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長熙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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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長熙
李章熙
作家 情報
本名 李樟熙
出生 1900年 11月 9日 ( 1900-11-09 )
대한제국의 기 大韓帝國 慶尙北道 大邱 中區
死亡 1929年 11月 3日 ( 1929-11-03 ) (28歲)
일제강점기 日帝 强占期 朝鮮 慶尙北道 大邱 에서 飮毒 自殺
國籍 대한제국의 기 大韓帝國
言語 韓國語 , 中國語 , 日本語
職業 是認 , 飜譯文學家
學歷 日本 교토 中學校 卒業
經歷 金星 編輯委員
宗敎 儒敎 ( 性理學 )
筆名 兒名 (兒名)은 이양희(李樑熙)
雅號(雅號)는 古月(古月)
活動期間 1924年 3月 ~ 1928年 8月
장르 詩文學 , 飜譯
父母 이병학 (簿), 박금련(某)
兄弟 異腹 男동생 10名
異腹 누이同生 8名

李長熙 (李章熙, 1900年 1月 1日 ~ 1929年 11月 3日 )는 日帝强占期 是認 , 飜譯 文學家 이다. 本貫은 仁川 (仁川)이고 號는 古月(古月)이다.

生涯 [ 編輯 ]

1900年 慶尙北道 大邱 中區 에서 아버지 이병학 의 11男 8女 中 三男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大邱의 符號이며 朝鮮總督府 中樞院 參議를 지낸 이병학 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以後 繼母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不和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番째 夫人과 5男 6女를 두었고, 李章熙가 죽기 5年 前에 세 番째 結婚을 하였으며 그 外에 側室度 1名을 거느렸다. 李長熙 自決 當時 兄弟는 모두 10男 8女로 매우 複雜한 家計였다. 慶尙北道 大邱 普通學校를 거쳐 日本 교토 中學校를 卒業하였다. 交友關係는 양주동 , 幼葉, 金泳鎭, 오상순 , 백기만, 李相花 , 현진건 等 極히 制限되어 있었다. 父親이 中樞院 參議로서 日本人들과의 交際가 頻繁하여 아들 李長熙 詩人에게 中間 通譯을 맡기려 했으나, 李長熙 詩人은 한 番도 服從하지 않았고, 總督府 官吏로 就職하라는 指示도 거역하여 父親은 李長熙 詩人을 버린 子息으로 아주 斷念하였다 한다. 그래서 極度로 貧窮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年 11月 3日 大邱 自宅에서 飮毒 自殺하였다. [1]

家族 關係 [ 編輯 ]

人間 關係 [ 編輯 ]

같은 大邱 出身의 動向 交友(同鄕 交友) [ 編輯 ]

學歷 [ 編輯 ]

作品 活動 [ 編輯 ]

1924年 金星 》 3月號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舞臺〉, 〈봄은 고양이로다〉 等 5篇의 詩 作品과 톨스토이 原作의 飜譯小說 〈長久한 귀양〉을 發表하면서 登壇했다. 以後 《臣民》,《生長》,《여명》,《新女性》,《朝鮮文壇》等 雜誌에 〈東京〉, 〈석양구〉, 〈晴天의 乳房〉, 〈河一소경〉,〈봄철의 바다〉等 30餘 篇의 作品을 發表하였다. 夭折하였기에 生前에 出刊된 詩集은 없으며, 事後 1951年 白旗만이 6.25 韓國戰爭中 請求出版社에서 펴낸 《尙火와 고월》에 時 11篇만 실려 傳해지다가 제해만 篇 《李長熙全集》(문장사, 1982)과 金在洪 篇 《李長熙全集評傳》(문학세계사, 1983)等 두 卷의 全集에 遺作이 모두 실렸다.

評價 [ 編輯 ]

是認 生存時에 이루어진 評으로는 박종화 李相花 의 것이 있다. 朴鍾和는 《朝鮮文壇》 1925年 10月號 〈9月의 翅端〉에서 《여명》에 실린 李章熙의 詩〈晴天의 乳房〉과 〈비오는 날〉을 評價하면서 〈晴天의 乳房〉은 "奇怪를 쓰랴는 마음, 象徵을 위한 象徵詩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以外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作者에 錯覺的 情緖로부터 나온 作品이다. 다만 한 때에 痲醉된 感興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酷評했다. [2] 反面, 李章熙와 同鄕 親舊였던 李相和는 같은 해, 《開闢》 6月號에서 李章熙의 詩 〈高兩意의 꿈〉과 〈겨울밤〉을 理債 있는 詩라고 하면서, 李相和를 定款(靜觀)詩人이라고 考評하였다. 다만 生命에서 發現된 熱狂이 없음을 덧붙였다. [3]

조연현 은 1920年代 詩壇의 浪漫主義的 風潮의 展開를 다루면서 感覺的인 銳敏性은 거의 李章熙의 獨自的인 特性으로서 이 무렵의 感覺的인 傾向을 代表하는 唯一한 詩人이라고 評價했다. [4]

鄭宇澤은 卑俗한 現實에 맞서 絶對 自由, 絶對 自我의 純全함을 追求했던 李章熙의 삶은 곧 그의 詩라면서 그의 美的 態度를 '美的 近代性의 自己 破壞的인 樣相'으로 명명하였다. 또, 韓國 近代文學史에서 李長熙는 近代的 主體의 自律性을 擁護하기 위해 藝術의 自律性과 美的 近代性을 絶對的인 地點까지 追求했던 詩人으로 記錄되어야 한다고 했다. [5]

各州 [ 編輯 ]

  1. 장백일, 〈古月 李章熙視 硏究〉, 《國語國文學》84卷, 國語國文學會, 1980, 79~82쪽
  2. 이기철, 〈李長熙 硏究(1)〉, 《人文硏究》6卷, 영남대학교 人文科學硏究所, 1984, 179쪽
  3. 이기철 (1982年 5月 30日). 《李相花 全集》. 서울: 문장사. 264~265쪽쪽.  
  4. 조연현 (1969年 9月 5日). 《한국현대문학사》. 서울: 성문각. 271쪽쪽.  
  5. 鄭宇澤, 〈古月 李章熙 詩 硏究〉, 《民族文學史硏究》21卷, 民族文學史學會, 2002, 216쪽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