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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왕실정부대표이등박문조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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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왕실정부대표이등박문조례단 (韓國王室政府代表伊藤博文弔禮團)은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 에서 安重根 에게 저격되었을 때 이토의 死亡이 미칠 波長을 憂慮하여 組織된 大韓帝國 政府 次元의 慰問條例團이다.

1909年 10月 26日 에 이토가 死亡하자 大韓帝國 純宗 메이지 天皇 에게 電報를 보내 慰問하고 慰問使節團 組織에 들어갔다. 純宗은 시종원경 윤덕영 을, 高宗 은 承寧府摠管 조민희 를, 內閣은 總理大臣 이완용 을 慰問使節로 指名했다. 이들과 함께 統監府 派遣願과 漢城府民會長 유길준 等이 함께 淸나라 다롄 으로 派遣되었다.

이토의 葬禮는 11月 4日 도쿄 에서 國葬으로 擧行되었다. 葬禮 節次에 對한 公式 發表와 함께 純宗은 安重根을 "오(吾, 우리)의 凶手(凶獸, 凶한 짐승)"라고 指稱하면서 追悼의 뜻을 電報로 보냈고, 곧바로 弔問團을 構成해 葬禮式에 參與하도록 했다. 條例團 代表는 高宗의 特使 박제빈 , 順從의 勅使 민병석 , 醫민태자 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 의 弔問師 엄주익, 內閣 代表 조중응 等으로 構成되었다. 이들은 隨行員들과 함께 10月 30日 에 서울을 떠나 葬禮式에 參席한 뒤 11月 7日 에 돌아왔다.

大韓帝國 王室과 政府는 條例團을 派遣해 이토의 死亡이 몰고올 國內外 情勢 變化와, 日本에 머물고 있는 義民太子에게 미칠 影響을 알아내는 데 關心이 있었다. 總理大臣人 李完用은 조중응에게 日本의 大韓帝國에 對한 政策을 探問하도록 하기도 했다. 條例團 派遣 外에도 이토의 死亡을 哀悼하는 雰圍氣가 造成되었다. 敬虔한 哀悼를 위해 서울 에서는 嚴肅한 雰圍氣를 造成하도록 하고, 順從과 의친왕 , 奏任官 以上의 高位 官吏들이 統監府를 訪問해 慰勞했다. 日本에 留學 中이던 義民太子는 스승이 死亡했을 때의 禮에 따라 3個月 複製를 치렀다.

參考 資料 [ 編輯 ]

  • 친일인명사전編纂委員會 (2004年 12月 27日). 《日帝協力團體事前 - 國內 中央便》. 서울: 民族問題硏究所. 59-61쪽쪽. ISBN   899533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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