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曜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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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 10月 3日(
開天節
)에 열린 水曜示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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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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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曜集會
(水曜集會)는
日本軍 '慰安婦'
의 問題 解決을 要求하는 集會이다. 公式 名稱은
日本軍 性奴隸制 問題 解決을 위한 定期 水曜示威
(日本軍 慰安婦 問題 解決을 爲한 定期 水曜示威)이다.
大韓民國
主宰
日本 大使館
앞에서 每週
水曜日
에 열린다.
韓國挺身隊問題對策協議會
(略稱 挺對協)은 年中 集會 參加 人員을 5萬餘 名으로 推算했다.
1992年
1月에 始作된 以來 500回가 된
2002年
3月, 單一 主題로 開催된 集會로는 世界 最長 期間 集會 記錄을 更新하였으며 이 記錄은 每週 更新되고 있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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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年
1月 8日
,
미야자와 기이치
日本 總理
의
大韓民國
訪問을 앞두고 始作되었으며 그後로 定期的인 示威로 發展하였다.
[1]
水曜示威는 정대협이 主催하고, 女性團體와 市民社會團體, 學生들, 풀뿌리 모임, 平和團體, 宗敎界 等 市民들이 示威를 企劃하여 이끌었는데, 日本에서 訪問한 平和活動家를 包含하여 外國人들의 參與도 많았다.
[2]
- 日本軍 '慰安婦' 犯罪 認定
- '慰安婦' 眞相 糾明
- 日本 國會의 謝罪
- 法的 賠償
- 歷史敎科書 記錄
- 慰靈塔 및 史料館 建立
- 責任者 處罰
水曜示威는 위의 條件들을 要求하면서 大韓民國 主宰
日本
大使館
앞에서 公休日을 除外하고 이루어졌다. 다만,
1995年
日本
고베 大地震
과
2011年
東日本 大地震
때에는 地震 犧牲者들에게 慰勞를 건네는 것으로 示威를 代身했다.
2016年
2月 15日
까지의 調査結果, 大韓民國 政府에 登錄된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 238名 中 193名이 死亡하였고 45名이 生存해 있었으며, 日本 政府는 需要示威나 정대협의 要求 事項에 對해 公式的인 反應을 내놓지 않았다.
2011年
12月 14日
, 6.15 共同宣言實踐 南側委員會 女性本部는 “
日本軍 '慰安婦'
問題 解決 위해 南北女性들이 協力한다”라는 《南北女性 共同決議文》을 發表하였는데, 이들은 “日本軍 '慰安婦' 問題는 유엔을 통해 이미 反人道的 犯罪로 規定됐다. 日本軍 '慰安婦' 犯罪와 關聯한 證言 및 討論會 等을 통해 日本의 反人倫的 罪惡과 우리 民族에게 加해온 敵對行爲에 對해 謝罪와 賠償을 반드시 받아내고 이를 위한 鬪爭에서 유엔 等 國際機構, 海外團體들과 폭넓게 連帶하겠다. 6.15 共同宣言實踐 南北委員會 女性들은 또 戰爭을 막고 平和를 實現하며, 6.15 共同 宣言과 10.4 宣言 履行 等을 위해 努力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3]
1000番째 水曜示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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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年
12月 14日
, 1000番째 水曜示威가 있었다. 이 需要示威에는 길원옥, 김복동, 박옥선, 김순옥, 강일출 할머니 等
日本
軍
'慰安婦'
被害者 5名과 挺對協 構成員 그리고 3000餘 名의 市民들이 參與했다. 前 國務總理
韓明淑
,
한나라黨
前 代表
鄭夢準
, 한나라당 所屬 國會議員
柳政鉉
·
김성회
,
民主黨
最高委員
鄭東泳
,
民主黨
政策委議長
朴映宣
,
民主黨
前 院內代表
元惠榮
,
民主黨
所屬 國會議員
최영희
·
李美卿
·
全賢姬
,
民主黨
所屬 前 國會議員
鄭鳳柱
,
統合進步黨
共同 代表
李正姬
, 統一問題硏究所 所長
백기완
, 俳優
김여진
等도 集會에 參席했다.
[4]
俳優
권해효
는 社會를 맡았다. 日本 政府의 反撥이 있었지만, 日本軍 '慰安婦' 少女를 形象化한 '平和비' 除幕式度 進行되었다.
[5]
[6]
1000回 水曜示威를 記念해 大韓民國 內 9個 地域 30個 都市, 世界 8個國 42個 都市 等에서 連帶 行動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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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13年
9月 17日
(現地時間), 프랑스
엠네스티
事務室에서 정대협 關係者들과 프랑스 女性團體 代表들이 만나
日本
軍
'慰安婦'
問題 解決을 위한 連帶 方案을 論議했다. 프랑스 女性團體 代表들은 女性團體들의 共同宣言을 決定했고, 上·下院 決議 採擇을 위한 議員과 政府 로비를 約束했다.
2013年
9月 18日
, 프랑스 파리에서 日本軍 '慰安婦' 問題 解決을 위한 첫 水曜示威가 열렸다.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
김복동
과 정대협 關係者들은 日本 政府의 謝罪와 國際 連帶를 促求했다. 프랑스 女性團體 關係者, 僑民, 留學生 等 100餘 名이 參加했다. 김복동의 證言에 이어 프랑스 女性團體 代表, 旅行 中인 韓國 女性, 留學生 等의 支持發言이 있었다. 水曜示威는
1992年
以來 日本,
美國
,
中華民國
,
필리핀
,
인도네시아
等에서 열렸으나, 프랑스에서는 처음 開催된 것이었다. 정대협 關係者는 "유럽에서 정작 自由와 鬪爭의 歷史를 가진 프랑스에서는 活動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첫 水曜集會를 열게 돼 鼓舞的이다. 유럽에서 '慰安婦' 問題 解決을 앞당기기 위한 輿論을 擴散하는 데 役割을 할 것으로 期待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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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12]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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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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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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