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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說委員 人物探究/고미석]‘參與時人’에 가두지 말라… 그는 偉大함 꿈꾼 自由인|동아일보

[論說委員 人物探究/고미석]‘參與時人’에 가두지 말라… 그는 偉大함 꿈꾼 自由인

  • 東亞日報
  • 入力 2018年 4月 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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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50周忌

시인 김수영
詩人 金洙暎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論說委員
1968年 6月 15日 午後 11時 10分頃, 서울 麻浦區 구수동의 집으로 向하던 한 中年 男子가 버스에 치였다. 重傷을 입은 채 西大門 赤十字病院으로 옮겨졌으나 다음 날 아침 숨을 거둔다. ‘우리 文學 속의 가장 벅찬 젊음’으로 膾炙되는 詩人 金洙暎(1921∼1968). 올해로 他界 50週期를 맞아 1981年 初版이 나온 ‘金洙暎 全集’(前2卷)의 두 番째 改訂版이 선보였다. 그동안 詩 全集 63刷, 散文集 47刷를 거듭한 스테디셀러의 完結版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於焉 半世紀. 그럼에도 잊혀지기는커녕 갈수록 存在感이 커지는 것은 金素月 정지용 서정주로 이어진 近代詩의 歷史에서 獨自的 行步로 ‘破壞的 革新’을 主導했기 때문이다. 그 核心은 日常의 言語로 詩를 썼다는 點. 아름답고 純粹한 詩語에 對한 固定觀念을 破壞하고, 世俗的 言語로 鄙陋한 現實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이렇듯 그의 突出的 想像力은 以前에 없던 世界를 보여주며 文壇에 地殼變動을 일으켰다. ‘창작과비평’ 主幹과 韓國作家會議 理事長을 지낸 이시영 檀國大 招聘敎授는 “그는 韓國詩의 落後性에 反撥하고 現實을 따라가지 못하는 固陋한 文法에 對해 抵抗했다”며 “只今 읽어도 젊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라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金洙暎의 삶은 波瀾萬丈했다. 裕福했던 집안의 家勢는 그가 태어나면서 기울었다. 平生 病치레度 잦았다. 最終 學歷은 연희전문 英文科 中退. 演劇에서 文學으로 航路를 바꾸고 1946年 ‘藝術部落’을 통해 登壇했다. 1950年 結婚 直後 戰爭이 터졌고 北에 義勇軍으로 徵集됐다. 곧 脫出했으나 巨濟捕虜收容所에 갇히는 身世. 以後 敎師, 通譯官 等 職業을 轉轉했고 4·19革命 以後 ‘于先 그놈의 寫眞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等 革命의 熱氣를 담아낸 詩를 쏟아냈다. 東亞日報 1960年 7月 7日子에 실린 ‘푸른 하늘을’도 그中 하나. ‘自由를 爲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自由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孤獨한 것인가를.’

그렇다고 그를 參與時人으로 限定짓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틀에 가두는 일. 實際로 參與詩는 作品의 折半도 안 된다. 金洙暎 全集을 編輯하고 美國 하버드대에서 김수영 硏究로 博士學位를 받은 李英駿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學長은 이렇게 說明한다. “그가 꿈꾼 自由는 壓制로부터의 自由도 있지만 그만큼 或은 더 重視한 것이 있다. ‘偉大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金洙暎은 自身이 되고 싶은 가장 높은 비전에 近接하기 위한 自由를 所望했다.” 自身을 極限까지 끌고나가 自己更生을 懇切히 꿈꾼 김수영, 그의 作品을 이런 觀點에서 되짚는 努力이 必要하다는 指摘이다.

日本語와 英語에 能했던 金洙暎은 가난한 살림에도 ‘人카운터’ ‘파르티잔 리뷰’ 같은 美國 雜誌를 定氣購讀하며 同時代의 흐름에 步調를 맞췄다. 世界文學의 尖端에 照應하면서 새로운 文法을 ‘發明’하고 새로운 領域을 ‘開拓’한 것이다. 生前에도 死後에도 詩人들이 認定하는 詩人으로 첫손에 드는 理由다. 1957年 김현승 徐廷柱 趙芝薰 等 錚錚한 先輩들을 제치고 第1回 한국시인협회賞을 받았다. 韓國 詩가 나아갈 바를 놓고 羅針盤이 흔들릴 때 金洙暎의 可能性을 그만큼 높이 評價한 것이다. 2007年 季刊 ‘時人世界’가 100餘 名의 詩人을 對象으로 ‘벼락치듯 나를 戰慄시킨 最高의 始球’를 물었을 때도 그랬다. ‘欲望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發見하겠다’(‘사랑의 變奏曲’)를 비롯해 金洙暎의 作品이 가장 많이 言及됐다.
資料: 東亞日報DB, 민음사

‘恒常 죽기를 覺悟하고 살자(常住死心·상주사심)’는 左右名臺로 詩人은 每瞬間 熾烈하게 살았다. 適當히,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은 통하지 않았다. 自身의 칼끝을 權力뿐 아니라 스스로의 虛僞와 俗物性에 假借 없이 들이댄 것이 證據다. 時代와 不和하며 自己檢閱을 몰랐듯이, 요즘 基準에서 ‘女嫌’으로 여겨질 만큼 날것 그대로의 表現이나 欲望을 드러내며 自己美化를 拒否했다. 2011年 金洙暎文學賞을 받은 서효인 詩人은 “無理하다 싶을 만큼 自身에게 眞率하고 率直한 面貌”, 卽 正直함을 金洙暎 文學의 特徵으로 꼽았다.

抑壓的 時代에 對한 批判, 自然과 超越的 世界에 對한 事由, 感覺의 快樂, 生活人으로서 實存 等 모든 境界를 悠然하게 넘나든 김수영, 矛盾이 빚어내는 緊張感이 그의 詩를 더 魅力的으로 만든다. 急進的 主張을 하면서도 理念의 奴隸가 아닌 詩人의 良心과 市民의 養殖에 忠實한 것도 그의 美德. 4·19 直後 그는 세 番이나 新聞社들로부터 詩를 退字 맞았다. 理由인즉. 한 篇은 似而非 革命 行政을 揶揄해서, 한 篇은 民主黨과 革新黨을 揶揄해서. 나머지 한 篇은 李承晩이를 다시 잡아오라는 內容이 問題였단다. ‘藝術이 가야 할 길은 政治보다 훨씬 위에 있다’고 믿은 詩人이 되살아난다면, 理念에 따라 내 便, 네 便 集團을 가르는 文壇을 보고 깜짝 놀라지 싶다.

詩人의 自由, 市民의 自由를 等價에 놓은 金洙暎의 登場과 더불어 韓國 文學은 開闢을 經驗했다. 自身이 되고 싶은 最高의 狀態에 이를 때까지 全力投球한 人間, 旣存 價値와 體系를 顚覆한 感受性으로 詩의 새 領土를 만든 詩人, 時代를 앞서간, 或은 境界를 超越한 自由인. 그의 삶과 文學이 如前히 有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理由다.
 
고미석 論說委員 mskoh119@donga.com

◆ 바로잡습니다

本報 4月 2日子 A32面에 揭載된 ‘ 參與時人에 가두지 말라…그는 偉大함 꿈꾼 自由인 ’ 記事의 題目에서 ‘金洙?’은 金洙暎이 맞습니다.
#詩人 김수영 #김수영 50周忌 #김수영 文學 #金洙暎文學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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