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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여 그린 그림[이은화의 美術時間]〈189〉|東亞日報

숨죽여 그린 그림[이은화의 美術時間]〈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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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21年 11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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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데 잔트만 ‘졸린’, 1933년.
게르트루데 盞트만 ‘졸린’, 1933年.
1943年 獨逸 나치는 유대人 없는 베를린을 宣布했다. 反유대主義를 標榜한 뉘른베르크法이 發表된 지 8年 만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유대人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齷齪같이 살아남은 生存者들이 있었다. 畫家 게르트루데 잔트만도 그 中 한 사람이었다.

1893年 베를린의 富裕한 유대人 家庭에서 태어난 盞트만은 베를린 藝術人協會에서 工夫하며, 케테 콜비츠에게 個人 授業을 받았다. 社會批判的인 作品을 했던 스승과 달리, 盞트만은 女性을 모델로 한 肖像畫를 主로 그렸다. 1935年 뉘른베르크法 發表 以後 盞트만은 就業이 禁止됐고, 帝國 美術家協會에서도 除名된다. 專門 畫家로 活動할 수 없다는 意味였다. 1942年에는 追放命令까지 받았다. 盞트만은 이를 拒否했다. 代身 自殺한 척했다. 親舊들의 도움으로 戰爭이 끝날 때까지 베를린의 아파트 地下에서 숨어 지냈다. 大規模 攻襲 때도 爆彈이 避해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生存의 두려움과 恐怖 속에서도 그女는 創作 意志를 굽히지 않았다. 材料를 求하기 힘들었기에 最小限의 道具로 隱密하게 그림을 그렸다. 종이에 그린 이 黑白 드로잉은 고단한 하루 日課를 끝내고 엎드려 깜박 잠이 든 女性을 描寫하고 있다. 寢臺에 반듯하게 누워 便히 잠을 請할 處地가 아닌 듯, 어딘가 不安해 보인다. 어쩌면 畫家의 自畫像인지도 모른다. 나치가 執權했던 해에 그려진 그림이라서 일까. 곧 불어 닥칠 不安한 自身의 未來를 反映하는 듯하다.

두 次例 世界大戰과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盞트만은 믿을 수 없을 程度로 旺盛하게 創作했다. 비록 戰爭 통에 消失돼 正確한 數를 알 수는 없지만 1000點 以上의 作品을 製作한 걸로 알려져 있다. 戰爭 後 盞트만은 藝術家로서뿐 아니라 性小數者 人權運動을 위해 싸우며 熱情的으로 살다 88歲를 一期로 生을 마감했다. 生前에는 죽은 유대人이었지만 死後에는 勇敢한 베를린 女性으로 永遠히 復活했다.

이은화 美術評論家



#그림 #유대人 #게르트루데 盞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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