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葉集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萬葉集 第1卷
願力敎本 萬葉集(元?校本万葉集)

萬葉集 ( 日本語 : ( まん ) ( よう ) ( しゅう ) 만요슈 [ * ] )는 7世紀 後半에서 8世紀 後半에 걸쳐서 만들어진 冊이며, 日本 에 現存하는 古代 日本의 歌集 (歌集)이다. 日本語의 漢字 神自體 禍 되기 前에 쓰인 冊이기 때문에 元來 表記는 '萬葉集'이지만, 神自體火 뒤로는 '万葉集'라고 쓰고 있다.

이 冊의 成立은 759年 以前이라고 볼 수 있으며, 日本 天皇 , 貴族 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身分의 사람까지, 여러 身分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읊은 노래를 4500個 以上 모은 것이다.

나라 時代 의 韓國에서 傳來된 文化 流行期의 日本의 傳統的 藝術作品이다. 構成·假題(歌題)·家兄(歌形) 等에 韓半島와 大陸 文化思想의 影響이 보인다.

冊 이름의 由來 [ 編輯 ]

‘萬葉集’의 意味에 對해서는 몇 가지의 說이 提示되어 있다. 1)하나는 '온갖 말( 万の言の葉 )'을 모았다는 뜻이라고 하는 설로, '수많은 말( 多くの言の葉 ):노래를 모은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며, 이 說은 예로부터 센가쿠 ( 仙? )나 가모노 마부치 ( 賀茂?淵 )에게 支持를 받아왔다. 센가쿠의 《萬葉集主席( 万葉集註? )》은,

야마토(日本)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씨앗 삼아 온갖 말이 되었다.
( やまとうたは人の心をたねとしてよろづのことのはとぞなれりける
 
古今와카집 (古今和歌集), '가나 西( ?名序 )'

라는 句節을 引用하고 있다. 다만 古今집 (古今集)의 成立은 時代가 萬葉集 以前 時代이므로 이 漁具의 解釋이, 萬葉集 成立 뒤에 完成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可能性은 事實 거의 稀薄하고 이것을 그대로 만요슈에 適用시키는 것은 事實上 거의 不可能하다.

2)그 外에도 '오랫동안 傳해져야 할 노래 모음'( 契沖 게이秋 [ * ] 鹿持雅澄 가모치 마사즈미 [ * ] )이라고 하는 설, '葉'을 그대로 나뭇잎이라고 解釋해서 '나뭇잎을 노래에 比喩했다'는 意味라는 說 等이 있다.

3)萬葉集의 硏究者들 사이에서 主流를 이루는 것은, 고지키 의 序文에 " 後葉 ( のちのよ ) に流 ( つた ) へむと欲ふ"라고 되어 있듯이, '葉'을 '世'의 意味로 받아들여 '먼 後날까지 오랫동안 傳해져야 할 노래 모음( 万世にまで末永く?えられるべき歌集 )'의 意味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編修 [ 編輯 ]

萬葉集의 成立에 對해 仔細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假說이 있는데, 먼저 勅撰설(勅撰說; 天皇의 勅命으로 編纂했다는 설), 다치바나노 모로에 ( 橘諸兄 )설, 오토모노 야카모치 ( 大伴家持 )說 等, 일찍이 여러 설로 나뉘어 있지만, 現在는 야카모치설이 가장 有力하다. 다만 萬葉集은 한 사람의 作品이 아니요 卷마다 作者가 다르고, 야카모치가 最終的으로 20卷으로 整理했다는 說이 主流이다.

成立 [ 編輯 ]

萬葉集이 20卷으로 整理된 連帶 또는 卷마다의 成立 年代에 關해 明記된 것은 全혀 없지만, 內部의 情況 證據로부터, 大江 以下의 順序로 增補되었다고 推定한다.

1卷 前半部(1 - 53番)… 원(原)萬葉集
各 天皇을 "天皇"로 表記. 萬葉集의 原形이라고도 할 만한 存在이다. 지토 天皇 (持統天皇)이나 街키노모토노 히吐마로 ( ?本人麻呂 )가 關與했다고 推測.
1卷 後半部 + 2卷 增補 … 2권본(本) 萬葉集
겐메이 天皇 ( 元明天皇 의 治世 期間을 現在로 表記하고 있으며, 2代 앞의 지토 天皇 을 "太上天皇"으로, 1代 앞의 몬무 天皇 을 '大行天皇'으로 表記. 겐메이 天皇 이나 懊惱 야스마로 ( 太安万侶 )가 關與했다고추측.
3卷~15卷 + 16卷의 一部 增補 … 15권본 萬葉集
게이秋 ( 契沖 )가, 萬葉集은 1~16卷에서 1番 完成했고 그 뒤에 17~20卷이 增補되었다고 하는, 萬葉集 2回 編纂說을 主唱한 以來로, 이 問題에 關해서 수많은 論議가 行해져 왔지만, 15卷까지밖에 目錄이 存在하지 않는 古寫本(겐레키코魂( 元?校本 ), 아마가사키魂( 尼崎本 )等)의 存在나 先行 資料의 引用 方法, 部立에 依한 分類의 有無 等, 萬葉集이 16卷을 警戒로 나뉜다고 하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證據는 많다. 겐쇼 天皇 ( 元正天皇 ), 이치하라誤( 市原王 ), 오토모노 야카모치 ( 大伴家持 ), 오토모노 사카노우에노이라쓰메 ( 大伴坂上?女 ) 等이 關與했다고 推測.
나머지 卷 增補 … 20권본 萬葉集
엔랴쿠 ( 延? ) 2年( 783年 ) 무렵에 오토모노 야카모치 가 完成했지만 世上에 퍼트리지 않았다. 엔랴쿠 4年( 785年 )에 야카모치가 죽고, 오토모노 쓰기히吐 ( 大伴?人 )가 후지와라노 타네쓰구 ( 藤原種? )를 暗殺 하여 야카모치度 連坐 되었기 때문이다. '萬葉集'은 야카모치가 事後에 赦免을 받은 엔랴쿠 25年( 806年 )에 艱辛히 完成되었다고 할 수 있다.

構成 [ 編輯 ]

全體 20卷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一貫性 있게 編輯한 冊이 아니다. 몇 卷 單位로 編輯된 것을 한 데 모아 歌集으로 만든 듯하다. 收錄된 노래는 4500餘 數에 이르지만, 版本에 따라 노래의 數字가 다르다.

各 卷은 年代順이나 部類別, 拘泥 ( ? )별 等으로 配列하였다. 또한 各 卷의 노래는 무언가의 部類로 나뉘어 있다.

內容上으로는 크게 조카 ( ?歌 )? 소몬카 ( 相聞歌 )? 反카 ( 挽歌 ) 等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카( ?歌 )
'갖가지 노래'(くさぐさのうた)라는 뜻으로 소몬카?반카 以外의 노래가 담겨 있다. 公的인 性質을 가진 宮闕과 관계된 노래, 旅行 中에 읊은 노래, 自然이나 四季節을 讚美한 노래 等이다.
소몬카( 相聞歌 )
'소몬'(相聞)은 서로 겪은 消息을 통해서 問答을 交換하는 것을 말하며, 主로 男女의 사랑을 읊는 問答 形式의 노래이다.
反카( 挽歌 )
棺을 끌 때의 노래. 亡者를 哀悼하고 追慕하는 노래이다.

表現 樣式으로는,

基부쓰親試( 寄物陳思 )
사랑의 感情을 自然으로 比喩해서 表現.
세이주쓰신쇼( 正述心? )
感情을 直接的으로 表現.
에이部쓰카( 詠物歌 )
四季節을 表現.
히有카( 譬喩歌 )
自身의 생각을 事物에 빗대어 表現.

等으로 나뉜다.

14卷만 아즈마右打( 東歌 ( ) )란 이름이 있다. 이 卷에는, 上寵?下總?上陸?신농사國의 雜歌、원강?峻下?吏讀?象毛?武裝?上寵?下總?上陸?神農?상야?下野?六誤 十二國의 喪門往來가、원강?준하?상모?상야?륙오 誤國의 比喩가?나라의 알 수 없는 雜歌、喪門往來가?방인가?비유가?만가 等이 收錄되었다. 加髢는 單價(短歌)?장가(長歌)?旋頭歌의 3가지로 分類되어 있다. 짧은 구는 5音節로 表記되고, 긴 구는 7音節로 表記된다.

單價
57577의 5句로 構成되어 있다.
장가
20具, 또는 數十 句로 構成되는 境遇가 大部分이다. 長歌의 마지막에는 區別되어 있고 1首가 一머리가 여럿 더해진 單價(短歌)는 班家(反歌)라 불린다.
勢道카( 旋頭歌 ( 歲屠牛카 ) )
單價에 1番 編成한 것을 다시 더한 形態로 形式은 2番 反復한 形態이다. 머리에 該當되는 3具를 꼬리의 3具의 다음에 두는 것도 可能한 때에 先頭가(세도카,旋頭歌)라고 傳해진다.

時期의 區分 [ 編輯 ]

노래를 만든 時期는 크게 4期로 區分한다.

第1期 [ 編輯 ]

629年 에서 672年 까지 日本 皇室의 行事나 重要한 일에 關聯된 노래가 많다. 代表的인 作家로서는 累카타노 오키美 ( 額田王 ( ) )가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舒明天皇 ? 天智天皇 ? 有間皇子 ? 가가미노 오키美 ( 鏡王女 ( ) )? 藤原鎌足 等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第2期 [ 編輯 ]

710年 까지 代表的인 作家로서는 ?本人麻呂 ? 다케치노 九老土 ( 高市?人 ( ) )? 나가노 오키마로 ( 長意貴麻呂 ( ) )等의 官吏들 儀禮的인 곳에서의 宮廷讚歌와 돌림(旅)의 노래 等이 有名하다. 다른 것으로는 덴무 天皇 ? 지토 天皇 ?大津 皇子?大伯 皇女? 志貴皇子 等이 있다.

第3期 [ 編輯 ]

733年 , 當時 日本에서는 여러 階層 사람들이 노래를 짓곤 했다. 代表的인 作家로는 自然 風景을 背景으로 삼아서 書經 노래를 지은 야마베노 아카히吐 ( 山部赤人 ( ) ), 風流로 抒情에 넘친 장가를 읊은 大伴旅人 , 人生의 苦惱와 下層 階級에 關心이 많은 야마盧에노 오쿠라 ( 山上憶良 ( ) ), 傳說 속에서 素材를 찾아낸 高橋?麻呂 ( ) 、女子의 恨을 부른 社카노 우에노 이라쓰메 ( 坂上?女 ( ) )等이 있다.

第4期 [ 編輯 ]

759年 , 代表的인 作家는 旅行者인 오토모노 야카모치 ( 日本語 : 大伴家持 )? 家事노 이라쓰메 ( 笠?女 ( ) )? 오토모노 勞使카노 우에노 이라쓰메 ( 大伴坂上?女 ( ) )? 다치바나노 모로에 ( 橘諸兄 ( ) )? 나카토미櫓 野카모리 中臣宅守 ( ) )? 社盧盧오토가미노 오토메 ( ?野弟上娘子 ( ) )? 湯原王 等이다.

노래의 作者層을 보면 皇族이나 貴族에서부터, 中?下級 官吏에게서 퍼져 나갔고 作者 未詳의 노래는 機內(畿? :首都圈)의 下級官人이나 庶民의 노래를 볼 수 있었고, 또 東歌이나 防人歌等에 보이는 것과 같이 庶民에 폭넓게 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地域的으로는 宮廷周邊에서 서울의 機內(畿?)、도호쿠(東?)에 範圍가 時代와 같이 擴大되었다고 생각된다.

와후쿠 [ 編輯 ]

邦人의 노래( 防人の歌 ( ) ), 東歌 ( ) 等, 貴族 以外의 民衆의 노래가 실려 있고 重要한 資料이기도 하다. 華麗한 技巧는 別로 보이지 않고 素朴하고 率直한 노래이다. 가모노 마부치 ( 賀茂?淵 ( ) )는 이것을 評價했고 ますらをぶり 를 이렇게 表現했다.

萬요가나 [ 編輯 ]

만요슈는 全體 文章이 漢字 로 쓰여져 있고, 漢文 語順으로 構成되어 있다. 그러나 노래는 日本語 語順으로 構成되어 있다. 노래는, 表意的으로 漢字로 表現한 것이나, 表音敵으로 漢字를 表現한 것이나, 表意나 表音 두가지를 나타낸 것이나 文字 를 使用하지 않는 境遇 等 使用 方法이 다양하다.

萬葉集이 編纂될 무렵에는 아직 가나 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글 語順으로 쓰던 高句麗, 백제의 借字 表記法과 新羅 鄕札 이나 吏讀 와 마찬가지로, 萬葉集에서는 萬요가나 라고 불리는 獨特한 表記法을 使用했다.

萬葉集은 三國 時代 에서 使用했던 漢字의 音訓의 使用과 마찬가지로, 漢字의 意味와는 關係없이 漢字의 音訓 만을 借用해서 日本語로 表記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意味에서 만요 가나는 漢字를 利用하면서도, 最初로 日本 에서 最初로 文字로 쓰여진 글이자, 日本人을 위해서 文字로 定着된 첫 番째 冊이다.

만요가나는, 나라 時代 말에 文字의 模樣이 조금씩 바뀌었고 劃이 적은 文字를 많이 使用하게 되었다. 헤이안 時代로 오면 그 傾向이 繼續 나타나면서, 經濟的으로는 效率性 있고 簡略한 文字가 繼續 쓰이게 되고, 文字 形態를 繼續 簡略化(草略)하거나 一部 文字를 省略(省?)해서 만들어졌다. 그렇게 해서 " 히라가나 "와 " 伽陀가나 "가 創造되었던 것이다.

現在에도 日本에서 만요가나는 各 地域에서 使用되고, 指名에서는 大部分 만요 地名에서 由來된 것이 많이 있다.

만요가나로 쓰인 오토모노 야카모치 의 노래 [ 編輯 ]

(萬요가나 文章): 去來子等 早日本邊 大伴乃 御津乃濱松 待戀奴良武
(韓國式 發音): 去來者等 組日本便 對盤內 御眞來賓송 大連露梁무

(훈):いざ子ども 早く日本へ 大伴の  御津 ( みつ ) の浜松 待ち?ひぬらむ

? (卷1-63)

(萬요가나 文章): 都流藝多知 伊?餘刀具倍之 伊?之?由 佐夜氣久於比? 伎?之曾乃名曾
(韓國式 發音): 道流豫다지 이여여도구배지 이이지폐유 좌야기구어비? 기이지증내명증

(훈): ?大刀 いよよ?ぐべし 古ゆ  ? ( さや ) けく負ひて ?にしその名そ

? (卷20-4467)

韓國語 飜譯 [ 編輯 ]

萬葉集을 一部나마 가장 먼저 韓國語(朝鮮語)로 옮긴 이는 西頭水 로 생각된다.

西頭水는 1942年 11月 2日부터 同月 12日까지 萬葉集 房인가 를 朝鮮語로 飜譯하여 〈防人歌(社끼모리노우다) : 稚拙한 移植〉 題下에 《 每日申報 》에서 連載하였다. 意味 뿐만 아니라 낯설기는 하여도 形式, 卽 5·7·5·7·7의 音數律까지도 朝鮮의 臣民에 移植하고자 一部를 除外하면 이를 따르며 飜譯하였다. 그런 意味에서 自身의 飜譯을 낮추어 題目을 稚拙한 移植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한便 金億 은 1943年 7月 28日에서 同年 8月 31日까지 每日申報에 拔萃飜譯 '萬葉集抄譯'을 連載하였고, 同年 7月 20日부터 '腺疫 愛國白人日數 '를 洞新聞에 連載하였다. 金億은 5·7·5·7·7의 와카를 初場 3·4·3·4에 終場 3·5·4·3의 兩章時調 刑으로 飜譯한다는 規則을 세워 이것을 嚴格하게 지켰다. [1] 腺疫愛國白人日數는 1944年 8月 같은 題目으로 單行本으로 出刊되었다. [2]

西頭水는 當時 帝國 日本 및 植民地 朝鮮에서 流行하던 民族性 談論의 影響으로 朝鮮에 日本審, 卽 日本 民族成果 心性의 移植을 위해 飜譯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便 金億은 國語(日本語) 普及이라는 側面에 보다 中心을 두었다고 보인다. [1] 光復 後 이들 飜譯은 그 存在가 잊혀져 後代의 飜譯에서 參考가 되지 못했다. [3]

各州 [ 編輯 ]

  1. 박상현, 김양숙 (2012年 5月). “京城帝大 '國文科(日文科)' 出身 西頭水 硏究 : 『萬葉集(万葉集)』飜譯을 둘러싼 金億과의 比較를 통해”. 《日本文化學報》 (韓國日本文化學會): 125-141.  
  2. 박상현 (2011年 7月). “西頭水의『만엽집(萬葉集)』번역에 關한 硏究 -「防人歌(사키모리노우다) : 稚拙한 移植」을 中心으로-”. 《日本文化硏究》 (東아시아日本學會): 223-236.  
  3. 박상현 (2013). “‘オホキミ’의 初期 번역어 硏究”. 《日本文化學報》 (韓國日本文化學會): 141-156.  

같이 보기 [ 編輯 ]

萬葉集을 素材로 한 作品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