도 當身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이하 ‘나亞唐弓’)와 함께 이 앨범 속 5曲 노래를 29分짜리 短篇映畫로 엮은 同名의 映畫로 映畫監督으로도 데뷔했다. 또 데뷔 以後 主要 活動 舞臺이던 홍대 앞을 떠나서 濟州島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映畫 ‘나亞唐弓’의 背景 亦是 濟州道다. 그와 함께 2015年부터 서울 北村에 運營하던 書店 ‘冊房 無事’(亡하지 말고 無事히 살아남자는 뜻의 ‘무사’)도 濟州島로 옮겨서 올가을 새로 門을 열 計劃이다.

    엄청나게 많은 變化가 同時多發的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核心은 濟州島 移住다. 서울이 故鄕인 요조는 왜 삶의 터전을 濟州로 옮겼을까.

    “너무 예뻐서요. 提州를 처음 接한 것은 20代 中盤 寫眞作家 김영갑 先生님의 寫眞集을 통해서였어요. 寫眞 속 祭主가 너무 아름다워서 提州를 처음 찾게 됐는데 以後 提州를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西歸浦에 있는 김영갑갤러리부터 들를 程度로 그분이 撮影한 濟州 風光에 푹 빠졌죠. 김영갑 作家님은 平生 濟州 風光만 찍으시다가 2005年 壘게릭 病으로 돌아가시기 直前 김영갑갤러리를 여셨는데 只今도 제가 第一 尊敬하는 寫眞作家예요. 그분을 통해 濟州의 아름다움에 눈뜬 뒤부터 쭉 濟州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룬 거죠.”

    요조에게 濟州 以前은 人生 經驗의 接點을 擴張시키겠다는 意志의 表明이기도 하다. 예전의 요조는 집도, 會社도, 술을 마시거나 映畫를 봐도 弘大 거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只今은 집은 濟州고, 서울에 있는 동안은 父母님 집에 머물고, 일터는 弘大이다 보니 이들 地點을 오가면서 行動半徑이 넓어지고 外部와 接點이 훨씬 많아졌다는 說明이다. 올해 3月까지 서울서 運營하던 ‘冊房無事’를 濟州島로 移轉해서 繼續 運營하는 理由 亦是 冊을 媒介로 그들의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作用했다.

    “제가 冊房에 있으면 冊을 推薦해달라는 손님이 正말 많아요. 冊에 對한 것도 있을 것이고, 그걸 빌미로 저랑 얘기 좀 나누고 싶다는 私心도? 있겠죠. 어쨌거나 제가 무턱대고 아무 冊이나 推薦해드릴 수 없으니까 그분에게 맞는 冊을 推薦해드리기 위해 質問을 많이 던지는 便이에요. 뭐하시는 분인지, 어떻게 왔는지, 요즘 苦悶이 있는지. 그렇게 그분들 얘기 죽 듣다가 ‘아 그러면 이런 冊이 좋겠네요’하고 推薦해드리는 거죠. 그렇게 虛心坦懷하게 이야기를 나눈 게 제 音樂 作業에 다시 靈感을 불어넣어주더라고요.”


    音樂의 妖精? 冊의 妖精!

    요조의 人生에선 冊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의 音樂 人生 뒤에 다자이 오사무의 小說이 숨어 있다면 그의 삶터 뒤엔 김영갑의 寫眞集이 숨어 있다. 또 ‘冊房無事’를 통해 最近 注目받는 個性 滿點 洞네書店 붐의 始發彈을 쏘아 올렸다.

    6月 14~18日 서울 江南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第23回 서울國際圖書展은 類例없는 觀客몰이로 話題가 됐다. 지난해 訪問客 10萬3214名의 두 倍 가까운 20萬2297名이 찾아 歷代 最多 訪問客을 記錄했다. 17日 土曜日 하루만 5萬 名이 넘게 모여 立場 制限을 해야 할 程度였다. 그 興行몰이에 弘報大使 3名의 一助도 빼놓을 수 없다. 政治人에서 作家로 轉業한 뒤 最高 人氣를 누리고 있는 柳時敏, 韓國 스릴러의 絶對强者로 떠오른 小說家 정유정 그리고 요조였다. 圖書展 곳곳에서 파란 머릿결의 요조를 만날 수 있다는 期待感으로 圖書展을 찾은 訪問客도 慇懃히 많았다.

    “저한테 弘報大使 提案을 하시면서 企劃案을 說明해주실 때부터 成功을 豫感했어요. 서울國際圖書展을 몇 年 前부터 빠지지 않고 參與해왔기에 訪問客 立場에서 正말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實際로 洞네書店의 存在感을 크게 浮刻하는 展示企劃安堵 差別化돼 좋았고, 詩人들이 讀者에게 맞는 詩를 推薦해주면 그 詩를 筆寫해보게 해주거나 冊의 좋은 文句를 選擇해 出力하게 해주는 재미있고 奇拔한 아이템이 많았어요.”

    그런 그女의 讀書量이 果然 얼마나 될까 궁금해져서 最近 읽은 冊 中에서 推薦하고픈 冊이 뭐냐고 물어봤다. 앤 카슨의 小說 ‘男便의 아름다움’과 조남주의 小說 ‘82年生 김지영’이란 答이 돌아왔다.

    캐나다의 詩人이자 神話學者人 앤 카슨의 小說에 對해선 ‘스물아홉 番의 탱고로 쓴 虛構의 에세이’라는 獨特한 副題를 言及하며 “에세이를 虛構로 쓴다는 게 可能할까, 그걸 또 어떻게 탱고로 쓴다는 거지”라는 好奇心 때문에 펼치게 됐다고 말했다. 아름다워서 사랑했던 男便이 繼續 바람을 피우다가 結局 버려지게 되는 女人의 不便한 心情을 한便으론 詩的으로 한便으론 유머 넘치게 써 내려간 獨創的 스타일에 魅了됐다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그런 걸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 不便한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재밌어하거든요.”

    ‘82年生 김지영’은 신동아의 主讀者人 40代 男性을 겨냥한 推薦書였다. 81年生인 요조는 “同時代 女性의 切切한 經驗談이라는 點에서 불에 타듯이 (冊을) 읽었다”면서 “요즘 女性들이 어떤 생각, 어떤 느낌으로 社會生活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一讀을 勸한다”고 했다.



    야누스를 닮은 音樂 世界

    요조의 音樂 世界는 두 갈래가 存在한다. 하나는 뮤즈 요조다. 데뷔 앨범 ‘내 이름은 요조’(2007)에서 始作해 다른 뮤지션에게 靈感을 준 ‘Nostalgia’와 ‘빈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고 最近 化粧品 CF송으로 脚光받는 ‘반짝이게 해’를 부르는 妖精 같은 歌手다. 다른 하나는 2輯 ‘나의 쓸모’(2013)와 이番 3輯 ‘나亞唐弓’까지 싱어송라이터로서 自身의 생각을 加減 없이 펼치는 언더그라운드 요조다.

    “1輯의 全般的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會社에서 加工했죠. 사랑스럽고 귀엽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걸로. 그런데 저도 活動을 하면서 처음엔 멋모르고 하다가 漸漸 나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고,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이런 목소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얘기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會社가 바라는 方向과 맞지 않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된 거죠. 그 때문에 意見衝突이 있다가 會社를 옮겨서 2輯을 내면서 분명한 제 色깔을 낼 수 있게 됐죠. 確實히 저라는 사람에겐 近接한 앨범이었지만 大衆的으로는 확 멀어지는 結果를 낳더라고요. 音盤 販賣量이 확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제 목소리를 必要로 하는 분들과 옛날 스타일로 作業을 하면 또 反應이 뜨거워지고요. 그래서 그 둘을 適切히 竝行해나가기로 했어요.”

    이런 요조의 音樂 世界는 1960年代 프렌치 팝의 妖精으로 불린 프랑수아즈 아르디를 聯想시킨다. 便安한 憧憬의 對象으로서 ‘이웃집 少女’의 이미지를 浮刻한 아르디의 노래는 밝고 귀엽고 산뜻함의 代名詞였다. 하지만 아르디 自身은 文學과 哲學에 心醉한 極度로 수줍음 많은 女性이었기에 大衆의 눈에 비치는 自身의 이미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런 二律背反性은 레오나드 코언, 세르주 갱스부르와 같은 뮤지션은 勿論 後날 노벨文學賞을 受賞하는 作家 파트릭 모디아爐에게도 靈感의 源泉이 된다. 이에 鼓舞된 아르디는 1970年代 들면서 自身만의 色깔 있는 音樂을 펼쳐나가며 大衆의 支持를 받게 된다.

    “前 會社에 있을 때 프랑수아즈 아르디 커버앨범을 내려는 計劃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아르디는 알아요. 제가 佛文科(京畿大) 出身이라 프랑스語 發音은 可能하니 아르디의 히트曲을 엮어서 앨범을 내자는 計劃이었는데 霧散됐어요. 하지만 아르디가 수줍음 많은 性格에 眞摯한 뮤지션이기도 했다는 건 몰랐네요.”


    妖精, 白髮과 주름을 노래하다

    요조가 自身의 正體性이 분명해졌다고 밝힌 2輯 ‘나의 쓸모’와 3輯 ‘나亞唐弓’ 사이엔 變化가 느껴진다. ‘나의 쓸모’에는 僞惡(僞惡)에 가까운 率直함으로 武裝한 채 根源的 喪失感과 疏外感을 노래한 曲이 많았다. ‘人間失格’의 主人公 요조가 내뱉을 법한 自己 幻滅과 世上에 對한 두려움과 서늘한 외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反面 ‘나亞唐弓’에선 훨씬 너그러워지고 成熟해진 요조를 만나게 된다.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에 對한 心情(‘늙음’)을 노래하거나 世上에 없는 옛 愛人과 菓子를 나눠 먹었던 애틋한 追憶(‘世上에 없는 菓子’)을 淡淡하게 吟味한다. ‘天國이든 地獄이든 상관없어요, 空港을 거쳐서 가기만 하면’(‘공항 거쳐서’)이라거나 ‘어지러워지고 싶고 장난치고 싶다’(‘장난치고 싶어’)며 뭔가에 對한 愛着을 吐露하기도 한다.

    “그런 말씀들 많이 하셔서 어리둥절하긴 해요. 20代 떄 그처럼 耽讀했던 ‘人間失格’을 30代가 되서 다시 읽었을 때 느낀 어리둥절함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20代에 그 冊을 接했을 때는 읽는 내내 온몸에 戰慄이 繼續 느껴졌어요. 요조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너무 所重하게 느껴져 똥글뱅이 쳐가며 읽을 程度였죠. 그런데 서른 살이 넘어서 다시 읽으니까 ‘내가 왜 이 冊에 이토록 사로잡혔을까’가 疑訝해지더라고요. 20代 때 오바 요조라는 사람은 너무 軟弱하고, 懦弱하고, 내가 保護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저와의 同質感이 剛하게 느꼈거든요. 서른이 넘어 다시 읽었을 때는 너무 답답하고 別로 親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다가서더라고요. 오바 요조는 그 冊案에 똑같이 봉인돼 있는 사람이고 變한 것은 나인데, 내가 그동안 어떻게 變했기에 똑같은 사람을 對하는 態度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어안이 벙벙해지더라고요.”

    妙한 答辯이었다. 한便으론 自身이 感知하지 못한 內面의 變化를 首肯하면서도 “오바 요조는 똑같이 봉인돼 있는데 그걸 읽는 사람이 바뀐 것”이라는 말로 自身의 音樂 世界의 本質的 變化가 없음을 暗示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똑같이 봉인돼 있는 요조의 音樂 世界’는 果然 무엇일까.



    왜 映畫監督이 됐을까

    요조가 演出한 短篇映畫 ‘나亞唐弓’을 보면서 얼핏 答을 찾았다. 映畫는 濟州島로 놀러온 3名의 젊은 男女가 近處에서 캠핑 中인 家族 中 唯獨 할머니 한 분만 微動도 없이 누워 있는 것을 發見하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벌어지는 騷動을 다룬다. 題目 속 잠을 자다가도 궁금한 當身은 結局 이 할머니를 뜻한다. 그런데 映畫 내내 죽은 듯 누워 있는 이 얼굴 없는 할머니를 延期한 사람은 요조 自身이다.

    ‘나亞唐弓’ 프로젝트가 겨냥한 것은 結局 ‘老化’와 ‘죽음’이라는 不便한 問題다. 그것은 ‘人間失格’의 오바 요조가 끊임없이 苦悶하던 問題이기도 하다. 結局 요조는 이番에도 우리 大衆音樂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不便한 主題를 自身만의 奇拔한 方式으로 풀어낸 것이다. (“저는 不便한 것을 재미있게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를 記憶하라.)

    그와 함께 요조가 이番 앨범을 短篇映畫 形式에 녹여낸 理由도 明快해졌다. 그는 “노래를 한 曲 한 曲 發表하는 요즘에는 過去에 앨범 單位로 發表된 뮤지션의 敍事를 좇아가는 그런 느낌을 體驗하기가 어려워서 映畫를 보면서 强制로라도 그 敍事를 體驗하게 하자는 생각에 映畫化를 構想하게 됐다”고 밝혔다. 요조가 이番 앨범에서 담아내려 한 敍事가 바로 老化와 죽음이었기에 映畫的 媒體의 힘이 더 必要했던 것 아닐까.

    이와 함께 ‘나亞唐弓’이라는 題目에 對한 궁금症도 풀렸다. 當身이 궁금하다고 했지만 정작 앨범 속 노래는 요조 自己 自身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왜 當身이 궁금하다고 한걸까. 요조는 “題目은 노래가 아니라 映畫 속 狀況 自體에 焦點을 맞췄다”고 말했다. 따라서 當身은 映畫 속 할머니이자 그가 象徵하는 老化와 죽음이다. 그런데 映畫에서 臺詞 한 마디도 없고 얼굴도 登場하지 않는 그 할머니 役을 演技한 것이 요조라는 것은 무엇을 含蓄하는가. 언제가 늙어서 죽음을 맞게 될 그 當身이 바로 요조 自身이라는 소리다. 結局 젊은 요조 自身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老化와 죽음을 앞둔 요조 自身의 이야기로 歸結되는 셈이다.
    이렇듯 요조는 이番 앨범에서도 如前히 요조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톤이나 表現 方式에서는 좀더 따뜻하고 餘裕로워진 것도 事實이다. 무엇이 요조를 변화시켰을까. 뜻밖에도 ‘冊房 無事’를 運營하며 겪은 變化라는 答이 돌아왔다.


    冊房에 앉아 人生을 배우다

    “書店을 열고 6個月 程度 됐을 때부터 後悔로 點綴된 나날을 보내야했어요. 들이닥치자마자 한 달에 얼마 버느냐고 묻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作定한 듯 짓궂은 말만 건네는 男子들은 또 어떻고요, 冊엔 조금도 關心 없이 寫眞만 잔뜩 찍고 돌아서는 사람들까지 ‘내가 人間이란 種을 過大評價하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 程度였어요. 그래도 내가 始作한 일이고 여기저기 인터뷰까지 해놓고선 이렇게 逃亡치듯 접을 순 없다 싶었죠. 書店 賃貸借 契約期間 2年만 채우고 깨끗이 접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티자는 생각만 했어요.”

    요조가 書店을 運營한다 했을 때 大部分 사람들이 떠올린 어려움 아니었을까. 그걸 요조 自身은 뒤늦게 깨닫고 땅을 치며 後悔했다고 한다. 冊 파는 일이라는 게 結局 冊을 媒介로 사람을 相對하는 서비스業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平生 經驗하지 못한 人間 群像의 다양함을 배워가는 걸 授業料로 생각하고 버텼는데 사람 때문에 생긴 厭症이 사람 때문에 治癒되는 神祕를 經驗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1年이 넘어가니까 거품이 싹 빠지더라고요.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던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正말 冊을 좋아하고 저와 冊에 對한 愛情을 나누고 싶은 단골만 남아서 너무도 기쁘고 感謝한 일들을 膳物해주시더라고요. 어떤 大學生은 PD가 되고 싶다 해서 이런저런 冊을 推薦해줬는데 2年 뒤 放送社에 붙었다며 社員證을 목에 걸고 나타난 거 있죠? 어떤 분은 戀愛를 안 한 지 오래여서 苦悶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마음에 드는 女性분이 생겼다 告白해서 제가 또 얼마나 熱心히 戀愛 코치를 해드렸는지. 그렇게 冊房 제자리에 앉은 채로 無數한 人生 스토리를 接하고 어쩔 때는 제가 거기에 살짝 介入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너무 뿌듯하고 좋았어요. 2輯과 3輯의 差異도 그런 經驗의 反映이 아닐까요.”

    濟州에 다시 ‘冊房 無事’를 準備 中인 理由도 ‘이 幸福한 經驗을 最大限 오래하고 싶다’는 요조의 바람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地獄 같은 1年을 되풀이해야 하지 않을까. 요조는 이를 覺悟하고 있다며 뜻밖의 逸話도 들려줬다. ‘冊房 無事’를 내기로 한 地域 周邊 賃貸料가 치솟는 바람에 다시 閑寂한 곳으로 옮겼다면서 “位置는 祕密”이라 했다.

    冊을 빼놓고 요조의 人生을 말할 수 있을까. 小說冊에서 걸어 나와 弘大女神이 됐고, 다시 冊房 속으로 걸어들어가 世上과 人生을 배웠으니까. 또 그 힘으로 冊을 징검다리 삼아 더 넓은 世上과 疏通을 꿈꾸며 익숙한 둥지를 떠나 좋아하던 寫眞集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늙음’이란 요조의 노래엔 이런 歌詞가 登場한다. 노래로까지 만들어 부를 만큼 싫은 것이 있는데 ‘얼굴 속 주름이 아니라/주름 속 얼굴이에요/하얀 머리칼이 아니라/머릿속 하얌이에요’라고.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주름을 근심하는 얼굴과 하얗게 텅텅 비어가는 머리가 싫다는 뜻이다. 이야말로 眞짜 ‘안티 에이징’은 讀書라는 暗示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인터뷰를 마치고 북카페를 나서면서 確認하려는 瞬間 요조는 偶然히 마주친 出版社 社長과 다시 精神없이 冊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권재현의 心中一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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