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준
(申彦俊,
1904年
11月 8日
~
1938年
1月 20日
)은
韓國
의 獨立 運動家이다.
天道敎
信者로 도호는 隱巖(隱菴)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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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南道
平原
出生이다.
井州
의
五山學校
를 卒業하고 1920年代 初盤
상하이
로 留學했다.
그는 大學 在學 中
傷害靑年同盟會
를 發起해 設立하면서
大韓民國 臨時政府
系列에서 獨立 運動을 始作했다. 傷害靑年同盟會는
김상덕
,
엄항섭
,
尹소야
等이 參與한 團體이다.
안창호
의
興士團
幹部를 지내며 安昌浩가
1927年
中國 各地를 돌며 外交的인 努力을 벌일 때는 그를 補佐하였고, 상하이에 亡命한 獨立 運動家들의 子女 敎育을 위해
여운형
이 設立한
人性學校
의 學監을 맡기도 했다. 以後 상하이와
난징
에 머물면서 《
東亞日報
》 特派員을 지내다가 35歲의 나이에 病死했다.
신언준이 中國에서 記者로 勤務하며 外部 寄稿를 竝行하여 言論 活動을 하던 1920年代 中盤부터 約 10年 동안은
日本
이
만보산 事件
等으로 中國人과 韓國人 사이를 離間질하기 위한 많은 努力을 기울이던 때였다. 그는 中國 問題를 韓國에 바로 알리고 中國 內에서도 韓國 獨立에 對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寄與했다.
肺結核
이 惡化되어 歸國한 뒤
1938年
35歲의 나이로 死亡했고,
1987年
建國訓長
독립장을 追敍 받았다.
主體思想
批判으로 有名한 哲學者
신일철
이 그의 아들이다
[1]
.
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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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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