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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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구
崔一九
出生 1960年 11月 20日 ( 1960-11-20 ) (63歲)
大韓民國 京畿道 安城郡 三竹面
性別 男性
學歷 大成高等學校
慶熙大學校 國語國文學科
經歷 MBC 記者
더불어民主黨 黨務委員
職業 프리랜서 放送인 兼 트로트 歌手
前職 政治가
宗敎 無宗敎
家族 兄 1名, 누이同生 1名
賞勳 1992年 MBC 功勞賞 受賞
1995年 韓國放送協會 ‘大轉換 21’ 特別賞 受賞

최일구 (崔一九, 1960年 11月 20日 ~ )는 大韓民國의 프리랜서 放送인 兼 歌手이자 前職 뉴스 報道 記者 出身이며, 前職 文化放送 週末 《 MBC 뉴스데스크 》의 뉴스 앵커 였고 MBC 退社 後 暫時 더불어民主黨 黨務委員 等을 지냈다. 그리고 트로트 歌手로도 活動하였다.

主要 履歷 [ 編輯 ]

  • 以後 2003年 10月 11日 에서 2005年 3月 13日까지 《 MBC 뉴스데스크 》의 週末 進行을 擔當하였으며, 出演을 終了 한 뒤에는 MBC 뉴스의 홈페이지인 《아이엠뉴스》의 코너《그 뉴스》에서 1987年 부터 保管되어 온 MBC 《뉴스데스크》의 放送 映像 資料를 3 ~ 8分으로 再編輯하여 投稿하기 始作했다. [1]
  • 이를 契機로 2007年 4月 9日에 아이엠뉴스의 홈페이지 改編 때부터는 1987年 2月 3日子 뉴스부터 約 7300日 分量의 뉴스를 電擊 提供하는 '20年 뉴스'의 서비스를 本格的으로 始作하였다.
  • MBC의 프로그램 가을 改編에 따라 2010年 11月 6日부터 2012年 2月 19日까지 《 MBC 뉴스데스크 》의 週末 進行을 했으며, 以後 MBC 報道本部 次長待遇를 거쳐 MBC 報道局 副局長으로 在職하다가 MBC 罷業에 同參해 補職을 辭退했다가, 2013年 2月 退社하였다.
  • 앵커로 뉴스를 進行하는 中 獨特한 멘트를 種種 하면서 '최일구 語錄'으로도 有名하다.
  • 歌手 兼 뮤지컬俳優 柳列 前 敎授와는 서울 大成高等學校 同窓이고 政治가 윤도한 前 靑瓦臺 大統領 祕書室 國民疏通首席祕書官과는 MBC 時節 入社 動機이다.

生涯 [ 編輯 ]

어린시절과 學窓時節 [ 編輯 ]

  • 최일구는 1960年 아버지 어머니 3男妹 中 둘째로 태어났다.
  • 어린 時節 그는 女同生, 親兄과 마찬가지로 어린 時節 內省的인 아이였다.
  • 故鄕인 京畿道 安城에서 수탉에게 쫓겨서 逃亡갈 程度로 숫氣없는 애였다. [2] 初等學校때 先生님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1968年 서울로 轉學을 온 최일구. 當時 京釜高速道路가 없던 時節이었으나 버스를 타고 한나절만에 서울에 到着했다는 逸話는 有名하다.
  • 처음으로 네온사인을 보면서 놀라기도 했던 그였으나 다음날 家族 모두 煉炭가스에 中毒이 되어 호된 申告式을 치렀다고 傳해진다. [3]
  • 그리고 얼마 後 다시 아파트로 移徙를 가게 됐는데, 그것이 1970年 에 不實工事로 무너진 와우아파트 였다.
  • 곳곳에 龜裂이 發生하여 최일구는 不安한 가운데 移徙온 내내 잠을 설쳐야만 했다.
  • 그 後 記者生活을 하면서도 不實工事 事件마다 크게 憤怒한 사람이 바로 최일구였다. [4] 한便 孝心이 至極했던 아버지는 父母님을 돕기 위해 최일구를 두고 種種 시골로 내려갔고 최일구는 서울에서 지내야만 했다.
  • 電話가 없던 時節이라 최일구는 父母님과 疏通하기 위해 新聞에 便紙를 써서 父母님께 부치기도 했다. [5]
  • 최일구는 어렸을 때 歌手 아니면 作家, 記者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 某 雜誌에서 펜팔을 주고받는 시스템을 통해 최일구는 '將來希望 大統領, 趣味 모터사이클' 이라고 적어놓자 女學生들의 便紙가 殺到하기도 했다.
  • 그러나 펜팔 住所를 잘못 써 아버지에게 펜팔이 들어가는 失手를 저지르고 혼난 以後로 펜팔은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6] 歌手가 되고 싶은 熱望이 强烈했으나 高等學校 3學年 大入試驗 後 노래를 直接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고 적어놓은 <로케트를 녹여라>는 힘들었던 高3 生活과 혼란스러웠던 政治 狀況에 對한 안타까움을 담아 '로케트를 타고 太陽에 가서 우리 사는 모습을 보자, 싸우지들 말자'는 內容으로 적었다고 한다. [7] 當時 멜로디 없이 歌詞만 남아있었으나 本格的으로 錄音을 하기 위해 쌍문동 스튜디오에서 컴퓨터로 曲을 만들고 노래를 더빙한 逸話는 有名하다. 大學校에 들어간 後, 新入生 長技자랑이 있었는데 當時 學徒 護國團 (總學生會) 主催로 豫審을 받고 <로케트를 녹여라>를 불러 大賞을 受賞해 많은 親舊들을 사귀는 契機를 만들었다. [8] 그 後 컬러링 等 音源 收入이 꽤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최일구는 結局 2006年 音源著作權協會에 音源을 登錄했다. [9]

高等學校 時節 최일구는 머리를 짧게 자른 後 도시락을 2個씩 싸서 다니며 熱心히 工夫했으나 가슴 痛症으로 病院에 가보니 허파에 물이 차 있는 肋膜炎 診斷을 받고 工夫를 하지 말라는 醫師의 助言을 받아 休學屆를 내고 여름을 보냈다. 多幸히 健康이 回復되어 다시 大入 工夫를 始作했다. 物理·化學·數學은 抛棄하고 國語·英語만 集中的으로 攻掠해 慶熙大學校 國語國文學科에 入學했다. 大學生이 된 최일구는 2年間 無條件 놀고 軍隊를 갔다 온 後 남은 大學校 2年間 言論社 入社 工夫를 하자는 戰略을 세워, 多幸히 成功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記者 [ 編輯 ]

  • 放送記者는 말도 잘해야 하고 英語도 잘해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新聞社 入社 計劃을 세웠다.
  • 그러나 모든 新聞社 入社에 失敗하고 마지막으로 MBC 入社에 成功했다.
  • 後날 최일구는 自身을 25年間 먹여 살려준 MBC에 感謝한다고 말했다고 傳해진다. [10]


  • 1985年 記者로 MBC에 移轉 하여 바뀌고 修習記者로 入社하여 4年間 警察署 出入記者로 活動했다. [11] 최일구의 故鄕에서 내내 잔치를 벌일 程度로 期待가 컸으며 최일구 自身도 꿈을 이뤘다는 것에 대견해했다.
  • 그러나 警察서 出入記者 生活은 쉽지 않았다.
  • 1985年 최일구는 1960年 生 同甲내기 아내와 結婚하여 膝下에 2男 1女를 두었다.
  •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많았던 탓에 軍隊보다 힘들다고 생각했다.
  • 警察記者는 새벽 4時에 일어나 6時에 狀況報告를 해야 할 程度로 무시무시했다. [12] 特種 取材 競爭이 特히 甚한것은 夜間이었다. 言論社들은 各各 取材 車輛으로 移動하는데 한 車輛이 中間에 없어지면 競爭社 記者들이 特種 取材를 간 걸로 생각하고 緊張하기도 했다. 최일구는 單獨 特種 報道를 할 때가 가장 氣分이 좋다고 말했었다. [13] 그러나 아깝게 特種을 놓친 境遇도 있었는데 代表的으로 김만철 一家 脫北 事件 이었다. 當時 政府는 保護 處所를 마련해 두었고 記者들은 김만철 家族이 어디서 묵는지를 取材하기 위해 競爭을 벌였다. 他社보다 確實한 映像을 確保했다는 勝利感에 陶醉한 최일구는 그러나 競爭 放送社에 김만철의 누나가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氣怯했다. 알고보니 서울에 김만철의 누나가 生存해 있던 것이었다. 提報者는 MBC에 먼저 電話를 해 "김만철 누나 生存해 있다"고 提報했으나 MBC 職員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끊어버려 特種을 놓친 것이었다. 최일구는 當時 報道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14]


최일구는 以後 《 MBC 뉴스데스크 》 카메라 出動으로 活動했고, 1992年 韓國 放送史上 最初로 서울 夜景을 取材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4年 2月에 始作한 2580 草創期 記者로도 活動했다. 代表的인 報道로 忠南 保寧 西海 앞바다 食人 상어 取材가 있다. 食人 상어가 出沒했다는 提報를 받고 내려갔는데 上部에서 상어를 잡으라는 指示가 내려와 保寧의 專門 潛水夫 聯合을 涉外하고 水中카메라까지 動員했다. 상어를 誘引하기 위해 돼지피를 利用했으나 끝내 食人상어는 出沒하지 않았고 近處 漁民들을 取材하고 水中取材를 하는데 그쳤으나 29.5%의 視聽率을 올리며 人氣를 끌었다. [15]

가장 危險했던 取材는 1987年 6月 抗爭 이었다. 事件 記者였던 최일구는 大統領을 直選으로 뽑아보자는 國民들의 民主化 要求에 注目했다. 特히 1987年 6月 10日 午後 6時에 모든 車輛들이 警笛을 울리는 示威도 橫行했다. 催淚彈 攻防이 오가던 中 大多數 示威隊가 明洞聖堂으로 避해 長期 籠城에 들어갔다가 열흘쯤 지나 解産하는 날, 모든 取材를 마쳤음에도 제대로 報道가 안될 程度로 言論 統制가 甚했고 최일구는 이에 對해 부끄럽다고 뇌까렸다. 車輛이 毁損되어 取材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6]

최일구가 取材한 內容中에 가장 影響力이 컸던 報道는 1996年 당산철교 不實工事 報道였다. 聖水大橋 崩壞 事故 以後 당산철교가 問題가 있다는 內容이 많이 報道가 되었으나 최일구는 非破壞 檢査를 해보기로 計劃하고 밤에 다리에 올라가 無慮 100군데 넘게 龜裂이 發生한 것을 確認했다. 以後 言論社들의 後續 取材가 이어졌고 再工事에 着手하게 되는 結實을 맺었다는 逸話는 有名하다. [17]

앵커 [ 編輯 ]

최일구는 記者 生活을 하면서도 앵커를 꿈꿨다. 記者가 放送을 하다보면 리포팅을 하거나 中繼할 때 잘하는지 못하는지 評判이 쌓이게 되며 그것이 나중에 앵커 오디션에서 肯定的인 點數를 받게 되어 앵커가 된다. 최일구는 목소리가 좋은 앵커가 좋은 앵커라고 말한다. 2003年 社會部에서 事件 데스크를 하고 있던 최일구에게 報道局長이 週末 앵커를 提案하고 [18] 오디션을 거쳐 2003年 10月 11日부터 2004年 10月 3日까지 최윤영 아나운서와 함께 週末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고, 2004年 10月 9日부터 2005年 3月 13日까지 박혜진 아나운서와 함께 週末 《뉴스데스크》앵커를 맡았다. 최일구는 自身의 목소리가 別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信賴가 가는 목소리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19] 그러나 앵커가 되어 첫 뉴스를 進行하는 날부터 盧武鉉 前 大統領이 再信任을 묻겠다는 宣言을 하면서 한 時間 特輯으로 進行되어 최일구는 크게 緊張했다. 9時 正刻이 되면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放送이 始作되는데 이 불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아 제때 始作을 못하거나 말을 隨時로 더듬는 等 失手를 저질렀다. [20] 2005年까지 앵커를 하다가 다시 報道國들로 들어가서 生活하던 中 2010年 11月 6日부터 2011年 4月 3日까지 裵賢鎭 아나운서와 함께 進行했고, 2011年 4月 9日부터 2012年 1月 22日까지 문지애 아나운서와 함께 進行했고, 2012年 2月까지 다시 週末 《뉴스데스크》 進行을 맡았다. 週末 《뉴스데스크》에서는 최일구가 直接 出動하여 現場 體驗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21]

최일구는 앵커 멘트에 對해 짧고, 쉽고, 共感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CNN 뉴스처럼 좀 더 自由롭게 進行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22] 뉴스가 딱딱하다고 느꼈던 최일구는 對話하는 것처럼 뉴스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여 "~君요"라는 獨特한 말套와, 멘트를 탄생시켰고 '최일구 語錄'이 나오기도 했다. [23] [24] 모든 멘트는 事前에 臺本으로 만들어놓고 進行하며 애드리브는 하지 않는다. [25] 여러 가지 語錄에 對해 "너무 가볍지 않느냐", "장난하는 것 같다"는 指摘을 받기도 했다. [26]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가 進行하는 뉴스데스크는 "藝能데스크"라는 別名을 얻기도 했다.

MBC 罷業과 退社 [ 編輯 ]

2012年 2月 MBC 罷業 直後 罷業에 參與하기 위해 副局長 補職辭退와 週末 MBC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自進 下車하였다. 罷業 參與 理由로 停職 3個月의 懲戒를 받았고, 懲戒가 풀린 後 補職을 받지 못해 2012年 10月 MBC아카데미 敎育發令을 받아 3個月 동안 敎育을 받았고, 敎育 終了後 敎育發令이 3個月 延長되었다. MBC아카데미 敎育을 받는 途中 2013年 2月 MBC에 辭職書를 提出하고 退社를 하였다. 退社 直後 SNL 코리아 製作陣의 積極的인 說得에 2013年 4月 tvN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進行者로 放送에 復歸하였다. 하지만 tvN 의 某企業 四柱가 非理에 連累되어 事前 錄畫된 '최일구의 끝장討論'李 不放되었고, 2013年 8月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進行者에서 下車하였다. 2017年 9月 2日부터 MBN 뉴스 8 週末 앵커로 5年 7個月만에 뉴스 앵커로 復歸했고( 정아영 아나운서와 함께 進行), 2017年 10月 23日부터 TBS 交通放送 의 가을철 프로그램 改編으로 TBS FM(首都圈 FM 95.1MHz) 月~金 낮 2時6分~4時 土~일 낮 2時~4時까지 放送하는 허리케인 라디오를 進行하고 있다.



MBC 報道局 記者 勤務 時節 當時 主要 語錄 [ 編輯 ]

  • 龜尾 現金車輛 奪取 事件 속보입니다. 容疑者는 緻密하게 犯行을 準備했지만 虛點이 많습니다. 얼굴까지 公開된 마당인데 이 報道 보고 나서 웬만하면 그냥 自首하시죠!
  • 日帝 時代 軍 慰安婦 强制徵集에 對해서 日本 政府는 政府가 介入한 게 아니라고 우겨왔습니다. 記錄이 없었기 때문인데 드디어 그 公式文書를 찾아냈습니다. 日本 사람들 말이죠, 우길 걸 우겨야죠.
  • MP3 플레이어 宗主國 우리라는 거 다 아시죠? 그런데 우리 벤처企業의 獨舞臺에 갑자기 最强者 애플이 新武器를 들고 나타났네요? 다윗 우리 벤처와 골리앗 애플의 싸움인데, 結局 우리가 이길겁니다.
  • 돈을 주고 2千餘名의 入黨願書를 받은 政黨人들이 拘束되었습니다. 1億원을 뿌렸다는데, 그렇게 돈 選擧를 하지말자고 했는데도 所用이 없군요.
  • 오늘은 기름값 안 아꼈습니다.
  • 모범택시 運轉者들은 그러나 自身들의 收入이 個人택시보다 決코 많지 않다고 말하며, 營業이 안돼 울相인 이들은 지난달 末 끝난 93年分 綜合所得稅 自進申告에서 15萬원에서 最高 30餘 萬원까지 平均 22萬원의 稅金을 賦課 받았습니다.
  • 生사람 잡기식 暴露戰의 結果인데, 이제, 이런 慣行 自制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日本은 우리나라보다 더 덥습니다. 그래서 只今 日本 거리가 亂場판입니다. 툭 하면 싸움하고 술 醉해 쓰러지고 日本 사람들 아마 더위 먹었나 봐요.
  • 一部 觀光버스 會社들이 運轉技士들에게 賃金을 한 푼도 안 주고 있어요? 代身 손님에게 팁을 알아서 챙겨서 살란 얘긴데, 이러다보니 버스에 노래房 設置하는 式의 脫法 行爲가 助長되고, 乘客 安全도 威脅받고있습니다.
  • 왜 보일러에 기름 떨어져서 配達시키면 量이 많나만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 爆發이나 火災 危險이 높은 假짜 燈油가 많다는군요? 消費者들은 區別할 수가 없습니다. 當局의 團束이 時急합니다.
  • KT가 精液 料金制라는걸 實施하죠? 그런데 加入者 同意 없이 實施해서 不當한 電話料金을 받은 境遇가 많습니다. 名色이 國家機關 通信事業者인데 慇懃슬쩍 바가지나 씌우고 있군요.
  • 修能 不正 事件을 보면서 어쩌다 우리 敎育이 이렇게 되었을까? 안타까우시죠?
  • 來年부터 各種 稅金이 늘어난다니 걱정입니다. 苛斂誅求라고 나라가 稅金을 많이 걷어서 百姓을 들들 볶는다는 말이 맴도는 밤입니다.
  • 來日 午後 2時 汝矣島 牧場에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 말 한마디로 千兩빚을 갚았군요.
  •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에 數百億원짜리 테마파크가 생겼군요? 그런데 이 놀이施設 工事費를 둘러싸고 숱한 疑惑이 提起됩니다. 강원랜드는 公共部門의 51%의 株式을 갖고있는 業體인데 말이죠.
  • 前에는 一旦 分讓만 받으면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옛날 얘기가 되었군요.
  • 映畫 올드보이가 조금 前 끝난 大韓民國 映畫對象에서 다섯個 部門을 席卷했습니다. 主人公 최민식 氏, 映畫 속에서 군饅頭 참 많이 먹더니 오늘 男優主演賞을 거머쥐었군요.
  • 國政監査 때 政府機關이 國會의 各種 資料 提出하지 않습니까? 印刷費만 40億이 넘어서 온라인 시스템을 設置했는데, 이거 쓰는 議員들이 別로 없다네요? 國會議員님들 月曜日날 出勤해서 使用法부터 반드시 배우시기 바랍니다. 經濟도 어려운데, 印刷費라도 건져야되는 거 아닙니까?
  • 政府와 與黨이 減稅方案을 電擊 發表하지 않았습니까? 當初엔 減稅方案을 反對했다가 結局에는 贊成으로 바꾼거죠. 그래서 記者들이 왜 오락가락하냐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說明도 안 해준답니다.
  • 北韓 核問題는 6者會談을 통한 對話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進展없이 漂流할 可能性이 높아보인다는군요? 워싱턴 崔明吉 特派員이 明快한 解說로 6者會談을 展望해드립니다.
  • 어제는 各種 稅金 오른다고 했는데 오늘은 庶民物價가 또 오른다는군요. 汝矣島 牧場 牧童들이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알고나 있으면서 싸우는 지 모르겠습니다.
  • 中國사람들 말이죠. 只今 2008年 올림픽 準備한다고 亂離인데, 이웃인 우리를 將棋板에 卒 取扱하면서 人類和合 行事를 치르겠다니, 어이가 없군요!
  • 只今까지는 法曹界 議員 出身들이 反對해왔거든요? 글쎄, 17代 國會議員들은 잘 하겠다고 盟誓했으니까 두고볼까요?
  • 살면서 우리가 해야할 말은 "힘을 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正말 힘이 납니다. 여러분! 正말 힘 내십시오!
  • 只今 陸地에서는 눈구경하기 어려운데 漢拏山은 온통 눈밭이라네요?
  • 西海岸 特産物인 꽃게는 맛이 좋아서 人氣가 좋은데 비싼 게 欠이죠? 그래서 여러 次例 樣式을 試圖했지만 失敗했는데, 國內 한 硏究所가 養殖場을 開發해서 成功段階에 이르렀습니다. 德分에 꽃게 값도 싸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강철 靑瓦臺 市民 社會首席이 지율스님의 斷食과 關聯해 오늘 한마디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國策事業이 이런 일로 자꾸 坐礁되면 國民 稅金이 浪費된다고 말이죠.
  • 얼짱, 몸짱, 結局 外貌에 對한 關心이 높은 것을 反映하는 말들이죠? 그런데 反對로, 얼굴이 꽝이라는 뜻의 얼꽝 사이트가 챙겼습니다. "못 생겨서 罪悚합니다"라는 過去 우스갯 소리가 생각나는군요.
  • 요즘 펜션이 流行아닙니까? 이 펜션 團地들이 首都圈 食水原인 팔당호 周邊을 威脅하고 있습니다. 開發業者들이 便法으로 하다보니까 團束도 어렵구요. 該當 自治團體 公務員들께선 이 뉴스 보시고 來日 現場 살펴보셔야겠습니다.
  • 설날 福笊籬 販賣를 놓고 언짢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不遇이웃돕기나 障礙人團體를 詐稱해서 福笊籬를 비싸게 파는 것이 많거든요? 이건 福笊籬가 아니라 不條理죠!
  • 訓鍊所 人糞事件으로 郡內 苛酷行爲까지 없애겠다는 對策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苛酷行爲와 關聯된 士兵의 死亡事件이 發生했습니다.
  • 서울市 公務員들이 두 倍나 많은 過怠料를 걷은 事實을 報道해드렸죠? 이명박 서울市長은 卽時 返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當然히 그래야죠. 全國의 다른 市場 郡守님들도 過怠料 더 걷은 것 없는 지 確認해보시기 바랍니다.
  • 軍隊 안 가려고 數千萬원씩 쓰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軍生活, 勿論 힘들죠? 그러나 健康해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人生經驗을 할 수 있습니다.
  • 假짜 覆盆子株를 製造 販賣한 業體가 摘發됐군요? 美國 블랙베리 原液을 섞은건데 예전에는 靑瓦臺에도 納品했답니다. 그러나 이젠 摘發된만큼 이番 설에는 假짜 없겠죠?
  • 5月부터 위變造가 不可能한 새 旅券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나라도 아니고 日本 技術이 使用됩니다. 政府 支援으로 新技術 認定을 받은 우리 技術도 있는데 말이죠? 外交部도 理由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뜻 理解는 안되는군요.
  • 美國이름 케빈 나. 나상욱 選手가 오늘 큰 일을 해냈군요. 美國의 골프 英雄 筆 니켈슨에 이어 2位를 차지했습니다.
  • 억억 소리에, 億丈이 무너지는 한 週였습니다.
  • 美國에 한 番 入國하려면 왜 매우 까다롭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술 더떠 오는 5日부터는 入國 首席이 더 强化된다고 합니다. 이러자 브라질이 美國人들만 어렵게 入國하게 하는 맞對應 空港 檢索에 나섰는데, 쌈바춤의 나라답다고 해야되나요?
  • 왜 같은 나이라 해도 더 늙어보이는 境遇가 있지 않습니까? (中略) 來日부터 運動 해야겠습니다.
  • 加入하지 않았는데도 携帶電話 料金이 청구되는 境遇가 있습니다. 販賣店들이 이름을 훔쳐서 加入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移動通信業體들 말이죠. 每日같이 黃金알을 낳으면서도 배가 고픈 模樣입니다.
  • 다양한 再活用品 아이디어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낡은 雨傘과 도마도(토마토). 名人의 손길이 닿으면 새 物件으로 變합니다. 마이더스의 손이 부럽지 않군요.
  • 自身이 쓴 글씨도 못 알아보고 있는 境遇가 생기고 있다는 君요.
  • 國會議員들 中에 富者들이 많더라구요. 근데 株式富者는 財經위에, 땅富者는 建交委에 所屬되다 보니까 議政活動에 透明性 論難이 일고 있습니다. 財産 많은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닙니다.
  • 여름과 恐怖映畫는 찰떡宮合이죠? 이 恐怖映畫를 보다 무섭게 볼 수 있는 鑑賞法이 있답니다. 이 方法을 쓰면 아무리 배짱 좋아도 끝까지 보기 어렵다네요? 어떻게 하는 건지 김성욱 記事의 報道 함께 보시겠습니다.
  • 國內 景氣도 免稅店같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 우리나라에 世界的 稀貴種인 고니 도룡농이 棲息한다네요? 옛날 地域名稱을 쓴 이름으로 반가운 消息인데 問題는 棲息地에 原電이 들어선다는 겁니다.
  • 白沙場이 사라지는 海水浴場들이 많습니다. 擁壁 때문에 모래가 쓸려나가고 있다는 거에요? 自然의 攝理를 콘크리트로 막은 結果인데 白沙場 없는 海水浴場, 허무호 記者가 告發합니다.
  • 한밤中 택시에서는 紙幣識別이 어렵지 않습니까? 이걸 노리고 前職 택시技士가 萬원券 僞幣를 낸 뒤에 거스름돈을 챙기다 잡혔네요? 가뜩이나 택시技士들 營業 안돼서 울相인데 말이죠.
  • 땡볕 더위에 車에 태우면 卽席 사우나 아닙니까?
  • 더우니까 어릴 적에 매미 소리 들으면서 寶物섬 읽던 생각납니다.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 放學 中에 좋은 冊 많이 읽으세요. 冊을 읽는 건 꿈을 먹는겁니다.
  • 쓰레기 버리는 場面을 撮影해 돈을 버는 一名 '쓰파라치'들에게만 昨年에 200億원이 넘게 支給됐다네요? 그렇다고 不法 쓰레기가 줄은 것도 아니면서 쓰파라치만 橫在하는 빚 좋은 개살구같은 褒賞制度. 손질이 必要합니다.
  • 一部 PC房, 노래房의 스프링클러가 天障 裝飾品이라면 어쩌죠? 불 나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먹통입니다.
  • 國內 感氣藥처럼 只今 美國에서는 憂鬱症 治療劑 波動이 생겼네요? 이 憂鬱症 治療劑를 먹은 靑少年들이 自殺 衝動을 두 倍 以上 느낀다는겁니다.
  • 淨化槽는 數十톤의 汚廢水 壓力을 견디도록 만들어야합니다. 그래서 琉璃 纖維를 써야하는데, 異物質을 섞는다네요? 땅 속에 묻힌다고 엉터리로 만들면 안되죠.
  • 우리 海軍은 最近 눈부신 成長 속에 國內 技術로 乾燥하게 될 꿈의 戰艦 이지스艦도 保有하게 됩니다. 周邊國보다는 그러나 아직 가난합니다. 李舜臣 將軍도 어려운 形便 속에서 거북船 만드느라 苦生하셨겠죠? 그래도 힘들여서 海軍力을 키워놓은 德에 倭軍을 물리친 것 아닙니까? 新年企劃 大型海軍. 只今부터 李舜臣 提督의 後裔들을 만나보시죠.
  • 마침 李舜臣 將軍도 뒤에서 大洋海軍 뉴스를 흐뭇하게 보셨을 겁니다.
  • 稅金도 안 내고 아파트를 投機하려 한다면 곤란하겠죠?
  • 食中毒은 여름철 不請客이죠? 이 食中毒 菌을 잡는 新物質이 開發됐습니다. 뿌리기만 하면 된다는데 어떤 것인지 한 番 보시죠.
  • 高齡化 社會에 맞춰서 建設業體들이 실버 아파트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5億, 8億 짜리들입니다. 그러니 뭐 庶民들에게는 그림의 떡 아니겠습니까?
  • 送電線路 建設을 위해서 環境評價를 했는데 野生動物이 없는 걸로 나왔거든요? 그런데 實際로 水獺이 살고 있는 겁니다. 엉터리 評價들 때문에 水獺들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 홍도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섬 自體가 天然記念物입니다. 그러나 只今의 홍도는 쓰레기와 汚廢水로 汚染되고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紅島가 울고 있습니다.
  • 우리가 내놓은 戰略이 南北共同對應이라는 거 잘 아시죠? 그러나 정작 北韓은 抗議도 못하고 있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입만 열면 '主體'를 외치는 김정일 委員長이 이럴 때 한 마디 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 女性 接待婦까지 雇用해 洋酒도 팔면서 룸싸롱式 營業을 하는 不法 노래房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團束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理由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오상우 記者의 報道를 보시면 알게됩니다.
  • 네, 앞뒤가 다른 行政인 것 같습니다.
  • 가게에서 손님에게 空짜로 비닐封套 흔히 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一回用品 申告 褒賞金制가 施行된 以後에 事情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몇 푼 안되는 封套 空짜로 줬다가 專門 申告꾼에게 줬다가 狼狽를 보기 일쑵니다.
  • 이제 避暑도 끝나가고 來日은 末伏입니다. 來日 한 番만 더 엎드리면 올해 暴炎도 한 풀 꺾이겠죠?
  • 全國에 警察官들 苦生 많이 하시는 건 알지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再發되어서는 안 됩니다.
  • 네, 7號 颱風 민들레가 홀씨가 돼서 消滅됐습니다. 다음 颱風도 薔薇, 菊花, 채송화 이렇게 꽃으로 이름지으면 中間에 없어지지 않을까요?”
  • 安東의 이마댐 汚染이 深刻합니다. 온통 흙湯물이고 알루미늄도 含有되 있다는군요. 이러니 食水는커녕 工場稼動에 必要한 물로도 맞지 않답니다.
  • 映畫監督, 小說家. 이런것들은 成人들의 몫이었죠? 이런 일에 10代 靑少年들이 당차게 挑戰하고 있습니다. 孔子님도 15살에 學問의 뜻을 두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네, 이렇게 더울 때는 冷麵이 最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一部 冷麵집 肉水에서 食中毒菌이 檢出됐습니다.
  • 그래도 저는 冷麵 먹겠습니다.
  • 航空機에 爆發物이 실려있다는 電話가 또왔습니다. 장난電話였는데요. 航空機 相對로 장난電話하면 큰일나니까 장난電話하지 마세요. 懲役 3年입니다.
  • 17代 當選者들은 오늘 하루 거리로 나가서 當選謝禮를 했습니다. 有權者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希望을 주는 政治 좀 해달라고 要求했습니다. 299名 當選者 여러분들, 제발 이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農事 누가 짓습니까?
  • 네, ○○電子 壓力밥솥이 最近 全國에서 펑펑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問題의 製品 5000餘臺 以上이 아직도 全國의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거든요. 爆發 事故 危險이 매우 높습니다. ○○ 밥솥 쓰시는 분들 只今 當場 모델 確認해서 빨리 바꾸시고 5萬원도 받아가세요.
  • 저는 이름이 數字로 되어 있으니 萬年 19歲로 살아야겠습니다.
  • 汝矣島 牧場의 카우보이들이 牧場 떠났다고 지난週에 말씀드렸잖습니까?
  • 牧童으로 취직시켜준 우리 國民들을 우습게 아는가보죠 뭐.
  • 李舜臣 將軍은 生前에 나라를 위한 一念 하나로 살았다고 합니다.
  • 外信보니까 朝總聯은 설날 2千名의 北韓 應援團에게 붉은 色 옷을 입게 한다고 그럽니다.
  • 권순표 記者. 까르페디엠입니다.
  • 저는 말레이곰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말레이곰 자꾸 도망가지 말레이~
  • 靑春 여러분!!! 人生 뭐 있습니까? 傳貰 아니면 月貰죠!!!
  • 來日은 제가 "잘 못~듣겠는데요~"하는 심형래 氏를 인터뷰하러 갑니다.
  • 인터넷 到泊하다 짜고 치는 詐欺에 속아 巨額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보처럼 잃기만 한다고 被害者를 俗稱 '짱구'로 부르는데요. 질 수밖에 없는 짱구들은 이러다가 노름에 中毒되고 맙니다. '오징어는 말려도 짱구는 못말려'입니다.

최일구는 記者들 사이에서 選好度가 높은 政治部長이나 特派員같은 一名 엘리트 記者 코스를 다닌것도 아니었다. [27] 하지만 최일구는 다른사람이 알아봐주지 않아도 自己 할 일을 最善을 다한다는 信念아래 일을 해왔다고 自負한다. 최일구는 隱退 後 7080 世代들과 疏通하며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19]

主要 經歷 [ 編輯 ]

  • 1984年 1月 KBS 晋州放送局 地域 아나운서 첫 데뷔 하였다.
  • 1985年  : 文化放送 入社 以前 하여 바뀌고 데뷔
  • 1985年 12月  : 문화방송 報道局 社會部 記者
  • 1990年  : 문화방송 報道局 社會2部 記者
  • 1997年  : 문화방송 報道局 經濟部 記者, 勞動組合 報道局 副委員長
  • 1998年  : 문화방송 報道局 政治部 記者(總理室 出入 記者)
  • 1999年  : 문화방송 報道局 情報科學部 IT 擔當 次長
  • 2003年  : 문화방송 報道局 社會1部 部長待遇
  • 2006年 : 문화방송 報道局 뉴미디어에디터
  • 2010年 ~ 2012年 : 문화방송 報道製作局 副局長, 스포츠取材팀 팀長
  • 2010年 : 《 MBC 뉴스와 經濟 》 앵커
  • 2003年 ~ 2005年(첫進行), 2010年 ~ 2012年(재進行) : 《 MBC 뉴스데스크 》 週末 앵커 (2番 以上 첫재進行 包含)
  • 2013年 2月 8日 : MBC 報道局 退社(프리랜서 宣言)
  • 2013年 : tvN SNL 코리아 》 ‘위켄드 업데이트’ 앵커
  • 2016年 : TV조선 《B級 뉴스쇼 짠》 앵커
  • 2017年 : 더불어民主黨 미디어行政特報委員
  • 2017年 9月 2日 ~ 2022年 6月 5日 : 《MBN 뉴스 8》(現 MBN 뉴스 7) 週末 앵커
  • 2017年 10月 23日 ~ 2024年 3月 17日 : TBS 交通放送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 進行者
  • 2021年 4月 12日 : 아침마당 出演 (8859回 <그들의 受賞한 二重生活> 出演)

受賞 經歷 [ 編輯 ]


其他 活動 [ 編輯 ]

  • 2005年 音源 <로케트를 녹여라> (作詞·作曲·노래 최일구)
  • 2006年 映畫 《 怪物 》 아나운서로 까메오 出演
  • 2013年 CF 아모레퍼시픽 프리메라 미라클 씨드 에센스 ( 안영미 , 권혁수 와 함께 出演)
  • 2015年 映畫 《 스물 》 앵커로 까메오 出演
  • 2016年 映畫 《 판도라 》에서 아나운서로 까메오 出演
  • 2017年 音源 <人生 뭐 있니>

學歷 [ 編輯 ]

各州 [ 編輯 ]

  1. MBC 최일구 前 앵커,話題의 옛뉴스 인터넷에 올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國民日報 》 2005年 9月 21日
  2. 깨방정 최일구 앵커 "와우아파트 記憶, 不實工事만 보면 눈 뒤집혀 이뉴스투데이 2011年 7月
  3. 최일구, 9살 華麗한 서울上京 不拘 煉炭가스 中毒된 事緣 뉴스엔 2011年 7月
  4. 최일구 앵커 “와우 아파트 居住…무너질까 밤 설쳐” 每日經濟 2011年 7月
  5. 최일구 어릴적 아버지와 나눈 新聞便紙 追憶에 結局 ‘눈물’ 뉴스엔 2011年 7月
  6. 최일구 앵커 "아버지께 러브레터 보냈다"…폭소 엑스포츠뉴스 2011年 7月
  7. 유세윤 “최일구의 ‘로케트를 녹여라’ UV보다 한手 위” 讚辭 TV리포트 2011年 7月
  8. 최일구 앵커 自作曲 ‘로케트를 녹여라’ 屈辱 事件은? 강원일보 2011年 7月
  9. 최일구 自作曲 로케트를 녹여라 屈辱淡 ‘話題’ 每日經濟 2011年 7月
  10. 최일구 “여드름 때문에 記者 抛棄할 뻔” 告白 TV리포트 2011年 7月
  11. MBC 최일구 앵커, '무릎팍道士'로 뉴스테스크 弘報에 나서다…"다음 語錄은 뭐?"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마이스타뉴스 2011年 7月
  12. 최일구 “收拾 警察記者, 軍隊보다 더 힘들었다” 뒤늦은 過去 告白 뉴스엔 2011年 7月
  13. 최일구 “單獨 特種이 大鐘賞 受賞보다 더 좋아” 익살 發言 뉴스엔 2011年 7月
  14. 최일구 앵커 "김만철 一家 脫北 特種 놓치고 後悔莫及" TV리포트 2011年 7月
  15. 최일구 “바다는 蓮못이 아니더라!” 取材飛火 公開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일간스포츠 2011年 7月
  16. 최일구 앵커 "1987年 6月 抗爭 取材, 눈물이 났다 이데일리 2011年 7月
  17. 최일구 앵커, '不實工事' 取材로 눈에 불 켠 事緣 스타뉴스 2011年 7月
  18. 黃金漁場' 최일구 "MBC 入社 때부터 앵커 꿈 꿨다" 아시아經濟 2011年 7月
  19. 최일구 앵커 “싼티나는 내 목소리, 남들은 信賴 간다고...” 헤럴드생생뉴스 2011年 7月
  20. 최일구 앵커, 첫 放送 失手로 ‘식은땀’… “뉴스...데...뉴스데스크”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마이스타뉴스 2011年 7月
  21. 최일구 앵커 ‘週末 뉴스데스크’ 復歸 첫 房부터 現場出動 뉴스엔 2010年
  22. 최일구 앵커 “CNN처럼 自由로운 뉴스 進行하고 싶다” 레이디경향 2011年 7月
  23. '무릎팍道士' 최일구, "惡플로 自殺한 演藝人 理解되" 惡플에 一鍼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리뷰스타 2011年 7月
  24. 최일구 語錄 모음
  25. MBC의 ‘최일구 앵커 救하기’ 王都(王道)있다 TV리포트 2011年 7月
  26. 黃金漁場’-‘무릎팍道士’ 최일구 앵커 ‘語錄’ 誕生過程 公開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아츠뉴스 2011年 7月
  27. 최일구 “外國만 나가면 寡默, 特派員 못해 봤어” 疏脫 魅力 發散 TV리포트 2011年 7月

外部 링크 [ 編輯 ]

深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