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年 金浦國際空港 爆彈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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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浦國際空港 爆彈 테러 事件 ( 英語 : Gimpo Internatioanl Airport Bombing )은 1986年 9月 14日 金浦國際空港 廳舍 앞에서 疑問의 爆發物이 暴發하여 一家族 5名이 死亡하고 30餘 名이 重輕傷을 입은 事件이다. [1] 서울 아시안 게임 開幕을 5日 앞두고 發生하여 아시안 게임을 妨害하려는 北韓 테러 로 推測되었으나, 뚜렷한 證據는 發見되지 않았다.

事件經緯 및 調査過程 [ 編輯 ]

事件 現場을 調査한 警察은 乾電池 2個와 電氣줄, 鐵製 神官, 테이프 等 破片 30餘點을 收去했으며 테러犯이 5番과 6番 出入口의 印度와 橫斷步道 쪽으로 破片이 飛散하도록 爆破 角度를 맞춘 것으로 推定하였다. 特히 事件이 發生한 5番과 6番 出入門 사이가 空港버스 停留場과 택시 乘降場이 있어 平素에도 人波가 붐비는 데다 特히 外國人보다 韓國人들이 많은 場所라는 것을 테러犯이 計劃的으로 노리고 爆發物을 設置한 것으로 보인다.

또 爆發 後에 잿빛 煙氣가 났다는 目擊者들의 證言을 土臺로 爆發物의 種類는 콤퍼지션-4(흔히 말하는 C-4)로 暫定 確定되었다. 參考로 콤퍼지션-4는 3年 前인 1983年에 버마 에서 發生했던 北韓 所行의 테러인 아웅산 墓域 테러 事件 에서 使用된 爆發物로, 當時 民間用으로는 이 爆藥을 使用할 수 없었다는 點을 통해 當局은 이 事件도 北韓의 所行으로 斷定지었다. [2]

爆彈 테러 特性上 現場 保存이 相當히 重要하지만 當局의 對處는 매우 初步的인 水準이라 寫眞에서 보는 것과 같이 事件 發生 直後 가장 基本的인 現場 人員 統制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等 거의 패닉 狀態였으며 1986年 서울 아시안 게임 을 앞두고 大韓民國에 外國人 選手團이 몰려오는 데다 事件 發生 다음날에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國際올림픽委員會 委員長도 訪韓할 豫定이었기 때문에 當局에서는 國家 이미지 管理 床 事件 現場을 빨리 整理하는 게 急先務라고 생각하고 淸掃夫들을 불러 殘骸들을 無斷으로 치우고 現場을 淸掃해 버렸다.

이 때문에 事件 現場 保存은 失敗하였고 犯行 容疑點이 있는 內外國人의 出國을 막고 連行, 調査했으나 아무 嫌疑點을 찾지 못하였으며 千萬원의 褒賞金을 걸고 인터폴 會員國에도 搜査 協助를 要請했으나 結局 犯人은 勿論 犯行 目的도 밝혀내지 못한 체 未濟事件으로 終結되었다. [3]

結末 [ 編輯 ]

事件 發生으로부터 23年 後인 2009年 에야 이 事件의 犯人과 全貌가 드러났다. 월간조선 2009年 3月號에 아부 니달 (本名은 사브리 알 바나)을 犯人으로 指目한 記事가 실렸다. [4] 아부 니달은 팔레스타인 出身으로, 1985年 로마 空港, 빈 空港 襲擊과 1986年 팬 아메리칸 航空 73篇 拉致 事件 等을 主導했고 穩健派인 PLO 議長 야세르 아라파트의 側近까지도 서슴지 않고 죽였던 '沙漠의 毒蛇'라고 불리던 人物이다. 眞實·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는 關聯 資料들을 통해 아부 니달이 北韓의 請負를 받고 그 下手人들을 大韓民國에 潛入시켜 爆彈 테러를 일으킨 것으로 判斷했다.

外部 링크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