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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記者의 스포츠 人生劇場] <36>監督職 물러난 籠球大統領 許載|東亞日報 </36>

[김종석 記者의 스포츠 人生劇場] <36>監督職 물러난 籠球大統領 許載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2月 23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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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年 만에 처음 家族과 설名節 함께 보냈죠”

추적추적 겨울비가 大地를 적시던 16日 ‘籠球 大統領’으로 불리던 사나이는 짐을 싸고 있었다. 9日 프로籠球 KCC 司令塔에서 自進 辭退한 許載(50)다. 1週日 동안 外部와의 接觸을 끊었던 그와 電話를 連結하기가 쉽지 않았다. “트럭을 불러 마북리(KCC 宿所가 있는 競技 龍仁市 마北東)에 있는 冊과 옷가지를 빼고 있다. 짐이 꽤 된다.” 그러면서 그는 “籠球 選手들에게는 (한창 시즌과 겹친) 설 連休가 대목인데. 난 좀 쉬어야지. 早晩間 술 한잔하자”고 했다. 名節을 家族과 함께 보내게 된 것은 初等學校 時節 以後 거의 40年 만이었던 許載. 그는 그렇게 지난 歲月을 整理하고 있었다.

○ “남 탓하는 건 내가 못 봐준다”

허재가 美國 硏修 途中 歸國해 KCC 監督을 맡은 것은 꼭 10年 前인 2005年이다. 江山이 한 番 變할 동안 優勝 2回, 準優勝 1回의 成跡을 거두며 스타 出身 指導者의 成功時代를 열었다. 1997年 出帆한 프로籠球에서 選手와 監督으로 모두 優勝을 經驗한 건 그가 最初였다.

하지만 지난 2年間 10位, 7位로 플레이오프 進出에 失敗한 뒤 3年 契約이 끝나는 이番 시즌 頂上을 노렸다. 그는 “한番 날아간 새는 다시 날아오지 않는다. 優勝 機會가 오면 꼭 잡아야 한다”고 意欲을 보였다. 周圍에서도 KCC를 優勝 候補로 注目했으나 結果는 正反對였다. 辭退를 發表할 當時 KCC는 9競技를 남겨 둔 狀況에서 11勝 34敗로 9位에까지 처졌다. 期待를 모았던 김민구가 飮酒 交通事故로 戰力에서 離脫한 뒤 巨額을 들여 自由契約選手로 迎入한 가드 김태술과 除隊 後 復歸한 하승진이 번갈아 負傷에 허덕인 탓이다. 名譽 回復을 노렸던 허재는 極度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辭退 發表 며칠 前 서울 江南의 한 고깃집에서 만난 그의 顔色은 나빴다. 白髮이 星星했고 머리숱마저 부쩍 줄었다. 얼굴은 憔悴했다. 술盞을 잡은 손이 甚하게 흔들렸다. 特有의 豪宕한 微笑와 座中을 壓倒하는 입담은 자취를 감췄다. “잘해 보려고 했는데 突破口가 보이지 않는다. 選手를 못 만든 내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 負傷도 監督이 못해서 나오는 거다. 남 탓하는 건 내가 못 봐 준다.”

돌이켜 보면 그때 이미 마음을 비웠던 것 같다. 늘 世上의 中心에 있던 自身에게 닥친 現實을 堪當하기 힘들어 보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KT 전창진 監督도 合席했다. 둘은 初等學校와 中高校 2年 先後輩로 親兄弟 같은 사이. 前 監督 亦是 成跡에 따른 마음苦生 끝에 最近 急性 心筋梗塞으로 病院 身世를 졌다. 孤獨한 勝負師들의 哀歡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허웅, 虛暈의 아빠로 불렸으면…”

剛한 카리스마로 有名한 허재는 義理와 名分을 重視했다. 年俸 契約을 할 때도 條件에 戀戀하지 않았다. 그는 용산고 同門 關係로 오랜 歲月 因緣을 맺어 온 球團 오너의 높은 信賴를 받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忽然히 떠날 決定을 한 것으로 傳해졌다. 허재와 ‘실과 바늘’로 불리는 한 籠球人은 “去就와 關聯해 누군가에게 負擔이 되기 싫어했다”고 傳했다. 허재는 “내가 빨리 떠나야 뒤를 이어 監督이 될 추승균 코치도 經驗을 쌓을 時間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비록 그만둬도 如前히 팀의 將來를 생각하고 있었다.

허재의 두 아들은 모두 籠球 選手다. 長男 웅은 東部에서 新人으로 活躍하고 있다. 막내 훈은 延世大 主戰 가드. 아직은 ‘허재의 아들’로 불리지만 피는 못 속인다는 얘기를 자주 들을 만큼 非凡한 實力을 지녔다. 언젠가 平素에도 通話가 쉽지 않던 허재가 記者에게 電話를 걸어 온 적이 있다. 동아일보에 두 아들 記事가 실린 날이다. “고맙다. 언젠가 내가 허웅, 虛暈의 아빠로 불리면 좋겠다.” 剛한 男子로만 보였던 許載에게서 깊은 父性愛를 確認한 敵은 그 後로도 여러 番 있었다. 두 아들에게 늘 자랑스러운 籠球 先輩이자 아버지가 되려 했던 그의 모습도 辭退와 無關하지 않았다.

○ “앞으론 南山서 運動 좀 해야겠다”

野人으로 돌아간 허재의 自宅은 N서울타워가 보이는 서울 중구에 있다. 그는 “앞으론 南山에서 運動 좀 해야겠다”고 했다. 남산은 허재가 中高校 時節 틈만 나면 뛰어다니며 꿈을 키우던 곳이다. 體力을 기르려고 每日 밤 10km 언덕길을 내달리기도 했다. 허재가 初心으로 돌아가 새 出發을 하기에는 安城맞춤인 ‘私邸(私邸)’일 것 같다. 選手 時節 競技 途中 손가락이 부러지고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도 코트를 지켰던 許載 아닌가. 그런 鬪魂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記憶 속에 남아 있다. 그가 툭툭 털고 일어나 백코트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金鍾奭 記者 kjs0123@donga.com
#許載 #辭退 #설 連休 #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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