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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돗물도 안나오던 달동네… “시장님 옥탑방 덕분에 떴네요”

    水道물도 안나오던 달동네… “市長님 屋塔房 德分에 떴네요”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가게 門을 닫고 鍾路3街에서 택시를 타면 “삼양동 가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代身 바로 옆인 미아동으로 가 달라고 했다. 택시에서 졸다 눈을 뜨면 택시는 이미 집과는 距離가 먼 미아동에 到着해 있었다. 서울 江北區 삼양동에서 태어나 平生을…

    •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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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전깃불 없던 시골마을, 전국서 유학오는 ‘교육 특구’로

    學校-電氣불 없던 시골마을, 全國서 遊學오는 ‘敎育 特區’로

    1960年 只今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태어나 只今까지 살아온 김영찬 氏(57)는 한 番도 初中高校를 洞네에서 다니지 못했다. 마을 안에 學校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치동은 學院은커녕 學校도, 甚至於 電氣도 안 들어오던 시골 洞네였다. ○ ‘四大門 안’으로 留學 가던 ‘깡촌’ 金…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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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엔 고기=마장동… 장날엔 ‘워∼’ 소몰이꾼 소리 가득”

    “70年代엔 고기=마장동… 場날엔 ‘워∼’ 소몰이꾼 소리 가득”

    지난달 17日 서울 城東區 마장畜産物市場. 33m² 남짓한 作業場에서 衛生服과 衛生帽, 衛生化로 武裝한 김성찬 氏(57)의 손길은 분주했다. 京畿 抱川 屠畜場에서 가져온 돼지 10마리分 足발. 20∼30kg 되는 고깃덩이를 쉴 새 없이 옮겨 털을 除去하고 細菌이 繁殖하기 쉬운 발가락 …

    •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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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양 조씨 모여살던 집성촌… 지금은 기업회장 사는 부촌”

    “풍양 조氏 모여살던 集姓村… 只今은 企業會長 사는 富村”

    조경구 氏(82)는 12代째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자리한 兄村마을에 살고 있다. 이곳은 풍양 조氏의 集姓村이었다. “광산 金氏, 金海 許氏도 몇몇 있지만 그래도 조氏가 서른 집쯤 됐나, 第一 많았어.” 曺 氏는 82年間 한 番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6·25戰爭이 났을 …

    •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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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전 하루 4시간 자며 미싱 돌려… 지금도 박음질 소리 요란

    30年前 하루 4時間 자며 미싱 돌려… 只今도 박음질 소리 搖亂

    高等學校를 갓 卒業한 김선숙 氏(50·女)는 옷가지 等을 넣은 褓따리를 지고 서울行 列車에 올랐다. 1988年 2月 유난히 추운 날 午前, 全南 曲聖域이었다. “언니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며 옆에 앉아 걱정스레 쳐다보는 어머니를 내내 다독였다. 半나절을 달려 서울驛에 내렸다.…

    •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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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천 옆 아낙들 팔던 양념 가래떡이 신당동 떡볶이 원조”

    “河川 옆 아낙들 팔던 양념 가래떡이 신당동 떡볶이 元祖”

    移徙 온 지 석 달도 안 돼 물亂離를 겪었다. 光復 이듬해 8歲이던 진기홍 氏(80)는 서울 종로구에서 中區 신당동(當時 城東區)으로 왔다. “事實 집이라고 할 수도 없긴 했어.” 아버지가 川邊에 板子로 올린 집이었다. 南山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는 河川을 따라 비슷한 板子집들이 다닥다닥…

    •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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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부촌서 피란민촌으로… “후암시장엔 이북음식 많았지”

    一齊 富村서 避亂民村으로… “후암市場엔 以北飮食 많았지”

    오정옥 氏(61·女)는 1957年 3月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4男妹 中 맏딸로 태어났다. 平安南道 鎭南浦港에 살다가 6·25戰爭 中 越南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에서였다. 北에서 木手로 일한 아버지는 수수깡과 各種 板子때기를 세우고 흙을 발라 집을 지었다. 以後 10年 前 돌아가실 …

    •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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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전 신혼집 앞 최루탄 휙휙… 고시촌엔 이제 싱글족 북적

    30年前 新婚집 앞 催淚彈 휙휙… 考試村엔 이제 싱글族 북적

    33年 前 황영숙 氏(56·女) 新婚집 앞으로 催淚彈과 돌이 날아다녔다. 學校 入口를 막은 戰警들과 마주한 大學生들은 人道에서 떼어내 부순 步道블록 조각을 쥐고 있었다. 區廳에서 步道블록을 걷고 시멘트를 깔았지만 매운 가루가 空氣에 가득했다. 갓난 아들이 催淚彈 소리에 깰까 봐 함께 …

    •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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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전 음악-패션의 신세계… “시위 대학생 많이 숨겨줬죠”

    50年前 音樂-패션의 新世界… “示威 大學生 많이 숨겨줬죠”

    빈대떡집은 크지 않았다. 서울 中區 明洞聖堂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작은 가게였다. 忠南 扶餘에서 갓 上京한 김장환 氏(89)의 서울 나날은 그곳에서 始作됐다. 1968年, 서른여덟 살이었다. 메뉴는 빈대떡과 막걸리. 단골손님이 늘어갔다. 周邊 紹介로 同鄕의 아내를 만났다. 扶餘에는 …

    •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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