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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年에 그려진 作者 未詳의 신헌 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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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의 無關, 外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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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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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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者 國賓(國賓), 號 爲堂(威堂), 시호 장숙(壯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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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上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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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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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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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亡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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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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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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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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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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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曹判書
摠戎使(摠戎使)
判中樞府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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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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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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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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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關, 外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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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
(申櫶,
1810年
~
1884年
)은
朝鮮
말의 武臣이자 外交官이었다. 本貫은
평산
(平山). 字는 국빈(國賓), 號는 爲堂(威堂), 諡號는 장숙(壯肅)이다. 元來 이름은
신관호
(申觀浩)였으나 後에 改名했다.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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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年(純祖 28) 武科에 及第하여 訓鍊院主簿(訓練院主簿)에 任命되었다. 憲宗 때에는 全羅道兵馬節度使 等을 거쳐 1849年에는 禁衛大將(禁衛大將)李 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罷職, 流配되었다가
1857年
에 풀려났다. 哲宗 때 刑曹判書·漢城府判尹·共助 判書·右捕盜大將 等을 지내고, 高宗 初期 大院君의 信任을 받아 刑曹·兵曹·工曹判書를 歷任하였다.
1866年
丙寅洋擾
때 摠戎使가 되어
江華島
鹽倉(鹽倉)을 守備하였다.
1874年
鎭撫使 訓鍊大將에 任命되어 江華島 沿岸에 包袋를 構築했다.
1876年
운요호 事件
이 일어나자 判中樞府事(종1品) 로서
日本
의
구로다 기요打카
와
朝日修好條規
를 締結하였다.
1882年
에는
美國
의
슈펠트
와
朝美修好通商條約
을 締結했다.
著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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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의 民間自慰戰法인 民報方位論을 繼承, 발전시켜 《民報執說》(民堡輯說) · 《융서촬요》 等과 같은 兵書를 著述, 自身의 國防論을 集大成시켰다.
김정희
로부터 金石學, 試圖, 書藝等을 배워 隸書(?書)에 特히 造詣가 깊었다. 地理學에도 關心이 높아
김정호
의 《
大東輿地圖
》 製作에 助力하였을 뿐만 아니라, 自身이 直接 《遺産筆記》라는 歷史地理書를 編纂하였다. 佛敎에도 關心이 있었으며 農法에도 關心을 가져 《農畜會通》이라는 農書를 著述하였다.
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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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議政을 지낸 문희共
신개
의 後孫이다. 祖父는 訓鍊大將 신홍주(申鴻周)이고, 父親은 府使 信義職(申義直)이며, 아들은
신정희
(申正熙)이다.
關聯 文化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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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속에 나타난 신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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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映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