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永洙
(吳永壽,
1909年
2月 11日
~
1979年
5月 15日
)는
大韓民國
의 小說家이다. 本貫은
海州
(海州)이며 號(號)는 越州(月洲)였다가 末年에 亂階(蘭溪)로 바꾸었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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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年
日本
오사카
나니와 中學校 卒業
- 1941年
日本
도쿄
고쿠人 國民藝術學院 專門學士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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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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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尙南道
언양군
언양읍
(現
蔚山廣域市
蔚州郡
언양읍)
상북면
동부리에서
1909年
2月 11日
에 出生하였다.
[1]
1926年
언양初等學校
를 卒業했으며, 1933年에 日本에서 中學校 卒業 後 歸國하였지만 6年 後
1939年
日本
으로 다시 건너가, 1941年
도쿄
고쿠人 國民藝術學院을 卒業하였다. 그 後
慶南女子高等學校
에서 敎職 生活을 하였다.
1949年 〈南怡와 엿장수〉를 《新天地》에 發表하였고, 〈머루〉가
서울新聞
新春文藝에 當選됨으로써 文壇에 登場하였다. 한국문인협회上·아시아 自由文學賞을 받았으며, 著書로 短篇集 《머루》 · 《갯마을》 · 《메아리》, 《吳永壽 全集》 等 5卷이 있다.
民衆版畫家
오윤
은 그의 아들이다.
1979年
5月 15日
에 肝癌으로
웅촌면
곡천리의 自宅에서 71歲로 世上을 떠났다. 事後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化粧産 先塋에 묻혔다.
<特質高>를 發表하면서 特定 地域에 對한 偏見과 先入觀을 조장한 面도 없지 않아 同僚 文學人들에게 批判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作品을 發表할 當時 社會 雰圍氣를 勘案한다면 꼭 吳永洙 作家에게만 批判을 加하는 것도 無理이다. 그로 理解 末年에 文學 知性人의 良心 사이에서 갈등하다 마음 苦生을 하여 持病이 惡化되기도 하였다.
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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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藝術魂을 기리기 위해
1993年
부터
吳永洙文學賞
이 制定되어 旣成 作家 및 文學 地方生들을 對象으로 每年 受賞作을 選定, 施賞하고 있다.
2014年
1月 21日
에 그의 業績을 기리기 위해
吳永壽 文學館
이 開館하였다.
吳永壽를 演技한 俳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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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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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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