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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神話는 不動産投資 烈風이 함께 만든 結果”… “나 亦是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신동아

Interview

“거리神話는 不動産投資 烈風이 함께 만든 結果”… “나 亦是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리단길’ 神話 만든 장진우 ㈜장진우 代表

  • 宋記者 記者|ehee@donga.com

    入力 2017-07-24 15: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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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우 ㈜장진우의 代表는 서울 이태원 뒷골목 經理團길을 世上에 알린 사람이다. 一名 ‘장진우 距離’로 통하는 經理團길에서만 콘셉트와 스타일이 다른 業障을 無慮 20곳이나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어디든 그의 손길이 스치면 大舶이 나고 特色 있는 거리로 誕生한다. 經理團길을 始作으로 서울 망원동에서는 ‘芒履단길’, 光州 동명동에서는 ‘洞里단길’, 줄줄이 그의 거리로 이름 붙여지고 있다.
    科學과 便利가 疾走하는 都心의 中心에는 언제나 ‘開發’이라는 單語가 자리 잡고 있다. 또 ‘開發’이란 말의 四寸兄弟쯤 되는 ‘더 높게, 더 便利하게, 더 快適하게, 더 安全하게’ 이런 슬로건이 超大型 住商複合빌딩·超高層 아파트·最尖端 오피스 빌딩을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 터를 잡고 富者 되기를 꿈꾼다. 다 좋은데 어딘지 人間味가 不足하다. 익숙한 都市 開發의 프레임을 깨고 薰薰한 사람 냄새와 깔깔 웃음소리가 퍼져 나오는 곳이 있다. 그곳은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었다. 人跡 드물고 허름한 뒷골목, 經理團길이었다. 7月 6日 그곳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장진우(32) ㈜장진우의 代表를 서울 龍山區 梨泰院洞 그의 事務室에서 만났다.



    장진우 食堂의 誕生

    食堂은 어떻게 始作했나.
    “本來 商業寫眞家였다. 人物 電文이었고 演藝人 寫眞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 大部分이 江南에 있었고, 當然히 스튜디오가 있는 곳도 江南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술집이 활개 치는 距離 情緖가 나랑 안 맞았다. 클라이언트와 團欒酒店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생각한 게 술집 가지 말고 ‘차라리 밥을 해주자’였다. 살던 집은 너무 초라해서 누구를 招待할 수 없었고 保證金 500萬 원에 月貰 35萬 원, 5~6坪 테이블 하나 있는 미팅룸 兼 書齋, 조금 特異한 點이라면 廚房施設을 갖춘 空間을 마련한 것이다. 感覺을 發揮해 작아도 멋지게 꾸몄다. 그런 곳에서 밥을 해줬더니 오는 사람마다 맛있다고 亂離였다. 食堂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떤 飮食을 해줬나.
    “처음에는 꽁치김치찌개부터 始作해서 錢魚철에는 錢魚會무침, 멍게철에는 멍게膾덮밥, 季節에 따라 材料 되는 대로, 與件에 따라 韓食·日食·中食·이탈리아式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었다. 다들 뭘 해줘도 맛있다고 했다.”

    料理는 어디에서 배웠나.
    “나의 큰 스승은 ‘제이미 올리버’다. 네덜란드 旅行 갔을 때 都市에 反해 暫時 머물렀는데, 英語를 잘 못해 메뉴板 읽기가 힘들었다.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맛있는 飮食을 자유롭게 먹을 수가 없어 100篇도 넘는 제이미 올리버의 비디오를 보며 熱心히 따라 했다.”

    放送 본다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만의 空間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普通 사람은 자는 空間·생각하는 空間·밥 먹는 空間이 하나로 되어 있거나 或은 누군가와 함께 生活한다. 그러면 創意的 생각이 잘 發現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空間이 있으면 꼭 料理가 아니더라도 뭐든 하게 된다. 머릿속 생각이 自然스럽게 實踐으로 따른다. 空間이 무척 重要하다.”?

    언제부터 장진우 食堂이 되었나.
    “돈을 받기 始作한 것은 오픈한 後 1年 뒤부터였다. 함께 밥 먹은 知人들이 ‘軫憂 食堂 가서 밥 먹자’는 말을 자주 했고, 自然스럽게 ‘장진우 食堂’이 됐다. 그中에는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演藝人을 불러들이면서 有名해졌다. 當時에는 共有, 공효진, 김민희, 씨엘, 크리스탈 等 빅 스타級 演藝人이 每日 찾아왔다. 그때부터 一般人도 줄을 서기 始作했다. 全的으로 演藝人들 德分이었다.”



    令監은 日常에서, 實行은 빠르게

    專門 料理師가 아닌데 힘들지 않았나.
    “힘들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좋아하는 서핑이나 하며 히피처럼 살 거라고 떠났는데, 發見한 게 ‘門오리’다. 門오리는 文魚와 오리를 함께 넣고 끓인 전골料理로 tvN ‘韓食大捷’ 프로그램에도 出演한 김정호 名人이 運營하시는 食堂이다. 그분과 親해져 每日 서핑하고 食堂으로 가 料理를 배웠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門오리’를 차렸더니 이것도 亦是 大舶이 났다. 正말 뭘 해도 다 되는 時期였다.”

    아무것도 아닌 곳에 톱스타가 찾아오고, 大企業 會長, 財閥2歲, 海外 有名人이 豫約을 하고 밥을 먹고 餘興을 즐기는 곳.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겠다고 했는데도 아이디어는 죽지 않고 새 流行을 만들어내고, 熱情은 뻗치고, 感覺은 살아 있고, 젊고…. 及其也 看板 없는 작은 食堂은 그랑블루, 門오리, 京城스테이크, 防犯布車, 프랭크, 마틸다, 스핀들마켓, 이름도 다 셀 수 없을 程度로 줄줄이 늘어나 ‘장진우 師團’ ‘장진우 거리’를 만들었다.?

    새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月貰가 싸서 들어온 곳에 사람이 많이 오기 始作하니 그들에게 뭔가 다른 것을 提供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 장진우 食堂 하나 보고 왔는데 밥만 먹고 가면 아쉽지 않나. 그래서 생각했던 거다. ‘빵도 사가면 좋지 않을까’ ‘케이크 살 때 꽃을 사면 좋지 않을까’ ‘그림을 膳物할 수 있지 않을까’ ‘술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씩 늘어났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고, 令監은 어떻게 現實化되나.
    “令監은 日常에서 찾고, 實行은 무척 빠르게 이루어진다. 아내가 샐러드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런데 샐러드집이 없잖아. 하나 만들게’ 이런 式이다. 親舊들과 술 마시다가 나온 이야기가 곧바로 ‘防犯布車’로 現實化되었다. 推進 速度가 빠르다.”?

    브랜딩 能力도 卓越하다. 노하우가 있나.
    “사람들은 뭔가 잘 안 되면 빨리 접고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狀況에 ‘사이클(cycle)’로 接近한다. 只今 안 되지만 時間이 지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쳐줄 새 브랜드를 만든다. 그러면 두 個가 回轉하면서 잘 안 되는 브랜드를 받쳐준다.”


    “우리 길, 世界人 거리로 만들어야”

    뭐가 잘못된 건가.
    “젠트리피케이션 問題를 지나치게 歪曲하거나 過大 包裝한 面이 있다. 손님이 많이 와서 賣出이 오르면 當然히 月貰는 오르는 게 맞고 建物價도 올라야 한다. 稅金도 以前보다 더 많이 낸다. 거리의 價値가 오르면 建物主導 建物을 비싸게 購入한다. 오르기 前보다 10倍 높게 산 建物週도 봤다. 그렇다고 그 建物主가 賃貸料를 10倍 올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리단길 賃貸料 上昇은 1層 商街에 局限된 問題다. 그 밖의 空間 時勢는 以前과 비슷하고, 내가 아는 아티스트들은 只今도 如前히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重要한 것은 모두가 共生할 수 있는 環境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를 加害者 或은 被害者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距離에 商人이 사라지면 곧 그 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러면 사람이 오지 않고 建物의 價値도 떨어질 게 分明하다. 함께 잘살 수 있는 方法을 찾아야 한다.”

    代案이 있나.
    “젠트리피케이션 問題로만 接近해선 안 된다. 國內 人口가 줄어들어서 생긴 問題이기도 하다. 只今의 人口 構造로는 全國의 모든 距離가 다 잘될 수 없다. 經理團길만 해도 最近 急浮上한 망원동길에 많은 顧客을 잃었다. 內需로는 限界가 있다는 얘기다. 多文化를 받아들이거나 많은 觀光客을 誘致해 우리의 特色 있는 距離를 世界人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쿄都 內需 經濟의 48%가 外國人 消費라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 그中 많은 部分을 책임지고 있을 것이다. 過去 도쿄 旅行하면 신주쿠, 시부야 程度였지만, 只今은 긴자, 아오야마, 아자부柱半, 롯폰기 골목골목 깊숙이 다가가고 있지 않나. 韓國의 距離도 우리만 아는 특별한 距離가 아니라 世界人의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이 벌어 제대로 돕고 싶다”

    젊고 步幅 넓은 行步 때문이었을까. 張 代表는 한때 政治人들에게 比例代表 迎入 1順位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뿐 아니라 소셜 다이닝, 障礙人 및 移住勞動者를 위한 일자리 創出, 靑年 創業스쿨 等 社會貢獻에도 많은 活動을 하고 있다. 政治人이 되고 싶진 않지만 나라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한다는 張 代表가 꿈꾸는 나라는 나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 善循環 構造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장진우 食堂, 그랑블루, 門오리, 하는 족족 다 잘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倨慢해졌다. 그래서 周邊으로부터 辱을 많이 얻어먹었다. 잡지, 뉴스, 다큐멘터리, 모든 게 나를 集中했고 그럴수록 더 잘해야 된다는 負擔感도 있었다. 特別히 經營을 工夫한 것도 아니고, 稅務·財務 知識도 없고, 資本도 없는데 株式會社를 만들고, 그러다 보니 7年 中 2年은 正말 힘들었다. 그때 驛으로 누군가를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을 했나.
    “韓國障礙人開發院의 重症障礙人 採用 카페 ‘꿈앤카페’를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 參與해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이라는 障礙人이 만든 커피 專門店 브랜드를 만들고, 인테리어·製品 디자인 等을 全面 改造했다. 公共機關의 빈 空間에 카페를 만들어주고 障礙人을 雇用하는 것이다. 韓國腦性痲痹協會가 主管하는 ‘障礙人들이 만드는 빵의 販賣 라인 擴大’ 프로젝트에도 參與했다. 카페 ‘앵커드(Anchored)’는 障礙人들이 만든 케이크를 받아주는 條件으로 無料 컨설팅을 해준다. 窮極的으로 障礙人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提供하는 善循環 構造를 만들겠다는 構想이었다. 쌀국수집 ‘淸風호치민’도 베트남 移住 女性을 雇用하는 條件으로 無料 컨설팅을 해준다. 그 밖에도 많다.”

    結果는 어떠했나.
    “착하게 살겠다고 했더니 더 힘들어졌다. 애初의 約束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傷處도 많이 받았다. ‘아이갓에브리씽’ 같은 境遇 現在 16곳이 생겼고 賣出도 좋지만 障礙人들에게 해야 할 빵 注文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막상 해보니 社會貢獻은 正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初 바람대로 障礙人의 삶에 變化를 이끌어내려면 16곳은 턱없이 不足하고 數百 곳은 생겨야 했다. 일은 일대로 熱心히 했는데 보람차지 않았다. 社會貢獻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사이 會社는 會社대로 힘들어졌다.”

    그럼 이제 그만하는 건가.
    “그래서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른 생각을 가진 旣得權者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많이 벌어서 돈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料食業 라이선스 等級制 導入해야”

    創業스쿨은 어떤 곳인가.
    “父母 도움 없이 自手成家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도 하는데, 너도 해라’라고 自信感을 심어주고 思考方式을 바꾼다. 인테리어, 디자인, 네이밍, 브랜딩, 勞務 이슈, 稅務 이슈, 法律 이슈, CM, 마케팅, 創業에 必要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 事業은 感覺보다 數字다. 感覺에는 正答이 없지만 數字에는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數字로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무리하게 擴張하지 않고 坪數가 크지 않아도 客單價를 計算할 수 있어 손해나지 않는 장사를 할 수 있다. 2年 동안 10期를 輩出했고, 그들의 授業料를 모아 가장 성실하고 意志가 剛한 사람에게 投資도 한다. 돈 잘 버는 代表 모델은 아니지만, 創業을 希望하는 後輩들이나 大韓民國 料食業에 從事하는 사람들에게 文化를 배울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政策을 바꾸고 싶다. 장사하는 사람을 위한 善循環 構造를 만들고 싶다. 例를 들어 카페 하나를 차리려면 普通 1億 원씩 加盟費를 내야 한다. 그런 것보다 技術을 空짜로 배우고, 代身에 障礙人이 만든 케이크와 低廉한 園頭를 供給받는 式으로 누구 하나만 잘되는 構造가 아니라 모두가 도움을 받고 得이 되는 善循環 救助의 礎石을 다지고 싶다.

    또 料食業 라이선스 等級制度를 導入하면 좋겠다. 現在는 料食業 許可가 너무 쉽다. 保健證과 6時間 動映像 敎育만 받으면 된다. 그 밖의 것들은 아무것도 몰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랜차이즈가 盛行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企業이 아무리 잘해줘도 장사하는 事業主가 모르면 結局엔 亡하게 되어 있다.

    이는 靑年의 問題뿐 아니라 中壯年의 問題이기도 하다. 오픈 前 詳細히 敎育하고 라이선스를 發給하면 廢業率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 것을 프랜차이즈 企業이 아니라 國家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現實化되도록 이끌고 싶다. 外國 觀光客을 誘致하는 일도 正말 하고 싶은 일이다. 부디 나랏돈이 엉뚱하게 虛費되지 않고 價値 있게 쓰였으면 좋겠다. 眞正한 價値가 생기면 發展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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