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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그 偉大한 更生의 敍事[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文學]|東亞日報

도스토옙스키, 그 偉大한 更生의 敍事[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文學]

  • 東亞日報
  • 入力 2021年 3月 26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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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니콜라예프의 1969년 작 리놀륨 판화.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 제공
보리스 니콜라예프의 1969年 作 리놀륨 版畫.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記念館 提供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석영중 高麗大 露語路文學科 敎授
《1849年 12月 22日, 상트페테르부르크 세묘놉스키 練兵場. 살을 에는 듯한 朔風을 맞으며 스물두 名의 死刑囚들이 射擊部隊의 銃口 앞에 세워져 있었다. 大將의 發射 命令만 떨어지면 모두 刑場의 이슬로 사라질 터였다. 그 一觸卽發의 瞬間에 突然 皇室 侍從武官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떨리는 손으로 大將에게 皇帝의 親書를 건네는 映畫 같은 일이 벌어졌다. 刑 執行을 卽刻 停止하라는 特別書翰이었다! 死刑囚 自身들은 勿論 그들의 家族과 구경꾼들이 내뱉는 衝擊과 驚愕, 安堵의 悲鳴으로 廣場은 瞬息間에 阿修羅場이 되었다. 그날 그 瞬間 울려 퍼지지 않은 銃聲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한 男子의 人生도, 그의 文學도, 그리고 그의 祖國 러시아의 文學的 位相도.》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 내부 전경. 석영중 교수 제공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記念館 內部 前景. 석영중 敎授 提供
男子의 이름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 러시아 文學에 ‘深奧함’의 印章을 새겨놓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反政府 陰謀 加擔罪로 死刑宣告를 받고 그 運命의 時間에 죽음을 기다리며 隊列의 두 番째 줄에 서 있었다. 그와 同僚 政治犯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前代未聞의 處刑式은 皇帝가 反體制 젊은이들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기 위해 直接 企劃한 反人倫的 演劇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틀 後 썰매에 실려 옴스크 流刑地로 移送되었다.

地獄에서 다시 태어난 大文豪


오늘의 옴스크는 러시아에서 일곱 番째로 큰 都市이지만 1716年 創建될 當時만 해도 이르티시 江邊에 세워진 작은 要塞에 不過했다. 요새 監獄으로 罪囚들이 들어오면서 都市는 帝政 러시아의 主要 流刑地로 浮上했다. 도스토옙스키는 1850年 1月 23日 옴스크에 到着하여 以後 4年餘 동안 約 5킬로그램 相當의 足鎖를 발목에 차고 러시아 全域에서 붙잡혀 온 一般 刑事犯들과 같은 幕舍에서 服役했다. 옴스크는 그에게 人間이 떨어질 수 있는 가장 깊은 那落이자 가장 높이 솟아오르기 위한 발板이었다. “이빨과 僞裝을 가진 고깃덩어리들”李 우글거리는 이 慘酷한 地獄의 噴火口에서 그는 文字 그대로 다시 태어나 大文豪의 자리로 솟아올랐고 以後 그의 펜 끝에서는 偉大한 更生의 敍事가 줄기차게 쏟아져 나왔다.

刑期를 마치고 首都로 歸還해서 쓴 自傳的 小說 ‘죽음의 집의 記錄’에서 도스토옙스키는 更生의 方式과 凝視의 方式을 같은 脈絡에서 다룬다. 主人公 고랸치코프에게 監獄은 무엇보다도 먼저 눈을 가두는 곳이다. “담牆에 난 틈새를 통해 하늘의 가장자리만을 볼 수 있다.” 數없이 많은 忍苦의 時間이 지나간 後, 틈새 앞에 固定된 視線이 담牆을 넘어 無限한 “푸른 蒼空”으로 뻗어나갈 때 비로소 그는 物理的으로도 精神的으로도 解放된다. 主人公의 更生은 그의 制限된 視野가 擴張되는 過程에 다름 아니란 얘기다.

人間을 向한 ‘깊이 보는 視線’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에 전시된 족쇄. 도스토옙스키는 약 5kg의 족쇄를 유배 기간에 계속 차고 있어야 했다. 석영중 교수 제공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記念館에 展示된 足鎖. 도스토옙스키는 約 5kg의 足鎖를 流配 期間에 繼續 차고 있어야 했다. 석영중 敎授 提供
知識人 고랸치코프가 流配地에서 맞닥뜨린 가장 큰 問題는 勞役과 굶주림과 殘忍한 體罰과 汚物桶 같은 幕舍보다도 같은 幕舍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數百 名의 흉물스러운 平民 罪囚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였다. 고랸치코프처럼 知識人 階層에 屬하는 一部 流刑囚들은 보는 것이 너무 끔찍해 눈을 내리깔고 지냈다. 그런 사람들은 大部分 얼마 못 버티고 孤立 속에서 무너졌다. 그들은 본다는 것이 가장 根源的인 疏通 行爲임을,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을 감거나 눈을 돌릴 때 實存 自體가 監獄이 될 수밖에 없음을 看過했던 것이다.

고랸치코프에게 視線의 解放은 ‘깊이 보는 法(seeing-in-depth)’의 習得에서 始作된다. “表面에 씌워진 껍질을 벗겨버리고 아무런 偏見 없이 注意 깊게 알맹이만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民衆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짐승들 사이에 섞여 있는 깊고 剛하고 아름다운 人間”을 보았고 無限한 線과 無限한 惡을 同時에 품을 수 있는 人間 精神의 그 廣大無邊함에 놀라다 못해 敬畏感까지 느꼈다.

“사람의 알맹이는 모두 같더라”


極과 極이 共存하는 人間 本性의 全 스펙트럼을 눈 속 깊이 들여오는 동안 主人公의 視線은 바깥이 아닌 自身의 內部로 돌려졌다. “나는 내 지난 生涯 全體를 되돌아보았고 아무리 些少한 것이라도 다시 끄집어내어 過去를 깊이 復棋하고 容恕 없이 嚴格하게 스스로를 評價해 보았다.” 날카로운 洞察의 눈이 그의 內面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그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暗黑의 深淵에 到達했을 때 그는 自身의 ‘알맹이’도 無識한 凶惡犯의 알맹이와 別般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사람이다.”

主人公의 깊이 들여다보기는 넓게 보기로 延長된다. 嫌惡로 핏발 선 그의 눈에 어느 瞬間부터 부드러운 눈물이 고이기 始作했다. “누가 이 破滅해 가는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을 헤아려 그들에게 숨겨져 있는 모든 世上의 祕密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同時에 그는 “그 어떤 烙印度 足鎖도 人間으로 하여금 自身이 人間이라는 事實을 잊게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共同의 不幸 속에서 奇妙한 紐帶感이 생겨났다. 이 地點에서 主人公의 更生은 슬그머니 相生의 비전에 重疊된다. 이때 以後 人間의 눈으로 “人間 속의 人間”을 發見한다는 命題는 도스토옙스키의 道德 哲學으로 굳어졌다.

‘人間 속의 人間’을 發見하다


도스토옙스키가 創造한 人物의 깊이 보는 視線에 同參할 때 일어나는 것은 우리 內面의 變化다. 깊이 보기와 깊이 읽기(deep reading)는 어느 틈에 結局 같은 것이 된다. 깊이 읽다보면 시베리아 奧地의 荒廢한 流配地는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둡고 陋醜한 地下室이 된다. 어둠을 마주할 勇氣가 있을 때 그 地下室은 更生을 위한 空間으로 轉變하고 希望이 閃光처럼 우리를 비춰준다. 小說의 讀書가 주는 가장 큰 報償이다.

올해는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지 200周年 되는 해이다. 도스토옙스키는 生涯의 많은 時間을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다. 그래서 흔히들 그를 페테르부르크의 作家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옴스크에서 다시 태어난 옴스크의 作家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는 全 人類를 强打한 史上 初有의 팬데믹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 백신 接種이 始作되었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自由로운 旅行은 어려워 보인다. 우리 안에 있는 옴스크를 찾아서 내면 旅行을 할 수 있다면 이 時間도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석영중 高麗大 露語路文學科 敎授
#도스토옙스키 #更生 #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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