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1636∼1637) 當時 靑(淸)과 決死抗戰을 主張하다 淸나라에 끌려가 殉節한 三學士(三學士)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碑)가 毁損된 지 70年 만에 中國 선양(瀋陽)에서 再重建됐다. 또 이 비의 複製本이 이달 末 獨立記念館에 세워진다.
鷄龍奬學財團 이인구(李麟求) 理事長은 10日 “靑果 和議를 끝까지 反對하며 목숨을 내걸고 節槪를 지킨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等 三學士의 비를 中國 선양(瀋陽)의 渤海大學 校庭에 지난달 30日 再重建해 除幕式을 가졌다”고 밝혔다.
三學士는 淸 太宗이 朝鮮에 神社(臣事)의 例를 갖출 것을 要求하며 일으킨 丙子胡亂 때 決死抗戰을 主張했던 척화론자로 선양으로 끌려갔으나 屈服하지 않고 殉國의 길을 擇했다.
淸 太宗은 “비록 朝鮮의 臣下이지만 忠誠心은 부럽다”며 이들에게 ‘삼한汕頭’(三韓山斗·朝鮮의 泰山같이 높고 北斗七星 같이 빛난다는 뜻)라는 揮毫를 내린 뒤 祠堂과 碑石을 세웠다.
이 비는 淸朝가 沒落한 뒤 破損됐다가 1937年 비의 由來를 알게 된 朝鮮族 同胞들에 依해 再建됐으나 1960年代 中國 文化革命 때 다시 破壞되는 崎嶇한 運命을 겪었다. 以後 朝鮮族이 세운 渤海大學이 破損된 碑身과 農家의 주춧돌로 放置돼온 肥大를 모아 保管해 오다 鷄龍奬學財團과 함께 復元했다.
이 비는 ‘삼한汕頭’라는 글字가 새겨진 龍頭, 2m 크기의 碑身(幅 83cm, 두께 26cm), 거북 形象을 한 肥大 等 높이 390cm 크기다.
이기진 記者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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