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의 ‘無期限 斷食’ 籠城이 15日로 16日째를 맞았다. 지난달 31日 黨 代表 就任 1周年 記者會見에서 突然 斷食 鬪爭을 宣言한 뒤 穀氣를 끊고 天日鹽과 물만 攝取하고 있다. 李 代表는 單式 2駐車를 넘기며 醫療陣에게 ‘低體溫症 等으로 인한 身體機能 低下가 있다’는 診斷을 받았다고 黨 代表 祕書室長인 천준호 議員이 最近 傳했다. 그럼에도 이 代表는 斷食을 持續하겠다는 意志를 强하게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狀況에서 一部 政治人과 누리꾼은 이 代表의 斷食 終了가 “아직 멀었다”는 反應을 보이고 있다. 親명系人 民主黨 정청래 最高委員은 2014年 ‘歲月號 遺家族이 願하는 特別法 制定’을 促求하면서 光化門廣場에서 24日間 斷食 籠城을 벌인 바 있다. 鄭 最高委員은 ‘斷食籠城 先輩’답게 最近 한 라디오에서 “(李 代表가) 想像을 超越한 期間 동안 斷食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내다봤다.
歷代 最長 斷食 記錄은 故盧會燦·沈想奵의 30日
政治人 中 歷代 最長期間 斷食 記錄은 故 노회찬 前 議員과 正義黨 심상정 議員이 세운 30日이다. 2011年 7月 當時 進步新黨의 常任顧問이던 이들은 한진중공업의 整理解雇 撤回를 促求하며 함께 斷食 籠城을 進行했다. 두 사람은 當時 민주당 代表였던 손학규 前 議員 等이 나서 斷食 中斷을 要請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30日째 되던 날 血壓과 脈搏 以上을 보이는 等 健康이 惡化되자 社會 元老들의 懇曲한 要請과 說得 끝에 斷食 中斷을 受容한 뒤 應急室로 向했다.
강기갑 前 民主勞動黨 議員도 이에 못지 않게 長期間 斷食을 벌였다. 그는 2005年 10月 쌀 協商 批准에 反對하며 國會에서 無期限 斷食 籠城을 벌이다 21日 만에 呼吸困難 症勢 等을 보이며 病院으로 移送됐다. 하지만 姜 前 議員은 病院에서 營養을 供給받은 뒤 하루 만에 退院해 다시 國會 本廳 로비에 자리를 잡고 總 29日間 斷食에 臨했다. 特히 그는 排便 活動에 도움을 주기 위한 目的으로 腹部에 된醬 마사지를 해가며 버틴 것으로도 有名하다.
5時間 30分씩 릴레이 斷食? 批判 쏟아지자 結局
李 代表는 지난 11日까지 午前 10時부터 午後 10時까지만 天幕에서 斷食 籠城을 하고 밤에는 國會 黨 代表室에 머무르는 이른바 ‘出退勤 斷食’을 進行했다. 그마저도 12日부터는 아예 黨 代表室로 자리를 옮겼다. 24時間 室外에서 進行하는 斷食 籠城의 ‘國룰’을 破壞한 이 代表의 斷食 行態를 두고 眞情性이 떨어진다는 指摘도 나왔다. 또 “머리는 감으면서 왜 鬚髥은 안 깎는 것이냐”는 疑問을 가진 이들도 있다.
過去에도 이와 비슷하게 斷食을 벌인 이가 있다. 바로 2016年 當時 새누리黨(國民의힘 前身) 代表였던 李貞鉉 前 議員이다. 그는 ‘農林畜産食品部 長官 解任建議案’ 强行 處理를 主導한 丁世均 當時 國會議長이 물러날 때까지 無期限 斷食을 進行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籠城에 나섰다. 하지만 斷食 籠城 場所를 國會 黨 代表室 안에 마련한 뒤 言論에는 定해진 時間에만 公開하면서 批判을 받기도 했다.
滿 하루도 채우지 못한 歷代 最短 時間 斷食도 있다. 2019年 政府가 조해주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常任委員 任命을 强行하자 自由韓國當(國民의힘 前身) 議員들이 臨時國會 보이콧을 宣言하며 릴레이 單式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午前組와 午後組를 짜서 하루 두 次例 5時間 30分씩 밥을 먹지 않는 方式으로 斷食을 進行했다. 前例없던 斷食 行態에 “斷食籠城이 뭔지 모르냐” “웰빙 斷食이냐” 等 批判이 쏟아졌고 結局 흐지부지됐다.
‘政治人 單式의 FM’ 黃敎安, 斷食 8日 만에 意識低下
黃敎安 前 總理는 比較的 짧은 單式 期間에도 健康이 크게 惡化하면서 最近 커뮤니티 等에서 ‘單式의 FM’으로 膾炙되고 있다. 2019年 當時 自由韓國當 代表였던 그는 韓日 軍事情報保護協定(GSOMIA) 維持, 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 設置 反對 等을 促求하며 斷食 鬪爭에 나섰다. 그의 斷食 期間은 單 8日이었다. 하지만 斷食을 始作한 지 닷새 만에 蛋白尿 症狀이 나타났고, 8日째 되던 날 意識이 低下되면서 病院으로 移送됐다.
2018年 自由韓國黨 院內代表였던 金聖泰 前 議員은 條件 없는 드루킹 特檢을 要求하며 斷食을 벌였다. 하지만 健康이 急速度로 나빠지며 “더以上의 斷食은 危險하다”는 醫療陣과 同僚 議員들의 勸告로 9日 만에 斷食을 中斷했다. 그는 最近 라디오에서 “몸의 免疫 體系가 무너져서 斷食 以後에 2年 程度는 여름에 에어컨을 끌 수 없었다. (겨울에는) 卓子 밑에다 늘 電熱器를 틀고 있었다”며 “드루킹 特檢을 통해 實體的 眞實을 밝혀낸 것이 보람이었지만, 잃은 것은 健康”이라고 했다.
斷食鬪爭 目標 爭取한 YS·DJ, 反面…
故 김영삼 前 大統領은 1983年 新軍部가 自身의 政治活動을 禁止하고 家宅에 監禁시킨 것에 抗議하며 斷食에 突入했다. 當時 그는 민주回復과 政治復元 等 民主化를 위한 前提條件 5個項을 내걸고 23日間 斷食했다. 金 前 大統領은 病院에 强制 入院한 뒤에도 斷食을 이어간 끝에 結局 家宅軟禁 解除를 얻어냈고, 그의 斷食은 民主化運動의 起爆劑가 되기도 했다.
고 金大中 前 大統領은 1990年 內閣制 改憲 抛棄 宣言, 地方自治制의 全面 實施 等을 要求하며 斷食鬪爭을 始作했다. 當時 66歲였던 金 前 大統領은 13日間 穀氣를 끊은 끝에 地方自治制 導入이라는 成果를 냈다.
2005年 當時 새누리당 院內代表였던 鄭鎭碩 議員은 行政中心複合都市法에 對한 合憲 決定을 促求하며 11日間 斷食을 했다. 結局 憲裁의 合憲 決定으로 그의 斷食도 마무리됐다.
政治人의 斷食은 最後의 鬪爭 方案으로 여겨진다. 두 前職 大統領이나 鄭 議員의 事例처럼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지만, 願하는 바를 얻지 못한 채 各界 各層의 挽留와 健康 惡化로 인해 斷食을 끝맺기도 한다. 千正培 前 議員도 2007年 韓美FTA 反對를 主張하며 25日間 斷食 籠城을 벌였다. 하지만 健康이 惡化하자 周邊의 意見을 받아들여 斷食을 거뒀다.
조혜선 東亞닷컴 記者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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