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軍에서 休暇 나온 親舊를 만나 그동안 담아두었던 얘기를 나누던 中 내 携帶電話가 搖亂하게 울리기 始作했다. 無意識的으로 携帶電話를 꺼내들었지만 갑자기 苦悶이 됐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發信者番號를 보니 種種 걸려오는 다른 親舊의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대로 携帶電話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親舊는 왜 안 받느냐고 惹端이다. 나는 얼떨결에 對答했다. “난 너와 얘기하고 싶어. 우리들이 오랜만에 나누는 이 對話의 時間이 다른 사람들에 依해 妨害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電話한 親舊에겐 좀 있다 連絡하면 되는걸 뭐.”
나의 이 卽興的인 對答이 마주앉은 親舊에게 꽤 感動을 주었나보다. 親舊는 나보고 그間 많이 成熟하고 생각이 깊어졌다며, 앞으로는 自身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말했다. 事實 親舊는 둘째 치고 나 스스로 自身이 한 말에 놀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나도 모르게 侵犯 當해 왔던 내 時間에 對한 所有權을 宣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以後로 나는 親舊와 얘기할 때나 授業 時間에 걸려온 電話에 對한 負擔感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餘年 前만 하더라도 携帶電話 使用者는 얼마 안 됐다. 大部分의 사람들은 有線 電話機를 통해 消息을 주고받고, 用件을 傳達하곤 했다. 혹 밤늦게까지 親舊와 通話하다가 父母님께 들키기라도 하면, 父母님과 한바탕 昇降이를 벌여야 했다. 멀리 出張 간 아버지의 電話를 기다리며 電話機 앞을 떠나지 못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어쩌다가 나에게 電話가 왔을 때에는 電話機를 向해 全速力으로 뛰어야만 했다. 動作이 조금이라도 굼뜨면 또 父母님께 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電話機의 權威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나 이젠 狀況이 變했다. 緊한 消息보다는 無聊함을 달래기 위한 목소리들이 携帶電話 사이를 떠돌고 있다. 꼭 받아야 할 電話가 있는 反面, 받지 않아도 別 問題가 없는 電話도 많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電話를 받거나 받지 않을 選擇의 權利가 있다. 只今 내가 하고 있는 일이 重要한지, 아니면 電話通話를 하는 것이 重要한지 한 番쯤 생각해볼 일이다.
署名綴 大學生·大邱 北區 복현1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