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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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
吳相淳
作家 情報
出生 1894年 8月 9日 ( 1894-08-09 )
배론의 기 배론 漢城府
死亡 1963年 6月 3日 ( 1963-06-03 ) (68歲)
대한민국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대한민국 大韓民國
職業 詩人, 隨筆家
學歷 日本 도시샤 大學校 宗敎哲學科 學士
宗敎 改新敎 佛敎
筆名 號(號) 는 船運(禪雲), 空超(空超)
筆名 (筆名)은 오성해 (吳星海)
活動期間 1920年 ~ 1963年
장르 詩文學 , 隨筆
配偶者

오상순 (吳相淳, 1894年 8月 9日 ~ 1963年 6月 3日 )은 大韓民國 是認 , 隨筆家 이다.

本貫은 海州 (海州)이고 號(號)는 船運(禪雲), 空超(空超)이며 筆名(筆名)은 오성해 (吳星海)이고 서울 에서 出生하였다.

生涯 [ 編輯 ]

日本 도시샤 大學校 宗敎哲學科를 卒業하였으며, 1920年 《폐허》의 同人으로 韓國 新詩 草創期부터 活動하였다. 《아시아의 밤》, 《虛無魂의 獨言》 等 어둡고 絶望的인 詩를 主로 썼다. 1925年 寶城高普의 敎師를 거쳐, 1930年 佛敎中央學林( 東國大學校 의 前身)에서 敎鞭을 잡았던 因緣으로 改新敎 에서 佛敎 로 改宗하여 一生을 獨身으로 살았다. 特히 담배 를 즐긴 것으로 有名했다. 1954年 藝術院 終身會員이 되었고, 1959年 藝術院賞, 1962年 서울特別市 文化相·大統領賞 等을 받았다. 著書로 《吳相淳 視線》이 있으며 《한盞술》, 《첫날밤》 等의 作品이 있다.

1963年 6月 3日 高血壓 으로 死亡하였다. 그의 享年이 70歲였다.

學歷 [ 編輯 ]

流行語와 뜻 [ 編輯 ]

" 이라 하면 數週( 변영로 )를 뛰어넘을 者가 없고 담배 라 하면 共初( 오상순 )를 뛰어넘을 者가 없다."라는 流行語가 한때 1950年代 中盤에 서울 巷間에서 亂舞했는데 이는 當時 是認 樹州 卞榮魯 (樹州 卞榮魯)가 알아주는 愛酒家였고 是認 空超 吳相淳 (空超 吳相淳)李 알아주는 愛煙家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상순을 演技한 俳優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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