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東腸
(典洞莊)은
서울特別市
鍾路區
견지동
85-18에 있었던
朝鮮
後期의 武臣
윤웅렬
과
大韓帝國
과
日帝强占期
의 獨立運動家, 啓蒙思想家, 敎育人인 佐翁
윤치호
가 살던 大邸宅을 말한다. 全東長과는 別途로
안국동
의
윤보선 私邸
는
안동장
이라고 불렀다.
1860年
頃부터
1905年
까지
윤웅렬
이 居住했고,
1905年
부터
1945年
까지는 佐翁
윤치호
가 居住하던 邸宅으로 本來는 尹致昊의 아버지 尹雄烈이 買入한 自宅이었다. 本來 韓屋 家屋이었다가 洋屋으로 擴張되었다.
1950年
6.25 戰爭
때 破壞되었다.
位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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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在의
木人博物館
南쪽 新作路 건너便이며 白堊美術館과 관훈갤러리의 西쪽 地域,
아라아트센터
東쪽 바로 옆 地域에 存在했던 建築物이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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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東腸은
1860年
警
윤웅렬
이
漢城府
鍾路房 全東(現,
서울特別市
鍾路區
견지동 85-18)에 마련한 邸宅이다.
忠淸南道
牙山郡
둔포면
신항리 出身인
윤웅렬
은 官僚 生活을 하면서 漢城에 居住地를 마련하고 뒤이어 동생
윤영렬
內外도 불러들였다. 8歲 무렵까지 牙山 故宅에서 살면서 漢學을 受學하던
윤치호
亦是 京城으로 올라와 이곳에서 살게 됐다.
윤웅렬
의 아들
윤치왕
과
윤영렬
의 아들
윤치영
,
윤영렬
의 孫子인
윤일선
과
윤보선
等이 前洞長에서 出生하였다.
또한 全東腸 近處에는
윤웅렬
의 別莊이 있었는데 尹雄烈의 別莊은
磻溪 윤웅렬 別墅
라는 이름으로 現存하고 있다.
윤웅렬
은 牙山 故宅으로 알려진 本家와
漢城府
에 마련한 電動腸을 오가면서 生活했다.
윤웅렬
의 조카 윤치오가 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조카
윤치소
는 안국방에 집을 마련함으로써
윤영렬
一家는 分家해서 살게 되었다.
윤웅렬
은 牙山 둔포면의 故宅과 漢城府 自宅을 오가면서 살다가
1905年
乙巳 保護 條約
以後 全東 邸宅은 長男
윤치호
에게 넘겨주고
牙山
으로 내려가 餘生을 보냈다.
윤치호
는 京城 YMCA의 幹部이자 基督敎運動가, 敎育 啓蒙運動家로
1911年
105인 事件
으로 投獄되어
1915年
釋放되는 時點을 除外한 나머지 期間을 京城府 全東 自宅에서 繼續 居處하였다. 그가 投獄되어 살 때에도 그의 家族들은 電動場에서 繼續 居住하였다.
윤치호
가 京城 YMCA의 總務와 會長, 中央YMCA聯合會의 總務와 會長을 지냈고,
新民會
의 創立 멤버,
興業俱樂部
의 創立者 等으로 活動함으로써 全東腸은 京城 YMCA 靑年會와 中央 YMCA 靑年會,
新民會
,
興業俱樂部
의 祕密 會議 場所로도 活用되었다.
以後
윤치호
는
1945年
8月
光復 直後
開城府
松島面
狂문암동의
고려정
으로 居處를 옮길 때까지 繼續 鍾路區 견지동의 前洞長에서 居住하였다. 全東腸은
1950年
6.25 戰爭
때
朝鮮人民軍
의 爆擊으로 破壞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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