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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 정준호 “第一 親한 ‘깐부’요? ㄱㄴㄷㄹ 順序로 말하면 안 될까요?” [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東亞日報

俳優 정준호 “第一 親한 ‘깐부’요? ㄱㄴㄷㄹ 順序로 말하면 안 될까요?” [유재영의 全國깐부자랑]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10日 17時 00分


코멘트

[14] ‘마당발 人脈’ 스타 俳優 정준호와 ‘人間’ 정준호

깐부. ‘같은 便’, 나아가 ‘어떤 境遇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意味로 通用되는 隱語, 俗語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人生도 健全한 交感을 나누는 平生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人間關係는 健康에도 肯定的인 影響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價値’를 紹介합니다.


누구든 부탁하면 어디든 달려오는 의리의 사나이. 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하루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 아침마다 신문을 보며 인맥들의 동정을 체크한다는 그가 인터뷰 중에도 동아일보를 보며 이슈, 광고 등과 연관된 다양한 지인들을  떠올린다. 평생의 루틴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누구든 付託하면 어디든 달려오는 義理의 사나이. 정준호 全州國際映畵祭 執行委員長은 하루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 아침마다 新聞을 보며 人脈들의 同情을 체크한다는 그가 인터뷰 中에도 동아일보를 보며 이슈, 廣告 等과 聯關된 다양한 知人들을 떠올린다. 平生의 루틴이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옷깃만 스쳐도 因緣’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얘기 中에 요즘 생각해도 무릎을 칠만한 名言들이 많지만 그 中에서도 이 말은 으뜸인 것 같다. 살면서 사람들과 單純하게 스칠 일은 많다. 記憶도 안 나는 幼年期 時節, 모두의 記憶에는 自身을 귀엽다고 깨물고 어루만졌을 사람이 꽤 있을 테다. 버스나 地下鐵을 打倒, 어디 煩雜할 곳을 가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 부대낄 때는 茶飯事다.
사람들은 ‘옷깃’을 因緣의 작은 連結 고리로 여겼을 듯하다. 천이 스치는 瞬間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關係를 이어가려는 努力을 빗대었을 것 같다.‘옷깃’보다 더 가까운 連結 고리가 있어도 因緣으로 이어지지 않는 境遇를 살면서 숱하게 接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演技면 演技, 放送이면 放送, 事業이면 事業, 都大體 안 걸치는 곳이 없는 萬能 스타 정준호 全州國際映畵祭 執行委員長은 正말 옷깃만 스쳐도 내 사람으로 만드는데 鬼才인 사람이다. 都大體 안 걸치는 人脈이 없고, 허투루 눈 마주치고 握手하고 連絡 주고받는 사람이 없다. 人口 5000萬 名이 全部 그의 人脈이라는 弄談을 해도 꽤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演藝界는 勿論이고 情·官界, 學界, 文化·스포츠界 等을 넘나들며 貫通하는 ‘核인싸’를 찾다보면 異常하리 頂點은 정준호로 收斂한다.

最近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그와 5時間假量 人脈, 사람 管理 얘기를 했다. 時間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平生 먹을 樣式이라고 할까요.”
鄭 委員長에게 사람, 因緣은 이런 意味다. 그래서 그는 “糧食을 쌓고 管理하는 것이 人生에서 가장 重要한 일”이라고 했다. “樣式은 내가 좋다고 저절로 쌓이는 게 아니죠.” 그의 사람 管理 哲學이다. 自身이 아는 사람으로 뭉쳐놓은 건 人脈으로 부를 수 없다. 나만 안다고 자랑하는 人脈은 華麗할지 몰라도 實體는 없다. 이런 前提를 놓고 그는 “因緣을 쌓는다”고 한다.

記者가 <全國깐부자랑>을 連載하고 初有의 일이 벌어졌다. 平生 함께 할 ‘깐부’와의 因緣을 紹介하는 코너에 到底히 ‘깐부’를 못 데리고 나오겠다며 혼자 나타났다. 周邊에 親한 여럿과 同行을 打診해봤는데 到底히 안 되겠다고 事情을 했다. 鄭 委員長은 “누구 한 사람을 ‘깐부’라고 定해 인터뷰 記事에 나오면 다른 분들이 엄청 서운하다고 亂離가 날 것 같다”며 諒解를 求했다.

만나면 좋은 친구,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은 형이 가수 김흥국이다. 정준호 제공
만나면 좋은 親舊,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은 兄이 歌手 김흥국이다. 정준호 提供

都大體 混亂을 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신현준, 김민종, 탁재훈, 김영철, 金興國, 박상원, 엄홍길, 박중훈, 이문세, 李在龍, 정보석, 윤다훈…”이라고 이어가는데 끊을 수가 없다. 職業과 나이 等을 網羅한 知人들이 그의 입에서 數없이 列擧된다. 第一 親한 ‘깐부’에 對해서는 選擇 障礙가 있는 게 分明하다.


배우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위 사진),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의 인연도 깊다. 정준호 제공·동아 DB
俳優 박상원 서울문화財團 理事長(위 寫眞), 山岳人 엄홍길 大將과의 因緣도 깊다. 정준호 提供·동아 DB


● 故 최진실 先輩 電話番號도 안 지운 ‘나’
먼저 原初的으로 궁금한 것. 그의 携帶폰에 貯藏된 連絡處는 몇 個일까.

-時間 差異를 두고 예전 인터뷰를 보면 携帶폰에 貯藏된 連絡處만 5000個, 1萬 個 等으로 漸漸 늘어났어요.
“只今은 1萬 1400個 程度예요. 携帶폰 바꿀 때 옮기기 너무 힘들어요. 몇 時間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實質的으로 連絡을 1年에 몇 番씩 하는 분들은 4~5000名 程度 돼요. 그리고 全體에서 折半 程度는 아주 예전에 뵀던 분들, 海外에서 만났던 사람들인데 자주는 連絡을 하지 않죠.”

-그럼 折半은 人脈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番號를 入力할 때 같이 만난 知人 이름이나 場所, 날짜를 같이 貯藏해요. 連絡은 自主하지 않지만 人脈입니다. 제 連絡處에 있는 분들은 드라마나 放送, 廣告 等을 통해 저를 늘 보고 있으니 함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처음 만난지 3年이 지나고, 5年이 지나서 連絡을 드리면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고 해요. 文字를 오랜만에 해도 좋아하셔요. 가까운 家族들도 1年에 몇 番 못 보고 자주 連絡 못 하잖아요. 살다 보면 自己 일이 있고, 바쁘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담고 있으면 繼續 維持되는 게 連絡處高 人脈이라고 생각해요.”

鄭 委員長이 携帶폰 連絡處에서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둘씩 꺼낸다. 故 최진실 氏의 이름이 있다. 鄭 委員長은 2008年 드라마 <내 生涯 마지막 스캔들>에서 夫婦로 演技 呼吸을 맞췄다. 崔 氏는 이 드라마를 遺作으로 남기고 世上을 떠났다. 鄭 委員長은 機會 있을 때마다 그 드라마를 같이 하자고 提案해준 최진실 先輩에 對한 고마움과, 힘들 때 지켜주지 못한 未安함을 드러냈다. 崔 先輩와의 作別이 周邊 사람들을 더 觀察하고 平素에 잘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人生의 터닝 포인트이기도 했다.

“언젠가 携帶폰 連絡處를 整理하는데 眞實 先輩를 包含해서 돌아가신 분들이 몇 百 名이 되더라고요. 지워야 되나, 말아야 되나 苦悶이 됐죠. 그러다 ‘아니야. 간직하자’라고 놔뒀죠. 마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인데 굳이 제가 끊을 必要가 없어요.”

-최진실 氏가 世上을 떠나고 사람을 對하는 姿勢를 다시 고쳤다고 하던데.
“眞心을 淡姿라는 거죠. 蓄積되는 時間과 마음이 쌓이는 過程의 重要性이라고 할까요. 얼마 前 法務硏修院에서 人脈 管理에 對한 講演을 했는데, 周邊 사람들을 5年 또는 10年에 한 番 보더라도 마음의 鎭重함과 眞情性을 담자는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 相對方은 마음으로 나를 記憶해 1年에 한 番을 만나든, 2年에 한 番을 만나든 내 사람이 돼요. 그렇게 쌓인 人脈은 內 資産이 됩니다. 普通 親한 사람을 紹介할 때는‘이 사람하고 10年 됐어, 저 사람하고는 20年 됐어’라고 말을 하죠. 그 歲月에 알찬 마음을 쌓는 過程이 담겨야 한다고 봐요. 外國의 有名한 家門 사람들을 보면 親舊 紹介를 할 때 꼭 몇 年 된 親舊인지를 물어봐요. 時間, 過程을 重要하게 여기더라고요. 제가 萬若 어떤 동생하고 ‘15年 됐다’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그 時間 동안 둘이 아무런 問題없이 지낸 것으로 意味 附與를 해요. 그러면 이 두 사람이 다음에 뭘 해도 믿겠다고 합니다. 因緣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느냐, 그 過程에서 表現도 잘 해야 한다고 봐요. 忠淸道 말로는 ‘경우’라고 하는데, 親해지고 싶어 냄비처럼 無作定 物質的인 것을 갖고 달려드는 건 ‘경우’에서 벗어나죠.”

그는 忠淸南道 禮山 出身으로 이 고장이 排出한 人物 中 하나다. 더本코리아 白種元 代表와 함께 豫算의 자랑이다.

-偏見은 아닙니다만 忠淸道 出身 분들은 속을 알 수 없다고 하잖아요. 사람 사귀는 재주는 타고나신 겁니까.
“제가 長孫인데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늘 어른들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스며든 거죠. 술도 그렇고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큰 床에서 밥을 먹으면서 밥床머리 禮節도 일찍 배웠죠. 그러면서 各其 다른 사람의 位置, 經歷, 水準에 맞게 對話를 하고 行動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例를 들면 ‘누구와 만났는데, 이 사람이 어느 程度 水準이 되니 이렇게 그의 얘기에 集中해서 反應을 해야겠다’면서 狀況別 公式이 딱 잡힌 거죠. 學校에서도 班長도 하고, 排球部 主張도 해서 周邊에 사람이 많았고, 어릴 때부터 演藝人처럼 注目을 받았어요. 그 때 껌이나 씹고, 다리 흔들고, 辱 했으면 정준호를 全部 떠나갔겠죠.”

-‘오지랖 넓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 텐데 肯定的으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내 資産 쌓는 거라 생각하니까요. 저는 神이 아니잖아요. 株式을 하고 싶으면 證券社에 있는 知人 한 名 程度 알아둬야 하는 거고, 아플 때 찾아갈 醫師도 있으면 좋고. 分野別로 제가 知人 形成이 돼 있으면 周邊 사람들은 또 ‘정준호를 통하면 안 될 것도 된다’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죠. 資産을 나누는 건데요. 그게 이뤄지는 瞬間 저는 또 도움을 준 사람을 管理해야 합니다. 한두 番 監査 電話하고 끝나면 相對方은 속으로 ‘境遇가 없네’라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身世 진 만큼 管理를 해야 人脈으로 千 年 萬 年 가는 거죠. 相對方이 ‘저렇게 바쁜 사람이 나한테 神經을 쓰긴 쓰는 區나’라고 느낄 때 저는 또 感動을 느껴요. 그래서 繼續 오지랖이 넓을 수밖에 없어요.”

● 演藝人 ‘가오’ 안 잡고 사람 計算器 안 두드리는 ‘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實속을 따진다. 人間關係에서는 더 그렇다. 되도록 ‘윈윈’ 할 수 있는 關係가 좋다. 反對로 親하기는 한데 每番 損害 보는 느낌이 들면 假借 없이 關係 整理가 되기도 한다. 鄭 委員長도 情을 주고 親해졌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을까. 그런 境遇가 있었다면 그 衝擊에 사람을 對하는 것도 宏壯히 制限的이고 까다로웠을 싶다. 鄭 委員長은 “특별하게 뒤통수를 맞은 적은 없다. 오히려 管理가 힘들 程度로 人福이 많다”며 “돈과 名譽를 잃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사람한테 傷處를 받으면 治癒가 쉽지 않다고 흔히 말하는데, 稀罕하게 이런 境遇도 없다”고 웃었다.

-損害 보더라도, 自己가 利用을 當하는 듯 하더라도 狀況을 즐기고 理解하고 되도록 關係를 깨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相對方도 鄭 委員長과의 關係에서는 實속을 끌어들이지 않는 듯 한데요.
“必要한 사람만 만나고 實속을 따지는 關係가 가장 ‘쥐藥’이라고 봐요. 내가 必要한 사람만 만나다 보면 相對方도 나를 볼 때마다 ‘내가 必要해서 만났구나’라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洋服 브랜드 모델을 10年 넘게 했어요. 저는 그 會社를 ‘나의 會社’라고 여겼어요. 會社가 정준호를 모델로 써서 成長했다는 얘기를 너무 듣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例를 들면 모델 契約書에 사인會를 萬若 두 番 간다는 條項이 揷入돼 있어도 저는 10番이고 20番이고 해줬어요. 그러니까 會長님이 ‘내가 정준호 氏한테 身世를 많이 졌다’며 事業도 가르쳐주시고, 여러 貴人들度 紹介해주시고, 또 다른 會社 모델로도 連結에 連結을 시켜주셨죠. 제가 會社에 使命感을 갖고 내 會社처럼 精誠을 다하니까 會長님 本人이 저를 弘報하고 다니더라고요. 出演했던 廣告 大部分이 이런 過程으로 하게 됐죠.”

시골내기가 유명한 인기 배우가 됐다고 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고향을 등지는 일은 없다. 예산은 정준호를 낳은 곳. 고향 일이라면 만사 제친다. 정준호 제공
시골내기가 有名한 人氣 俳優가 됐다고 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故鄕을 등지는 일은 없다. 豫算은 정준호를 낳은 곳. 故鄕 일이라면 萬事 제친다. 정준호 提供


-演藝人이라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人氣를 얻고 有名해지면 ‘내가 다른 世上에 살고 있구나’라며 人間關係에서도 어느 程度의 待接을 바랄 수도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都市남 같은데 實狀은 시골 사람이잖아요. 까다로운 것도 없고, 하하. 시골에서 올라와서 이 바닥에 들어와 보니 出衆한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래서 내가 熱情을 다 받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動機 附與는 되는데 疏通이 안 되더라고요. 나를 完全히 보여주고, 相對方도 나한테 完全히 自身을 드러내면서 友情이 쌓이고 親舊가 되는 건데 여기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演藝人들은 人氣가 없으면 하루도 살기가 힘들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無用之物이죠. 人氣는 大衆과 呼吸하고, 周邊 人間關係를 좋게 쌓아가는 過程에서 얻어지고 維持가 되죠. 그런데 어떤 位置에 올라갔을 때, 成功했다 싶을 때 演藝人들은 손을 놓더라고요. 平生 먹을 糧食, 사람 管理를 해야 하는 時點인데도 不拘하고요. 人生이라는 게 恒常 頂點에서 下山하면서 내려오잖아요. 잘 나갈 때 自己에게 고마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感謝함과 고마움을 表示하지 않았던, 疏通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演藝人들은 人氣라는 게 平生 가지 않을 거라고 認識할 때 정작 나를 지켜줄 수 있는 後援者가 周邊에 없어요. 그러면 외로워지고 結局에는 돌이킬 수 없는 判斷을 하게 되거든요. 一般 사람들의 關係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팬이 원하다면 어디든 간다. 팬은 곧 내 고객이다. 고객 서비스를 잘해야 한다.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행사, 축제, 단체 등의 홍보대사는 가리지 않는다(위 사진). 아들 학교 바자회에도 참석해 사인해주고 있는 정 위원장. 정준호 제공
팬이 願하다면 어디든 간다. 팬은 곧 내 顧客이다. 顧客 서비스를 잘해야 한다. 市民들과 만날 수 있는 行事, 祝祭, 團體 等의 弘報大使는 가리지 않는다(위 寫眞). 아들 學校 바자會에도 參席해 死因해주고 있는 鄭 委員長. 정준호 提供

그래서 鄭 委員長은 바쁜 스케줄에도 아들, 딸 學校까지 찾아간다. 運動會 같은 學校 行事, 學父母들이 모일 때 거리낌 없이 얼굴을 내민다. 人事도 사인도 부지런히, 演藝人 감투 잊고 뭐라도 學校를 위해 할 일을 찾는다. 結局 自身과 子息들을 위한 또 한 番의 疏通이다.

“아들, 딸한테 제가 이렇게 말을 해요. 恒常 學校에서도 疏通이 안 되고, 외로운 親舊가 있어도 손가락질하지 말고, ‘王따’시키지 말고 잘해주면서 그 親舊가 어떻게 變하는지 觀察하라고 해요. 當場 그 親舊가 좋게 變하지 않더라도 네가 보여준 愛情에 對해 고마움을 갖고 있을 거고, 오래 記憶하면서 너의 便이 될 것이라고요.”

-아이들에게도 人脈이라는 財産을 만들어주는 뜻있는 아빠의 代물림이네요.
“한 番은 아이 學校에서 한 學生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서 民願이 發生한 일이 있었어요. 저희 아들이 ‘아빠, 나 學校 가기 싫다’고 해서 제가 그랬죠. ‘世上에서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는 것은 맞는데, 萬若 그 親舊를 나중에 커서 만날 수도 있지 않느냐. 親舊를 품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요. 그러니 저희 얘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아빠는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몰라주는 게 아니라 그게 親舊다. 어떻게 좋은 親舊만 있냐, 말썽 피우고 괴롭히는 親舊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네가 男子답게 잘 토닥이고 좋은 길로 같이 가자고 하면 그 親舊가 나중에 좋게 變할 수도 있다’고 해줬죠.

-그리고는요?
“學校에 알아 보니 그 親舊는 이미 學校를 옮기기로 決定을 해서 제가 校長을 先生님을 만났어요. 校長 先生님께 그랬죠. ‘只今 그 親舊를 無條件 떠나보내면 學校 親舊들하고 서로 記憶에 남을 追憶이 너무 안 좋아진다, 헤어지는 時間을 주고 아름다운 離別을 하도록 해주자’라고 建議를 드렸죠. 그 親舊가 便紙를 쓰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例를 들면 ‘나 누구인데. 누구야 未安해. 나중에 봤으면 좋겠다’는 式으로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마음을 表現했으면 좋겠다고요. 그 便紙를 쓰면서 本人은 더 未安함을 느낄 테고, ‘自己가 조금 참을 걸’이라고 後悔하지 않겠어요. 한便으로는 그 親舊가 커서 貴人이 돼 親舊들을 찾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런 얘기를 校長 先生님이 듣고 ‘全혀 생각을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아름다운 離別이 健康한 親舊들로 다시 만나는 機會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린 記憶이 나네요.”

-演藝界에서 下山을 하는데 周邊에 기댈 사람이 없어서 極甚한 외로움에 빠진 同僚들도 많이 봤겠죠.
“2001年 映畫 <두사부일체>에 함께 나왔던 俳優 (正)韻택이도 그 映畫가 開封을 하고 나서 엄청난 人氣를 누렸잖아요. 只今은 牧師가 돼 宣敎 活動을 하고 있는데 本人도 當時에는 人氣가 千 年 萬 年 갈 줄 알았죠. 불미스러운 일을 한두 番 겪고 나서 完全히 내리막길을 걸을 때 얘기도 많이 하고 그냥 지켜봐주고 觀察을 많이 했죠. 別 건 아니지만 밥 한 끼 같이 하고, 用돈도 주고, 꾸준하게 關心을 가져줬어요. 韻擇이 本人은 自己가 演藝界에서 잊혀지고 周邊에 사람도 떠나가니 나한테도 ‘兄이 連絡을 하면 받을까’라는 걱정을 했더라고요. 演藝人은 自信感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비슷한 處地의 演藝人들한테 그래요. ‘恒常 갇혀있지 말고 일이 없으면 나가서 奉仕라도 해라. 그러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니 자랑하고 다녀라’고요. 구석에 있으면 家族들도 被害를 봐요. 人氣와 사랑을 國民들이 준 것이니 잘못을 해서 매를 맞더라도 밖으로 나와야죠. 그러면서 발품 팔고 돌아다니면 自身을 必要로 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分明히 있어요. 演技者인데 作品 提議가 안 들어와서 演技를 못한다면 다른 일이라도 하라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貴人을 만나요. 그런 분들이 사람을 떳떳하고 自信 있게 만들어줘요.”

영화 〈두사부일체〉에서 자신의 부하로 나와 인연을 맺었던 정운택(오른쪽)은 정말 친동생 이상으로 챙겼다. 동아 DB
映畫 〈두사부일체〉에서 自身의 部下로 나와 因緣을 맺었던 정운택(오른쪽)은 正말 親同生 以上으로 챙겼다. 東亞 DB


● 握手는 顧客 서비스


鄭 委員長의 트레이드마크는 握手다. 그는 누구든 만나면 握手부터 請한다. 웬만한 政治人보다 能熟하다. 別名이 괜히 ‘鄭 議員’일까. 眞心이 묻어 있고, 반갑다는 마음을 손에서 크게 느껴지게 한다. 그는 地自體, 企業, 各種 祝祭 等의 얼굴인 弘報大使를 100餘個 넘게 맡고 있다. 불러만 주면 받는다. 더 많은 분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해서다. 이 분들은 곧 ‘정준호’라는 商品을 사주는 顧客이기도 하다. 握手는 中斷 없는 顧客 서비스다.

-握手는 ‘마당발’의 디테일이 아닐까요.
“적어도 握手를 한 사람이 몇 百萬 名은 될 거예요, 하하. 잠깐이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人事하는 겁니다. 저는 豫算 집에 가도 아버지와 握手를 먼저 해요. 짧지만 ‘아이고, 정준호입니다’라는 말과 손으로 精誠을 傳합니다. 어디를 지나가다가도 握手할 분들을 찾아요. 저와 握手를 한 番 하신 분들은 내 팬이 되면서, 제가 管理해야 하는 顧客이 되는 겁니다. 弘報大使 活動하면서 오늘 10分하고 握手하면 내 顧客을 10名 뚫은 것으로 받아들여요. 顧客分들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映畫하고, 드라마도 하는 것 아닙니까. 握手로 顧客 管理를 해야 되는데 已往이면 全國 祝祭나 좋은 일 있는 곳 돌아다니면서 오래 손을 잡아드리면 얼마나 좋아요.”

惡手가 나왔으니 政治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워낙 多方面에 人脈이 많고 達辯에 親和力까지 있으니 늘 政治 參與설이 나돈다. 忠南 豫算에 出馬한다는 說은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 “國會議員 배지 달면 顧客 折半이 날아갈 것 같아”

“배지 다는 瞬間, 顧客 折半이 떨어져 나갈걸요.”
아주 現實的인 判斷이다. 人氣 演技者 俳優로 어디서나 歡迎을 받는 그로서는 想像할 수 없는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鄭 委員長은 “全國的으로 歡迎을 받는 것에 醉해 있어서 배지 달 생각이 안 생긴다”고 했다. 國會議員들은 40%臺 得票率로 當選이 돼도 世上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데, 鄭 委員長은 참 滿足의 基準이 絶對的으로 높아 政治 參與 意思를 確實히 접었다.

“아버지가 딱 그런 얘기를 하세요. 豫算 시골 市場 場날에 가면 ‘정준호 아버지 오셨다’고 국밥집, 떡집 아주머니들이 亂離가 나고, 待接 받으시는 模樣이에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늘 ‘判檢事 안 부럽다. 來日 죽어도 餘恨이 없다’고 그러세요. 한 番은 아버지가 ‘그런데 아들이 政治를 한다고 與野 어느 黨이든 배지를 다는 瞬間 折半한테 손가락질 받을 게 아니냐. 우리 아들이 才能이 있고, 故鄕에 奉仕하고 싶어서 政治를 한다면 應援하겠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팬들 折半이 날아가는 게 가슴 아프고 못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버지 얘기 듣고 精神이 번쩍 났습니다.”

-國會議員이 안 돼도 俳優 정준호의 影響力은 웬만한 政治人 以上이지 않을까요.
“政治를 안 하지만 弘報大使 活動 等을 하다보니 마음으로는 한 3選 議員 程度 된다고 생각해요. 하하. 아는 國會議員도 많고, 그 분들이 불러 祝辭를 한 적도 많고, 班은 政治人이지 않을까 봐요. 影響力? 萬若 運動 選手 出身이 演技판에 와서 演技를 한다고 생각해봐요. 演技者들은 겁내하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演藝人이 政治판에 들어간다고 하면 어떨까요. 全國으로 다니다 보면 팬들께서 國會議員으로 나와 달라고 말씀 많이 하세요. 演藝人들 얼굴 알려졌다고 政治판 나오면 힘듭니다. 트레이닝을 먼저 해야 할 겁니다. 政治판에서 握手는 다릅니다. 握手할 때 相對方이 웃어준다고 다 내 팬, 내 票는 안 되는 거죠. 政治人들을 알고 親하게 지내면서 政治라는 게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政治판이 어려워요. ‘기브 앤 테이크’가 안 되면 絶對 사람을 잡을 수가 없어요. ‘나한테 이거주면 너한테도 뭘 줄게’가 돼야 한 票가 따라와요. 나름대로의 ‘政治’를 주고받기 위해 協商하고 調律하는 게 사람 좋아하는 저로서는 쉽지 않은 問題죠.”

● 全혀 ‘깐부’ 될 것 같지 않았던 ‘깐부’ 申鉉濬


한 살 터울 형인 배우 신현준(왼쪽)과는 사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 지금처럼 친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는 정 위원장. 정준호 제공
한 살 터울 兄인 俳優 申鉉濬(왼쪽)과는 사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 只今처럼 親해질 거라고는 全혀 생각 못했다는 鄭 委員長. 정준호 提供

範圍를 가늠하기 힘든 鄭 委員長의 人脈에서 가장 中心과 가까이 있는 親舊로 알려진 사람은 俳優 신현준 氏다. 한 살 터울 兄이다. 둘이 演藝界 最强의 單짝임을 모르면 正말 間諜이다. 요즘도 유튜브 ‘精神-업쇼(Up Show)’ 活動을 함께 하면서 購讀者들에게 다양한 웃음을 주고 있다. 너무나 정준호의 ‘깐부’임이 분명해 申 氏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無心코 던진 質問에 그의 이름이 나왔다.

-親한 人脈 中에 나하고 正말 맞지 않은데 ‘깐부’가 된 사람이 있나요?
“그게 賢俊이 兄이에요. 只今도 헷갈리는데, 正말 저하고 性格과 사는 스타일이 反對에요. 나는 사람들 좋아하고, 저녁을 먹다가 누가 電話 오면 불러서 合席시키는 스타일이잖아요. 털털하게 살고, 삶의 어떤 規定이 없잖아요. 그런데 兄은 自己만의 루틴이 있어요. 예전에서는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結婚하고부터는 술도 끊고, 無條件 家族만 챙기죠. 海外 撮影을 같이 가면 일이 끝나기 무섭게 自己 房으로 들어가요. 夫婦 모임을 해도 麥酒 한 盞, 와인 한 盞 같이 마시는 게 안 되니까 우리는 不滿이 많아요. 自己 生活이 定해져 있으니 나랑은 正말 가까운 것 같지만 實際는 全혀 안 맞아요. 하하.”

-그럼 正말 가까워진 契機가?
“賢俊이 兄이 結婚을 하면서 接點을 찾은 거예요. 나는 ‘컨츄리’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兄은 自己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참 저 兄하고는 되게 안 맞는다’고 생각을 繼續 했는데, 結婚한 兄의 仔詳한 아빠 모습 그리고 옛날에 까다롭고 멋을 華麗하게 내던 兄이 어느 날 수더분한 아빠로 애들 챙기는 모습을 보는데 同質感이 생기더라고요. 둘이 結婚하기 前에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그냥 兄 동생 關係였다면 結婚 後에는 眞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親舊가 됐죠. 남들은 太初부터 親한 줄 아는데 이제야 서로 完全한 오픈을 하게 됐습니다.”



결혼 후 자녀를 얻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간격을 더 좁힌 두 사람. 정준호 제공
結婚 後 子女를 얻고 同質感을 느끼면서 間隔을 더 좁힌 두 사람. 정준호 提供

-이제는 신현준 氏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人間은 저 없으면 못 살죠. 예전에는 그냥 같이 놀다가 ‘정준호를 통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를 안 거죠. 하하. 兄은 生活 半徑이 좁으니까 아는 사람이 別로 없잖아요. 둘이 어디 海外를 간다라고 하면, 저는 電話 한 通話로 스케줄이 잡히고 問題 解決이 되니까 놀라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보면 ‘내가 空짜로 해주겠어? 그 사람들이 韓國에 오면 내가 더 잘해주지’라고 알려줘요. 確實하게 쐐기를 박아줘요. 人生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집구석에만 있지 말고, 남들한테 食事 待接도 하고, 나오라고요. 人氣 있는 大衆 演藝人들은 잘 몰라요. 不便한 것도 참고 하는 게. 내가 왜 모르는 사람들하고 밥을 먹어야하는지, 그럴 時間 있으면 집에서 映畫나 보고 한다고 하죠. 自己 人生을 設計하는 건 正答이 없는데 제가 뭐라고 하는 理由는 子息을 키우고 家族을 지키려면 不便함을 參考 人脈 管理 等이 必要하다는 거죠. 사람 管理로 幸福할 때 不幸을 對備해라고 말해주죠.”

-스타일이 變했겠습니다.
“變했죠. 저는 長男인데, 兄은 누나 셋에 막내 아들이잖아요. 變했죠. 自尊心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自尊心보다는 自尊感이 높아야겠죠. 저는 그래요. 어떤 자리이든 내가 굽히고 굽힐수록, 謙遜하게 하고 또 謙遜하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氣分이 좋아요. 내가 어디서 잘난 체하고 固執 세우고, 그럴 때에는 氣分이 좋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氣分 나쁜 얘기를 해도 나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謙虛하게 받아들이게 돼요. 兄이 이런 部分을 잘하는 것 같아요.”

신현준은 정준호로 인해 세상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정준호 제공
신현준은 정준호로 인해 世上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정준호 提供


● 人脈 損切 없는 ‘나’… “사람은 積金입니다”

정준호의 옆 자리는 늘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에게 사람은 평생 차곡차곡 인생을 채워주는 적금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정준호의 옆 자리는 늘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에게 사람은 平生 차곡차곡 人生을 채워주는 積金이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自然스럽게 答이 나온다. 사람 좋아하는 ‘정준호’에게서는 人脈 損切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쨌든 만나서 氣分 좋지 않은 사람이 分明 있지 않을까.

“孫絶을 하려는데 어느 날 連絡해요. 그러니 損切이 아니지. 性格上 ‘다시는 連絡하지 맙시다’라고 못해요. 안 맞으면 自然스럽게 連絡을 안 하다가 나중에 사는 게 뭐 있어, 連絡하죠. 그런 마음을 갖고 사니 相對方도 ‘罪悚합니다’하면서 먼저 連絡해오고 便해져요. 누군가를 損切한다면 그 瞬間 마음속으로 相對方을 미워해야 되잖아요. 微妙한 憎惡心과 不信까지 생기는데 그 때부터 나한테 病이 생기고 疲勞感이 극대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나를 위해서라도 損切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不便한 일이 있기 前에 좋은 追憶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지켜보려고 해요. 남 辱만 안 해도 成功한다고 봐요.”

-損切 없는 人脈 管理를 잘 하기 때문에 事業도 自身 있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에게 事業은 顧客 管理, 팬 서비스의 延長이에요. 그러다 보면 맞지 않는 사람에 對해서도 時間 投資를 하면서 나와 周邊 사람들과의 連結 漸漸을 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면서 震國이 眞국을 알아보는 네트워크가 생겨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絶對 내 앞에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러면 서로가 人生의 콘티를 잘 그려줍니다. 正말 競爭力 있는 人脈이 또 하나 생기는 거죠.”

살면서 時間이 갈수록 人脈을 넓힌다는 게 쉽지는 않다. 흔히 사람들이 어느 程度 社會 生活을 하고 隱退를 할 무렵을 보면 人脈의 範圍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意圖的이든 아니든 만나는 사람들을 줄인다. 보던 사람들을 繼續 보는 境遇가 많다. 總量이 있어 보이는데 鄭 委員長은 다르다.

“만 名을 알든, 10萬 名을 알든 間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지내면서 저는 마음의 富者가 됐다고 생각을 해요. 이런 滿足感이 있기 때문에 人脈의 總量을 規定할 수는 없다고 보죠. 總量制라는 定義를 適用하면, 나는 이제 人脈이 1000名 됐으니까 다음부터는 사람 줄이고 損切하고, 이런 거잖아요. 그것보다는 내 마음의 金銀寶貨가 하나씩 들어와 쌓이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니 굳이 調節을 할 必要는 없죠. 저한테는 ‘더 들어와라, 차고 넘치게 들어오라’고 하는 게 人脈이에요. 만난 歲月에 따라 3年짜리, 5年짜리, 10年짜리 積金이 있는 것과 같죠. 延長도 可能하고, 하하. 1年에 結婚, 葬禮 花環으로 2億 원을 쓰는데, 只今까지 모아둔 積金을 생각하면 아까운 돈이 아닙니다. 積金은 한 番 깨려면 힘들잖아요. 孫絶을 할 수 없는 거죠. 携帶폰에 電話番號를 繼續 貯藏한다고 ‘버퍼링’이 나지는 않습니다.”

人脈王의 사람 管理 루틴 따라해보기

▷아침 6時에 일어나 運動하고 新聞보고, 오늘 만날 人脈을 살펴봅시다… “그러면 빌게이츠와도 親舊 될 수 있어.”

-鄭 委員長은 午前 6時에 起牀해서 運動을 하고 커피 한 盞을 하면서 新聞 記事를 스크린 한다. 9時까지 3時間 동안 36年째 하고 있다고. 記事를 보다 보면 人脈, 知人들의 同情이 把握된다. 記事를 理由 삼아 連絡도 하고, 約束도 잡고, 情報도 얻고, 밀린 文字 等에 答도 하면서 아침에, 사람에 集中하게 된다고. 하루 中 가장 幸福한 時間이라고 한다. 海外 出張 中에도 이런 루틴을 지킨 德分에 호텔 피트니스 클럽 等에서 外國 有力 人士들과도 親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365日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볼 것을 勸한다.


▷ 人脈 콘서트를 열어보자
-鄭 委員長은 早晩間 自身의 人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콘서트를 열어볼 計劃이라고 한다. 가까운 人脈과 그 家族들까지 招請하는 企劃이다. 밖에서 우리 人脈들끼리는 잘 어울리는데, 집에 있는 子息의 베스트프렌드는 누구인지 모른다. 父母는 子息이 어디를 가는지 모르니까 잘 알게 해주자는 것. 家族들끼리 모이면 더 큰 人脈도 形成한다. 더 넓은 ‘울타리 家族’의 誕生이 아닐까.

▷付託을 할 거면 바라는 그대로 얘기해라
-말 그대로. 그러면 最小限 率直한 사람이라고 認定은 받는다. 感謝함과 고마움이 덧붙여지면 나중에 다시 付託할 수 있는 餘地가 생긴다. 단물 다 뽑아먹고, 利用하고 潛水 타는 人間보다 낫다.

▷乾杯辭로 ‘三務三由’ 외쳐보자
-鄭 委員長이 술자리에서 늘 하는 乾杯辭다. ‘三務三由(三無三有)’, 世上에 3가지가 없고, 3가지가 있다는 거다. ‘三由’는 하늘에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고, 내 앞에는 家族이 있다는 것. ‘三無’는 祕密 없고, 空짜 없고, 내 앞 길에는 正答이 없다는 것. 이 말을 늘 새기고 사람을 對해보자고 勸誘한다.

유재영 記者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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