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金相浹,
1920年
4月 20日
~
1995年
2月 21日
)은
高麗大學校
敎授·高麗大學校 總長·第11代 문교부 長官·第16代 國務總理 等을 歷任한 大韓民國의 敎育者, 政治家이다. 號는 南在(南齋).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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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羅北道
扶安郡
茁浦에서 삼양그룹을 創業한 企業인
김연수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獨立運動家 兼 敎育자, 政治人 인촌
金性洙
는 그의 伯父였다. 그의 나이 4살 때 扶安郡 茁浦에서
京城
(後日의
서울特別市
)으로 移徙해 왔다.
日本
에 留學하여
1940年
日本 야마구치高等學校를 거쳐
1942年
도쿄 大學
法學部 政治學科에 入學했다.
1946年
高麗大學校
政經大 助敎授가 된 後 副敎授·敎授를 지냈으며,
高麗大學校
敎授 在職 中
1949年
考試委員會 常務委員職을 兼職했다.
1956年
에는
檀國大學校
附屬大學 通信敎育部 敎授로 派遣되어 講義하였다. 以後 다시 고려대로 復歸했으며,
1960年
3月 19日
學術院會員에 選出되었다.
1962年
문교부 長官
이 되었다.
1963年
에 고려대학교 政經大 敎授로 復職하여
1970年
까지 在職하였다.
1965年
에는 韓日協定 反對에 同參하였다.
1967年
東亞日報社 理事,
1970年
부터
1975年
까지와
1977年
부터
1982年
까지
高麗大學校
總長을 두 次例 歷任하였다.
1980年
國家保衛立法會議
議員이었다.
第5共和國
에서
1982年
總理署理로 指名되었다가
1982年
부터
1983年
까지 제16대 國務總理를 歷任하였다.
1983年
9月 23日
서울
어린이大公園
에서 열린
古下 宋鎭禹
銅像 除幕에 參席하였다.
1984年
國政諮問會議
諮問委員에 任命되었으며,
1985年
1月 17日
延世大學校
講堂에서 열린
백낙준
의 追慕 禮拜에 參席하였다.
1985年
부터
1991年
까지
大韓赤十字社
總裁를 지냈다. 1979年 12月 21日 연암문화재단 感謝牌 等을 受賞했다.
1994年
古下宋鎭禹 記念事業會 出帆과 同時에 高下記念事業會 理事에 選任되었다.
1995年
心臟疾患
으로 死亡하였다.
賞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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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年 2月 - 서울 경복고등학교 名譽 卒業狀
- 1979年 12月 21日 - 연암문화재단 感謝牌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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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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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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