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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運動 實狀 國際社會에 알린 한남대 初代 總長 린튼 宣敎師|東亞日報

3·1運動 實狀 國際社會에 알린 한남대 初代 總長 린튼 宣敎師

  • 東亞日報
  • 入力 2019年 3月 1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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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淸의 喊聲, 그 現場속으로]

한남대 린튼기념관. 한남대 제공
한남대 린튼記念館. 한남대 提供
한남대(總長 이덕훈) 캠퍼스에는 日帝强占期 國權 回復을 위해 獨立運動에 앞장섰던 外國人 宣敎師의 各別한 遺産이 남아있다. 1956年 한남대 設立委員張으로 大學 設立을 主導하고 初代 總長을 지낸 윌리엄 린튼(1891∼1960·韓國名 人돈) 宣敎師다.

린튼 宣敎師는 1912年 美國에서 大學을 卒業하고 21歲의 나이에 美國 남長老敎 宣敎師로 韓國에 派送됐다. 日帝强占期와 6·25戰爭을 거치며 48年間 忠淸과 湖南에서 宣敎와 敎育事業에 獻身했다. 群山영명學校에서는 學生들에게 韓國말로 聖經과 英語를 가르쳤고 全州신흥學校와 基前女學校 校長을 歷任했다.

린튼 宣敎師는 1919年 全北 群山의 萬歲運動을 背後에서 指導한 人物로도 有名하다. 3·1運動의 實相을 國際社會에 알리고 支持를 呼訴했다. 그는 1919年 8月 美國 애틀랜타에서 열린 南部地域 平信徒大會에 參席해 植民地 韓國의 悽慘한 實情과 獨立運動의 非暴力 抵抗精神을 傳했다. 新興學校 校長 時節에는 日帝의 神社參拜 强要를 拒否하며 學校를 自進 廢校해 1940年 日帝로부터 추방당했고 光復 後에야 다시 韓國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6·25戰爭이 벌어져 待避命令이 떨어졌음에도 全州에 남아 聖經學校를 運營했다. 戰爭 막바지에는 釜山에서 宣敎活動을 繼續했다. 末年에 癌鬪病을 하면서도 1956年 한남대의 前身인 大戰基督學管을 設立해 初代 總長을 지냈다. 린튼 宣敎師는 獨立運動에 寄與한 功勞로 外國人으로서는 異例的으로 2010年 91周年 3·1節에 建國訓長 애족장을 받았다.

한남대는 린튼 宣敎師를 기리기 위해 1994年 韓國名을 딴 人돈學術院을 設立해 每年 各 分野에서 優秀한 業績을 남긴 人士에게 人돈文化賞을 施賞하고 있다. 國際學部人 린튼글로벌비즈니스스쿨을 設立해 優秀한 글로벌 人力을 養成하고 있다.

이기진 記者 doyoce@donga.com
#3·1運動 100周年 特輯 #抗日運動 #한남대初代總長 린튼宣敎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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