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 王家
(
House of Tudor
) 또는
튜더 王朝
(
Tudor dynasty
)는
잉글랜드 王國
(1485年 - 1603年)과
아일랜드 王國
(1541年 - 1603年)을 다스렸던 다섯 名의
君主
들을 輩出한 집안을 말한다. 全般的으로 튜더 出身 君主들의 統治 德分에 그前까지
유럽
의 바다 건너 弱小國이었던
잉글랜드
는 後날 世界를 席卷하게 되는
大英帝國
으로 轉換될 수 있었다. 特히 文化史 方面에서는
엘리자베스 1歲
의 治世期間은 特別히 ‘엘리자베스 王朝’라고 부르는 境遇가 많다.
下級
貴族
五言 튜더
와
헨리 5歲
의 寡婦였던
발루아의 캐서린
이 結婚함에 따라,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一躍
헨리 6歲
의 이부동福 동생이 됨과 同時에
발루아 王家
의 血統을 이어받게 됨으로써 上級 貴族의 一員이 되었다. 오언과 카트린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에드먼드
가
에드워드 3歲
의 넷째아들 랭커스터 공
곤트의 존
의 曾孫女
마거릿 보퍼트
와 結婚한 後,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헨리
는 外家의 血統에 따라
랭커스터 王家
의 王位繼承者로 認定받았다. 1483年, 보즈워스 戰鬪에서 헨리가
리처드 3歲
를 물리치고
헨리 7歲
로 卽位함으로써, 튜더 王朝가 開幕되었다.
헨리 7世는
百年戰爭
과
薔薇戰爭
으로 인해 疲弊해진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 貴族들을 抑壓하고
絶對王政
을 推進하였다. 또한 海外 進出에도 積極的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政策은
헨리 8歲
,
에드워드 6歲
,
諸人 그레이
,
메리 1歲
, 엘리자베스 1世에게 그대로 繼承되어 튜더 王家의 全盛期를 쌓아올렸으나, 엘리자베스가 後嗣 없이 逝去하자 血統이 斷絶되었다. 그래서 헨리 7歲의 피가 흐르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歲
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歲
로 卽位하여
스튜어트 王家
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아울러 統治하게 되었다.
한便, 1541年 헨리 8歲가 (表面的으로는) 아일랜드 議會의 決議案에 根據하여 아일랜드의 王(Lord of Ireland)李 되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兩國은
同君聯合
이 되었다. 單 實際로 아일랜드를 支配했던 有力 貴族들은 잉글랜드 國王을 自身들의 王으로 推戴도 대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實際로는 一方的인 詐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잉글랜드의 君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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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튜더 王家 出身으로는 總 6名의 君主가 있었다:
튜더 家門 家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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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
마거릿 보퍼트
는 1443年에 태어났다. 表의 1433年은 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